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서 49장 5절 – 7절
하나님의 사람 야곱은 오늘 우리처럼 지렁이 같은 존재였습니다.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태중에서부터 형 에서를 제치고 장자가 되고자 몸부림치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조용하고 침착한 사람이지만 한번 마음먹은 것은 해내고야 하는 심지 깊은 인물이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부드럽고 온화한 사람이라면 야곱은 아버지의 내성적인 면을 본받았지만 반면에 어머니리브가의 모습도 많았습니다. 숨은 듯 하면서도 자기가 마음먹은 것은 해 내고야 마는 그런 모습이 리브가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야곱이 어머니리브가의 사주를 받아 아버지이삭을 속이면서까지 형에서가 받아야 할 축복을 가로채고 말았습니다. 에서는 큰아들이기는 했지만 활동적인 반면에 사려가 깊지 못하고 하나님의 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하나님과 이 세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족장의 축복을 이어가기에는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에서는 이삭의 축복을 어떻게 해서든지 받으려고 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데 야망과 시기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이 아버지이삭의 축복을 가로채자 형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에서가 야곱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비극이 연속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에서를 통해서 야곱을 믿음의 조상으로 빚어 가십니다. 야곱이 도망자가 되어 어머니리브가의 고향으로 갑니다. 야곱이 길을 모르고 하란에 낯설기에 유모 드보라가 동행합니다. 이 드보라는 충성되고 지혜로운 여인의 표상입니다. 하란으로 가던 중 벧엘에서 하나님과 만납니다. 인격적인 하나님과 만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야곱에게 있어 대전환의 시작입니다. 우리도 인격적인 예수님을 만나면 대전환이 시작됩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는 다니고 열심도 내지만 인격적인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종교적인 자가 될 뿐이며 자기를 위한 종교적인 열심을 낼 뿐입니다.
그러면서 야곱은 외삼촌라반의 집에서 배우자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재물을 탐하는 라반과 살다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하나님이 야곱에게 벧엘로 가라고 하십니다. 얍복강에서 십자가지는 삶을 경험한 야곱이지만 그래서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었지만 그럼에도 야곱은 벧엘이 아닌 세겜에 가고 가기서 머무는 것입니다. 세겜은 왕의 대로가 있는 무역상들이 자주 이용하는 고장입니다. 거기서 야곱은 또 다시 세상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세상에서 인정받고 부도 쌓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그래서 야곱은 거기서 딸 디나를 이방인에게 내어 주고 후에는 독처하게 하다가 두아들은 살인자가 되는 것입니다.
세겜사람들을 죽인 아들들을 보면서 야곱은 회개하기 보다 주위사람들이 두려워 도망가기 바쁜 것입니다. 그런 도중에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세겜에서 얻은 것들과 우상과 관계있는 모든 것을 버리는 성결예식을 행합니다. 그리고 벧엘로 갑니다.
이런 일련이 일들을 떠 올리며 애굽에서 있는 야곱은 자녀들에게 장래 있을 일들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족장이면서 선지자였습니다. 그 예언은 하나님이 열두아들들에게 장래 행하실 일들입니다. 거기서 야곱은 세겜사람들을 죽인 시므온과 레위에 대해서 예언합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동생 디나에게 행한 일들에 분노해서 악을 행하였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책임은 족장인 야곱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치 않음으로 비극의 씨를 잉태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야곱처럼 행하기 쉽습니다. 이 세상이 커보이고 사람들의 말이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