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장우석입니다. 저는 올해 31세된 가정을 가진 건강한 남자입니다.
어릴때 저는 부모님께는 순종적이고 차분한 성격을 가진 평범한 아이로 성장했습니다. 때론 활
발하기도 했지요. 그러면서도 양심이 민감했고 맘이 부드러웠습니다.
감정은 풍부한것같았는데 말로 잘 표현할줄 모르는 아이였던것같아요. 눈물은 많았구요. 스마
일맨이었고 NO를 할줄 모르는 우유부단함도 있었습니다.
학교 다닐땐 순한 성격이라 친구도 많았고, 잘 어울리기도 했지만, 맘 구석엔 외로움이 항상 있
었습니다. 아버지는 참 좋으신 분이셨지만, 자주 무서운 모습이 보여 맘의 문을 열지 못하고
아버지와의 관계가 중학교때부터는 금이가기 시작했고, 대화가 줄어들어 갔습니다.
고1때는 공부시간에 간식을 먹었다는 이유로 학교선생님으로부터 심하게 뺨을 10대나 맞고 쌍
코피가 터지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고2때는 불량한 아이들과 원치 않는 싸움을 하게 되었
고 결국 밀려서 사정없이 밟히는 사건이 생겼고 그 뒤로 우울증이 내 인생에 찾아오기 시작했습
니다. 그때에는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했었지만, 그리 도움을 얻지못했다고 느꼈던것같습니다.
열심히 잘 하던 공부가 집중이 안 되었고, 사람들이 무서워지고 마음이 불안해 지며, 세상살기
싫다는 맘이 계속 들었습니다. 결국 대학입시에 떨어졌고 저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소심증을 탈
출 시켜준다는 화술학원에 다니게 되었고, 시내의 지하철 안에서, 극장가에서 담력훈련도 하고
연설도 하며, 대인공포증(적면공포)을 공개도 해 보았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적면공포로 부끄러워 사람들을 만날수 없었고, 우울증은 계속 깊어져서 아무것도 느낄수 없었
습니다.
저는 마치 빛이 없는 깊은 터널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에도 아버지의 도움으로 1994년 20세의 봄이 찾아왔을때 건설회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들어갔는데 악독한 상사를 만나게 되었고, 저의 인격을 무시하고 욕하는 그 사상에 대해 어느
날 폭발하면서, 조울증을 겪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저에게 큰 시련이 다가왔
고 저는 정신병의 아픔으로 혼란과 고통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삶에 대한 희망을 잃어갔고 모진 폭풍우에 자초하는 배와 같이 내 영혼이 깊은 바다에 가라앉
게 되었습니다.
현실과 비현실, 진실과 거짓의 세계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괴롭고 처절히 부서지는 정신의
아픔을 감내하며 2년이란 세월을 정신병원의 폐쇄병동과 개방병동,낮병동을 오가며 병의 고통
을 감내했습니다. 그 사이에 5번의 재발과 3번의 강제입원 그리고 약의 부작용으로 고통을 겪었
습니다.
재발이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정신을 차릴수 없었고 제 딴엔 열심히 사는것같았는데 조증으로
자주 뜨면서 강제입원당하는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때마다 제 자신을 믿을수 없었고, 자신과
병에 계속 속는 기분이었습니다.
발병할때마다 조울증에 과대망상,종교망상,피해망상 등이 동반되어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요한계시록을 내식대로 해석해 "신의 아들이다" (절대자)혹은 "심판대리자다"라고 얘기하며 집
안의 온 물건들을 부수고 거울들과 창문을 깨뜨렸습니다. 집안에 남아나는 유리가 없을 정도였
으니 과히 상상이 안될정도입니다. 하늘이 노랗게 보이고, 가족들도 몰라보았으며, 저는 홀로
이 세상에 버려진것같았습니다.
정신병(조울증)의 증상은 기분의 들뜸과 큰기복, 사고의 비약,그리고 지나친 자신감과 수면시간
의 변화로 밥도 거의 안 먹고도 힘이 넘쳤고,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며, 말도 많아지고, 여러가지
계획들을 세우는 등 경조증을 보이다가 자아경계가 손실되고(나와 타인의 생각이 모두 통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현실판단력을 잃어가며 내가 누군지 알수 없었고 환청과 망상을 동반한 조증
에 이르기까지 되었습니다. 그 뒤로는 조절할수 없는 공포와 분노로 폭발하고 정신을 잃어버리
는 조광증을 겪었습니다.
물론 병의 초기에는 기분의 변화와 함께 생각이 복잡해지고,남들을 의식하게 되고, 남들이 나를 욕하는
게 아닌가, 비웃는게 아닌게하는 생각도 찾아왔고, 그 나아가 남들이 나를 해칠려고 한다는 두려움이 함
께 찾아오기도 했기도 했지요.
조광증을 겪으며 기절도 여러번 했었고, 깨어 나면 정신병원의 독방 침대에 묶여있었습
니다.그리고 우울증시기때의 무기력함은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것같은 혼란을 겪었습니다. 시체
와 같이 침대에 누워 몇달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꿈도 희망도 사라지면서 고립과 외로움 속에 떨며 두려워했습니다.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는 행
동으로 병원 독방에서 일주일동안 침대에 묶이는 일도 여러번 겪어야 했습니다.
그때의 느낌은 "살아도 살은 것이 아니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라는 탄성이 저절로 나왔습
니다.
저의 미래는 자살의 두려움과 행여병자나 일평생 저 깊은곳의 요양원에 불행히 버려져서 생을
끝마칠것같은 불안으로 가득했습니다.
한번은 재발때 밤에 집을 몰래 나왔습니다. 조증으로 인해 "너는 신의 아들이다."라는 환청을 듣
고 환희와 황홀감에 빠졌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밖을 나와 자동차 위를 뛰어다니기도 하고, 신호
등에서 길을 건너가려는데 맘속에서 들리는 음성이 "너는 죽지 않으니 뛰어 건너가라!" 그랬습니
다. 환청을 종교적 체험으로 착각하고 건너가려는데 자동차의 큰 경적소리에 순간적으로 현실감
각이 잠깐 돌아와서 교통사고를 면하게 되었습니다.
또 한번은 우울증때였습니다. 병원에 재입원했을땐데 맘이 갑갑하고, 감정이 심하게 꼬인것같
은 분노가 있을때였지요. 아침에 일어나면 죽음만을 생각했고, 자살시도방법을 주위에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화장실에 가서 안경알을 깨 동맥을 끊고 말겠다는 나쁜 생각이 들었고, 행동하
려고 화장실에 들어가려니 조금전까지 열려 있었던 문이 꼭꼭 잠겨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때 일들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보호하셨구나." 라는 걸 깨달을수 있었습니다.
1995년말에는 재수시절로 체대준비를 하며, 실기시험을 전력으로 치루고 있었는데, 합격을 눈
앞에 두고 첫사랑에 빠졌는데, 실연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죠. 자신을 포기할만큼 이성에 집착이
생기면서 기분이 우울해지다가 알수 없이 상승하기 시작하면서 조증으로 뜨게 되면서 증폭된
자신감에서 파괴적인 행동으로 표출되며 사랑도, 대학도 포기하고 강제입원 당했던 적도 있었
죠.
제가 깊은 병중에도 부모님과 가족은 저를 포기하지 않았고, 아버지의 사랑의 편지들과 어머니
의 헌신과 뜨거운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하나님은 저에게 벌을 주시는 것 같아보였지만,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신앙생활을 아픔속에서도 놓치 않으며,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배워가게 되었습니다.
그 곤고함속에서도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도 않고, 고아와 같이 두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찬찬
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제가 가장 연약할때에도 함께 하셨습니다.
의료진에 대한 신뢰했습니다. 마치 중풍병자를 위해 도고 기도하며 예수님께 나아온 가족과
친구들로 인해 그 환자가 회복되듯이 저는 치유와 재활의 길로 한걸음씩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생명은 아주 미약하였으나, 잘 드러나지 않아도 빛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가지고 온다."는 성경의 말씀을 깨닫고 인정하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다행히 하나님의 섭리하심으로 신앙의 끈을 놓치않았고, 사회재활프로그램의 적극적 참여와
상담치료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낮병동에 와서 찻집에서 일하며 사회적응훈련을 시작했으며, 23
세에는 이모부가게(노래방)에서 지속적인 적응을 해 갔습니다.
2주에 한번 쉬는 날은 어머니와 함께 등산을 다니며, 체력을 보강했고, 약의 부작용으로 현기증이 나고
구토가 나올것같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어머니는 강인한 사랑으로 좋은 습관을 길러주셨고, 시간이
지나고, 저는 스스로 등산을 다니며, 약해진 몸을 단련해 갔습니다.
노래방에서 인간관계와 일에 대해 배우면서 여러가지 헤프닝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술취한 손님이 화분을 넘어 뜨리면서 넘어졌는데 저
는 어느것이 더 중요한지를 알지 못하고 화분을 먼저 잡았습니다. 손님이 다칠뻔 했습니다.
또 화장실에서 걸레를 빠는데 옆에 손님이 서 계신걸 의식하지 않고 물을 티기면서 빨아서 손님
에게 혼난적도 있었지요. 그만큼 판단력이 많이 흐려져 있었습니다.
계절적으로 혹은 스트레스로 인해서든 한해동안에도 여러번 위기가 왔고 병의 재발을 막는 예
방을 해야 했고, 주위의 친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의사선생님의 한 말씀, 혹은 목사
님의 조언이 현실감각을 붙잡게 하는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제가 경조증기때 신유은사를 가진 이를 찾아 병나기를 바라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있었습
니다. 병이 완치될수 있을것같은 착각이 왔었습니다. 다행히 박인표목사님의 조언으로 위기를
모면할수 있었고 약을 추가해 먹고 휴식을 취해줌으로 병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정신질환이 귀신의 영향을 받는 부분이 있는것같아 보이나(우울,낙망,절망감), 사실은 그것과 구별되는
뇌의 질환이고, 결코 귀신들린 병이 아님을 다시금 확인할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정신의학으로 꾸준
히 치료받아야 낫는 병임을 확인했습니다.
그 후에도 재발징조가 계속적으로 찾아왔고, 두려움과 혼란이 찾아올때는 몸과 마음이 밧줄에
꽁꽁 묶이는 것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너무 두렵고 힘들때는 기도도 할수 없고, 이불속에서 누워
무력한 시간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식사와 수면으로 영양과 휴식을 취하고, 약을 조절
해 먹으며, 이겨 나갔고, 가족들이 적극적 지지와 기도로 후원해 주었습니다.
자신과 병에 대해 알아가고, 배워가는 애끌는 시간이 필요했고, 자신에 대한 신뢰감도 차차
회복해 가길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신뢰할수 없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
을 잊지 않는 믿음안에서 터를 세워나가야 했습니다. 이것을 알아가는데에는 꽤 시간이 걸렸습
니다.
노래방에서 5년이란 세월을 적응하며 한국뇌성마비복지관을 알게 되어 토요일마다 2년동안 보
조교사일을 하며 저보다 세상속에서 아픔을 겪는 이가 많음을 알았고 저의 작은 힘으로 남을 도
울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뇌성마비장애우의 환한 미소는 저의 마음에 기쁨을 가져다주었고, 우
리 정신질환우도 할수 있음을 배워갔습니다.
1999년도에는 대한정신보건가족협회에 정신재활수기를 써 우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27세부터 정신재활을 위해 어릴 때부터 배운 태권도를 다시 배우게 되었고 운동을
통해 건강한 몸과 치유서적을 통해 정신을 기르고, 성경과 기도와 경건서적을 통해 신앙생활을
하며 영혼을 돌보는 균형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기독교 정신재활단체를 만나게 되었고 노명근 목사님이 계신 달리다굼공동체와 국립
서울병원(정신병원)교회의 박인표목사님이 계신 정신재활선교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많
은 도움을 얻게 되었고 정신질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정신병은 부모나 자신의 탓도 아닌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타낼뿐아니라, 그 사람에게
상처입은 치유자로서의 사명을 주시기 위함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신병은 하나님이
섭리가운데 있었습니다. 물론 선하신 하나님이 병을 주신건 아니지만요.
그럴수록 인간의 죄의 문제가 얼마나 무섭고, 큰 저주인가를 볼수 있었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피흘림에
깊은 감사의 마음이 점점 커져갔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안에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조
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정신병을 앓는 저로인해 우리가정을 온전히 하나로 뭉치게 하시고 아름다운 공동체
로 변화시키셨으며, 상처가 많았던 우리 가족을 회복시키시고 구원(치유)하시는 것이 계획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제 정신병으로 인해 산산이 부서진 우리가정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라는 성경말씀처럼 하나님께서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친아버지와의 깊은 상처는 치유되어 갔으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
고 용서하셨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주님께 맡기고 미국이민를 가셨습니다. 그동안 저의 병원치료로 인한 경제적
타격도 컸습니다. 한편으론 제가 부모님을 떠나 독립하는 시간이 필요함을 부모님께선 아셨던
것같습니다.
작은누나집에서 3년을 생활하다가 3년동안 독립생활을 했습니다. 저는 태권도장의 관장님의 권
유로 태권도사범을 하게 되었고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 전도사님과 함께 국립서울병원교회(높은
산예배)-22세때 입원했던 정신병원의 교회-에 2년동안 찬양율동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환우들과의 시간은 너무나 귀했고 정신병으로 인해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그들의 맘은 세
상 누구보다 아름다웠으며, 진리를 알고 싶어하고 말씀을 꿀보다 사모하는 갈급함은 그 무엇으
로도 바꿀수 없는 참 간절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정신질환을 앓았던 이도 사회적응의 가능성이 있음에 도전하고 싶었고, 태권도장 차운행
도 할겸, 운전면허도 따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진단서를 가지고 와야했고, 면허장의 정신과
의사랑 상담을 하며, 까다로운 절차가 있었고, 다행히 운전면허 2년소지만에 1년에 한번씩 받던
수시적성검사에서 제외되어 일반인들과 동일하게 적성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기뻤습니다.
ㅡ예전에 제가 21세에 운전면허를 딴 경험이 있는데 다 합격하고, 정신질환경력란을 작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면허가 취소되는 불이익을 당한 경험이 있었지요. 억울했지요. 여러분들은 이
런 경우를 당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현재까지 태권도 사범일을 4년동안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신실한 자
매를 만나게 되어 1년전에 결혼해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정신재활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꿈이 있는데 저의 꿈이기도 합니다. 하나는 태권도
선교이고 또 하나는 정신재활선교로 정신질환자들을 향한 마음입니다.
세계태권도선교협회에서는 미션시범단으로 2년간 활동했으며, 이 두 비전을 어떻게 접목시켜
하나님의 일을 할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이렇게 11년동안 재활의 과정을 겪어오면서 주님께서 한단계 한단계씩 회복시켰으며 우리 가정을
순수한 복음으로 인도하셨으며, 아버지를 선교사로 부르셔서 지금은 멕시코의 빈민층구제일과 호스피
스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저는 기독교의 복음전파와 비전을 가지고 영혼구제을 위해 남은 인생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정신적인 상처와 억압과 번민과 육신의 연약함으로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복음과 정신재활
과정을 통해 그들을 사랑하길 원합니다.
지금도 전 약을 복용하고 있지만, 정신의학을 허락하신 인류의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기도드리
며 잘 먹고 있습니다.
제가 영과 정신과 몸의 균형된 건강으로 회복 되었듯이 그들과 삶을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파도를 헤쳐나가는 힘찬 배와 같이 내삶의 주인인 예수님과
동행하며 살고 싶습니다 .
비전들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데에는 헌신과 깊은 사랑이 있어야하는데 저는 많은 부
족함을 느끼는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늘 기도하고 낮춘 맘으로 주님을 의지하고 나아
가길 소망합니다. 또 귀한 동역자들을 만나게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저는 바울사도와 같이 위대한 이는 못 되지만, 그분은 자신의 육체에 가시에도 불구하고 자고하
지않고, 주의 은혜가 족함을 알고,"나에 나됨은 하나님의 은혜라" 고백한것같이 저도 상처입은
치유자의 사명으로 예수님을 따라가길 원합니다.
오늘과 내일,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과 내 인생을 인도하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께 어떤것도 해
드릴수 없는 연약한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반응하고 영광 돌리는 인생이 무엇인지 생각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거룩한 아름다움과 그리스도의 탁월함을 사랑하길 갈망합니다.
지금까지 얘기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신재활 선교원카페에서 퍼온글입니다.
카페 게시글
수다방(좋은글)
퍼온 글입니당^^~ 정신병 극복 수기에여..!~
올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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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25 09:09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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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네~ 참 감동적인 수기네요...상처입은 치유자로서의 사명....우리 연구소 모든 식구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 봅니다...장우석님의 앞길에 더욱 하나님의 축복이 풍성하길 바라며 또 귀하게 쓰임받는 하나님의 종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