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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4월 2일 목요일
[(백) 주님 만찬 성목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교회는 주님 만찬 저녁 미사로 ‘파스카 성삼일’을 시작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당신의 몸과 피를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하셨다. 이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그들에 대한 크나큰 사랑을 드러내셨다. 제자들과 그 후계자들은 예수님의 당부에 따라 이 만찬을 미사로 재현한다.
오늘은 성목요일입니다. 이 미사에서 성체성사의 신비와 사랑의 새 계명을 묵상하고, 발 씻김 예식에 참여하며, 서로 사랑하고 봉사하며 살아가기로 다짐합시다. 성체 보관 장소(수난 감실)로 옮겨 모신 성체 앞에서 밤새 깨어 조배하며, 당신 목숨까지 내주신 주님의 사랑을 묵상합시다.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주님을 위한 파스카 만찬에 관해 말씀하시며 이를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대대로 축제를 지내야 한다고 하신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만찬에서 빵을 먹고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만찬 식탁에서 일어나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그들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파스카 만찬에 관한 규칙>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12,1-8.11-14
그 무렵 1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2 “너희는 이달을 첫째 달로 삼아,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
3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에게 이렇게 일러라.
‘이달 초열흘날 너희는 가정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집집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마련하여라.
4 만일 집에 식구가 적어 짐승 한 마리가 너무 많거든,
사람 수에 따라 자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과 함께 짐승을 마련하여라.
저마다 먹는 양에 따라 짐승을 골라라.
5 이 짐승은 일 년 된 흠 없는 수컷으로 양이나 염소 가운데에서 마련하여라.
6 너희는 그것을 이달 열나흗날까지 두었다가,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모여 저녁 어스름에 잡아라.
7 그리고 그 피는 받아서, 짐승을 먹을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라.
8 그날 밤에 그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불에 구워, 누룩 없는 빵과 쓴나물을 곁들여 먹어야 한다.
11 그것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다.
12 이날 밤 나는 이집트 땅을 지나면서,
사람에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땅의 맏아들과 맏배를 모조리 치겠다.
그리고 이집트 신들을 모조리 벌하겠다. 나는 주님이다.
13 너희가 있는 집에 발린 피는 너희를 위한 표지가 될 것이다.
내가 이집트를 칠 때, 그 피를 보고 너희만은 거르고 지나가겠다.
그러면 어떤 재앙도 너희를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14 이날이야말로 너희의 기념일이니,
이날 주님을 위하여 축제를 지내라.
이를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대대로 축제일로 지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여러분은 먹고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1,23-26
형제 여러분, 23 나는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었습니다.
곧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24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5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6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15
1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2 만찬 때의 일이다.
악마가 이미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3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4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5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6 그렇게 하여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자
베드로가,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하였다.
7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8 그래도 베드로가 예수님께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9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목욕을 한 이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
11 예수님께서는 이미 당신을 팔아넘길 자를 알고 계셨다.
그래서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식탁에 앉으셔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13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14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15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고 계십니다. 이 만찬이 끝나면 곧 겟세마니에서 붙들리시고, 다음 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것입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이 급박한 이별의 순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셨는지 헤아려 보는 일은 ‘파스카’를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복음은 이를 분명히 전합니다.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요한 13,1), 곧 이 세상의 삶에서 저세상의 삶으로, 삶의 한복판에서 죽음의 문턱으로 당신 자신을 ‘내주실’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조차 예수님께서는 두려움이나 투쟁심보다 당신의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지니셨습니다.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13,1).
그 사랑의 기억은 성찬례 안에서 오늘도 이어집니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이 말씀처럼 성찬례는 그분의 ‘내주심’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참례하는 성찬례는 과거 사건을 기념하는 예식으로 그치지 않고,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예수님의 내주심, 곧 자기 봉헌의 신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앞에 사랑의 징검다리를 놓아 주십니다. 지상의 삶을 넘어 하늘 나라에 이르도록, 현세의 한계를 넘어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도록 우리를 이끄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배신에서 용서로, 분열에서 일치로, 아픔에서 위로로, 미움에서 사랑으로 건너가도록,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내어놓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분께서 열어 주신 영원한 길로 건너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왕직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 세족례!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잡히시던 전날 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십니다. 바야흐로 최후의 만찬, 마지막 저녁 식사 시간입니다. 그런데 식사 도중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한 깜짝 이벤트를 하나 준비하셨습니다.
식탁에서 일어나신 예수님께서는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 한명 한명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이른바 세족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적 영광이 드러나는 겉옷을 벗으십니다. 그리고 종의 표현인 수간을 허리에 두르셨습니다.예수님은 신적 존엄성을 내려놓으시고 인간이 내려갈 수 있는 가장 낮은 곳, 종의 신분으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세족례는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엄청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느님의 외아들이요 인류의 구세주이십니다. 왕 중의 왕,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렇다면 너무나도 당연히 종이요 신하인 제자들이 왕이신 예수님의 발을 씻어드렸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왕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발을 씻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족례를 통해서 당신은 세상의 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왕이심을 보여주십니다. 섬김의 왕이고 봉사의 왕이고 겸손의 왕이심을 만천하에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족례를 통해 왕에 대한 전통적인 페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꿔놓으셨습니다. 왕직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족례는 왕중의 왕, 참된 왕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든 왕들과 지도자들에게 진정한 왕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온 몸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왕이 추구해야 하는 모습은 군림과 압제, 권력과 힘이 아니라 섬김과 봉사, 사랑과 존중이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신 제스처가 세족례입니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뜻밖의 상황에 깜짝 놀란 수제자 베드로는 완강히 거부합니다. “제 발은 절대 씻지 못하십니다.” 베드로의 이 반응은 예수님의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인생관을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표현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우리도 오늘 예수님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친교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의 발을 씻어주시는 그분의 겸손한 제스처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 태도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권위나 힘을 가진 사람들은 더 이상 어깨에 힘줘서는 안됩니다. 쥐꼬리만한 권위라 할지라도 뭔가가 우리에게 주어졌다면 그것을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이웃을 섬기는 데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족례의 정신입니다.
얼굴 닦아주는 부모, 발 닦아주는 부모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는 그 지극한 신비 안으로 초대받았습니다. 성목요일, 주님께서는 성체성사를 세우시기 전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이 발 씻김 예식을 '부모와 자녀의 관계'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 발을 씻기시는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크게 두 부류의 부모 밑에서 자랍니다. 하나는 자녀의 '얼굴'을 닦아주는 부모이고, 다른 하나는 자녀의 '발'을 닦아주는 부모입니다.
먼저 얼굴을 닦아준다는 것은 자녀를 세상 사람들에게 "내 자식 이렇게 잘났어!"라고 보여주기 위해 다듬는 행위입니다. 얼굴은 세상에 드러나는 '자존심'과 '명예'를 상징합니다. "너는 나의 자랑이야!"라고 말하며 자녀의 성적, 외모, 학벌이라는 얼굴을 반짝반짝하게 닦아 자신의 허영심을 채우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결국 불행해집니다. 모든 고통의 원인은 욕망인데, 결국 부모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주인공 주디 갈랜드(Judy Garland)의 어머니 에델 검(Ethel Gumm)은 그녀는 딸을 최고의 스타로 만들기 위해 아홉 살 소녀였던 딸에게 '에너지 약'이라며 각성제를 먹였고, 밤에는 잠을 자게 하려고 수면제를 강제로 투여했습니다.
촬영장에서 지치지 않고 예쁜 '얼굴'을 유지하게 하려고 하루에 블랙커피와 묽은 수프만 먹이며 혹독한 다이어트를 시켰습니다. 딸의 건강이나 정서보다 영화사의 계약 조건과 수입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주디 갈랜드는 평생을 약물 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마흔일곱이라는 이른 나이에 화장실 바닥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습니다.(출처: 제럴드 클라크 『겟 해피: 주디 갈랜드의 생애』)
자녀의 얼굴을 씻는 부모는 심리학적으로 '자기애적 대리만족'에 빠진 것입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자녀를 통해 보충하려는 욕망입니다. 가지지 못한 배고픔으로 자녀까지 먹어 치우는 괴물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반면, 발을 씻어주는 부모는 자녀의 얼굴(자존심)이 아니라 발(욕망과 상처)을 봅니다. 발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이며, 가장 낮고 더럽고 수치스러운 곳입니다. 그것을 씻어주고 닦아줄 때 세상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아이 가슴 속에는 자존감이 샘솟습니다. "내 자부심이 되어라"가 아니라, "괜찮아, 네가 어떤 모습이든 너는 있는 그대로 소중하단다" 라는 말을 듣는 것입니다.
영화 '시네마 천국' (1988)의 알프레도(Alfredo)도 그런 인물입니다. 눈이 멀어 더는 일을 할 수 없게 된 영사기사 알프레도는 고아나 다름없던 어린 토토를 매몰차게 밀어냅니다. 그는 토토가 낡은 시골 마을에 남아 자신의 곁을 지키며 안주하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욕망을 가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토토를 위해 기꺼이 악역을 자처하며 마을을 떠나라고 매정하게 밀어냅니다.
"돌아보지 마라. 향수에 젖지 마라. 네가 하는 일을 사랑해라." 그는 토토가 가진 과거에 대한 집착과 고립이라는 '더러운 발'을 자신의 외로움으로 씻어준 것입니다. 알프레도가 죽은 뒤 토토에게 남긴 유산, 즉 검열로 잘려 나갔던 수많은 '키스 신'들을 이어 붙인 필름은 "너의 모든 불완전한 순간들이 실은 사랑이었다"라는 최고의 발 씻김이었습니다. 그 사랑 덕분에 토토는 죄책감 없이 세계적인 거장으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출처: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영화 '시네마 천국' 1988)
오늘 복음은 아주 중요한 비밀을 우리에게 일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셨다는 것, 그리고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오셨다가 하느님께 돌아가신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요한 13,3)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실 수 있었던 이유는 그분이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모든 것'을 받았음을 확신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느님께 다 받았다고 믿고 감사하는 부모는 자녀에게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내 잔이 넘치니 그저 흘려보낼 뿐입니다.
베드로의 발을 씻기신 주님의 행위는 그의 교만을 씻어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했습니다. 하지만 유다와 달리 베드로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께서 무릎을 꿇고 자신의 더러운 발을 만지시던 그 '겸손한 사랑'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통곡하며 회개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위해 노예가 되셨던 그분의 '발 씻김'을 기억하며 그분이 나에게 '다 주셨음'을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감사한 것을 찾아내 다 주신 분이 계심을 믿을 때, 비로소 우리의 죄는 씻겨 나갑니다. 감사하는 자만이 깨끗해질 자격을 얻습니다.
여기, 감사의 힘으로 자신의 비극을 축복으로 바꾼 한 여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베스트셀러 『천 개의 은총』의 저자 앤 보스캠프(Ann Voskamp)입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동생이 농장 사고로 트럭에 치여 죽는 광경을 눈앞에서 보았습니다. 그 충격으로 그녀의 삶은 분노와 공포, 결핍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녀는 자녀들에게도 늘 완벽을 강요하며 '얼굴 닦아주는' 엄격하고 신경질적인 어머니였습니다. 아이들이 우유를 쏟거나 진흙 묻은 발로 거실을 더럽히면, 그녀는 그것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 고함을 쳤습니다. "빨리 안 닦아! 왜 이렇게 말썽이니!" 그녀에게 자녀는 자신의 완벽함을 증명해야 할 '얼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제안했습니다. "감사한 일 천 가지를 매일 적어보게." 그녀는 처음엔 비웃었습니다. "내 인생에 감사할 게 뭐가 있다고!" 하지만 그녀는 억지로라도 적기 시작했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아이들의 웃음소리', '부드러운 비누 향기'... 아주 사소한 것부터 하느님께 받은 것들을 찾아내기 시작하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녀는 깨달았습니다. '아, 하느님은 이미 나에게 모든 것을 다 주고 계셨구나!' 감사일기를 통해 그녀가 '다 받은 사람'임을 확신하게 되자, 자녀들을 향한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실수로 바닥에 잼을 잔뜩 쏟았을 때, 예전 같으면 불같이 화를 냈을 그녀가 조용히 아들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들의 눈을 보며 웃어주었습니다.
"괜찮아. 우리에게 먹을 잼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니? 그리고 네가 건강하게 움직여서 이걸 쏟을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야."
그녀는 아이의 '얼굴'을 닦아 완벽하게 만들려던 강박을 버리고, 아이의 실수와 부끄러움이라는 '더러운 발'을 감사의 수건으로 씻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아이의 발치를 기쁘게 닦아낼 때, 아이는 비로소 엄마의 사랑 안에서 안식하며 정직하고 밝은 아이로 성장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할 때 부모는 비로소 기쁘게 노예가 되어 자녀의 발을 닦습니다. (출처: 앤 보스캠프 『천 개의 은총』)
자녀를 키울 자격은 내가 얼마나 풍족한가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감사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하느님께 다 받았음을 믿을 때만 타인의 허물을 덮어주는 여유가 생깁니다. 그러니 힘들더라도 감사할 것이 없다는 자신과 싸워 하루에 감사한 것 5개씩 쓰고 잠자리에 드는 기적의 5분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교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이 부유하다고 믿는 자는 남의 발을 씻기지 못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자신이 모든 것을 가졌음을 깨닫는 자는 기쁘게 노예가 되어 타인의 발을 닦는다. 부모가 무릎을 꿇을 때, 자녀는 그 무릎 사이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출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요한 복음 강론』)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영화 ‘왕과 함께 사는 남자’를 보았습니다. 조선의 6번째 왕인 ‘단종’의 이야기입니다. 단종은 삼촌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으로 왕위를 세조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상왕으로 있던 단종은 왕의 복위를 도모했던 ‘사육신’의 행위가 드러나면서 ‘노산군’으로 직위가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로 유배 가게 됩니다. 영화는 궁궐에서 쫓겨나와 청령포에서 살게 된 노산군과 함께 살았던 ‘엄홍도’라는 촌장의 이야기입니다. 삶의 의욕을 잃었던 노산군은 청령포의 주민들과 만나면서 삶의 의미를 되찾았습니다.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고, 서민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노산군은 생애 처음으로 자기의 뜻과 자신의 의지대로 살았습니다. 노산군에서 청령포는 풍요롭고 화려한 궁궐보다 더 행복한 곳이었습니다. 비록 모든 것이 불편했고, 궁색했지만, 청령포는 노산군에게는 마음을 열고 살 수 있었던 마을이었습니다. 역사는 어린 노산군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어린 노산군은 17세의 나이로 ‘죽음의 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왕과 함께 살았던 ‘엄홍도’는 왕의 시신을 모셔다 장례를 치렀습니다. 노산군은 사후 241년 만인 1698년 숙종 때 복위되어 ‘단종’이 되었습니다. 단종을 장례 치렀던 ‘엄홍도’도 공을 인정받아 충의공이 되었고, 그는 단종의 왕릉인 장릉에 함께 묻혔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짧은 시간과 공간에서 보면 조카의 왕위를 빼앗고 세조가 되었던 수양대군과 살생부를 만들어서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한명회가 부귀와 영화를 누렸습니다. 명예와 권력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라는 긴 시간과 공간에서 보면 수양대군은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에 왕의 자리를 차지하였고, 형의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불의한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세조는 사랑하는 두 아들이 단종의 나이가 되었을 때 죽어야 하는 슬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세조는 왕위에 오른 후 평생 피부병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살아생전에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한명회는 사후에 ‘부관참시’ 당하는 모욕을 받았습니다. 한명회는 지금도 욕망의 화신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황희 정승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까지 활동하며 태조, 정종, 태종, 세종, 문종 등 5명의 왕을 섬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라와 왕에게 충성을 다했던 황희 정승의 정자 반구정은 임진강 변에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찾을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합니다. 한명회의 정자 압구정은 한강 변에 있습니다. 압구정은 오늘도 화려한 도시의 불빛 아래 있습니다. 황희의 반구정은 청렴한 선비의 유유자적한 삶을 상징하는 반면, 한명회의 압구정은 화려한 권력과 욕망이 가려진 풍류의 공간으로 대비됩니다.
‘왕과 함께 산 남자’는 지금부터 500년 전에 있었던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오늘 교회는 ‘주님 만찬 저녁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성삼일’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2,000년 전에 있었던 너무도 슬프지만, 찬란하게 아름다웠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야기는 나자렛에서 시작됩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나자렛의 처녀 마리아에게 ‘임마누엘’의 소식을 전합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아들이 하느님 나라를 떠나서 이스라엘의 청령포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 노산군이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고, 백성들과 함께했던 것처럼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표징을 보여주셨습니다.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고,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치유하셨고, 중풍 병자는 걷게 하셨고, 눈먼 이는 보게 하셨고, 마귀 들린 사람은 치유해 주셨습니다. 12명의 제자를 선발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치유하고, 마귀를 쫓아낼 권한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느님 나라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수양대군이 단종을 왕위에서 끌어내렸듯이, 한명회가 살생부를 만들었듯이 예수님께서도 고난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기득권을 지키려 했던 대사제와 율법 학자는 하느님의 아들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단죄하였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 받으소서.’라고 했던 군중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습니다. 사랑하는 제자 유다는 예수님을 은전 서른 닢에 팔아넘겼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지옥까지 가겠다고 큰소리쳤던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모든 일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시면서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아버지 하실 수 있으시다면 이 잔을 제게서 거둬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함께 기도하자고 청하셨습니다. 이제 세상을 떠나실 때가 가까워진 것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오늘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십니다. 마치 먼 길 떠나는 어머니가 자녀를 위해서 미리 음식을 준비하듯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해 내어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나의 피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체성사’입니다.
엄홍도가 단종의 시신을 모시고 장례를 치렀듯이,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시신을 모시고 장례를 치렀습니다. 오늘 주님 만찬 저녁 미사입니다. 주님의 넘치는 사랑에 감사드리면서, 주님을 위해서 우리도 깨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듯이, 우리도 이웃의 발을 씻어 주면 좋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로운 계명을 준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오늘의 성인
파울라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
신분 : 은수자, 설립자
활동지역 : 파울라(Paula)
활동연도 : 1416-1507년
같은이름 : 방지거, 프란체스꼬, 프란체스꾸스, 프란체스코, 프란체스쿠스, 프란치스꼬, 프란치스꾸스, 프란치스쿠스, 프랜시스
1416년 3월 27일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Calabria) 지방 코센차(Cosenza)의 파울라에서 태어난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또는 프란체스코)는 산마르코(San Marco)에서 프란치스코 회원들로부터 교육을 받았고, 13세 때에 산마르코 수도원에서 1년 동안 생활하면서 기도와 금욕과 겸손을 익혔다. 그리고 15세가 되었을 때 아버지의 영지인 파울라 교외에서 홀로 지내며 6년 동안 은수생활을 하였다. 그 후 세월이 흐름에 따라 동료들이 불어나서 그들은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 공동체가 ‘가장 작은 이들의 수도회’(Minimi Fratres, least brothers)의 시작이었다. 그는 자신이 은수생활을 하던 곳에 수도원을 세우고 회개와 애덕 그리고 겸손을 특히 강조하는 회칙을 확정하였으며, 세 가지 서원 외에 단식과 음식의 절제 서원을 덧붙였다. 또한 그는 3회원과 수녀회를 위한 회칙을 만들었다.
그의 생활이 거룩하고도 엄격하였던 만큼 그의 영적 영향 또한 커졌고 특히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그의 명성은 곧 프랑스로 번졌다. 그가 지닌 예언의 은혜 역시 뛰어났고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의 수도회는 1474년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IV)로부터 승인을 받았는데, 이때 이 수도회의 이름은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의 은수자회'였다. 그 뒤 교황 알렉산데르 6세(Alexander VI)로부터 수도회의 설립을 허가받으면서 그 이름을 '가장 작은 이들의 수도회'로 변경하였다.
그의 명성이 죽어가는 프랑스의 왕 루이 11세의 귀에까지 전해져서 왕이 그를 보기를 원하자 교황은 그가 프랑스로 가도록 명하였다. 왕은 성 프란치스코만이 자신을 치료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비록 치유되지는 못하였지만 큰 위로를 받고 만족했으며, 이 때문에 루이의 아들인 샤를 8세가 성 프란치스코의 친구가 되어 프랑스 내의 여러 곳에 수도원을 지어주었다.
성 프란치스코는 생애의 후반기 25년을 프랑스의 플레시(Plessis) 수도원에서 지냈는데, 마지막 3개월 동안은 투르(Tours)에서 고독하게 지내면서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하였다. 그는 파스카 목요일에 회원들에게 사랑의 실천과 엄격한 생활을 당부한 후, 다음날 총장 대리를 선출하고 영성체를 한 다음 요한 복음 수난기를 들으면서 1507년 4월 2일 조용히 선종하였다. 그의 유해는 그가 설립한 수도회의 여러 수도원들에 나뉘어 묻혔으며, 1519년 5월 1일 교황 레오 10세(Leo X)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리고 1943년 3월 27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해상 여행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이는 그의 많은 기적들이 바다와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성 아분디오 (Abundius)
활동년도 : +469년
신분 : 주교
지역 : 코모(Como)
같은 이름 : 아분디우스
그리스 사제인 성 아분디우스(또는 아분디오)는 이탈리아 북부 코모의 주교로 축성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저명한 신학자였기 때문이었다. 교황 성 대 레오 1세(Leo I)는 451년 칼케돈(Chalcedon)에서 공의회를 개최하기 위해 그를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에게 사절로 보냈다. 그리고 칼케돈 공의회에서 성 아분디우스는 교황사절로서 공의회를 이끌며 교회의 역할과 관심을 분명히 하였다.
성녀 마리아 (Mary)
활동년도 : +500년경?
신분 : 은수자
지역 : 이집트(Egypt)
같은 이름 : 메리, 미리암
젊은 테오도시우스의 통치 때 팔레스티나(Palestina)에는 한 곳에서만 43년 동안 살았고, 하느님만 섬기는 성 조시무스(Zosimus, 4월 4일)라는 수도자가 있었다. 그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요르단으로 향하였으나, 자신은 자기 수도원과 20일 간의 거리나 떨어져 있었는데 기도시간이 되어 시편을 외우고 있었다. 이때 그는 “조시무스 신부님, 나는 여자입니다. 당신의 겉옷을 던지면 나를 볼 수 있습니다”라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이 소리의 주인공이 곧 이집트의 성녀 마리아이다. 그녀는 이집트 여성으로 17년 동안이나 거리의 여성으로 살아 왔는데,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28세 때 그녀는 예루살렘으로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내러 가는 일단의 무리들과 합류하게 되었는데, 여행을 하는 도중에 자기의 악습을 고치지 못하고 열심한 순례자들을 타락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드디어 예루살렘에 당도하여 성당에 들어가려 하니, 뒤에서 누가 잡아당기는 듯하여 들어가지 못하고 한쪽 구석에 서 있다가 처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크게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윽고 눈을 들어 마리아상을 바라보니, 그 성모님께서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고 한다. 그때서야 그녀는 밝은 마음으로 성당으로 들어갔고 깊이 통회하니, “너는 요르단으로 가서 여생을 지내라”고 명하여 이렇게 사막에 산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요르단 사막에서 47년 동안이나 사람 한 사람 구경하지 못하고 살았다.
성 조시무스는 그녀를 위해 성체를 영해 주고, 다음 해에 만나기로 하고 돌아왔다. 다음 해에 그가 다시 만나 성체를 영해 주고 그녀가 약속한 두 번째 지점으로 갔으나 그녀는 이미 운명하고 있었다. “조시무스 신부님, 가련한 마리아를 장사지내 주십시오.” 하며 숨을 거두었다. 그는 이 사실을 자기의 모든 형제들에게 이야기 해 주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성 프란치스코 콜 기타르트 (Francis Coll Guitart)
활동년도 : 1812-1875년
신분 : 신부, 설립자
지역
같은 이름 : 귀타르트, 방지거, 프란체스꼬, 프란체스꾸스, 프란체스코, 프란체스쿠스, 프란치스꼬, 프란치스꾸스, 프란치스쿠스, 프랜시스
에스파냐 북동부 피레네 산맥과 면한 카탈루냐(Cataluna)의 곰브레니(Gombreny)에서 태어난 성 프란치스코 콜 기타르트(Franciscus Coll Guitart, 또는 프란체스코 콜 기타르트)는 비크(Vich)에 있는 교구 신학교에서 수학한 후 1830년 헤로나(Gerona)의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1835년 교회에 반대하던 정부에 의해 헤로나의 신학원이 폐쇄되고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 학생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그날부터 성 프란치스코 콜 기타르트는 죽는 날까지 수도 공동체의 어떠한 지원도 없이 도미니코 수도회의 성소를 영웅적인 신앙으로 지켜왔다.
결국 그는 1836년 비크의 교구 신학교로 돌아와 사제품을 받고 몇 년 동안 본당사목을 한 후 그의 친구의 성 안토니우스 마리아 클라렛(Antonius Maria Claret, 10월 24일)과 함께 순회설교자로 나섰다. 그는 1856년 그가 설교하는 지역의 가난한 이들의 자녀들을 가르치기 위해 예수 탄생 예고의 도미니코 수녀회(La Annunciata)를 설립하였다. 이 수녀회는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50여개의 수녀원으로 성장했고 오늘날 유럽과 아메리카에 140개 이상의 수녀원을 두고 있다.
1869년 설교 도중 눈이 멀게 되고 건강도 이전 같지는 않았지만 그는 끝까지 은퇴하지 않았다.
1875년 4월 2일 선종한 그는 자신이 설립한 수녀회의 모원에 안장되었다.
그는 1979년 4월 29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2009년 10월 11일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성되었다.
복자 레오폴도 (Leopold)
활동년도 : 1732-1815년
신분 : 수사
지역 : 가이체(Gaiche)
같은 이름 : 레오폴두스, 레오폴드
이탈리아 페루자(Perugia)의 가이체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레오폴두스(Leopoldus, 또는 레오폴도)는 요한(Joannes)이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인근 사제의 도움으로 교육을 받았으며, 18세 되던 해인 1751년에 치보톨라(Cibotola)에서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여 레오폴두스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1757년에 사제가 된 그는 주로 사순절 순회설교를 담당했는데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그는 프란치스코회 선교사와 설교자들이 은퇴한 뒤에 머무를 수도원을 지으려고 하였으나 난관이 너무나 많아서 지체하다가, 결국에는 스폴레토(Spoleto) 교외 몬테 루코(Monte Luco) 언덕 위에 자신의 소망을 이룩할 수 있었다. 1808년 나폴레옹의 침략 때에 그는 77세의 고령으로 투옥되었고, 나폴레옹의 실각과 더불어 몬테 루코로 다시 돌아왔으나 몇 달 후에 선종하였다. 그는 1893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