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잖냐
최윤지
1학년 때 14기가 했던 여기서부터 책방 골목이라는 뮤지컬을 봤었다. 정말 멋있었고, 나도 언젠간 3학년이 되고 뮤지컬을 하겠지? 생각했었다. 나도 뮤지컬을 해보고 싶다. 라고 생각했었다. 그때는 아주 먼 줄 알았는데, 나는 벌써 3학년이고 뮤지컬이 끝났다.
뮤지컬에 대한 첫인상은 나를 포함한 대부분에 애들에게 좋지만은 않았다. 연습을 시작하기도 전, 주제가 반 공연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16기의 대부분에 애들이 싫어했다. 14기는 책방 골목, 15기는 슈팅 스타인데 우리는 왜 반 공연이냐고 “반 공연에 뭔 재판이냐”, “주제 별로다,” “뮤지컬 하기 싫다.” 등등 욕이란 욕을 다 했었다. 하지만 주제와 대본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뮤지컬 날짜는 점점 다가왔다.
뮤지컬 연습 첫날, 솔직히 나는 뮤지컬을 다들 싫어하길래, "이번에도 하는 애들만 하겠지"라고 생각했었다. 리딩을 끝내고 캐스팅이 된 후, 노래들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그동안 "뮤지컬 하기 싫다"고 말하던 애들은 어디 간 건지, 생각과는 다르게 모두가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장난을 많이 치긴 했지만 놀 땐 놀고 할 땐 하는 16기를 보니 뭔가 3학년이 되긴 됐구나 싶었다. 점점 더 다들 진지하게 몰입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적절한 긴장감과 함께 잘하고 싶다는 열정이 올라왔다.
아무래도 가이드를 연범쌤께서 만드신 거라 어쩔 수 없이 여자애들한테는 높은 몇몇 파트들이 있었다. 될 듯 말 듯 하니 몇몇 애들과 얼굴을 구기며 같이 도전하는 것이 재밌었고, 무엇보다 이번 뮤지컬을 잘해 보고 싶었다. 선생님들에게 용기를 내서 노래의 기본기나 발성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모든 선생님들께서는 흔쾌히 대답해 주셨다. 배에 힘을 알맞게 주는 법 이라던지,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하는 이유라던지, 내가 음을 잘 몰라서 노래를 부르면서 찾아가는 버릇이 있다는 것 등등 정말 자세히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셨다. 적용을 시키려니 한번에 바로 이해가 안돼서 자주 찾아갔는데 물어 볼 때 마다 잘 알려주셔서 감사했다.
우리는 우리가 너무 편했다. 그래서 다른 기수들과는 다르게 딱히 남녀 무리 없이 빠르게 친해진 기수였다. 그만큼 빨리 서로가 편해졌고 편해진 만큼 서로에게 장난이었지만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장면을 연습하는 중이었다.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는 연기를 해야 하는 역할 인데 평소 그 친구가 해본 적이 없던 연기라 어쩔 수 없이 실수를 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대부분에 피곤하고 예민해져 그 친구에게 짜증을 냈다. 그러자 연범쌤께서 말하시길 우리는 빈껍데기인 기수라고. 우리를 잠깐 봤을 땐 그저 골고루 잘 섞여 보이기만 하는 기수지만 좀 더 자세히 본다면 서로를 장난이라지만 서로를 자주 깎아내리는 기수라고, 서로 친한 척은 다 하면서 정작 친구가 힘들 땐 나도 힘드니까 하곤 외면 해 버리니 그런 말 씀을 하신 것 같았다. 머리가 띵 했다. 나는 16기를 대하는 내 태도를 돌아보았다. 아마 기숙사에서는 다들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빈 껍데기 같은 관계가 아닌 서로를 도우며 함께하는 16기가 되자고.
그날 이후 우리는 점차 바뀌려 노력하고 있었다. 먼저 대사 리딩을 함께 연습하자 하고, 모르는 부분을 서로 알려주고, 대사를 까먹은 친구를 위해 대사를 알려준다거나, 생각 할 시간을 벌어주려 애드립을 한다던지 서로서로 도우며 하려는게 눈에 보였다. 그리고 점점 한 숨으로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쉴 땐 쉬고 할 땐 하는 것이 보였다. 배려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니 덕분에 뮤지컬 연습이 점점 더 재미있어졌다. 무엇보다, 선생님들이 우리가 뮤지컬을 하면서 단순히 공연을 잘해내는 것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무언가를 얻어가길 바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연습을 하다 보니 어느 세 공연이 코 앞이었다. 공연 전날에는 사실 그렇게 떨리지 않았다. 도축장에 끌려갈 것을 아는 돼지처럼 죽을 날을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덤덤하지만 조금은 무서운 그 정도였는데, 막상 정말 공연 당일이 되니 떨려서 도망가고 싶었다. 싫어도 뮤지컬이 시작되던 것처럼 떨려도 공연은 시작 되었다. 나와 애들 모두가 긴장한 상태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너무 떨려서 평소 나와 애들이 평소의 에너지를 못 내면 어떡하지? 라고 잠시 고민했었는데, 공연이 시작되고 애들과 함께 무대로 달릴 때 애들의 에너지가 느껴짐과 동시에 긴장이 풀렸다. 당연하겠지만 아마 우리가 돌린 런 중에서 제일 에너지가 넘친 공연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실수를 많이 했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무대를 하는 내내 너무 기뻐서 웃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웃음이 나왔다.
뮤지컬 마지막 노래 파트 중 각자 준비해서 우리는 서로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를 말하는 부분이 있었다. 나는 기억되고 싶은지 라기보단 16기에 대한 생강을 일지에 있는 것 그대로를 말했다.
“곧 졸업이라는 분위기와 함께 가슴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16기와 학교에서 하는 모든 것들 앞에는 마지막 이란 단어가 붙겠구나, 아니다 절대로 마지막이 아니다. 우린 만나고 싶을 땐 언제든지 다시 만날 수 있는 사이이고, 예람이의 시처럼 언젠가 얼굴 빨개지게 오징어 다리를 뜯으면서 만날 것이다. 절대로 우리는 마지막이 아니다.”
정말 멋지게 말하려고 했는데 다리가 덜덜 떨리고 눈물이 나올 듯 목이 매여서 엉망진창으로 말했다. 노래를 부르며 서로가 소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니 기분이 묘했다. 실수를 많이 했던 만큼 아쉽기도 했지만, 후회는 없었던 공연이었다. 이번 뮤지컬을 통해 우리는 모른 척하고 있었던 문제를 생각하고 노력하여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모두가 오랫동안 한 마음, 한 숨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앞으로 16기가 뮤지컬 활동을 했을 때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집중하고 한 마음으로 오래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쉬웠어도 후회 없는 1년을 보내고 싶다.
끗ㅅ 나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