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란 / 「꼬막 캐는 여자의 바다」
겨울이 되면 눈부신 벌교 갯벌에 가보아라
양수가 터진 바다가 갯벌에다 아이를 낳고 아랫배를 드러낸 채 섬 기슭 으로 달려가 젖을 먹인다
풀어헤친 저고리 틈새로 빠져나오다가 그만 수평선에 걸쳐진 바다의 저 통통한 젖가슴을 빨고 있는 벌교 여자들
새색시 적부터 꼬막밭에 앉아 열심히 바다의 젖을 빠는
자궁에서도 평생 꼬막 냄새가 나는 저 벌교의 여자들은
만삭이 된 섬들이 바다에 아이를 낳을 때마다 뻘배를 타고 힘차게 바다 로 나아가 꼬막을 캔다
순천만 젖꽃판이 개흙으로 검어지고 젖꼭지마다 팽팽히 섬을 이룰 때
저마다 꼬막이 되어 갯벌 깊은 바닥에 몸을 숨긴다
행여나 장보고 같은 사내 갯벌 속에 숨어 있을지 몰라 갯벌의 쫄깃쫄깃 한 자궁이 되어 숨을 죽인다
때로는 허연 꼬막껍질처럼 길바닥에 버려져
사내들이 짓밟고 지나갈 때마다 서럽게 부서지고 아스러지던 날들
방파제 끝까지 트랙터를 몰고 온 사내들이 소주병을 버리고 모닥불로 타 올라도 여자들은 좀처럼 물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뻘배를 끌고 산고가 채 끝나지 않은 갯벌의 속살을 쓰다듬을 뿐
참꼬막이 가득 담긴 함지박의 웃음이 될 뿐
광활한 치마폭을 펼친 바다는 지금 일몰의 시간
노을 지는 수평선을 목에 감고 뻘밭에 백로는 저 혼자 고독하다
멀리 고깃배 한 척 밀물 때를 기다리며 비스듬히 누워 있다
황금빛 갯벌의 주름진 뱃가죽을 들치며 바다의 젖을 빠는 저 여자들
꼬막 캐는 여자들의 봄이 오는 바다
가끔은 장보고 같은 사내가 찾아와 씨 뿌리는 바다
- 최명란의 「꼬막 캐는 여자의 바다」 전문. 『사랑의 낱알』
<감상문>
시인은 썰물 때 섬이 드러나는 바다를 “만삭이 된 섬들이 바다에 아이를 낳는 해산하는 과정으로 상상하였다. 따라서 양수가 터진 상상으로 이어진다. 또한 “바다의 젖가슴을 빨고 있는” 벌교의 여자들도 아이로 변형하였다. ”갯벌의 쫄깃쫄깃한 자궁이 되어“에서 벌교 여자들의 자궁을 쫄깃쫄깃한 꼬막으로 비유하였다. 이는 성의 환락을 음식의 맛으로 환치한 것이다.
”때로는 허연 꼬막껍질처럼 길바닥에 버려져/ 사내들이 짓밟고 지나갈 때마다 서럽게 부서지고 아스러지던 날들“에서 벌교 여자들은 꼬막 껍질이 되어 서럽게 부서지고 아스러진다. ”산고가 채 끝나지 않은 갯벌의 속살을 쓰다듬“는 구절에 이르러 갯벌은 여자의 속살이다.
이와 같이 의식의 작용은 화자의 상상으로 변양되기도 한다.
2024. 10. 18
- 감상자. 이구한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