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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대전문인총연합회 명예회장
[금강일보] 필자는 이 땅에 민주혁명을 불러온 4·19를 앞두고 지난 주말 ‘3·8민주로’를 찾았다. 자유를 위해 정의로운 첫 발걸음을 내딛고 독재에 항거했던 정신을 되새기게 했던 길을 다시 찾아 걸은 것이다. 3·8민주의거기념일이 2018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지만 60주년인 지난해엔 코로나19로 인해 기념식도 제대로 열지 못한 채 허태정 대전시장과 김용재 3·8기념민주사업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3·8민주로’ 명명식이 거행됐다.
대전고 오거리로부터 원동 네거리까지 길지 않은 길이지만 이 도로가 3·8민주로로 공표되기까지 만 60년이라는 세월을 지나야 했다. 불의에 항거하면서 정의를 부르짖으며 교문을 박차고 나와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자유를 외치던 그 길이 역사성을 인정을 받는 데 무려 60년이 걸린 셈이다. 주지하다시피 4·19의 불씨가 된 3·8민주화운동이었다. 그 숭고한 뜻을 되새겨보고자 필자는 이 길을 다시 찾은 것이다.
1960년 4·19가 일어났던 그날도 필자는 이 길 위에 서 있었다. 대전고에서 치르도록 예정됐던 충남도내 장학생 선발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였다. 그 시험은 무기 연기됐고, 필자는 옛 도청 앞 쪽에서부터 시작해 당시 대전터미널(현재는 대림빌딩) 앞을 지나 대고오거리로 완전무장한 채 혁명진압군이 진주하던 장면을 목격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출동한 진압군을 가득 태운 군 트럭의 행렬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열네 살의 중학교 1학년, 청양군 장평면 미륵댕이 시골 촌놈이 서 있는 대전고 교문 앞쪽으로 진군하던 진압군은 원동 쪽으로 이동했다. 불과 한 달여 전인 3월 8일 정의로운 깃발을 들고 민주화를 외쳤던 바로 그 길이었다. 당시 까까머리 소년이 이제는 70대 후반의 나이가 됐다.
우리는 ‘3·8민주로’와 ‘3·8의거둔지미공원’ 등을 명명해 그 역사적 의미를 반추하고 있다. 대전에는 백제의 마지막 충신을 기리며 그 호국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마지막 황산벌 전투에서 장렬하게 산화한 계백장군을 떠올리기 위해 논산 쪽으로 가는 길을 ‘계백로’로 명명했다. 그리고 우리의 명산 계룡산을 기억하기 위해 공주 쪽으로 가는 길에 ‘계룡로’라는 이름을 불였다. 서울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충무로’, 고구려 명장 을지문덕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을지로’, 종각을 만들어 도성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던 의미를 되새기는 ‘종로’ 등이 있다. 이와 맥을 같이 하는 대전의 길이 바로 ‘3·8민주로’다. 불의와 억압에 항거하며 민주화를 이룩하게 한 참뜻을 기억하게 하는 이 길이야말로 우리 대전시민, 아니 전 국민이 잊어선 안 될 길이다.
그런데 요즈음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한 길이 아니라 포퓰리즘에 편승한 길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연예인들의 인기를 활용해 관광객을 끌어모으려 서울에 ‘송해길’, 전남 진도에 ‘송가인길’, 경북 김천에 ‘김호중길’, 경남 하동에 ‘정동원길’ 등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인기에 영합하는 철없는 짓을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3·8민주로에 섰을 때도 필자는 연예인들의 이름이 붙은 길들이 떠올라 마음이 착잡해졌다. 이 3·8민주로의 숭고한 정신이, 그 역사적인 의미가 포퓰리즘의 붐을 타고 만들어지는 길에 휩쓸려 희석될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이고 걱정이었다. 필자는 4월을 맞아 3·8민주의거가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있고, 그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민주주의를 성취하게 한 의거임을 떠올린다. 4·19혁명을 불러온 3·8민주의거 정신은 우리가 영원히 간직해야 할 숭고한 정신임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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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청송님, 감사합니다.
늘 제 글 올려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