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위한 기도
시편 128편 3~4절
설 교 : 2012년 10월 3일 수요 기도회
찬 송 : 559장(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302장(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1852년 4월 10일 미국의 한 시민이 알제리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후 미국 정부는 군함을 보내어 그 사람의 유해를 미국으로 가져오기를 결정했습니다. 그의 유해가 미국에 도착하는 날, 뉴욕 시가지에는 역사상 최고의 인파가 몰렸습니다. 군악대의 연주소리, 군부대의 예포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당시의 미국대통령과 국무위원들 뉴욕시장이 모두 나와 그 유해의 도착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주인공이 위대한 정치가도 외교가도 아니었습니다. 장군도, 노벨상을 수상한자도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시민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이런 환영을 받게 된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그가 작사했던 한 곡의 노래 때문이었습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라.”
이 노래는 우리도 많이 부르고 들어본 노래입니다. “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을 작사한 존 하워드 페인의 유해였습니다. 그는 아직도 미국인의 가슴에 영원한 거인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가정이 해체되고 상실되어가는 시대에 가정의 중요함을 노래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은 가정을 위한 기도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가정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같이 공감하고 있는 부분일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을 위한 기도가 왜 필요한지 함께 살펴봅시다.
1. 교회의 뿌리는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교회를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먼저 가정을 세우셨습니다. 어찌 보면 가정과 교회는 동시에 세워졌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만나매 가정이 이루어졌고, 아담과 하와가 함께 하나님께 예배하매 교회가 세워진 젓입니다.
때로 그리스도인들 중에 신앙생활을 한다는 미명아래 가정을 등한히 여겼고, 심지어 가정을 깨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것은 철저히 비성경적인 모습으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이유로든 결코 가정이 위험에 처해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이라” (딤전 5:8).
그러기에 우리는 바른 가정을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만 합니다. 또한 믿음으로 가정을 지키려고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곧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2. 인간존재를 결정짓는 기준이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하젠 워너 감독은 “가정은 그리니치 천문대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니치 천문대는 전 세계 시간의 기준이 되는 곳입니다. 그와 같이 가정도 인간 존재를 결정짓는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옛글에도 보면 “부부는 인륜의 근본이요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어려워짐이 다 이에 말미암지 않음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만일 가정이 방향을 잃고 흔들리면 사회도 문화도 국가도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가정이 흔들리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위험에 처해 있는 가정은 성도의 가정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여러분은 무너지는 가정 앞에 어떤 대책을 갖고 있습니까? ‘이것은 남의 일이지 우리 가정에는 절대로 닥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최초의 가정인 아담과 하와도 타락하여 서로 비난했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의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 3:12).
그러므로 우리는 사무엘이 이스라엘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 것을 죄로 여겼듯이, 가정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 것을 죄로 여기며 날마다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상삼 12:23).
3. 가족구원의 산실이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개인구원과 전도에 관심을 너무 가진 나머지 기족이라는 중요성을 간과해 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훌륭한 일꾼인데 가정으로 볼 때는 믿음의 덕을 보이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가정에서부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혼자 믿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믿을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만 갖고 이야기를 하자면 고넬료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행 10장).
그는 천사로부터 베드로를 청하여 말씀을 들으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자기 혼자 들은 것이 아니라 가족으로부터 가까운 사람들을 청하여 함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행 10:24).
바울에게 복음을 들은 루디아도 자신만 구원받고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가족 모두 세례를 받았습니다. 복음을 듣고 혼자만 믿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믿었다는 것입니다(행 16:14-15).
성경은 개인이 구원받은 것만큼이나 가족 전체가 구원받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족구원을 도외시하는 것은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주님을 모르고 믿지 않는 가족이 있다면 구원의 문이 열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정을 가족을 구원하는 복음의 산실(産室)로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4. 사단이 가정을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의 가정을 보십시오. 사단의 공격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정을 위하여 기도해야만 합니다. 특히 사단은 우리 믿는 가정을 노립니다. 사단은 우리의 남편과 아내를 노립니다.
그래서 부부간에 문제가 생기게 하고, 부모와 자식 간에 문제가 생깁니다. 이런 사단의 공격에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가 깨어서 가정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기도로 방어벽을 튼튼하게 세워야만 사단이 그 어떤 공격을 한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에베소서 6장 11절)
나가는 말
우리 모두 가정을 위한 기도의 파수꾼이 됩시다. 바른 가정을 세우기 위한 기도의 파수꾼, 온 가족을 구원하기 위한 기도의 파수꾼, 사단을 능히 대적할 수 있는 기도의 파수꾼이 되도록 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