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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장,
영미는 사람들을 동원한다.
그리고 각 도에 서너 사람씩을 보내어 각 사찰과 조그만 암자를 찾아다니게 하는 것이다.
주성은 그런 아내의 마음에 고마움을 느끼지만 현지는 꼭 자신이 찾아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여전히 현지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 사람들을 통해서 찾는 것보다는 자신이 직접 현지를 찾고 싶고 현지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다고 아내가 하는 일 또한 말릴 생각은 없다.
아마 주성은 현지를 그렇게 떠나게 하고 고향에서 편안하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멈추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벌써 현지가 그렇게 떠난 것도 이년이라는 세월이 다 되어간다.
영미는 현지의 소식을 듣는다.
충청도 계룡산 부근의 아주 작은 암자에 기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듣는 말로는 아직은 머리를 깎지 않은 공양주 보살로 있다는 전갈이었다.
암자는 그저 지나치기 쉬운 소문이 나지 않는 작은 암자로서 아는 사람도 얼마 되지 않는 스님과 동자승 하나와 현지가 전부인 곳이었다.
법당이 있고 바로 스님이 거처하시는 작은 건물이 있을 뿐이다.
스님의 거처와 붙어 있는 작은 방에서 현지는 모든 짐을 벗어버리기 위해 불경을 공부하면서 스님의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문명이라고는 전혀 없는 곳에서 밤이면 호롱불을 켜고 수도 대신에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샘물로 식수를 하고 모든 것을 해결하고 있었고 나무를 지펴서 밥을 하고 방에 군불을 때는 것이다.
비록 머리는 아직 삭발을 하지 않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현지의 마음은 작은 평화로움이 깃들기 시작한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삼십 여분만 걸어 내려가면 버스도 탈 수 있고 버스를 타기만 하면 사람들이 사는 마을도 나오고 그토록 그립고 보고 싶은 아이들을 만나러 갈 수도 있었다.
누가 잡는 것도 아니고 말리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현지는 가슴속에서 밀려올라오는 모든 그리움의 사슬을 끊어버리기 위해 불경에 정진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잘못 살아왔는지 자신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큰 고통 속에서 신음을 하고 있었는지 확연히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었다.
사랑이라는 미명아래 남에게 고통을 주고 자식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 것에 대한 죄의식으로 인해 괴롭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번민에 또 번민을 하면서도 자식들이 그립고 또 그립다.
수없이 산을 뛰어 내려가고 싶은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한 겨울에도 불도 때지 않는 냉방에서 몸을 웅크리며 수행을 하는 흉내를 내 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마음에서 몰아내기란 참으로 견디기 힘들고 고통스럽다.
주지스님은 그런 현지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잡아 주신다.
주지스님 역시 수많은 번민과 고통을 이겨내고 불도에 의지해서 살아가시는 분이시다.
주지스님은 현지에게 삭발을 하도록 권하지 않으신다.
언제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현지의 마음에 수많은 미망들을 끊어내지 못하고 사비 계를 받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것이다.
현지는 삭발을 하는 것이 그리 바쁘지는 않다는 스님의 말씀에 자신의 마음에서 몰아내야 하는 모든 미망들을 끊어버리도록 고심을 하는 것이다.
현지는 모든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텃밭을 일군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못하던 일이다.
그러나 동자승과 함께 돌을 골라내고 밭을 개척하면서 몸을 잠시도 쉴 사이 없이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밭은 수많은 돌들로 덮여져 있는 것이었으나 현지는 서둘지 않고 조금씩 시간을 내어 많은 돌들을 손수 골라내고 씨를 뿌리고 밭을 가꾼다.
스님께서 구해다 주시는 많은 종류의 씨앗을 뿌리면서 거친 황무지 땅에서도 싹을 틔우고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면서 신비하다 못해 경이롭다는 생각을 하며 정성껏 돌보며 마음을 주는 것이다.
저렇게 작은 씨앗마저도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애를 쓰고 몸부림을 치는 모습에서 다시 명지와 명훈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아이들은 얼마나 큰 상처와 아픔으로 고통을 받았을 것인지 새삼스럽게 떠오르면서 다시 마음의 상처가 아픔이 되고 고통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지는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진정한 불자가 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자신을 이겨내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기보다는 모든 사람들의 평온을 위해서 자신을 죽이고 자신을 낮추며 살아가는 마음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현지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피와 땀을 흐리고 있을 때 주성은 고향의 아내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현지가 있는 곳을 알아냈다는 연락이었다.
영미는 자신이 알아낸 곳을 다른 사람이 아닌 주성이 가 보도록 하는 것이다.
그 어떤 사람보다 남편이 직접 찾아가는 것이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고 여인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기쁘고 반가운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주성은 지체하지 않고 고향으로 간다.
전화상으로는 그곳의 위치를 설명할 수도 없거니와 주성은 그동안 지치고 피로해진 몸을 잠시라도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나 힘든 여정의 길이다.
젊을 때하고는 몸이 마음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
더구나 객지에서의 밥이라는 것이 입맛에 맞을 리가 없다.
게다가 제때에 끼니를 찾아먹는 때가 거의 없기 때문인지 몸이 고달프고 힘겹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 것이다.
주성은 고향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마음을 놓아서인지 그대로 자리에 눕고 만다.
모든 심신이 약해지고 이제는 어디 있다는 것을 알아서 맥이 풀려버려서 주성을 자리에 눕게 만들게 된 것이다.
영미는 그런 남편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간호를 한다.
처음에는 그저 피곤이 쌓여서 심한 몸살인 것으로 생각한 영미는 남편의 몸을 편안하게 해 주고 먹을 것을 정성껏 준비를 한다.
그러나 주성은 쉽사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었다.
“명섭 아부지!
우예 그리도 몸을 가누지 몬합니꺼?“
“글쎄 말이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소.
당신에게 번번이 이렇게 짐이 되는구려!“
“무신 그런 말이 있습니꺼?
그래도 당신이 이렇게라도 집에 있으니 좋기만 합니더!“
영미는 짐짓 농담을 던진다.
주성은 그런 영미의 말에 씩하고 마주 웃음을 날린다.
그러나 생각보다 주성은 오랫동안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한다.
“명섭 아부지!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더!
저랑 함께 큰 병원에 가 보입시더!“
“큰 병원은 무슨?
피로가 누적이 되다 보니 그런 모양이오.
공연히 나 때문에 당신이 신경만 쓰고 있으니 미안하오!“
“그라지 마이소!
얼른 일나가 명지 엄마를 만나 데려와야 하지 않겠습니꺼?
이대로 은제까지 시간만 보낼끼라예?“
주성은 아내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벌써 열흘 가까이 몸을 제대로 가누지를 못하고 음식 또한 제대로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동안 객지로만 돌아다니며 입에 맞지 않는 음식들을 억지로 먹다보니 속이 많이 불편해진 것만 같았지만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내의 말대로 피로만 쌓여서 그런 것이 아닌 모양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은근히 걱정이 몰려온다.
영미는 남편을 위해 대구에 있는 큰 병원으로 나가기로 한다.
아무래도 피로가 누적이 되어 몸살만 난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병원을 예약해 놓고 아침부터 서두른다.
영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병원을 그다지 오지 않고 살아왔다.
시부모님을 제외하면 가족들이 병원에 와 본 기억이 별로 없었다.
아이들도 지금까지 감기조차 제대로 앓아본 기억이 없이 무탈하게 잘 자라주었던 것이다.
병원에서 수많은 환자들을 보면서 영미는 새삼스럽게 가족들이 건강한 것을 큰 축복이라고 생각을 한다.
예약이 되어 있었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기만 한다.
행여 시간을 놓칠까봐 한 시간여를 앞당겨 병원에 도착을 한 것이다.
기다리는 그 시간에 영미는 많은 환자들을 보았고 절망하는 가족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자기에게야 저런 일이 벌어질리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치 자신이 모르는 다른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이 되어간다.
그렇게 지루한 기다림이 끝나고 나서 김주성의 이름이 불려진다.
“김주성님!”
“예!”
영미는 자신이 먼저 큰 소리로 대답을 하고 나서 남편을 데리고 진찰실로 들어간다.
마침내 의사와 마주 앉는다.
“어디가 어떻습니까?”
“그저 몸살인 줄 알았는데 너무 오래가는 것이.......”
“다른 곳에는 이상이 없으셨습니까?
가령, 어지러워 쓰러진다거나 토한다거나 한 적이 없으셨습니까?“
“네!
한 서너 번 될까?
객지로 돌아다니다 보니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 가끔 토하기도 하고....
소화도 잘 되지 않고...“
“우선 검사를 해 봅시다.”
영미는 남편에게서 그런 말들을 처음 듣는다.
“따라오세요.”
간호사가 따라오라는 말을 하며 그들을 기다린다.
그리고 자세하게 검사를 하는 종류와 검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렇게 김주성은 여러 가지 검사를 시작한다.
거의 하루 종일 걸리는 일이었다.
일주일 후를 다시 예약을 하고 나서 집에 돌아온 시간이 늦은 저녁이다.
“명섭 아부지!
그런 일이 있음 와 진즉에 말을 안 했심니꺼?“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라고 말을 하오?“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꺼?”
“아니오!
명지 엄마를 찾으러 다니면서 생긴 것이오.
아마 제때 식사를 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거요.“
그러나 영미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단순한 몸살이려니 하고만 생각을 했던 것이다.
“너무 앞서 걱정을 사서 하지 말아요.
아무 일도 없을 것이오.“
“예!
그럴 것입니더!
무신 일이야 있겠습니꺼?“
영미는 자신의 불안감을 떨쳐버리려고 밝은 음성으로 대답을 한다.
“그 안에 내가 그 사람을 데리고 와야겠소.”
“안 됩니더!
그 사람이 아무리 소중하다고 해도 저는 당신이 우선입니더!
일단 검사결과를 보고 나서 데리러 간다 해도 늦지 않습니더!
그곳에 안 있고 다른 곳을 갈 사람도 아니고예!“
주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영미로서는 제대로 밥도 먹지 못하는 남편을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 마음이 급하믄 제가 사람을 보내겠습니더!”
“아니, 그만두시오.
당신 말대로 검사결과를 보고 나서 가도 늦지 않소.
내가 공연히 당신의 심기를 건드려 미안하오!“
“아니라예!
허지만 저에는 당신이 우선입니더!
당신이 있고 나서 명지 에미도 있는 것입니더!“
“알았소!”
영미는 남편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이 급하다고 해서 몸이 부실한 남편을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병원 예약 일주일을 기다리는 동안 영미의 마음은 복잡하고 불안해진다.
만일 남편에게 안 좋은 일이라도 있다면 그 모든 것들을 어찌 감당을 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영미는 새벽에 정한수를 떠서 장독대에 놓고 빌고 또 빈다.
시부모님께서 병환이 드셨을 때 하던 정성이다.
아무런 일도 없게 해 달라고 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남편은 집안의 가장이고 대주인 것이다.
가장이 건강해야만 그 집안이 건강하고 밝아지는 것임을 영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집에 잘 있지 않는 남편이지만 그래도 건강하고 튼실해야만 하는 것이다.
아직은 더 살아야 할 나이였고 아이들의 아버지였다.
영미는 지성껏 주성의 시중을 들고 온 정성을 다한다.
그리고 다시 병원에 가는 날이다.
오후에 예약시간이었지만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선다.
주성이 직접 핸들을 잡지 않고 이웃에 사는 복남이 아버지에게 부탁을 한 것이었다.
마침 휴일이라서 집에 있는 복남이 아버지였다.
그는 흔쾌히 수락을 하고 핸들을 잡는다.
영미의 성품을 아는 복남이 아버지는 하루 일당을 번다는 생각에 기분까지도 좋아져 핸들을 잡는 것이다.
“급하게 가지 말고 천천히 가소!”
“예!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더!“
그렇게 다시 병원에 도착을 하고 나서 또 다시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야 다시 의사선생님과 마주 앉는다.
“선생님!
우예 됩니꺼?“
영미가 궁금하다는 듯이 묻는다.
“역시 내 예상대로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초기라서 수술로서 쉽게 완치가 될 수 있습니다.“
“수술이예?
어디가 어떤가예?“
“위암 초기입니다.
이렇게 일찍 발견이 되어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뭐라꼬예?
위암이라꼬 했습니꺼?“
영미는 사색이 된다.
“네!
그러나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초기에는 거의 모두 완치가 가능합니다.“
“수술을 받으라고예?
정말 위암이라는 말이라예?“
영미는 자신의 온 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낀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이었다.
“요즘은 어떤 암이라 해도 초기에 발견을 할 수만 있다면 그다지 걱정하실 일이 아닙니다.
우선 MRA 촬영을 하고 나서 다시 결과를 보고 수술 날짜를 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라믄........
수술만 하믄 정말 완치가 될 수 있는 겁니꺼?“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의사의 말을 들으면서도 영미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남편 앞에서 근심하고 걱정을 하면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영미는 남편이 MRA 촬영을 하도록 한다.
영미와는 달리 주성은 아무런 느낌도 없다.
그저 무엇으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그렇게 의사의 지시대로 촬영을 마치고 다시 예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영미는 가족들 그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알면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명섭엄마!”
“예!”
“아무래도 그 사람을 데려와야 하겠소.”
“알겠습니더!
허지만 당신은 몬갑니더!
제가 사람을 보내어 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더!“
영미는 이제 더 이상 망설이고 있을 여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현지가 있는 산사로 사람을 보낸다.
글: 일향 이봉우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감하고 감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