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팔꽃은 실제로 아침 일찍 피어서 대부분 오전 중에 꽃잎을 오므립니다. 저녁까지 가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영어에서 ‘Morning Glory’입니다. 저녁까지 가는 꽃은 나팔꽃의 집안 어른인 메꽃입니다. 나팔꽃은 메꽃과입니다. 나팔꽃과 같은 모양인 메꽃은 아침에 피어서 낮 동안 피어 있다가 저녁이면 꽃잎을 닫습니다. 둘 다 여름꽃입니다. 여름이 끝나면 더 이상 꽃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둘 다 짧은 사랑을 얘기할 만합니다.
◉동네 흑천(黑天) 뚝방에 여름 내내 메꽃이 풍성했습니다. 피고 지기를 계속하면서 산책 중인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 왔습니다. 시인 홍성란은 이 메꽃을 ‘들길에 쪼그려 앉은 분홍치마 계집애’라고 멋지게 소개했습니다. 나팔꽃은 여러 색이지만 메꽃은 분홍색 한가지입니다. 여름이 끝나가는 8월 말이 되면서 ‘분홍치마 계집애’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닥다닥 붙어 있던 꽃들이 드문드문 보일 정도로 모습을 감춰가고 있습니다. 내년 이른 여름을 기약하며 떠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메꽃을 보면 대부분 나팔꽃이라고 합니다. 메꽃은 나팔꽃이 아닙니다. 반대로 나팔꽃은 메꽃의 한 무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메꽃은 들에 피는 야생화이자 동아시아가 본산인 토종입니다. 귀화식물이자 재배식물인 나팔꽃은 1년 살고 생을 마감합니다. 메꽃은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쉽게 죽는 법이 없는 여러해살이 식물입니다. 내년 여름에 다시 그 자리에서 꽃을 피워 다시 만날 친구입니다.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이라는 잘 알려진 동요의 2절에는 ’호미 들고 괭이 매고 뻗어가는 메를 캐어‘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메‘가 바로 여름철에 만나는 메꽃의 땅속줄기, 지하경(地下莖) 입니다. 이 하얀 땅속줄기는 녹말이 많아 춘궁기에는 식량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삭아삭하고 달착지근해 먹을 만합니다. 약재로도 쓰임새가 다양합니다.
◉메꽃 줄기의 강인한 생명력과 번식력은 대단합니다. 이 줄기는 잘라도 잘라도 다시 살아납니다. 그래서 메꽃은 굳이 열매를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메꽃에 벌이 드나들지만 씨앗을 만드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연약해 보이지만 대단한 생명력으로 토종식물답게 세상을 헤쳐 나갑니다. 지금 지나가는 여름이 내년에 다시 돌아오듯이 내년에 다시 보게 될 메꽃이어서 아쉽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작별하게 됩니다.
◉아직 날씨는 덥지만 바람에도 구름에도 가을이 묻어나오는 여름의 끝입니다. 10월 말이면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듣듯이 김동률의 ’여름의 끝자락‘을 들을 때가 됐습니다. 나온 지 5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지나간 여름을 돌아보는 여름 마무리 송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의 노래와 함께 유난히도 무더웠던 올해 여름을 되돌아봅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가을을 맞을 준비를 해봅니다. (배석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