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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또 한 명의 학생이 숨졌습니다. 과학영재고 출신 카이스트 2학년생 박 모군. 올들어 네번째 자살이었습니다. <인터뷰> 김동수(카이스트 학과장) : "학점이 아주 저조하지는 않았는데 본인 생각에는 좀 더 잘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같은 날 같은 시각, 한 신입생은 피켓을 들었고 <인터뷰> 카이스트 학생 : "다양한 1등을 뽑았습니다. 근데 학교 측에서는 학점이 높은 1등을 요구하기 때문에" 학교 곳곳엔 학생들의 대자보가 내걸렸습니다. 끝내 고개를 숙인 카이스트 총장. <인터뷰> 서남표(카이스트 총장) : "있어서는 안될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상황에 대해 국민 여러분들께 학부모님들에게 학생들께 머리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3.0, B학점의 공포. 카이스트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앵커 멘트> 누구보다 로봇을 좋아했고, 누구보다 번뜩이는 수학적 재능을 가졌던, 스무살 안팎 젊은이들이 꿈을 이루기도 전에 왜 스스로 목숨을 버려야만 했을까요? 많은 학생들은 성적이 낮으면 수업료를 내야 하고, 또 전 과목 영어 강의가 견디기 힘들다고 호소합니다. 학생들을 무한 경쟁으로 내몬 한 명문 대학의 실험이 가져온 비극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네번째 학생의 자살 소식. 카이스트 총장실에 돌연 긴장감이 감돕니다. <녹취> "2학년 이고요, 전 직원모이세요.. 네, 전화왔습니다." 2학년 박모군이 숨진 채 발견된 곳은 인천의 한 아파트 1층 현관 앞. <녹취> 경비원 : "여기에서 머리에 피를 흘리고..." 숨지기 하루 전 우울증 진단서를 들고 학과장에게 휴학을 신청한 박군, 이 날엔 1학기 중간고사 성적이 발표됐습니다. 1학년 2학기 평균 성적은 B학점 정도. 학교 측이 정한 수업료 부과 기준 학점에 불과 0.07점 부족했습니다. <인터뷰> 카이스트 학생 : "다 잘하는 사람들 안에 섞여있으니까 자기가 못할수도 있으니까 처음 맛보는 패배감이라고 해야 하나 스트레스도 크고" 앞서 지난 1월에는 박군의 동급생 조모군이 학교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입학 후 두 학기를 다니는 동안 수학 등에서 학사경고를 받아 새 학기에 8백만 원 가까운 등록금을 내야 했습니다. <인터뷰> 故 조군 고교 동아리 교사 : "(학생이) 힘들 때 학교를 잘 찾아왔습니다. 와가지고 '선생님, 성적이 많이 잘 안나오고 있습니다.' 이럴 때 '그거 모르고 간 거 아니지 않느냐' (라고 했습니다.)" 국내외 경시대회를 휩쓸며 로봇 천재로 불리던 조군. 출신 고교의 로봇 동아리 방에는 조 군이 영화 '아이언 맨'의 주인공을 꿈꾸며 밤새워 만들었던 로봇이 지금도 걸려있습니다. <인터뷰> 김원의(조군 고등학교 교사) : "직접 찾아가면 물컵을 내주고 혈당을 찍으면 혈당도 재고 그런 로봇도 직접 만들었습니다." 일반계에서 전문계 고등학교로 전학갔을 만큼 로봇을 좋아했던 조군은 재능을 인정받아 입학 사정관제를 통해 카이스트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영어로만 진행되는 미적분 수업은 조군이 넘기엔 너무 높은 벽이었습니다. 비극은 조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성적이 우수했던 과학고 출신 카이스트 2학년생도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긴 채 숨졌고, <녹취>자살 학생 기숙사 친구 : "그냥 계속 우울하다, 계속 힘들다고 쉬고 싶다고 그랬어요. (뭣 때문에 힘든 지는?) 그거는 자세히 모르겠는데요" 지난달 말에는 4학년 복학생이 서울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잇단 학생들의 비극에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은 최근 장문의 글을 모든 학교 구성원에게 띄웠습니다. '명문대 학생들은 남보다 더 잘하기 위해 경쟁한다'며 '궁극적인 해결책은 각자의 마음과 자세에 달렸다'는 겁니다. 학생들의 분노는 폭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곳곳에 붙은 대자보. 가장 큰 문제는 "미친 등록금 정책"과 "패배를 용납치 않는 재수강 제도" 라며 "일주일에 사흘만 자고 싶다" 고, "살려달라" 라고도 적었습니다. 빗속에도 멈추지 않는 한 신입생의 1인 시위. 이른바 '방사능 비'보다 무서운 건 서남표 총장의 학사 정책이라고 말합니다. <인터뷰> 카이스트 학생 : "총장님, 구성원의 마음 또한 헤아려 주셔서 이번에 적극적인 변화가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숨진 학생들의 상황이 다 같지는 않지만, 논란의 중심에는 카이스트만의 독특한 수업료 제도가 있습니다. 성적에 따라 수업료를 다르게 부과하는, 이른바 차등 수업료제. 즉, 학점이 3.0에 미달할 경우 0.01점당 6만 원씩이 부과돼 기준 학점 2.0 아래로 내려가면 수업료는 최대 600만 원이 됩니다. 여기에 4년 내 졸업을 못한, 이른바 연차 초과 학생일 경우 기성회비까지 포함하면 한 학기 750만원을 내야 합니다. 과학 인재 양성을 위해 모든 학생들에게 등록금 면제혜택을 시행해온 카이스트. 하지만, 지난 2천6년 취임한 서남표 총장은 국민 세금으로 공부 안하는 학생들까지 지원할 순 없다는 원칙을 내세웠습니다. <인터뷰> 서남표(카이스트 총장) : "지도자란 무엇이냐, 자기 책임을 그때그때 해내는 것이 지도자가 할 일입니다. 그런데 성적만 나쁘면 다시 택하고, 다시 택하고 그래서 학생은 한 학년이 더 있을 만큼 3850명이 되고 기숙사는 3천명만 들어가고, 그러니까 두 사람이 있을 방에 세 사람을 집어넣고 공부를 할 수 없다... 이런걸 어떻게 해결하느냐 방법은 그때그때 책임지고 공부를 할 때는 하고" 이 같은 제도 시행 결과 4년 기한 내 졸업을 못한 학생 수는 첫 시행된 2천7년 봄 학기 271명에서 지난해 봄 학기 138명으로 줄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학교측의 이 같은 '징벌적 등록금'제도로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말합니다. <인터뷰> 곽영출(카이스트 총학생회장) : "벌금의 형식으로 부과되다 보니까 사실 학점이 낮은 게 잘못을 한 건 아니잖아요. 잘못을 한 건 아닌데 마치 이 학생들에게 문제가 있고, 잘못하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그런 점들이 문제가 되고 있고" 카이스트의 기초와 전공 과목 평가 방식은 상대평가. 즉,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일부는 3.0 미만의 점수를 받게 됩니다. 카이스트의 한 교양 과목 수업 시간. 강의는 모두 영어로 진행됩니다. 가르치는 교수도, <녹취> "민주주의에서 받아들이기 더 쉬울까요? 아니면 민주주의가 아닌 곳이 더 쉬울까요?" 배우는 학생도 모두 영어만 사용해야 합니다. 대체로 기본적인 의사 소통에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이는 학생들. 하지만, 강의 내용을 100%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고 털어놓습니다. 글로벌 인재를 키우기위해 이뤄지는 전 과목 영어 수업. 전공과 영어 실력 모두 다 놓치기 쉽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인터뷰> 김명환(서울대 영문과 교수) : "대학에서 배우는 그 어려운 학문을 그 미묘한 차이도 많은 것인데 이걸 외국어로 수업을 진행한다고 할 때는 굉장히 의사소통에 장애가 생기는 경우가 많고 정보전달의 양도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고 배워서 하는 외국어라고 한다면 가르칠 때 상당히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거든요" 생명공학도의 꿈을 안고 카이스트에 입학한 새내기 학생. 밤 늦은 시각 기숙사를 나서 도서관에서 새벽 2시를 넘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학 등 필수 과목을 미리 배우지 못한 일반계고 출신이다 보니 과학고 출신 친구들보다 두세배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인터뷰> 카이스트 1학년 학생 : "평소 자는 시간은 2시에서 3시 사인데 과제가 있는 때는 조금 더 늦게 자요. (늦게 잘 때는 몇시에 자요?) 한 4시, 4시에 자면 조금 일찍 자는 거고. (새벽 4시요? 그게 일찍이에요?) 네, 조금 오래 걸리면 6시까지도..." 하지만, 첫 시험인 중간고사 성적은 자신의 기대 이하. <인터뷰> "첫 시험 점수는 잘 안나왔어요.(기대만큼?) 기대만큼 나오지는 않았어요. (왜요? 여기는 다들 공부를 워낙 열심히 해서 그럴까요?) 네, 그런 면도 있고 제가 첫 대학 생활 하다보니까 좀 해이해진 것 같기도 해요, 고 3때보다. (그래서 실망 많이 했어요?) 실망했으니까 기말 때는 더 열심히 해야죠" 지난 학기 2.6점의 학점으로 350만 원의 수업료를 내야 했던 3학년생. 과학고 출신이지만 일부 전공 과목은 기초가 약해 점수 올리기가 만만치 않은 만큼 맘 고생도 적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카이스트 학생 : "바깥에서 인식이, 카이스트 다니면 등록금이 면제된다 그런 고정관념을 가지고 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것도 부담이 많이 되는 것 같고" 자정이 넘어도 불이 꺼지지 않는 동아리 방, 한 댄스 동아리의 연습이 한창입니다. 여느 대학같으면 낮시간에 연습을 하지만 공부 때문에, 한밤에 겨우 시간을 낼 수있습니다. 그나마 차등 수업료 제도 이후 학생들의 동아리 참여가 크게 줄었습니다. <인터뷰> 카이스트 학생 : "동아리하면 망한다 이런 얘기를 많이 들으니까 애초에 발을 안들여놓는 애들이 많고, 하다가 중간고사 끝나고 처음에 들어와가지고 충격받고 나간 애들도 많고 그래요" 오직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법을 가르치고, 또 배우는 풍토에 대해 교수 사회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진형(카이스트 교수) : "학교가 좀 따뜻해야 됩니다. 학생들한테도 좀 따뜻하게 해줘야 되고 구성원인 교수들한테도 긍지를 느낄수 있도록 해줘야지, 교수를 직원 대하듯, 돈을 주고 부리는 직원이다 이런식의 생각으로 학교를 운영하면 이런식의 사고 계속 날거라고 생각합니다." 카이스트와 함께 국내 최고의 이공계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 포스텍, 일반계와 과학고, 특목고 출신 등 다양한 학생들. 일반고 출신 학생이 입학 후 1년 동안 학교에 적응하기란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녹취> “1학년 때 많이 힘들지? 그렇죠. 처음에는...” <인터뷰>정현선(포스텍 2학년/일반고 출신) : "동아리 활동하는 선배들한테 많이 물어보고 친구들끼리 모여서 그룹 스터디 같은 것도 많이 하고 그러면서 공부했던 것 같아요." 아직 판단하기엔 이른 단계지만, 수능 성적만 보고 선발한 학생들보다 경쟁력이 높아진 것으로 학교 측은 보고 있습니다. 카이스트의 경우 일반고 출신 2학년 학생 가운데 150명 가운데 3.0 미만을 받아 수업료를 낸 학생은 66명으로 전체의 37.3%, 특목고 출신 15%의 두배를 넘습니다. 하지만, 서울대를 보면 1,2학년 때 상대적으로 점수가 낮았던 사회적 배려 계층 학생들이 3,4학년이 되면 일반 학생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향상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 1, 2년의 학력차를 극복하도록 학교측에서 좀더 도와주고 기다려 준다면 충분히 따라갈 수있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김진형(카이스트 교수) : "학교가 다양한 학생들을 뽑아가지고 다양한 뒷받침을 한만큼 학교가 재정적이나 그런 것이 준비가 잘 안돼 있어요, 우리 학교만 그런게 아니라 어느 학교나 다 마찬가집니다." 뒤늦게 학사 정책 개선에 나선 카이스트. <인터뷰>카이스트 교무처장 : "학부생들이 4년 동안은 성적에 관계없이 수업료를 면제하는 안도 나와있습니다." 징벌적 등록금 제도를 폐지하고, 전과목 영어 강의제도는 보완하기로 했습니다. 5개 기초필수 과목을 줄이고, 다양한 특기를 가진 학생들을 서로 다른 틀로 평가하는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카이스트 학생 자살 사태로 수면 위로 떠오른 교육의 무한경쟁 문제. 일류 학생을 키우는 것은 국가적 과제지만 자칫 공부만 하는 기계를 만들거나 그 과정에서 소중한 생명을 잃는다면 오히려 국가적 손실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