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부산수필문학상 심사평
운명을 거부하지 않는 자연의 순수, 순리
권대근
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우리는 신영수의 수필 <노인과 돋보기>를 통해서 체험이 문학적으로 어떻게 변용되는지 그 과정을 행복하게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수필을 통해 한 작가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고민했던 갈증처럼 채워지지 않는 추구의 시간을 사색과 사유로 승화시켜내는 지혜를 함께 읽어나갈 수 있다. <노인과 돋보기>라는 수필에서, 그는 삶의 영역에서 갖는 사색과 긍정의 가치를 ‘돋보기’라는 제재로 형상화하여 자조의 문학이라는 수필의 특성을 잘 살려내고 있다.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주제의식을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성경’까지 인용하며 ‘탈돋보기의 미학’을 보여준다. 작가의 말대로 돋보기는 가까이 있는 것을 잘 보이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보지 않았으면 좋은 것도 보이게 하는 일도 한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서 노인이 되어서 잘 살아가는 비결을 이야기한다. 돋보기의 허와 실을 체험을 통해 잘 숙지하고, 그 깨달음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했다. 피할 것은 피함으로써 얻어지는 정신적 가치의 고양을 높게 평가하고자 한다.
이 수필의 백미는 깨달음의 보고인 돋보기와 관련된 체험 부분이다. 반성적 성찰의 문학인 수필이 보여줄 수 있는 쾌미는 아무래도 에이징에 대한 안티가 아니라 긍정이 아니겠는가. “돋보기안경을 낀 채 컴퓨터 자판에 손을 얹고 두드려 가다가 우연히 내 손을 보게 되었다. 내 손이야 늘 보아왔기에 다를 바 있으랴 마는 그게 아니었다. 전에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던 손마디와 손등에 깊이 새겨진 많은 주름이며 검붉은 작은 점, 오래되어 희미해진 팔목의 흉터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내 손이 투박하고 거칠다. 아! 내 손도 이렇게 노화되었는가, 나를 한 번 더 확인한다. 돋보기안경을 끼고 컴퓨터 화면에서 한참동안 글을 읽다가 잠시 돋보기를 벗고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저 멀리 내다보이는 창밖의 시원하게 펼쳐진 금정산과 주변의 세상은 환하게 잘 보인다.”는 대목은 이 수필에서 가장 맛있게 읽히는 부분이다. 돋보기를 벗었을 때의 세상이 주는 의미를 곱씹어봐야 수필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의 여러 모습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려는 몸짓이다. 바로 자연의 섭리에 따르려는 삶에 대한 겸허다. 그가 이 수필을 통해 던지는 메시지는 ‘여유’요, ‘느긋함’이다. 산다는 것은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려는 원심력과 그것과 대치되는 구심력의 절묘한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줄다리기의 위험한 연속행위와 갈등 속에서 오랜 시달림과 방황 끝에 마침내 구심력을 향해서 돌아오는 동작구조, 그 회귀행위의 근저에는 스스로 낮추고 한없이 겸허해진 자아가 자리 잡게 된다. 그 겸허한 모습은 자신의 모습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진수이며 삶의 영롱한 에센스가 될 것이다. 탈돋보기로부터 얻은 세상은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삶의 영역이며 우리의 지친 영혼이 안주할 수 있는 터전이 된다. 이 수필을 읽고 나면, 거친 주름의 파도를 넘어 우리의 영혼이 가장 낮은 자제로 임하게 되는 지점이 바로 순리의 삶임을 알 수 있다.
이 수필은 개인적 체험이라는 의미를 보편적 가치라는 의미화로 매듭지음으로써 문학의 두 요소인 구체성과 보편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고 있어 감동을 준다. 밝음의 기쁨과 환희에 흥분하기보다는 운명을 거부하지 않는 자연의 순수, 순리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거기에 의미를 두는 작가의 긍정적이고 지혜로운 시각이 공감을 가져와서 좋은 작품이라 하겠다. 작가는 삶의 깨달음을 통해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사는 것이 참다운 삶이라는 것을 ‘돋보기’라는 제재를 통해 잘 보여주었다. 인생에서 노력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듯이 문학도 그렇다. 자연스러운 체험과 그 깨달음이 주는 내용들로 구성된 멋진 글이어서 이 수필은 좋은 글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