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북부역
김점용
눈 내리는 의정부북부역 앞에서
북부역이 어디냐고 묻는다
사라진 이름
사라진 사람들
사람들은 한결같이 저 위쪽이라고 손가락질로 대답한다
그리운 북부역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북부역으로 북부역으로 밀려 올라갔을까
북부역
어딘지 모르게 끝까지 밀려간 느낌
모두가 떠나간 곳에서
꿈도 바닥도 없는 곳
너의 대답도 아무 대책도 없는 곳에서
나 혼자 남아
먼 사랑을 하였네
모든 일이 기적이었지
첫눈 한 송이
옛날 순대국집에 피어오르던 김발
부용천변에 마른 갈잎 흔들리는 일조차
기적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었지
어느 해 초겨울
국화분을 들고
널 찾아간 적이 있었지
오뎅 국물 세 컵을 다 마실 때까지
아무도 네가 어디로 갔는지 알려주지 않았어
그냥 북쪽으로만 갔다고 했지
쏟아지는 눈발 속에서
의정부북부역이 어디냐고 물어도
사람들은 묵묵부답
아무래도 나는
좀 더 북쪽으로 가야할 것 같네
고구마
배가 고파 고구마를 삶는다
냄비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고구마가 익는다
다 익었나 싶어 젓가락으로 고구마를 찔러 본다
들어간다
고구마는 울지 않는다
나도 가만히 있는다
고구마를 맛있게 먹으려면 고구마 속울음이 다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흰 뱀 두 마리가 머리를 꼿꼿이 쳐들고 내 발을 물었다
어떤 고통은 가장 깊은 곳에서 오히려 고요하다
제 울음을 품은 채 고구마가 익어 간다
찔러둔 내 젓가락을 끝까지 다 받아 주면서
거대한 입
내게 밥을 줘야 할 백반집 아주머니가
식탁에 엎드려 자고 있다
빈 소주병이 두 개
숟가락 담긴 국밥 투가리
귀잠에 든 듯
아주머니 아주머니 낮게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 어떤 피로와 슬픔의 파도가
저를 여기까지 밀고 온 것인지
혼곤한 잠으로 거대한 입 하날 버티고 있다 틀어막고 있다
다 놔버리고 싶어도 놓아지지 않는 것
여인이 환하게 웃는 달력 아래
영산홍 한 그루
붉은 밥 한 상 조용히 차려 놓고
너도 배가 고프냐
말없이 묻고 있다
눈물을 깎는 법
수평선을 잡고 걷는다
똑바로 걸으려 애쓴다
안 보이던 섬들이 문득 일어나 절뚝절뚝 줄을 잘라 먹는다
눈을 감으면 안 되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저절로 감긴다
왼눈은 감기지 않아 눈물이 난다
바다 저멀리 끝에서 하얗게 메밀꽃이 핀다
수평선을 놓칠세라 꽃을 깎는다
눈물을 깎는다
대패는 장대패가 좋다 어미날에 덧날을 끼우고 손은 머리를 감싸듯 가볍게 잡되 오른손은 대패 뒤꽁무니와 구멍 중간을 단단히 잡는다 발에 무게중심을 두고 허리를 숙인 자세로 무게중심을 오른발로 옮기며 살짝 당긴다 눈을 크게 뜨면 눈물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망막에 꽃잎이 비칠 듯 말 듯 눈시울의 힘 조절에 각별히 주의한다
물새 앉은 자리처럼
누군가 다녀간 자리는 엇결리기 쉽다
눈을 다친 숭어 새끼가 뛴다
날이 튄다
눈동자의 먹선이 남아 있도록 깎는다 오른손잡이라면 왼쪽 끝에서부터 오른쪽 끝으로 순차적으로 이동하면서 깎아 나가야 눈알에 남게 되는 대패질 자국이 적다 수평선과 평행하게 이동하는 것이 원칙이며 대팻밥은 바깥쪽으로 흐르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성한 눈 안쪽은 둥근 대패로 마무리하되 재빠르게 처리한다
수평선을 들고 햇볕에 비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다시 걷기 시작한다
희망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해선 안 된다
사라진 왼쪽이 돌아올 때까지
눈물을 깎으며 눈 속을 걸어야 한다
첫댓글 그간 3년여 뇌종양 투병을 하던 김점용 시인이 어제 타계했다 .마음이 먹먹하다 .. 몇번의 만남과 여행 그리고 시, 향년 56세 ..삼가 시인의 명복을 빈다 잘 가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