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과 우수가 지나고 보니 봄이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봄이 우리에게 오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가 바로 매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매화는 꽃의 우두머리라해서 화괴(花魁), 문(文)을 좋아한다고 해서 호문목(好文木), 장원급제한 선비에 비유해 백가지 꽃을 누르고 겨울에 가장 먼저 피었다고 장원화(壯元花) 등 여러 별칭을 갖고 있습니다. 동지섣달에 핀 매화는 조매(早梅), 한겨울에 핀다는 동매(冬梅), 눈 속에 피면 설중매(雪中梅)라고 부르는 등 인기만큼이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요즘 시기에 인터넷이나 SNS에 올라오는 사진 중 가장 많은 사진이 바로 매화꽃 사진으로 ‘혹독한 겨울이 곧 끝나니 조금만 참아라 참아. 매화가 피었으니 곧 봄이 올거야’ 라고 말해주듯 가지위에 꽃이 피기 시작한 일지매(一枝梅)의 사진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계절이 바로 지금입니다.
그런 매화 사진을 보고 있으니 살며시 떠오르는 그림이 있습니다. 바로 조선 중기 화가 어몽룡(魚夢龍, 1566~1617)의 ‘월매도(月梅圖)’입니다. 어몽룡의 묵매는 그 당시부터 유명해 이정(李霆)의 묵죽(墨竹)과 황집중(黃執中)의 묵포도도와 함께 삼절(三絶)로 불렸고 그 가치는 현재에도 인정받아 ‘월매도’가 오만원권 지폐 도안으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림은 어스름한 달빛 아래에 매화나무가 있으니 밤에 핀 매화를 주인공으로 삼았습니다. 그림 하단은 가지가 여기저기 부러진 늙은 둥치를 표현했는데 부러진 가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자 비백법(飛白法)을 사용했습니다. 원래 매화 그림의 요체는 얼마나 둥치를 고매하게 잘 그리는가가 중요한 요소인데 이렇게 부러지고 갈라진 둥치의 표현은 매우 파격적입니다. 그 위로 매화 가지들이 위로 향하고 있습니다. 옆으로 갈라진 가지도 휘어지지 않고 곧게 그려져 마치 철사를 그린 듯합니다. 그중 하나는 하늘을 뚫을 기세로 곧고 길게 올라가고 그 끝에 둥근 달이 걸려 있습니다. 이러한 매화가지의 모양은 실제로는 좀 보기 힘든 비현실적인 모습입니다.
현실에서 매화 가지는 위로 곧게 자라는 경우는 드물고 특히 그림처럼 길게 자라지도 않습니다. 긴 매화 가지 끝에 아주 큰 둥근 달이 있습니다. 달이 마치 가지 끝에 걸린 듯 가까이 크게 표현되었습니다. 매화꽃은 가지에 듬성듬성하게 표현되었는데 그 수도 적고 모양도 보잘 것 없어 ‘월매도’에서 매화꽃은 주인공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늙은 나무 둥치와 철사처럼 곧고 긴 가지가 바로 어몽령 ‘월매도’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어몽룡은 곧고 긴 매화 가지를 통해 매화의 강인함과 생명력을 표현했는데 이는 부러진 늙은 둥치와 대비되어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킵니다. 또한 뾰족한 가지 끝에 풍선 같은 둥근 달이 있어 날카로움과 원만함을 극적으로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월매도’는 늙음과 청춘, 장(長)과 단(短), 날카로움과 원만함 등의 회화적 대비가 특징으로 어몽룡의 매화는 단순히 매화의 모양을 보여주고자 한 그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보여주고 하는 매화는 단순히 보기 좋고 아름다운 매화가 아니라 곧고 꿋꿋하며 척박하고 황폐함에서도 새롭게 솟아나는 유교적 군자의 생명력을 매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매화는 원산지가 중국이고 한국에 들어온 것은 5~6세기부터라고 합니다. 일본도 7~8세기 당나라를 통해 들어왔습니다. 그 후 한중일 삼국 모두 매화나무를 가꾸고 시를 짓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으니 사실상 동아시아는 전부 매화문화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매화에 얽힌 인물과 이야기, 시문도 많이 전해지고 있는데 특히 매화를 좋아해 매화를 사랑하다 못해 심지어 매화를 ‘매형(梅兄)’이라고 부르며 대화를 나누고, 임종을 앞두고서도 매화나무에 물을 주라는 유언까지 남긴 퇴계 이황의 이야기는 매우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 선비들이 시와 그림을 통해 매화를 매우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이처럼 매화를 선호하게 된 계기는 중국 북송 때 문인 임화정, 곧 임포(林逋)의 고사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임포는 자연을 향한 그리움으로 벼슬과 처자를 다 버리고 서호(西湖)에서 은거하며 오직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아 한평생을 살았다고 해서 매처학자(梅妻鹤子)라 불렸는데 조선시대 선비에게는 이상향을 추구한 탈속한 선비의 표상으로 받아들여져 크게 동경했습니다.
이처럼 절개와 고결한 매화의 이미지는 사실 송나라 훨씬 이전부터 중국에서 많이 퍼져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고려 왕건릉에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매화가 등장해 추운 겨울철의 세 친구라는 뜻의 세한삼우(歲寒三友)가 그려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후로도 고려 말 여러 무덤벽화에서 매화가 발견되었고 성리학이 발달하던 조선시대에는 매화를 때 묻지 않은 고고한 선비의 덕으로 여겨 더욱 많이 그렸습니다.
그런 매화를 군자의 상징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그림이 ‘월매도’입니다. 곧고 긴 가지는 군자의 높고 고결한 이상을 상징하고 비백(飛白)으로 처리한 부러진 나무둥치는 세속의 타협하지 않는 올곧음을 상징합니다. 그러한 군자의 덕과 고결함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풍상을 이겨내야만 새로운 생명력이 넘치는 이상을 펼칠 수 있음을 늙은 둥치와 높고 곧은 가지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매화가 조선시대 선비가 즐겨 그렸던 매(梅), 난(蘭), 국(菊), 죽(竹) 사군자 중에서 가장 첫 번째로 손꼽혀 많은 작품들이 전해져 왔습니다. 그래서 매화하면 유교의 꽃으로 여지기기 쉬우나 유교의 경전인 ‘논어’ ‘맹자’ 어디에도 매화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매은(梅隱), 매선(梅仙)이란 말과 매화를 마고산에 사는 신선에 비유하듯이 도교적 이미지가 많고 임포의 고사도 학과 결합되어 신선을 암시하는 도교적인 내용입니다.
매화는 불교와도 인연이 있는 꽃으로 최초 묵매화가도 송나라 신종 때 호남성 화광사(華光寺) 주지였던 중인(仲仁)으로 이 중인의 화법과 매화가 남송으로 이어져 사군자의 하나로 각광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권제3의 ‘아도기라조(阿道基羅條)’에 일연(一然)스님이 고구려에서 신라로 온 아도 화상을 찬탄한 시에서 불법을 꽃피우는 모습을 매화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雪擁金橋凍不開 鷄林春色未全廻 可怜靑帝多才思 先著毛郞宅裏梅(설옹금교동불개 계림춘색미전회 가령청제다재사 선저모랑댁리매)’. 금교에 쌓인 눈 아직 녹지 않았고, 계림에 봄빛이 돌아오지 않았을 제, 어여쁘다. 봄의 신은 재주도 많아, 모랑댁(毛郞宅) 매화꽃 먼저 피게 했네.
매화는 일본 선종에서도 깨달음의 경지를 비유한 꽃으로 널리 알려져 많은 게송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매화는 불교와도 인연이 깊어 사찰에서도 많이 심어 전해져 현재까지도 사찰을 방문하는 불자들에게 고고한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라는 산청 단속사의 ‘정당매’, 음력 섣달에 핀다는 순천 낙안면 금둔사 ‘납월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구례 화엄사 길상암 ‘화엄매’, 전남 장성 백양사 ‘고불매’, 전남 순천 선암사 ‘선암매’가 유명합니다. 사찰에 있는 매화나무들은 전부 화려한 군락보다는 한 두 그루씩 소박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찰 매화의 아름다움은 그 외양에 있지 않고 그 뜻과 향기에 있습니다.
어몽룡의 ‘매화도’도 매화의 형태미를 중시해 휘어진 가지와 화려한 꽃을 중시한 조선후기 ‘매화도’와는 달리 간소한 구도와 단출한 형태로 군자의 향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매화를 통해 겸손하지만 뜻과 기개는 드높은 선비의 은은한 향기를 잘 표현한 수작입니다.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제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자신만의 아름다운 봄 향기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