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총 8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평범한 단편소설 모음집인가 싶었는데 글머리 <회전목마의 데드히트>에서 하루키는 이 책 속에 나온 이야기는 주변인에게 '들은' 이야기를 글로 풀어낸 것이라고 밝힌다.
목차소개
에세이라고 하기엔 본인의 이야기가 아니고 소설이라고 하기엔 허구가 아니다.
하루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재료는 어디까지나 사 실이며, 형식은 어디까지나 소설이다.'
그렇기에 타인의 삶한조각을 들여다보는 입장이 되어 책을 읽게 된다. 청자의 입장에 서서.
'데드히트' 육상 경기에서 두 사람 이상의 선수가 거의 동시 에 결승선으로 들어오는 대접전을 이르는 말로, 운 동 경기에서 승부를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치열한 형세를 지칭하는 것으로 의미가 확대되었다. (출처: 네이버 사전)
하루키는 어째서 타인의 이야기를 모은 이 책에 < 회전목마와 데드히트>라는 제목을 붙이게 된 것일 까?
저자는 머리말에서 그 이유를 밝힌다.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리고 그 이 야기를 통해 사람들의 생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우 리는 일종의 무력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앙금이란 그 무력감을 말한다. 우리가 아무데도 갈 수 없다 는 건 이러한 무력감의 본질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집어넣을 수 있는 인생이라는 운행 시스템을 소유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 시스템 은 우리 자신을 규정하고 있다. 그것은 회전목마 와 비슷하다. 그것은 정해진 장소를 정해진 속도 로 돌고 있을 뿐이다. 아무데도 갈 수 없고, 내릴 수도 갈아탈 수도 없 다. 누구를 따라 잡을 수도 없고, 누구에게도 따라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래도 우리는 그런 회전목마 위에서 가상 의 적을 향해 치열한 데드히트를 벌이고 있는 것처 럼 보인다."
그렇다. 우리는 늘 회전목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벗어날 수 없는 이 순환의 고리에서 우리는 그것에서 내릴 생각을 하지 못한다.그것에서 내려야만 한다는 동기와 그것에서 내린 이후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해서이리라.. 책을 읽다보면 현대인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수 있는(그사람의 경험이아니라,그의 느낌) '공감'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그 사람의 경험을 해 본 것도 아니지만 신기하게도 '그렇지..'하며 느낄 수 있게 된다.. 왜냐면 우리 모두가 회전목마의 대접전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회전목마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다. 서글픈 일일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깊은 슬픔과 서글픔은.. 그것을 알면서도 거기에서 내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자신의 발견이다.https://naver.me/xPvaDdtA
해외여행에서 남편 선물로 레더호젠을 맞추다가 자신이 남편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는 <레더호젠〉, 40일간 매일 구토와 이상한 남자 에게 걸려오는 전화에 시달린 기묘한 이야기 <구 토 1979> 등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부터 현실 이라기엔 좀 기묘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앞선 머리말에서 주변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라 고 했기 때문에 사실임을 감안하고 읽다보면 더 기 묘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이 책에는 반전이 있었는데...!
이 책은 머릿말에 하루키가 주변인으로 부터 들은 이야기를 소설의 형식을 빌려 쓴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사실 그건 거 짓말이었으며, 이 책의 모든 이야기는 작가가 지어 낸 '픽션'임을 밝힌다.
약간 배신감이 들기도 했지만, 주변인에게 들은 이 야기라고 생각하고 읽은 덕분에 진짜라는 생각에 더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하루키가 '들은 이야기가 아닌 '들려주는' 이야기, 회전목마의 데드히트, 소설의 새로운 형식을 본 것 같다.
회전목마/ 이경임
내가 달리고 있다고 확신에 차 있을 때 삶은 눈먼 자의 환희처럼 빛난다
어둠 속에서도 별과 나무들은 춤추며 사원과 극장과 병원과 공장들은 한 올의 의심도 걸치지 않고 유쾌하게 돌아간다
내가 동경하는 종교는 이런 천진한 현기증
그러나 달리는 건 나와 목마들이 아니다
멈추지 않는 무심한 의지에 의해 보이지 않는 무자비한 신성에 의해 나의 발 밑 거대한 광장이 돌아간다
그 광장의 붙박이가 되어 나는 기계적으로 솟아오르고 가라앉으며 묶인 말발굽들과 함께 일생 동안 삐거덕거린다
달릴 수 없는 목마가 부르는 노랫가락에 맞춰 들썩이며 구경꾼들에게 손을 흔들어댄다
내가 동경할 수 있는 아름다움은 이런 흥겨운 비애 고요하게 돌고 있는 하늘을 가리키며 나는 일그러진 웃음의 향기를 내뿜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