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 학과가 매월 발간하는 '러시아CIS 토크' (Russia-CIS Talk)는 2024년 제 7호(Vol. 07, 2024년 7월 1일자, https://ruscis.hufs.ac.kr)에서 러시아의 건물 노후화와 이에 따른 에너지 비효율에 관한 문제를 다뤘다. 신에스더씨(석사, 러시아CIS 경제 전공)가 쓴 '러시아 건물 노후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소개한다/편집자
**본 칼럼은 저자 개인의 의견이며, 학과와 바이러시아(www.buyruaaia21.com)의 공식 견해와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노후화한 난방 설비, 에너지 비효율의 온상
매서운 한파가 몰아친 지난 겨울, 루스키(러시아인)들은 열악한 난방 시설 때문에 극심한 추위에 시달려야 했다. 러시아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소셜 미디어(SNS)들은 불만을 토로하는 현장의 고통을 실시간으로 실어 날랐다.
러시아 난방 시스템은 소련 시절의 설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노후화가 심각하다. 러시아 주민들은 난방이 중단되는 경우가 빈번하여, 낮은 실내 온도를 유지하며 혹한의 겨울을 견뎌야 했다. 주민 수만 명이 난방 서비스의 온수 공급이 중단된 환경에 처하게 되자, 정부 당국도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낙후되고 열악한 러시아의 주택 및 상업 인프라를 재개발하는 데는 약 1,940억 달러 상당의 비용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2023년 러시아 정부가 정부 예산에서 지출한 금액은 고작 26억 달러에 불과했다.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의 수행을 위해 정부 예산을 군비 확충에 우선 지출했기 때문이다. 서방의 제재로 지방 인프라 투자 예산이 줄어든 점도 있다.
그 결과, 러시아에서 지난 겨울 1천 명 이상의 동사자가 발생했다. 수도 모스크바 등 여러 지역에서 발생한 정전과 난방 공급의 중단 사태는 언론 자주 노출되었고, 여론은 악화 일로를 거듭했다.
◇국제기구의 러시아 노후 건물 개선 지원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18년 에너지 효율화에 관한 시장 보고서에서 에너지 효율성 강화를 통해 2050 탄소 중립을 위한 탄소 배출량을 약 40% 감축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려면, 에너지원을 대체하는 것 외에도 민관이 협력해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노력과 함께 각 산업 분야에서 제도적, 실천적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의 25%가 건물 부문에서 발생하므로 저탄소 제로에너지 빌딩 전환을 추진하는 '그린빌딩'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는 1억 4천만 명이 넘는 인구 중 1억 명 이상이 다가구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러시아 에너지의 4분의 1을 사용하는 주거 분야가 전체 소비 부문에서 두 번째로 많다. 고효율 에너지 전략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 감소 여지및 잠재력이 큰 이유다.
이 점에 착목해 2020년 이후 세계은행(World Bank)은 러시아의 도시 주택 효율 개선과 건물 현대화를 위한 금융 활성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2012년 유럽부흥개발은행(EBRD)는 극동 지역 난방 시스템 현대화와 에너지 효율성 향상을 위해 16년 장기 대출로 30억 루블을 제공했다. 시베리아의 사하(야쿠티아)공화국은 겨울 기온이 영하 50도까지 떨어져, 연중 난방 기간이 무려 10개월에 이른다. ㎢당 난방 비용이 러시아에서 가장 높다. 난방 비용이 연료 및 운송비를 포함한 전체 운영 비용의 75%를 차지하는 사하 지역은 에너지 절약 가능성이 큰 곳이다.
◇에너지 효율 선도국 한국의 기여 가능성
한국은 에너지 먹는 '하마 국가'로 평가된다.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다소비국이어서 에너지 혁신이 필요한 한국은 국가 차원에서 에너지 효율 개선을 위한 노력을 매우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특히 준공 20년 이상 된 노후 주택이 1천만 호를 넘어서고, 그에 따라 전력 설비 고장이 자주 발생하자 한국 정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 대응책으로 한국 정부는 2001년부터 한국에너지공단을 통해 건물의 에너지 성능, 즉 에너지 소요량과 이산화탄소 발생량 등을 평가·인정하는 에너지 이용 효율 개선 사업을 추진해 왔다. 동시에 2024년 올해부터 '그린홈 패키지' 사업도 펼치고 있다. '그린홈 패키지'는 노후화한 전력·냉난방 공용 설비 교체, 재생에너지 보급 등을 지원하고 단지 내 냉난방 효율 개선, LED 보급 등을 통합해 추진하는 사업이다. 사업 방향은 아파트 단지의 노후도, 정전 발생 이력 등을 고려해 200여 개 단지를 우선 선정해 지원하고 그 규모를 점차 확대, 추진해 나가는 것이다.
한국은 오랜 기간 주거용 비주거형 건물에 대한 에너지 효율 개선과 안전관리를 위한 지원 정책 등을 적극 추진하면서 에너지 이용 효율 선도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속적인 에너지 이용 효율화 개선 사업을 통해 축적된 한국의 노하우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그린홈 패키지'와 같은 한국의 선진화된 에너지 이용 시스템은 에너지 이용 효율이 낮은 러시아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말하자면 러시아의 비효율적인 에너지 인프라 개선 사업에 한국 기업의 진출이 가능한 것이다.
선진 에너지 효율화 기술력을 갖춘 국내 기업들이 앞으로 시장 규모가 큰 러시아의 노후 건물 및 주택 개선 사업에 적극 진출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