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 신작시 | 김윤식
사각지대 방식 외
고요 속에 새긴 차가운 빗금
각도에 갇혀 돌아오는 길을 잊어버린 것 같아
타이어 찢어지는 비명을 깨우는 오후 누가 다녀갔네요
고갯길마다 신호를 접을 수 없었던 오토바이 중독된 바퀴를 돌고 돌아 멈출 수 없는 시동을 걸고 지시등 없는 속도마다 무섭게 달린 것인데
이제 사선 안에 막 터트린 생명같이 도로에 새겨진 노란 두 줄을 붉게 그으며 그가 주문한 봄에 식어버린 꽃을 배달하지요
고지서보다 빨리 도착한 빚 독촉같이
늦지 않겠다는 깜빡이는 약속을 쏟아낸 계절이
구부러진 도로를 빠져나가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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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혈흔
그 자리에 붙어 있어야만 했는지
잠복해 있는 생애 얽힌 사실을 물고 놓지 않는다
진실의 동선을 추적하는 진술만이 허우적거리는 밤
안에서는 밖을 떠올리고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감염된 알리바이로 자욱하고
말라버린 은유에 물을 주고 증명해야 하는 순간
어디로 변질할지도 모르는 변명은 구멍 난
염증 앞에서 혀를 내밀고 거친 숨을 쉰다
깊숙이 틀어박힌 불안을 필사적으로 빼내며
제 속을 한 마디씩 보여주는
한 방향뿐인 거울 앞에서 남겨진 조각을 맞춘다
시효가 없는 묵비권으로 입을 여는 새벽
깨어져야 하는 고백은 멀고 깨지지 않는 진실은
이미 도마뱀 꼬리처럼 잘려나가고
조금씩 자라난 거짓은 거짓이 아니라서
색깔을 바꾸는 말 속을 바꿀 수 없는 말로 빠져나간다
한 생이 붉다가 검은 한 점으로 닫히는 동안
기억해야 하는 수만 가지 찬란한 의혹을
다만 오물거리다가 뱉었을 뿐이다
김윤식
경기도 안양 출생으로 2022년 ≪서정시학≫으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