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70년 혜성같이 나타난 사내가 있었으니 그 이름
이소룡(Bruce Lee) 당시 액션영화를 쥐락펴락 하던 왕우,
츄룡,깡따위,로례 등을 일거에 날려 버린다.
운동으로 다져진 찰진 근육과 핸섬하면서 카리스마가 넘쳐
나는 표정,거기에 더해 여지껏 볼 수 없었던 화려하면서
우아하기 까지한 몸동작 등이 스크린을 통해 투영되면서
홍콩은 물론 아시아,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를 강타한다.
이소룡 / 영화배우
- 생몰
- 1940년 11월 27일 ~ 1973년 07월 20일
- 신체
- 키171cm, 체중63kg
- 데뷔
- 1941년 영화 'Golden Gate Girl'
- 학력
- 워싱턴 주립대학교 철학과
- 팬카페
- http://cafe.daum.net/BruceKick
- 주요작
- 이소룡 일대기 생과 사, 사망탑, 사망유희, 배트맨
이소룡의 출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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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정무문]중 마지막 장면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1973년7월20일 이소룡
사후 한국에 그의 영화가 들어오기 시작 했는데 그 전까지는
이소룡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당시 상황은 정보부재의
시대였으니까.여하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수입된 영화는
[정무문]이었다.피카디리 극장에서 대대적인 선전과 함께
여름방학에 개봉 했는데 영화관은 입추의 여지없이 인산인해
였다.난 용돈을 쪼개고 쪼개 당당히 개봉관에 입성하여
개학 후 학교에서 침을 튀기며 이소룡에 대하여 피력 했다.
이때 이소룡의 영원한 팬이되기를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것은 당시 입장료가 260원이었다는 사실
나머지 영화는 주로 의정부쪽에 진출하여 관람하였다.
왜? 물론 빈약한 주머니 사정 때문이었다.의정부에 있는
영화관은 버스비 포함하고도 엄청 남기 때문이었다.
이소룡의 영화에는 80년대 홍콩 액션영화를 책임질 인물들이
단역,스턴트 맨 혹은 조역으로 많이 등장하는데 그 인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먼저 성룡.정무문에서 정무관 문하생으로 나오고 일본인 관장
스즈끼가 이소룡의 발차기에 문을 뚫고 나가 떨어지는 멋진
장면의 스턴트맨이 성룡이다.또 용쟁호투의 동굴 안 격투신에서
목이 꺽여 죽는이가 성룡이다.홍금보도 용쟁호투 오프닝 신에서
이소룡과 대결을 벌이고 있고 원표 또한 섬 연습하는 장면에서
앳된 모습이 잠깐 스치고 지나가고 스턴트 맨으로도 참여했다.
영환도사 임정영은 당산대형에서 이소룡의 동료로 나와 비중있는
역활을 맡기도 하며 용쟁호투에서는 악당보스'한'의 스턴트 맨
으로 나온다.원화는 정무문 공원 격투 신에서 무참하게 얻어
터지는 일본인중 한명이고 용쟁호투 파티장면에서 날아오는
표창을 받기도 한다.
이렇게 받을 때 80년대의 주역들은 이소룡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국내에서도 그의 인기는 불타 오르기 시작 했는데 그 열기는
식을줄을 몰랐다.당시 청소년들은 쌍절곤을 배운답시고
대걸레 자루를 부려뜨려 개목걸이 체인을 연결하여 사용
하였고 그의 동작을 무수히 따라했다.또 사이드 킥은 얼마나
연습했던가! 그는 영웅이었다.
사진(상)미국 TV 시리즈 그린 호넷
사진(하)영화[용쟁호투]중 스턴트 맨 성룡과 한 씬
이소룡 사후,짝퉁 이소룡이 활개를 치기 시작 했는데
그 면면을 들여다 보면 이여룡,여소룡,허쭝도,당룡(김태정)
거룡,차룡등 이름도 생소한 배우들이 스크린을 종횡무진했다.
이소룡의 인기에 편승해 상업적으로 만들어 낸 배우들이었다.
이소룡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중 그래도 선전한 이는 허쭝도와 양소룡이었다.
이미테이션이 오래가지 못하듯 2,3년 반짝하고 모두
단명하고 말았다.그리고 세월이 흘러 양소룡은 주성치 영화
[쿵푸 허슬,2004]에서 완전히 바뀐 캐릭터로 출연한다.
허쭝도
양소룡
당룡
이와는 별개로 조금은 특색있는 배우들도 등장했는데
왕도,담도량,유충량,황가달,유가휘 등이 나름 인기 경합을
벌였다.이들도 역시 이소룡의 영향으로 모두 발차기가
주특기였다.지분을 조금씩 나눠갖고 인기 경합을 벌였는데
도토리 키재기식 이었다.나름 개성들이 있었으나 이소룡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성룡이 [취권]으로 스타 대열에
합류하기 전까지는 모두 고만고만한 영화에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높였다.그러나 성룡의 등장과 함께 쇠퇴하기 시작한다.
왕도(대표작:비밀객)
담도량(비도권운산)
황가달(소림사 18동인)
유가휘(소림36방,킬빌1,2)
유충량(좌) 거룡(우)
위에 열거한 액션배우들중 지금도 활동하는 이는 동양의 율 브린너
라고 불리우던 유가휘 밖에없다.
여기에 더해 한 인물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구라다 야스아키(倉田保召)다. 이사람은 일본에서 활동하다 홍콩이 좋아
눌러 앉은 사람인데 주로 비중있는 조연급으로 출연하면서 입지를
다졌다.내가 그의 얼굴을 처음 대한것은 장철감독의 72년작 [흑객]
이었다. 호남형의 마스크와 뛰어난 무술 실력으로 스크린을 달구었는데
환갑을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액션 현장의 필드에서 뛰고 있다.
영화[흑객]츄룡,깡따위,구라다 야스아키 출연
이소룡이 등장 하면서 홍콩 골든 하베스트사가 완전히 입지를
구축하기 시작하면서 쇼 브라더스의 명성은 점차 퇴색하기 시작한다.
70년 중반부터는 골든 하베스트 소속의 배우들이 활기를 뛰기
시작 하는데 이소룡 영화에 단역,또는 스턴트 맨으로 등장했던
성룡,홍금보,원표 등이다.그러나 이들이 만개하기 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특히 성룡은 70년초부터 제목도 기억 안
나는 온갖 잡다한 영화에 얼굴을 내밀면서 인지도를 서서히 올리기
시작했는데 드디어1979년[취권]으로 완전히 스타대열에 합류한다.
그러나 이들 3인방의 진정한 시대는 80년대 부터라고 보아야
마땅하다.
비룡맹장 포스터
성룡 쌍커풀 수술전의 모습
첫댓글 윗글 보다는 최근스타들 아직 활동하는 사람도 많네
아네~~감사합니다!
저는 이소룡 세대에 태어나지않아서 잘 모르지만 말죽거리잔혹사보고 이소룡세대에 대해 조금 알수있었네요~
아 네~~그러셧군요~~반갑습니다 도우너님~
내가 아는 사람은 이소룡 밖에 없군요
이소룡이라도 아시니 다행이군요.
귀중한 설명 넘넘 고맙습니다
반갑습니다 풀코스님~~^)^
리플 고맙습니다~~
이소룡의 정무문이 최고 걸작이죠.
관객마다 좋아하는 스타일은 조금 다르겠습니다만....
제가알기로는 아시아에서 히트한영화는 맹룡과강 이고.
세셰적으로 히트한 작품은 용쟁호투 라더군요....
정무문/당산대형/용쟁호투/맹룡과강/사망유희 는 이소룡이 미완성으로 남기고 타계하는 바람에 김태정 이란한국배우 가 대역해서 미완성작을 완성했었구요..생과사는 기록영화구요....돌아온이소룡은 허쭝도가 대역 한작품....
이소룡은 정말 레전드란 타이틀에 딱~ 맞는 스타죠.. 불꽃처럼 살다가.. 바람처럼 사라져 간 스타.. ^^ .. 초등학교 때 선친 손 잡고 피카디리 극장에서 <정무문>을 봤을 때의 충격이란.. 가히 핵 폭탄 급이었다고 할 만 합니다.. 아마 이런 배우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 같습니다.. 단순한 액션 스타가 아니라.. 실제 절권도란 신종 격투기를 창시한 진짜 고수이기 때문입니다.. 이소룡의 뒤를 이어 성룡과 이연걸이 바톤을 이어 받다가.. 요즘에는 견자단이 대세로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 .. 그리고 <쿵후허슬>에 나오는 머리카락 빠진 독두꺼비 필살 권법의 악당이.. 바로 양소룡이군여.. ㅋㅋ..
성룡,홍금보,원표의 쾌찬차 포스트가 맘에들어요
이소룡은전설적인 배우죠 우리들의 우상이였어요 진짜싸나이
언제나 저의 기억속에 남아 있는 최강의 남자~~
그리고
눈으로 제압한다.~~~
이소룡은 세계적인 배우입니다.
이소룡이 갑이져
이소룡의 대표작은 쿼니 뭐니 해도 "정무문"아닐까?
용쟁호투, 맹룡과강, 정무문, 당산대형, 사망유희 등
이소룡 주연영화 참 즐감했던 영화들입니다.
ㅎㅎ~성룡이 쌍꺼풀 수술했네요~~~~
왜 ?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스타들은 요절을 많이 하는지 안타까운 생각입니다 ~
이소룡의 무술연기는 보고 또 봐도 싫증이 안나거든요 ,,, 연기가 아니고 실제 상황 같아요 ,,, 감사합니다 ~ ~ ~
정말 잘 읽었습니다.
홍콩영화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어려서 이소룡 흉내 낸다고 책가방에 쌍절곤을 가지고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방 벽에 이소룡 포스터 붙여서 부모님께 혼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