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성전의 번제단과 물두멍·놋바다, 그리고 구속사적 교훈"
— 8.15일 이승현 목사 세미나 강해설교 를
요약 압축 편저자 : 임명락 목사
서론
1부 지난 시간에는 성소 안의 금등대, 진설병 상, 분향단을 통해 구속사의 전진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성전 바깥의 번제단과 물두멍·놋바다를 비교하며, 그 속에 담긴 구속사적 의미와 목회자인 우리에게 주시는 적용점을 나누겠습니다.
장막 성전에서 솔로몬 성전으로, 솔로몬 성전에서 에스겔 성전으로 넘어갈수록 번제단의 크기는 커지고, 물두멍의 수와 용량은 풍성해지며, 결국 에스겔 성전에서는 물두멍 자체가 사라집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건축상의 확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은혜가 율법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풍성함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본론
1. 번제단의 크기 비교와 구속사적 의미
장막 성전의 번제단은 조각목으로 만들었으며, 장과 광이 각각 5규빗, 높이가 3규빗이었습니다(출 27:1; 38:1). 네모 반듯한 형태였습니다.
솔로몬 성전의 번제단은 놋으로 만들었고, 장과 광이 각각 20규빗, 높이가 10규빗으로 크게 확대되었습니다(대하 4:1). 장막 성전에 비해 바닥 면적과 높이 모두 현저히 커졌습니다.
에스겔 성전의 번제단은 3층 구조로, 높이가 10척이며, 위에서부터 12척, 14척, 16척, 맨 밑바닥 18척의 계층을 이룹니다(겔 43:13-17). 솔로몬 성전까지는 규빗(약 45.6cm)을 사용했으나, 에스겔 성전에서는 척(규빗에 손바닥 너비 약 7.6cm를 더한 약 53.2cm)을 사용합니다. 따라서 실제 바닥 넓이는 솔로몬 성전보다 더 큽니다(18척 × 53.2cm ≈ 9.58m). 높이 또한 솔로몬 성전의 약 4.56m보다 높은 약 5.32m에 이릅니다.
이처럼 번제단이 장막 → 솔로몬 → 에스겔로 갈수록 커지는 것은, 장막과 솔로몬 성전이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었다면, 에스겔 성전은 전 세계 만민을 위한 성전임을 보여줍니다. 에스겔 성전은 신약 시대 새 예루살렘의 청사진입니다(『구속사 시리즈』 관련 부분 참조).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루어지는 대속의 은혜는 구약의 율법적 은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풍성합니다.
번제단은 예수님의 구속을 나타내는 기구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손을 아무리 씻고, 수세미로 문지르고, 심지어 손목을 잘라 태워 바다에 뿌려도 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피만이 죄를 없앱니다(엡 1:7). 번제단이 점점 커지는 것은 이 구속의 은혜가 율법 시대보다 훨씬 크고 풍성함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오늘 우리 가슴과 목회 현장마다 이 십자가 구속의 은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2. 물두멍과 놋바다의 비교
장막 성전에는 물두멍(히브리어 ‘키요르’, 단수형)이 하나뿐이었습니다(출 40:30). 제사장들이 수족을 씻는 데 사용되었으며, 씻지 않으면 죽는다고 경고되었습니다(출 30:18-21). 제물을 씻을 때는 별도의 그릇에 물을 담아 성소 북편에서 처리했습니다.
솔로몬 성전에서는 물두멍이 열 개로 늘어났고, 좌우에 각각 다섯 개씩 배치되었습니다(왕상 7:38-39). 여기에 더하여 거대한 놋바다(지름 10규빗 약 4.56m, 높이 5규빗 약 2.28m, 둘레 30규빗)가 있었습니다(왕상 7:23-26). 물두멍은 제물을 씻는 데, 놋바다는 제사장들이 씻는 데 용도가 구별되었습니다(대하 4:6). 물두멍마다 40밧(약 908ℓ)을 담았고, 받침과 바퀴가 있어 이동이 가능했습니다(왕상 7:30, 32, 38).
놋바다의 용량에 대해서는 열왕기상 7:26이 “2천 밧”을, 역대하 4:5가 “3천 밧”을 기록합니다. 히브리어 동사가 다릅니다. ‘쿨’(간직하다, 유지하다)은 평상시 정상적으로 담아 두는 양(2천 밧, 약 45,420ℓ)을, ‘하자크’(강하다)는 최대로 담을 수 있는 양(3천 밧)을 가리킵니다. 성경은 모순되지 않으며, 자세히 읽고 기도할 때 성령께서 구별점을 알려주십니다(사 34:16).
놋바다는 열두 마리의 소가 동서남북 사방을 향하여 받들고 있었으며, 소의 뒷부분은 안으로 향하게 하여 전진의 자세를 취했습니다(왕상 7:25).
에스겔 성전에는 물두멍이 전혀 없습니다. 이는 구속의 완성을 나타냅니다. 주님 재림으로 성도가 신령한 몸으로 부활·변화되면 더 이상 씻을 필요가 없습니다. 거룩이 완성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새 예루살렘의 청사진으로서 에스겔 성전은 이미 거룩이 이루어진 세계를 보여줍니다.
3. 구속사적 교훈과 목회자 적용
첫째, 물두멍이 열 개로 늘어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희생과 거룩의 은혜가 율법 시대보다 열 배나 풍성함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더 큰 은혜를 받았으므로 율법 시대 성도들보다 더 잘 믿어야 합니다. 물두멍이 제물을 씻는 데 쓰였듯이, 신약 성도는 말씀으로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엡 5:26). 말씀을 듣지 않고 묵상하지 않는 것은 샤워하지 않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놋바다의 엄청난 물(약 4만 5천 ℓ)은 왕 같은 제사장인 우리에게 주시는 거룩의 은혜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함을 가르칩니다(벧전 2:9). 이 은혜를 받았음에도 감사하지 못하고 원망하는 삶은 은혜를 망각한 것입니다. 놋바다를 영어로는 ‘Sea’라고 부를 만큼 넓은 은혜를 우리는 받았습니다.
셋째, 놋바다를 받치는 열두 소는 열두 지파의 순종과 희생을 상징합니다. 4만 5천 ℓ가 넘는 물을 받들며 도망가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모습은 목회자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오늘날 목회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권위의식입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권위적 리더십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섬기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박윤식 목사님은 교회 목회자들에게 화장실 청소, 쓰레기 분리수거, 맨홀 오물 퍼내기까지 직접 하게 하셨습니다. “목사는 성도 밑 닦아 주는 종”이라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필리핀 선교 현장에서 좁은 공간에 여러 식구가 사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얼마나 복을 받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이사야 1:3은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라고 책망합니다. 요한복음 10:4는 양이 목자의 음성을 알고 따른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며 희생하는 ‘소’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소다”라는 의식을 가지고 성도를 섬길 때, 맡겨진 사역지에서 부흥이 일어나고 성도들에게 존경받게 될 것입니다.
결론
번제단이 점점 커지고, 물두멍과 놋바다가 풍성해지며, 결국 에스겔 성전에서 물두멍이 사라지는 과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은혜가 율법보다 훨씬 크고 풍성하며, 최종적으로 거룩이 완성됨을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기억하며, 열두 소처럼 순종과 희생의 삶을 살고, 섬기는 종으로 목회하기를 결단합시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목회 현장마다 부흥을 주시고, 성도들에게 존경받는 믿음의 종으로 세워 주실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장막·솔로몬·에스겔 성전의 번제단과 물두멍을 비교하며 구속 경륜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놋바다처럼 풍성한 거룩의 은혜를 주셨사오니, 열두 소처럼 주님의 음성을 듣고 절대 순종하며 희생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교만과 가짜 권위를 박살내 주시고, 진정으로 섬기는 자로 서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