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13 오후 6시부터 3시간 동안 서을 충무로 미락횟집에서 종사랑파 여수 산수출신 재경종친회 창립대회가 있었다. 소계(국량) 임시총무의 사회로 본향 여수종친회(회장 위현택)의 위우량 총무가 직접 상경하여 여러 쪽의 유인물로 종사랑파의 2018년 사업추진과 수지에 대해 보고하고 숭조원 및 부동산 관리에 대해서도 자세히 언급했다.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 질문을 하면 우량 총무는 그간 경험을 토대로 자세히 답변하는 등 진솔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재경과 산수리간 소통을 원활히 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초대회장에 후곡(형윤), 초대총무에는 소계(국량)종친이 수고하게 되었다. 매년 2회 정기모임을 갖고 종사랑파 시제 때는 버스를 동원해 재경회원들이 고향을 방문하기로 했다. 또한 대종회 행사와 여러 업무에 솔선수범하기로 결의했다.
형윤 초대회장의 선창에 따라 함께 화이팅을 외치는 종사랑파 산수종중의 힘찬 외침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심금을 울렸고 대회장을 가득 용솟음치게 했다.
이 자리에는 본향 여수에서 상경한 위우량 부부 및 자녀, 대전에서 상경한 위주량 대종회 감사 및 자녀를 비롯해 위형윤 박사, 대옥, 국량, 재량, 양희, 형원, 승량, 창량, 인자, 관평 등 약 40명의 종친들이 함께 했다. 목표는 50명이었는데 선약과 경조사 등이 많아 80% 선에 그쳤다고 참여한 종친들은 못내 아쉬어 했다.
대종회 두량 사무국장, 성진 재경총무, 윤기 청장년 총무가 함께해 대회를 축하했다.
시종 화기애애한 가운데 핏줄과 고향의 옛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종친들은 종사랑파 산수종중 재경종친회의 순조로운 출발을 서로 축하했고 향후 재회를 다짐하며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누며 대회를 산회했다. 식대는 본향 산수지회에서 전액 부담했다. (벽천)
우량 부부 큰아들 수고하셨고참석한종사랑공파가족들고생했어요
빨리도 올렸네나는
차시간때문에인사도없이나왔는데
아무튼사무국장님을비롯 윤기 성진
바쁜데도 자리해주셔서 마음이 찡했죠!
차안에서 확인후
올립니다
모두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여수 종사랑파(산수출신) 재경종친회
창립대회를 크게 축하드립니다
모이신 분들의 면면을 보니
참으로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현재의 기세로 모임을 지속해 나간다면 재경 종사랑파의 발전은 물론 전체 장흥위씨의 발전과 부흥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시 한번 더 종사랑파 재경종친회 창립을 축하드리며
향후 큰 발전을 기대합니다
■ 산수(山水)에 반해 정착한 산수(山水)마을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는 장흥위씨가 자작일촌(自作一村)을 이루며 살고 있다. 순천에서 여수방향으로 12, 3㎞를 가다보면 반대편 길가에 '상봉입구'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여기서 왼쪽으로 꺾어 율촌면(栗村面) 소재지를 거쳐 2㎞지점에 장흥위씨가 모여 사는 산수마을에 다다르게 된다.
산수마을은 4개 부락으로 취락을 이루고 있다. 부채살 모양의 지형에 따라 왼쪽은 행정(杏亭), 가운데는 평려(平呂)와 금산, 오른쪽은 수전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 부락 중 평려에 30가구, 금산에 2가구, 수전(水田)에 30가구 등 60여 가구의 일가들이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다.
율촌에 가면 장흥위씨가 희성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면사무소나 마을 이장은 물론 농협, 수협, 시청, 교육기관 등 기관에 고루 위씨가 근무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산수와 봉두(鳳頭)에 거의 120여 가구의 일가들이 사니까 주민들이 위씨라는 성씨를 모른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위씨와 이곳 산수와의 인연은 멀리 조선초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관산파의 파조인 16세 휘 자량(自良)의 둘째 아들 종사랑공(從仕郞公) 휘 종로(宗魯)의 외아들 휘 용(庸)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는 사촌형제인 휘 유형(由亨), 휘 유정(由貞) 등과 함께 장흥읍 평화에서 살고 있었다.
이들 중 습독공(習讀公) 유형은 집안의 전통에 따라 출사를 포기했다. 그러면서도 두 아우에게는 출사를 권유, 모두 진사시험에 합격하게 한다. 그러나 유정과 용은 시험에는 합격했지만 고조(高祖)인 판사공의 고려조정회복기도사건이 짐이 돼서 출사를 포기하고 살기로 작정했다.
조선 세조(世祖) 때의 어느 날이다.(율촌 면지(面誌)는 단종(端宗) 때로 본다) 어쨌든 용은 무슨 일로 여수(麗水)를 다니러 갔다. 당시 여수를 오가는 길이 율촌을 거치게 되었는지 아니면 일부러 그 길을 택했는지는 모르나 산수마을을 스쳐가다 산수의 아름다움에 반했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산수마을이 그렇게 아름다운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앞에는 바다가 있고, 뒤에는 산이 있어 배산임수의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아름다울 수 있고, 그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경치 하나만으로 정착의 원인 또는 이유로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마 모르긴 해도 단순히 산수가 좋다는 이유가 주인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사실 장흥과 율촌은 지리적으로 너무 멀다. 예나 지금이나 거리가 멀면 거래를 할 수 없다. 즉 사람의 왕래가 그만큼 어렵다. 사람의 내왕이 없으면 특별히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렇다면 혼인이 정착 이유일 수 있다. 비록 장흥과 거리가 멀지만 아주 특별한 인연이 이루어질 수 있다. 당시 선조들 가운데 장흥을 떠난 조상들은 16세 휘 자공(自恭)을 제외하고 거의가 결혼에 의해 외지에 정착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용 할아버지의 케이스도 같을 수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는 산수마을을 평생의 보금자리로 정했다. 당시의 사회에서 진사는 벼슬 아닌 벼슬이었다. 출사의 자격시험에 지나지 않았지만 입신의 관문이라서 지역에서는 대단한 벼슬아치로 인정했다. 더구나 벽촌인 율촌에서 진사인 용의 위상은 범인들을 압도하고 남았을 것이다.
장흥에선지 아니면 산수에 정착해서 결혼을 했는지 모르나 슬하에 3형제를 둔다. 이로 말미암아 여천파(麗川派)는 큰아들 희징(希徵), 숙주(淑珠), 덕수(德秀), 둘째 아들 희강(希絳), 덕광(德光), 정행(廷行), 셋째 아들 희무(希武), 철명(哲明), 흥인(興仁) 등 세 소파(小派)로 갈린다.
후손들 가운데 종파는 절손상태이며, 중파 또한 그리 많이 번성하지 못하고 있다. 계파는 크게 번성해서 사실상 산수를 기반으로 한 장흥위씨를 대표하고 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닌 듯하다. 이외에 충남 금산군 죽림과 장흥군 장동면 북교, 전북 김제시 금산 구월 등지에도 살고 있다.
산수 위씨는 인물이 많다고 한다. 위씨 가운데 출중한 인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저기에 많은 인재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여수나 율촌 사람들은 위씨 그러면 머리가 영리하다는 게 정평이다. 초등학교 등 각급학교에서 1등하면 으레 위씨를 꼽을 만큼 수재가 많다고 한다.
다른 특징은 항렬이 높다는 점이다. 산수 위씨 중에는 아직도 계자(啓字)가 많다. 항렬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자손이 불어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종파와 중파는 손이 끊길 상태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계파출신 후손은 생각보다 크게 번성해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산수에 아쉬운 것 하나가 있다. 사우(祠宇)나 재각(齋閣)이 없다는 사실이다. 사실 진사공은 16세 휘 자공(自恭)께서 함흥집성촌을 개척한 이후 외지에 집성촌을 개척한 어른이다. 그런 역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당신의 위패를 모실 사우나 재각이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누대의 한을 풀었다. 후손들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6억원의 자금을 들여 971㎡의 부지에 재각 81㎡, 봉안당 48㎡, 자연장지 2000㎡ 등 총면적 4천143㎡(1천255평)의 숭조원(崇祖園)을 마련, 2010년 5월 전국의 종원을 초청해서 성대한 준공식을 가졌다. 후손들은 입향조의 개촌 이래 실로 500년 만에 숙원사업을 이룬 감격을 맛본 것이다. (출처 : 보정 장흥위씨요람)
산수리에는5개 부락이있는데 4개부락만썻네 평여 수전 금산 신대 행정 행정에만 위씨가업네
그렇군요
종사랑파 자손의 큰 번창과
번성을 빕니다
양희 고모님!
반갑습니다
저는 지난번 태풍때 빗물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부모님께서 살고 계신 부산 다대포 아파트 베란다가 물바다가 되었다고 해서
베란다 창을 교체하는 계약건으로 오늘 아침 새벽같이 부산에 왔습니다
모든 종친님들 강녕하세요!
위 내용 중 고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산수리는 5개 마을이 있는데 맨 뒤쪽에 금산이 있고, 가운데는 우측은 평여, 좌측은 신대, 그리고 부채살 모양의 우측에 수전, 좌측에 행정이 있습니다.
위씨는 금산 2가구,
평여 35가구, 수전 11가구, 신대 30여가구가 살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윤기 종친 수고하셨네~
종사랑공파 재경종친회 창립을 축하드립니다.
종사랑파 산수종중 재경종친회 창립총회를 개최 하셨군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보기좋습니다.
응원합니다.
종사랑파창립을진심으로축하드립니다
종사랑파.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