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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는 막걸리 먹는 맛이라지만 모조리 시간 때우기였다.
성질대로 열심히 일하는 현무를 보고 노가다 선배가 한마디 하셨다.
“이 보시게 젊은 친구 노가다 하다가 땀나면 삼대가 빌어먹는 다잖우 그러니 쉬엄쉬엄”
<내가 보기에는 그 반대 같은데> 막일 자체가 문제가 아니고 시간만 때우면 된다는 정신이 문제로 보였다.
인간은 정신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고 뇌까리던 현무가 십장을 찾아갔다.
십장은 사무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인사를 건네자. 십장이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슈?”
“선생님! 지금 하는 일 말예요. 일 같지도 않고 그러다 보니 인건비도 너무 작습니다.
우리 저렇게 거북이 기듯 일 못합니다. 힘이 들더라도 일당이 좀 높은 곳으로 배치해 주세요.
요즘 왕족 형편이 말이 아니거든요.” 이렇게 보채고 몽니를 부린 끝에 얻은 일자리가 지하 30미터 막장이었다.
복공판 위를 달리는 차량은 금방이라도 머리위로 떨어질 듯이 덜컹거렸고, 벽을 치는 망치의 비명소리,
좌·우에서 몸부림치며 거친 숨을 토하는 착암기, 악을 써야 가능한 작업자들의 의사소통,
이 모든 소리들이 잘못 맞은 탁구공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몇 푼 더 벌려고 막장에서
일하고 돌아왔더니 마누라가 세탁비와 노가다 일당을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적응하게 마련이다. 작업장을 지하로 옮기고
달포가 지나면서 노가다 동지들과 안면도 트였고 *개와 늑대의 시간이 오면, <함바집>
아주머니와 질펀한 농담 안주 삼는 재미가 삭힌 홍어처럼 서서히 암모니아를
발산할 즈음 지하 막장에서 사고가 터졌다.
한 달 전부터 목수들은 벽에 시멘트를 채울 공간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오늘은
지상에서 레미콘 트럭이 둥근 호스로 시멘트를 쏟아서 공간을 메우는 작업을 하는 날이다.
우리는 그동안 목수들이 설치해놓은 판자와 벽 사이에 시멘트가 잘 스며들도록 벽을 두드리기도 하면서 살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 중인데 갑자기 주위가 시끄러웠다. 현장 관리자가
“시멘트 그만 내려!”라고 소리치며 지상으로 오르는 복공판 위를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비틀 달렸다.
위아래서 주고받은 무전기가 고장 나버렸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양의 내장처럼 꼬인 나선형 미로는 단거리 세계 챔피언 일지라도 십 여분은 족히 달려야 빠끔히
지상으로 고개를 내밀 수 있는 구조였다. 관리자가 장애물을 피해서 지상으로 달리는 사이에
시멘트는 설악산 대승 폭포수처럼 무한정 쏟아져서 방대한 벽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판자벽이 시멘트 무게에 삐걱거리는 것을 목격한 현무가 본능적으로 달려가 벽에 어깨를 들이댔다.
그렇지만 계속 증가하는 무게를 이기지 못한 벽은 오뉴월 장마에 토담 무너지듯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현무의 몸을 ‘쓰나미’처럼 덮쳤다. 순식간에 막장 중앙으로 쓸려가던 현무가 사용하던 삽이라도 잡으려고
손을 내젓다가 동료 손에 잡혀 가까스로 건져졌다. 시멘트는 착암기가 파놓은 깊은 웅덩이 쪽으로 용암처럼 빨려 들어갔다.
착암기에 기댄 현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시황제 병마총 토병을 만들려다 실패한 시멘트를 바라보았다.
벽을 막았던 판자들과 조금 전까지 작업했던 삽, 작은 손수레 등이 시멘트 반죽과 함께 구석진 웅덩이로
계속 흘렀다. 그때 사고 현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웃음소리도 들렸다. 동료의 웃음소리는 얼마 전
동서네 집에서 현무 자신이 자아냈던 그 웃음소리처럼 들렸다.
첫댓글 인간은
정신을먹고 사는 동물이던가
노가다일의 세세한 설명의 글이
많은 공감이 갑니다
그때 배운 현장일이 반세기넘어 귀향하여
집수리 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
세상에 쉬운 거 없고 공짜도 없고
지독히 쓴 맛만 입에 물고 사는 인생 여정
선생님!
부디 건강하셔야 해요.
피할 수 없는 쓴맛도 건강하면
약이라 생각하면 견딜만 하거든요.
더 나아가 이제는 즐기는 것이죠.
매일 밥상에 김치찌게 하나 놓고서
-이보다 더 맛난 것은 없다-고 최면을 걸듯이..^^
이제는 노동판의 중노동의 현장에서 노가다가 이울지는군요
삶에 여유를 주지않는 의지력이 대단하십니다 제가 나이도 있고 또한 계속해서
글을 못읽고 책을 보고있는 형편이고하여 ....
간간히 봅니다
옛날 경험을 살려서 집수리 합니다.
무엇이던지 열심히 하면 차후 도움이 되네요.
어마무시한 태풍이 온다합니다. 건강하시고 피해 없기를 바랍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