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바람재일까?

[자부리]

- 비학산 - 바람재  - 금병산  누리길 안내판-

-바람재 일대를 담은  대동여지도  보기-

-1:5만 지형도로 보기 (1960년대 판) 복사본 -( 바람재가 있는 현재의 금천리는 쇠내의 한자식 표기로 보임.)

-바람재 정상 소공원의 바람개비 설치미술 - 남의 것 퍼옴.-

-바람산 정상 서쪽 아래 편의 서낭당 터 -

-서낭당터로 보이는 곳의 선돌 -

-이곳은 바람산 정상입니다 -

왜 바람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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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시의 바람재로 봄나들이를 간 것이 2월 4일, 11일 두 번 이었는데 지금이 3월 하순이니 이제는 시간이 꽤나 지나갔다. 그 사이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미증유의 세기적 염병이 휩쓰는 바람에 바깥 나들이가 자유롭지 못해 아직 집에 처박힌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아직도 바람재가 준 가벼운 흥분이 여전히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왜일까? 

   처음 바람재에서 금병산 쪽 등산길을 갔을 때는 못 느꼈던 감흥을 두 번 째인 11일 바람재 - 비학산 구간을 가면서 느끼게 된다.

   바람재 하면 그 이름이 그냥 바람[風]과 관련된 고개이려니 생각했었다. 여름이면 시원한 고개 바람, ‘산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고마운 바람‘하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그런 바람이려니 생각했을 뿐이다. 바람재라는 이름의 고개는 전국적으로 많이 있는데 몇 가운데만 보면 김천 바람재, 무등산 바람재, 마산 바람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바람 많이 분다해서 바람재로 불리는 곳이 대부분이다. 얼핏보면 그럴 듯 해 보인다. 인간의 언어심리상에는 무의식적으로 흔히 이미 듣고 익히 아는 것으로 기우는 언어 심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세종시 바람재에도 수 많은 바람개비로 공간설치를 한 소공원을 만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두 번 째 등산길인 바람재에서 비학산가는 길에 들른 전망대에 올라서서 세종시의 원수산과 전월산 너머로 부강 쪽을 바라보고는, 마침 전망대 길옆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에 쓰인 글귀로 이곳이 바람산이라는 것을 알다. 저 아래에 바람재가 있으니 이곳의 산 이름이 바람산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럴 듯 해보였다. 바라보는 전망이 좋아서 얻어진 이름이려니 하고 생각했다. 몸을 시원하게 하는 바람산이 아니라 눈을 시원하게 하는 바람산이라고. 

  그런데 그 바람산을 조금 내려가니 약간 계곡진 곳에서 돌무더기가 눈에 띄었다. 등산길에서 다소 길옆으로 두둑하게 쌓인 돌무더기, 잡목으로 뒤덮인 채, 그리고 그 돌무더기 속 중앙에는 제법 커다란 선돌하나가 우뚝하니 박혀 있었고 그 머리에는 붉은 헝겊띠를 두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순간 머리가 휑해져버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옛 고갯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잡목으로 덮여있지만 지형이 우묵하게 파여 있는 것으로 보아 옛 고갯 길로 보였다. 대강 둘러보고는 일행들과 뒤처지기가 무엇해서 그냥 지나치고 되돌아올 적에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순간 바람산 주위가 어쩌면 옛날 보루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지형이나 흩어진 돌들의 모습에 자꾸 의심스런 눈길이 가졌다. 개 눈에는 무엇만 보인다고. 그래도 산성 답사랍시고 다닌 것이 있어서인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집에 와서 옛 지도(대동여지도 복사판)와 1960년대 발행된 1:5만 지형도를 꺼내서, 지명과 예전 소롯길 등을 눈여겨 찾아보았다. 고지도와 지형도에서 차도가 나있는 현재의 바람재가 생기기 이전의 고개 길의 위치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바람재의 원 위치는 현재 바람개비 소공원이 있는 그곳이 아니라 돌무더기에 붉은 띠를 두른 선돌이 있는 즉 바로 서낭당 터로 보이는 이곳이 원래 바람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상으로 확인된 것을 현지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 확인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지만 그 것은 나중으로 미루고 우선 혼자서 상상으로 추정해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산을 다니다 보면 만나는 고개들, 대전 주변에 잊혀지지 않는 고개로는 동구 삼괴동에서 금산 추부로 넘어가는 머들령 고개, 세천서 옥천 이원으로가는 국도변상에 잇는 백골산성 옆 마달령 고개, 계현산성이 있는 닭재, 논산 벌곡면에서 연산 황산으로가는 길 도중에 있는 곰티재 등과 삼정동 산성 아래의 고갯마루. 갈현산성의 고갯길 등 유난히도 산성 옆에는 옛고개들이 많이 있다. 이런 고개들의 공통적인 특징 중에 고목나무가 있거나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고 그 주변에 돌무더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 위치가 마을과 마을을 넘나드는 고갯마루 바로 근처에 있음은 물론이다. 세상이 무섭게 변하면서 아쉽게도 점점 그 흔적마저도 사라져 가고 잊혀져 가고 있다. 

   바람재, 그것은 옛부터 내려오는 이름이 오늘에도 살아서 이어오고 있는 현장을 그 빨간 헝겊띠가 말해주고 있음을 뒤늦게서나마 우연히 알았다. 아마도 정월 대보름 무렵에 띠를 두르면서 무슨 바람/소원을 빌었을까? 올 한 해도 객지에 나간 남편의 무사함과 소원성취를 빌었을까? 아니면 먼 곳으로 시집간 딸자식, 아니면 싸움터나 군대에 간 아들의 무사귀환을 빌고 또 빌었을까? 

   우리 부모님들의 진실된 마음을 담아 이곳에 빌었다는 소박한 증거를 보고는 그 어떤 현대적인 종교나 신앙 못지지 않게 숭고함을 느끼게 해준 곳이 이 바람재이다.

   가벼운 나들이 등산길에서 때로는 이렇게 생각지 않은 망외(望外)의 기쁨을 누리는 행운을 갖는다. 

                                                                                                                        (2020. 3. 21. 자부리 씀.)

[내맘의 강물]

선배님의 글을 읽고 나니 다시 한 번 그곳을 둘러보러 가야 할 것 같아요.제 눈에도 뭔가 심상찮게 보였거든요, 이 시국이 어서 편안해지길 바라면서요.

[자부리]

관심의 눈을 가지고 보니 세상이 달라 보이지요. 어서 빨리 코로나 전쟁이 끝나고 다시 평화로운 세상이 와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