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굳게 결심하시고(눅9:51-62)
갈등
1.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이번에는 이 일을 내가 반드시 성취하겠다고 결심해요. 여러분도 때로 이런 경우가 있지요? 결심은‘할 일에 대하여 어떻게 하기로 마음을 굳게 정함을 말합니다.’한국 영화‘헤어질 결심’이 있어요. 경찰과 여자 피의자가 서로 관심을 갖다가 헤어질 결심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잘못된 만남이나 일에 빠졌다면 속히 떠나야 합니다.(회개) 세상의 허무한 일에 빠져 있다가 결심하는 일이 아니라, 정말 가치 있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결심을 하는 일은 어떻겠습니까?
남을 위해, 이웃을 위해, 세계를 위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죽는 것보다 가치 있고 고상한 일은 없습니다. 이 가치는 좋지만, 이 일을 내가 하겠다는 결심은 쉽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이런 상황에서 망설입니다. 깊은 갈등에 빠져요. 두려워서 포기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주님은 곧 무슨 일이 자신에게 닥쳐올지 아셨습니다. 주님은 이미 두 차례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제자들에게 예고하셨습니다.(수난예고-9:22, 44-45) 예수님은 엄청난 고통 가운데 스스로 들어가려고 결심하셨습니다.
2. 예수님은 51절,“굳게 결심하셨습니다.”주님이 결심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힌트는,“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입니다. 새 번역 성경은,‘예수께서 하늘에 올라가실 날이 다 되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굳히시고.’주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이제 곧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유대 종교인들에게 수난을 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 일 후에 부활하시며, 승천하실 것을 결심하셨다는 말씀이에요. 부활과 승천은 좋지만 이런 승귀(존귀하게 되심)는 스스로 비천하게 되신(수난과 십자가) 후의 일이에요. No Cross, No Crown!
예수님은 공생애 3년, 이 땅에서 사역을 마쳐 가며 제자들도 마음을 굳게 먹고 대비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스승이신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주님과 마음을 같이 하였습니까? 제자들은 주님의 마음과 뜻과 목적을 깨닫지 못했어요. 그들은 주님을 좇아 동행하였지만,‘동상이몽’이었어요. 겉으로는 같이 행동하면서 속으로는 각기 다른 생각을 했어요. 예수님께서 두 번째 수난예고를 했을 때에 제자들은,‘누가 크냐’고 서로 다투었어요.(46절) 주님의 마음과 생각이 제자들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갈등 심화
3. 예수님은 이런 상황에도 굳게 결심하시고 사마리아 지역으로 사자들을 보내 무엇인가를 준비하도록 보냈습니다. 그런데, 보냄을 받은 이들이 돌아와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주님을‘받아들이지 아니한다’고 보고했어요. 주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는 길에 사마리아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시기 위해 머물 장소를 알아보도록 보낸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주님을 거부했습니다. 그들이 거절한 이유는,‘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걸어서 3일 이상이 걸렸어요.
사마리아인들이 주님을 거부하자, 야고보와 요한이 흥분했습니다.‘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니까’(54절) 두 형제가 혈기를 드러내는 감정을 표출하고 말았어요. 이 일로 두 형제가 보아너게-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두 형제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사마리아는 부정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앗수르 황제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사람들을 앗수르(시리아)로 포로(노예)로 잡어갔어요. 앗수스 제국의 황제는 사마리아에 여러 민족이 섞여서 살도록 했습니다. 전략적으로 이스라엘의 신앙과 혈통을 말살하고자 했어요. 자연스럽게 사마리아가 혼혈이 되면서부터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사이에 지역적인 감정이 깊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4.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혐오했습니다. 제자들도 같은 마음이었어요. 이 사건 후 예수님께서는 함께 길을 걷던 세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어요. 대화를 보면, 주님과 이 제자들과도 거리가 멀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주님을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이때 주님이 이런 말씀보다는 칭찬을 해주어야 했던 것이 아니었나요? 격려해 주면서 어려운 길인데 따르겠다고 하니 고맙다고 말씀하셔야 하는 것 아니었나요?
두 번째 사람에게는 예수님이,‘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어요. 이 말을 들은 사람이, 네 따르겠습니다. 하지 않고‘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해달라고 했어요. 아버지가 이미 죽은 것인지,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지내다가 돌아가시면 장례를 치루고 오겠다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이 사람의 요청에 주님은,‘죽은 자들로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하셨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주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주님을 따라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가족관계도 무시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5. 세 번째 사람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주님 내가 주를 따르겠으나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해 달라’고 했어요. 허락을 구하는 그에게 예수님은,‘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어요. 주님은 농사를 비유로 말하며 이 또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족들과 작별을 고하고 주님을 따르면 안 되었을까요? 복음 전파를 위해서 천륜도 인륜도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인가요? 열두 제자들도 따르고, 갈수록 사람들이 더 동행은 하고 있었지만, 예수님이 홀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고 계신 목적이 무엇이었나요? 십자가에 죽으러 가셨습니다. 인류 역사를 바꾸려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그 길을 향하여 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일을 행하기 위해 주님이 가시는데, 가장 가까이 있는 제자들마저도 동상이몽가운데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실마리
6.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전해 주시려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에 주목하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자, 불로 심판하자는 제자들을 예수님이 꾸짖으셨어요. 예수님이 사마리아 지역에 들어가려고 하신 의도를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고 말았어요.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의 관계가 어떤지 예수님이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주님은 그들도 동일하게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마리아인들도 불쌍히 여기고,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편견에 갇혀 있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을 무시했고 멸시했어요. 예수님은 제자들을 꾸짖기만 하시고서 다른 마을로 제자들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서로 적대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과는 무관하게 행동을 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겠다는 사람을 칭찬하면서 격려하지 않으시고, 짐승들도 집이 있지만 나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이렇게 말씀하심은 나의 삶이 이러한데 그래도 나를 따를 것인지 물으신 것입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을 때 그의 목적이 따로 있었다는 것을 예수님의 답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주님을 따르고자 함은,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과 기적을 보고 일상의 평안을 얻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7. 부친의 장례를 먼저 치르게 해달라는 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관습상 당연합니다. 자녀의 가장 중요한 의무로 여겼습니다. 예수님은‘죽은 자(영적으로 죽은 자-불신자)들로 죽은 자(육체가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이 말씀은 부모 공경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장례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아니었어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사람들에게 알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가로막을 세상의 가치는 없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가족과 작별하고 따르겠다는 것도 상식적인 일이며 인간이 할 수 있는 기본적인 행동입니다. 예수님은 쟁기를 잡은 농부를 비유로 단호하게 허락하지 않으셨어요. 주님을 따르는 것은 쟁기를 잡은 농부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쟁기를 잡고 밭을 가는 사람이 뒤를 보거나 눈과 생각을 앞을 향하여 집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밭이랑이 구불구불하게 되고 말아요. 주님을 따라갈 때, 이처럼 흔들림 없이 헌신해야 한다고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8. 제자들을 꾸짖으신 일과 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어떤 자세와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 책망을 들은 제자들과 제자의 도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주님을 따르겠다고 했던 이들이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적당하게 현실과 타협하며 이중적인 신앙생활에 젖어 사는 우리의 모습이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듭니다.
복음 제시
9.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려고 굳게 결심하신 예수님은 구약에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대로 오셨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예언한 말씀대로 사셨어요. 하나님의 아들께서 이렇게 오셨으나, 당시 주님을 인정하거나 따르는 자들이 많지 않았어요.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주님을 외면하고 배척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배척했던 사람들을 조금도 미워하지 않으셨어요. 도리어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긍휼히 여기심-우리를 살리심) 그들이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용서해 달라고 십자가에서 죽어가면서도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자기를 배척한 사마리아인들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다른 마을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고난당하실 것을 예고하셨을 때,‘누가 크냐’는 문제로 서로 다투는 제자들에게“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런 여정 가운데, 주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직접 밝히셨습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는 것이 목적이라 했습니다. 세 사람에게 제자도를 가르칠 때에는 단호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대신 할 수 없는 복음의 가치를 행동으로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 이십니다.
기대
10.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였고 어떻게 되었다는 결말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을 읽는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지만, 자신은 머리 둘 곳이 없었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묵상하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주님의 참된 제자로 살고 싶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궁극적인 삶의 목적을 두고 계십니까? 무엇에 최우선 순위를 두며 살아오셨나요? 마지막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굳게 결심하시고 죽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셨던 주님의 모습을 기억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여정에서 들려주신 메시지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주님과 같이 살아갑시다. 지난 두 주간, 그동안 준비하고 기도했던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신학을 가르치고 부흥회를 하며 말씀을 나누고 성령의 능력이 임하는 귀한 경험을 하고 왔습니다. 우리 교우들과 기타 여러분들의 기도와 후원 덕분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우간다 선교를 담당한 현지인 만지 목사께서 제게 감사의 문자를 보냈어요.“목사님이 우간다에서 함께 하심이 큰 복이었습니다. 주님을 섬기심에 감사드리며, 목사님의 남은 여정 발걸음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풍성한 은혜를 더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사람, 목사님께 복을 더하시기를 기도합니다.”
11. 저의 강의와 부흥회를 통해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모습을 보고 현지인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신학 교수가 부흥회를 하고 치유와 회복이 이뤄지는 모습을 처음 보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고 해요. 독일에서도 처음에는 낯설어했지만, 갈수록 이해하고 마음을 열면서 여러 가지 놀라운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셨어요. 사모님이 허리가 안 좋아서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식사 후 안수 기도로 바로 나았습니다. 선교지로 가기 전에 네 차례 기도 제목을 하나님께서 주신 대로 그대로 역사하셨습니다. 선교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일임을 다시 경험했어요.(피부트러블이 나은 우간다 신학생 이야기, 독일 한인교회-수술을 하며 몸에 철심을 박았다 뺐는데 잘 낫지 않았던 사람 이야기, 개인 상담과 기도를 요청했던 이들 이야기)
예수님은 자신이 굳게 결심하시고 가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결심을 듣고 보고 싶어하십니다. 예수님처럼 굳게 결심하고 살아가도록 이 시간 다 같이 일어나서 찬양하며 기도합니다.(오늘 찬양: 내가 예수 믿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