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나절 세 번 쓴 시
김산하의 <습지주의자>를 빌리러 화정도서관 가는 길이었다.
(1)
눈이 무거워 잎도 가지도 살려고
새똥처럼 쭉쭉 아래로 떨어지는 빗물 같은 눈덩이
큰 길로 갈 걸 괜히 좁은 산책길이 후회될 때
푸르른 저 나무가 미국에서 온 스트로브잣나무
머나먼 타국 땅 살려고 애쓰는 데
자국 땅 걷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쓱쓱 젖은 머리칼 쓸며 툭툭 패딩 물기 털며
군소리 없이 걷는다
습지가 내게 온 듯 책을 빌리고 성라산으로 들어가 봤다.
(2)
내 몸을 숲에다 넣어놓고
새가 보이기를 기다려 봐도
웬일인지 보이질 않네
내 속을 태우는구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와요
나갈까 말까 가고 싶어도
내 정말 새가 보고 싶어요
내 속을 태우는구려
탐조 프로그램 가면 보이는데 혼자는 어려워 포기하려고 했다.
(3)
갈림길에서 집으로 가는 지름길 고민하다 위를 보는데
쇠박새가 보인다
바삐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닌다
아, 여기에 새가 많이 있는 거구나
그때 산 정상 군부대에서 진공청소기 소리 들려온다
새들이 가버리면 어쩌나
나랏일인데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도 은근 신경 쓰며 고개를 그리로 돌려보는데
키 큰 나무 줄기를 일자로 바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얼마 전 처음 잠깐 본 그 동고비가 우리 동네에 있었다
진공청소기 소리가 고음으로 올라가도 화를 누르며
긴 부리로 껍질을 쪼는 모습 보여주는 동고비에 감사하며
그대가 사라질 때까지 시린 발 참으며
마음은 기뻐 날 뛰며
은근슬쩍 가장 작은 쌍안경 꺼낸다
이제 탐조 시간이다
갈 생각 하지 않고 서성거리는데
딱따닥 딱따닥 소리가 난다
어디일까 어디일까 일부능선부터 팔부능선까지 훑는데
5미터 거리 밑동 바로 위 쇠딱다구리 보인다
장비가 없어 사진에 담지 못 해도
오래 눈에 담으려 안간힘을 쓰는데 곧 훌쩍 간다
있구나, 있구나, 새들이 있구나
지름길 버리고 산길로 슬쩍 방향 트는데
부러진 가지에 초록빛 청딱다구리가 앉아 있다
선명히 담지 못해도 핸드폰에 담아 본 뒤
제발 사람 내려오지 말라고 빌어보는데
비례정당인지 위성정당인지 큰 소리로 떠드는
그 소리는 왜 이어폰으로 듣지 않는지
화가 나도 소리 내지 못하고 청딱다구리만 본다
그러자 곧바로 나무에 달라붙어 부리에 시동을 건다
보았구나, 보았구나, 새들을 보았구나
그게 뭐라고
눈 녹는 진흙탕 산길이 그리 미끄럽지 않았다
미끈한 낙엽 가득한 작은 길도 부드럽기만 했다
새를 본 게 뭐라고
철길 아래 극히 짧은 터널 지나 짹짹거리는 참새들에게 환하게 인사하며 횡단보도를 건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