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재영 /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도대체 ‘양자역학’이라는 낯선 물리학 이론이 생활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반도체 없는 컴퓨터를 상상해 보자.
반도체가 없다면 노트북, 스마트폰과 같이 작은 컴퓨터의 탄생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현대 물리학의 기초인 양자역학은 컴퓨터의 주요 부품인 반도체의 원리를 설명하는 등 현대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많은 기술들의 이론적 바탕이 됐다.
또한 양자역학은 과학기술의 측면뿐 아니라 철학, 문학, 예술 등 다방면에 중요한 영향을 미쳐,
20세기 과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으로 꼽힌다.
현대 물리학의 기초가 된 양자역학은 무엇인가?
양자역학이란?

그렇다면 도대체 양자역학(量子力學, quantum mechanics)이란 무엇일까?
이 용어를 처음 만든 사람은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보른(Max Born, 1882~1970)으로,
Quantenmechanik(크반텐메하닉)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것이 그대로 영어로 번역된 뒤에, 일본에서 ‘量子力學(료오시리키가쿠)’라 새로 번역됐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들어와 ‘양자역학’이란 용어로 번역됐다.
양자역학이란 말을 이해하려면 ‘양자’와 ‘역학’을 각각 살펴보는 것이 좋다. ‘양자(量子)’로 번역된
영어의 quantum은 양을 의미하는 quantity에서 온 말로,
무엇인가 띄엄띄엄 떨어진 양으로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역학(力學)’은 말 그대로는 ‘힘의 학문’이지만, 실제로는 ‘이러저러한 힘을 받는 물체가 어떤 운동을
하게 되는지 밝히는 물리학의 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힘과 운동’의 이론이다. 이렇듯 양자역학이란 띄엄띄엄 떨어진 양으로 있는 것이
이러저러한 힘을 받으면 어떤 운동을 하게 되는지 밝히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빛알 이론(light quantum theory)과 보어의 원자 모형

오래전부터 과학자들은 빛의 본성이 탁구공이나 쌀알 같은 입자인지,
아니면 물결이나 소리와 같은 파동인지를 놓고 진지한 논쟁을 벌여왔다.
하지만 빛을 입자로 보는 부류나 파동으로 보는 부류 모두 형광현상
이나 냉광 현상
, 광전 효과
등을 설명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미 19세기 말에 빛은 전기장과 자기장이 공간 속에서 펴져 나가는 전자기파임이 밝혀졌다.
하지만 빛을 단순히 전자기파로 본다면 냉광이나 광전 효과를 설명할 수 없었다.
빛이 파동이라면 진동수
와 파장
을 가질 것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1879~1955)은 빛이 파동이긴 하지만
그 에너지가 일정한 단위로 띄엄띄엄 떨어져 있다고 제안했다.
이 제안이 바로 1905년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빛알 이론으로, ‘양자’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준다.
‘빛알’은 ‘빛양자’나 ‘광양자’(光量子), 또는 줄여서 ‘광자’(光子)라고 부른다.
이 이론은 쉽게 말해, 빛의 에너지는 실수가 아니라 자연수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물건을 살 때 100원짜리 동전으로만 살 수 있어, 1,000원짜리 물건을 사는데
100원 동전 10개를 내는 것과 같다.
여기서 동전 하나를 ‘양자’로 볼 수 있으며, 빛의 경우에는 ‘빛양자’ 또는 ‘빛알’이 된다.
빛의 에너지를 ‘빛알’의 개수로 바꿔서 따지게 되면,
그동안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던 빛과 관련된 많은 현상들을 설명해 낼 수 있었다.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제안은 매우 혁명적이었지만, 이미 1900년, 그의 스승이었던 독일의
막스 플랑크(Max Karl Ernst Ludwig Planck, 1858~1947)가 흑체복사라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빛알 이론과 직접 통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한 적이 있었다.
플랑크의 복사 법칙이라 불리는 이 법칙을 설명하면서 그는 최초로 ‘양자’의 개념을 주장했고,
이는 양자역학의 토대가 된다.
아인슈타인이 1905년 발표한 ‘빛알이론’은 양자론의 기초가 됐다.
1913년에는 덴마크의 닐스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 1885~1962)가 새로운 원자 모형을 제안했다.
이것은 영국의 어니스트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 1871~1937)가 1911년에 제안한 모형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러더퍼드의 모형은 마치 태양계처럼 한가운데 원자핵이 있고 그 주위를 전자들이 궤도를 이루
면서 회전하는 모형이었다. 보어는 이 원자 모형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모든 궤도가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띄엄띄엄 떨어진 몇 개의 궤도만 허용 가능하다고 가정해야 함을 주장했다.
1920년대 혁명, 진정한 양자역학 탄생

학자들은 이와 같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특정의 ‘양자’가 몇 개 있는지 세는 식으로 새롭게 힘과
운동의 관계를 밝히려 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1920년대에 들어와 난관에 부딪혔다.
기초적인 아이디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현상들이 속속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자 이론은 네덜란드 물리학자 제이만(Pieter Zeeman, 1865~1943)이 발견한 현상이나
독일의 오토 슈테른(Otto Stern, 1888~1969)과 발터 게를라흐(Walther Gerlach, 1889~1979)가 발견
한 현상은 전혀 설명할 수 없었다. 수소 다음으로 간단한 원자인 헬륨의 원자 모형도 난항이었다.
이 당시에는 물리학에서 신줏단지처럼 모시고 있는 에너지 보존 법칙을 버려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후 물리학자들의 계속된 연구 결과, 양자역학은 초기의 ‘양자’ 가설을 기본으로 삼아 전혀 새로운
역학으로 탄생했다.
1925년 무렵부터 독일의 막스 보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 1901~1976),
파울리(Wolfgang Ernst Pauli, 1900~1958), 파스쿠알 요르단(Pascual Jordan, 1902~1980) 등이 행렬이라
부르는 수학 기법을 이용해 기존의 역학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역학을 만들어냈다. 이로써 그동안의
어려움을 모두 극복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 역학을 ‘행렬역학’이라 불렀다.
그 뒤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 1887~1961)가 새로운 방정식과 더불어
‘파동역학’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역학을 제안했다.
행렬역학과 파동역학 모두 그동안 난관에 부딪혔던 현상들을 아주 탁월하게 설명해냈다.
여기에 영국의 폴 디랙(Paul Adrian Maurice Dirac, 1902~1984)이 제안한 새로운 이론이 덧붙여졌다.
결국 이 세 가지 모두 같은 역학 이론임이 밝혀졌고, 막스 보른은 이 새로운 역학에 ‘양자역학’
이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주었다.
파동함수·불확정성 원리 등장- 앎의 한계 지적
양자역학이라는 새 이론은 원자와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탁월한 이론이었다.
학자들은 이 이론을 토대로 점점 더 많은 문제들을 풀어나갔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이 새로운 이론은 ‘우리가 안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아주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를 새로 꺼내기 시작했다.
원자와 관련된 것을 설명하기 위해 양자역학은 ‘파동함수
’라고도 하고 ‘상태함수’라고도 하는
수학적인 장치를 사용한다. 양자역학이 제안된 초창기부터 많은 물리학자들은 파동함수의
의미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였다.
이로 인해 파동함수가 정확히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그전까지 물리학에서는 대체로 수학을 이용해 방정식이나 공식을 만들면,
그 의미를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물론 세부적으로는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결코 알 수 없는 것을 방정식이나 공식에 담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양자역학에서는
가장 핵심이 되는 파동함수가 정확히 무엇인지 아무도 제대로 대답할 수 없는 듯 보였다.
게다가 하이젠베르크는 이 양자역학이라는 이론 안에 소위 ‘불확정성 원리
’가 있음을 밝혔는데,
이 또한 우리가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말해 주었다.
실용적으로 물리현상을 아주 잘 설명해 주는 이론이 있는데, 정작 그 이론은 우리가 안다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그보다 불과 100여 년 전에 프랑스의 피에르 라플라스(Pierre Simon de Laplace, 1749~1827)는
물리학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파동함수와 불확정성 원리의
등장으로 인해 우리가 원자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그 개념마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보어, 상보성 개념 주장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보어와 하이젠베르크를 중심으로 양자역학의 표준적인 해석을
체계화하려 애쓴 것은 이러한 인식론적인 위기상황 때문이었다.
이를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이라 부른다.
1927년 9월, 연속 전류를 공급해 줄 수 있는 전지를 처음으로 개발한 알레산드로 볼타(Alessandro Giuse
ppe Antonio Anatasio Volta, 1745~1827)의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이탈리아 코모에서 학술회의가 열렸다.
보어는 “양자 가설과 원자이론의 최근 전개”라는 강연에서 상보성 개념에 기초를 둔 양자역학의 해석
을 제안했다. 그 뒤 열린 브뤼셀 솔베이 회의에서 양자역학의 기초에 관한 논쟁은 매우 뜨거웠다.
보어는 이 논쟁에서 자신이 코모 강연에서 주장했던 상보성 개념
에 기초를 둔 양자역학의 해석을
당시의 물리학자들이 받아들이게끔 설득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첫댓글 신기하네요.. 꼭 공부해보고 싶네요..
서양 철학이나 과학을 부정하는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봅니다.
실제 세상은 서양인들이 체계를 세우고 확립한 정치질서와 물리적 지식으로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이점을 거냥 무시하고 경멸만 하여서는 결코 그들을 뛰어넘을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서양인들에 의해 체계가 세워진 민주주의 정치질서 그리고 서양인들에 의해
개념화 되고 체계가 세워진 현대 물리학에대한 동양인들의 이해와 성취가 깊을수록
동양적 철학과 과학이 우수함을 실력으로서 입증할수 있다고 봅니다.
즉 역설적으로 서양 철학이나 과학을 우리가 이해하면 할수록
동양적 가치관을 철학 과학적으로 논증 증명해낼수 있다는 것이고
우리가 서양의 가치를 무시하면 할수록 스스로 고립되는 결과를 만들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
부정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우리의 가치가 소중 하면 할수록 그들의 가치를 더욱 잘 이해하여야 합니다.
이런글은 써니뱅크님이 주석을 달아줘야 이해하기 쉬운데....
써니뱅크님 이글 보고있다는것 다 알고 있어요..ㅋㅋ
그만 화 풀고 댓글좀 달아주셈...^^:
솔직히 아놔 키스트님이 이런 댓글을 달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양자역학은 물리와 화학의 범위를 넘어선 이론적 가설입니다.
즉 원자의 작동원리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이론이죠.
양자역학의 최고 정점이 최근에 회자되던 힉스입자설 입니다.
빅뱅을 이론적으로 증명하려는 시도인셈이죠.^^.
독학으로 공부하면 오류와 독선에 빠짐. 금속은 단일 원자의 집합체임. 즉, 철, 나트륨, 알루미늄, 납,금처럼.
산화철, 염소나트륨은 분자구조임. 모든 원자는 중성자,양자,전자의 조합으로 형성되어
그것을 깨고 다른 물질로 되려면 핵분열 밖에 없는데...
서양학문은 생각하고,상상하고 이론을 세우고 그 이론을 밝히려는 실험이 수반되고, 혹은 실험에서 생각지도 못한 것을 발견하고, 그리고 계속 발전시켜왔는데.. 이노무 동양의 도인들은 생각만하고 실험은 안하고 그래서 산신령되어 혼자 잘되어 지팡이 짚고 관절염으로 고생하던가 연못에서 선녀들 목욕이나 감상하고 있는 저질들. 순 사기꾼들이죠... 그노무 산신령,도사들은
어디있어서 그들의 후손들이 서양의 무기들에 의해 박살날때 나뭇군과 선녀들을 희롱하고만 다녔남? 양인들이 동인들을 무시하는 이유는 다 잇지!!!!
지금알고잇는게 다인줄 알고 부화뇌동이라??? 참 교언영색한 사람이군... 어떻게 지금알고 잇는게 다인가? 계속 학문을 발전시켜 나가지는 뜻인데...지워진 역사라! 패자의 역사는 더 숭고한가? 하여튼 웬 괴변????
아인쉬타인,쉬레딩거,보어등은 서로 무지 학문적으로 싸웠죠. 양자역학에서는 쉬레딩거, 보어등이 아인쉬타인의 확정적 사고방식을 눌럿죠! 이 양자 역학은 무지 어렵고 현재의 고수들도 상상이 되지 않을만큼 머리 터지는 학문, 신 혹은 우주의 본질을 파고드는 문제인데 ... 근데 여기 귀신, 소금이 빛에서 왓다는 사람들, 침한방으로 진단도 모르고 치료했다는 동화꾼들에게는 재미없는 야그죠.
역사는 승자의 역사입니다.
즉 패자의 역사는 승자에 의해서 지워진 역사죠.
무엇이 지워졌는지, 원본은 뭐였는지, 알아보지도 않고서,
지금 알고 있는게 다인줄알고 부화뇌동 하는거 아닌가요.
지금알고잇는게 다인줄 알고 부화뇌동이라??? 참 경박한 행동이군... 어떻게 지금알고 잇는게 다인가? 내가 지금알고 있는게 다라고 했는가? 알지도 모르면서 어디서 줒어들은거로 근본없는 사술로 사람을 현혹하는 무리들을 경계코자함이요 . 그리고 서양의 학문적 자세를 계속 학문을 발전시켜 나가자는 뜻인데..., 그리고 지워진 역사라! 패자의 역사는 더 숭고한가? 조선왕조의 그 사화등,유교적 위선 등등, 양반이란 추악한 계급사회가 영주로 위시하는 서양보다 더 이상적인 패자의 역사인가? 하여튼 웬 괴변????
수정 | 삭제 | 신고
저는 임진왜란 이후로 이씨조선이 왜 화포기술을 발전시키고 총포기술을 발전시키지 않았는지 대단한 의문입니다.
조총으로 왜적에게 그렇게 당했고,,,화포로 해군승전을 기록했으면,,,당연히 화포와 총포기술을 더욱 발전시켜야 하는데
말이죠,,,,,,,,,,반면에....서양의 경우는 희안하게도...임진왜란 이후로 엄청난 과학적 발전인 르네상스가 일어나고,,
임진왜란 이후에 엄청난 화포,총포 기술의 발전을 가져옵니다. 아니 어떻게....극동아시아의 작은 반도에서 일어난
임진왜란 이후에...서양은 갑자기 엄청난 총포,화포기술과 각종 과학,기술의 발전을 가져올까요???이상하죠?
임진왜란과 르네상스는 반드시 직접적 관련이 있다
개인적인 추정은...동양은 화포,총포 기술을 임진란 이후로 급속히 발전시킬 수 있었음에도 오히려
아시아 대륙 전반에 일반인의 무기소지를 대대적으로 금지시키고,,,총포,화포기술의 발전을 일부러
금지시켰다고 봅니다. 왜냐? 임진란때 화포,총포의 사용으로 "대량살상"의 실체를 목겪했기 때문에
화포,총포야 말로 인간이 다룰 무기가 동양의 도덕적 관점에선 절대 아니라고 본것 같습니다.
칼이나 활은 정통으로 맞지 않는한 맞아도 잘 안죽어요,,그러니까 대량살상 자체가 안되지요,,
반면에 총이나 화포는 방아쇠만 당겨도 수십,혹은 수백명이 죽어버리는 참혹한 결과가 나와서
이건 동양의 도덕개념에 정면으로 위배됨
임진왜란이 극동의 조금만 반도땅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면..서양의 르네상스와 도저히 연관이 안되지만,,
만약 임진왜란이 전 아시아와 대부분의 남아시아, 동아시아 해안과 큰 강들에서 벌어진 전쟁이라면..
서양세력은 분명히 대량의 아시아 기술자들을 서양으로 끌고갔을 것이고...
당연히...그들은 총포,화약 기술자들을 최우선적으로 서양으로 납치해 끌고갔을 겁니다.
서양에 유난히 "그레고리" ",,,,gore(고어라고 읽지만 고려계일 듯), 클린트,케리등등 고려계 냄새가
많이나는 성씨가 많은것은...그들의 부계가 고려계거나...혹은 고려를 멸하고 난후에 서양인들이
개나소나 황제족속인 고려계를 흉내낸 성씨를 갖다 붙였을 것
2차대전때 영미가 독일을 패전시키고,,,독일에서 어떤 기술자들을 비밀리에 가장 먼저 미국으로 데리고 갔나요?
바로 미사일기술자,,핵기술자...무기 기술자,,,화학기술자, 잠수함 기술자등등이지요?
임진왜란때 역시 군사무기분야 기술자들을 제일먼저 데려갔을 겁니다. 데려간곳이 지금이 인도지역이던
혹은 지금의 유럽이던간에..
ryungol님의 역사인식이 탁월하네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임진왜란과 서세동점기는 따로 분리할수 없는 한몸일겁니다.
동양과 서양이 뒤집어지는 분기점으로 봐야지요.
그리고 살상무기에 대한 님의 분석도 뛰어나십니다.
살상무기의 확산을 극도로 경계했던 동양과는 달리
서양의 식민지 정복역사는 무차별적인 학살의 역사입니다.
전쟁의 양상이 대규모 전면전 형태로 바뀐건 1860년대에 영국에서
개발된 기관단총이 대량생산 되면서 부터입니다.(산업혁명?)
기술들은 해적질로 충당했을겁니다.(동인도 주식회사?)
댓글 고맙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항해술과 선박건조기술은 우리가 훨 좋았었지요.^^.
거북선은 아무나 만들수 있었던게 아닙니다.
과학적인 이론으로는 같은겁니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표준모형"을 만들고
16개의 소립자들을 배치하고도 설명이 않되어서
마지막으로 신의 입자라는 "힉스입자"를 첨가해서
17개의 소립자가 모든 물질의 근본임을 주장하는 것이
현재 정설로 인정되고 있는 과학적 이론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답이라는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정답임을 증명하려는 노력이 진행중에 있다고 보면 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