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라는 강한 제국은 오늘날로 말할 때 미국처럼 강한 나라였는데, 거기에 보낸 편지가 로마서입니다.
“로마서(書)”라고 할 때 한자 “서(書)” 자는 “쓰다”를 뜻하는 말입니다. 글씨를 써서 로마에 보낸 편지이기 때문에 “로마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주로 종이에 볼펜으로 편지를 길게 써서 보내지 않고 휴대전화 메시지나 카톡을 통해서 짧은 글을 써서 보냅니다.
옛날에는 휴대전화가 없어 양가죽으로 만든 종이에 글자를 직접 써서, 그 편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내었습니다.
이 “양가죽으로 만든 종이”를 한자어로 “양피지(羊皮紙)”라고 합니다. “특산지”라는 한자어는 특별히 주로 생산되는 지역을 뜻합니다. 양피지의 특산지는 고대 도시 페르가몬(Pergamon)이었습니다.
페르가몬(Pergamon)은 고대 그리스의 부유하고 강력한 도시였는데, 한국어 요한계시록에는 “버가모”라고 번역되었습니다.
로마서 1장 1절에 “파울 크리스트 예수의 종은, 부르심을 받은 사도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따로 떼어 둠을 받은.”이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의 첫 글자는 “파울”입니다. “파울”은 한국어 성경에 “바울”이라고 번역되었지만, “P”의 발음이 원래는 “파”입니다. 예전에 있었던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자면 “P”를 “브”로 번역하였습니다. “P”를 “브”로 번역해 “바울”로 번역한 것이나, 원래 발음은 “파울”입니다.
“사울”이라는 청년이 예루살렘의 예수 믿는 크리스천들을 박해하였고 “다메섹”이라는 도시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오려고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는 도중 그가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오게 되었고 갑자기 그를 빛이 그 하늘에서 주위에 비추었습니다(행 9:3).
그리고 그 땅 위에 떨어진 그가 음성을 들었으며 그에게 이야기하기를 “사울아, 사울아 어찌 너는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행 9:4).
그리고 사울이 대답하였기를 “주여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하였으나 그가 대답하셨기를 “나는 너의 박해하는(persecute) 바의 예수라. 그러나 일어나고 그 도시 안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너의 반드시 행하여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이야기될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 9:5-6).
사울이 땅에서부터 일어났으나 그 눈을 연 그가 하나도 보지 못했는데 사울은 그때부터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뀌고 시몬이 베드로로 바뀐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사울이 개종 후 “파울”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 이와 같은 주장을 지지하는 곳이 전혀 없습니다.
그 개종은 사도행전 9장에, “파울”이라는 이름은 13장에 나옵니다.
“파울”이라는 이름은 사울의 라틴어 가명(家名)일 가능성이 큽니다.
같은 사람이 나라나 언어에 따라서 다른 발음으로 불리게 되는 것인데 “사울”도 그리스 지역에서 로마식의 이름인 “파울”이라고 불리었습니다.
3차례의 선교 여행 결과 소아시아의 남부와 서부의 주요 대도시 지역, 마케도니아 지역 빌립보와 테살로니키, 그리고 그리스 지역 고린도 안에 교회들이 설립되었습니다.
1. 파울은 “크리스트 예수의 종”입니다.
로마서 1장 1절에 “파울 크리스트 예수의 종은,”이라고 하였습니다.
“종”은 “섬기는 자”입니다. 파울은 자신을 “종”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로마서의 2번째 단어가 “종”이라는 단어입니다.
“섬기다”(아바드)는 “힘이나 정성을 기울여 일하다”를 의미하는데 영어로는 “serve”며 “serving”은 음식으로써 계속하여 섬기는 일입니다. 명사형은 “service”인데 “섬김”, “봉사(奉仕)”, “받들어 섬김”을 의미하며 “섬기다”는 뜻의 “serve”에서 “종”이라는 뜻의 “servant”가 나온 것인데, 파울은 편지를 쓰는 자가 “파울 크리스트의 종”이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종”은 “섬기는 자”를 뜻합니다.
“갈등(葛藤)”이라는 한자는 “칡 갈(葛)”과 “등나무 등(藤)”에서 나왔고, 칡은 왼쪽으로 감아서 올라가고,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서 올라가고, 중간에 억지로 뒤바꿔 놓아도 끝내 원래 제 방향대로 되감습니다.
등나무와 칡덩굴은 나무를 타고 오르며 감는 방법이 서로 반대입니다. 둘이 얽히면 모습이 대단히 복잡하여지고 생장에도 지장을 주게 됩니다. 갈등은 칡과 등나무의 이런 상황을 빗대어 탄생했습니다.
나무를 타고 오르는 갈등상태에 놓인 칡과 등나무의 경쟁은 처절하여, 한 나무가 고사(枯死)한 후에야 끝난다고 합니다.
인간관계가 얽히고설켜 갈등의 상태가 되면 양쪽 다 고달픈 것입니다. 서로 미워하고 서로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렇게 지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얽힌 것은 하나씩 하나씩 풀어나가서 문제를 해결하여 나가야만 합니다. 갈등은 빨리 해결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도 사이좋게 살아야 합니다. 상대방의 부족한 모습에 눈꼴 사나워하지 말고 섬기면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배려하고 사람들을 섬기면서 살아야 합니다.
“크리스트(Christ)”는 그리스어 “크리스토스”를 음역한 말로 “기름 붓다”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크리오”에서 나온 말입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뜻하는 히브리어 “마쉬아흐”에 해당합니다. 즉 “메시아”를 의미합니다. “메시아”의 신약의 표현이 “크리스트”입니다. “그리스도”는 외래어 번역법이 “크”가 “그”, “트”가 “드”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크리스트(Christ)”라는 번역이 원어와 영어에 가까운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는 “크리스트”와 “마스”가 연결되었고 “트”가 묵음입니다. 그래서 “크리스트마스”라고 하지 않고 “크리스마스”라고 합니다.
“크리스트(Christ)”는 예수님의 역할 및 직무를 나타낸 칭호입니다. 직무를 위해서 왕이나 제사장에게 기름을 붓는 의식과 관련됩니다. 메시아사상은 다윗 왕에 대한 소망을 숙고하면서 번창한 것입니다. 메시아 대망은 이스라엘이 이방의 지배로부터 해방됨과 관련되었는데 “크리스트”는 예수님께서 소망을 성취하시는 메시아시다는 뜻입니다. “다윗의 자손”은 종종 하나의 메시아적 칭호로 나타납니다(마 1:1). 기름 부음을 받은 메시아 왕이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난다는 예언입니다.
“크리스트의 종”은 크리스트께서 그의 주(主)가 되신다는 뜻입니다. 파울은 자신이 “크리스트 예수의 종”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종”이 되겠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파라오의 종이던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셨는데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종으로 살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악마의 종이던 우리를 암흑의 왕국에서 나오게 하신 것은, 예수님을 섬기는 예수님의 종으로 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종”이 되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는 것에도 나는 주의 종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인이시고 나는 “종”이라는 의미입니다.
악마의 노예였던 우리를 예수님께서 그 피를 값으로 주시고 사셨기에, 이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시고 우리는 “예수의 종”이 된 것입니다.
사람은 자유인이 아니며 악마의 종 또는 “예수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종이 되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자유인이 되어 사는 것이 아니며 악마가 그 마음 안에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악마의 종으로 살게 됩니다.
악마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다 끊임없이 나쁜 일을 행하라고 말합니다. 내가 게임을 하고 싶으므로 내 마음대로 게임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악마가 내 마음 안에 게임을 할 것을 명령하고 나는 그 명령을 따릅니다.
나는 악마의 종이기에 악마의 명령을 듣고서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 마음대로 자유롭게 사는 것으로 느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지 않으려고 결심하여도 되지 않는 이유는 내가 종이라서 그렇습니다.
높은 주인을 섬기는 종에게 큰 명예가 따르는 것도 사실입니다. “종”이라는 사상은 본래 주인에게 속한 전적인 소유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종”에는 겸손(humility), 헌신, 복종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유는 종의 운명이 주인의 처분에 달렸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종은 그의 주인에게 소속된 자며 그의 주인에게 충성을 바쳐야 하는데 크리스트 예수의 종은 크리스트 예수께 충성을 바쳐야 하는 사람입니다.
파울은 그가 크리스트 예수의 종이라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예수(Jesus)”(이에수스)는 구약의 “예수아”의 헬라어 형태로 “예호수아”의 다른 형태입니다.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의미입니다.
2. 파울은 “부름을 받은 사도”입니다.
본문 1장 1절을 계속 보면, “부름을 받은 사도는”이라고 하였습니다.
파울의 자기소개의 두 번째 내용은 “부름을 받은 사도”라는 것입니다. 그는 사도로 부름을 받은 자였습니다.
“사도(使徒)”라는 말의 기본적 의미는 어떤 사명(使命)을 위해 “보냄을 받은 사신(使臣)”입니다. 명령을 시켜서 보냄을 받은 신하로서, 보낸 자의 권위를 가진 자입니다.
부활하신 주 예수 크리스트를 본 자만이 그의 사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 크리스트를 보았다고 다 사도가 되는 것은 아니고 사도로 부름을 받아야 하는 것이 사도가 될 수 있는 두 번째 조건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어도 사도로 부름을 받지 않으면 사도가 아닌데, 파울은 “부름을 받은 사도”였습니다.
“사도”란 어떤 매우 특별한 고유 직무를 지시하고 있는 칭호입니다. “사도”는 어떤 특별한 사명을 위해서 보냄을 받은 사신을 가리킵니다. 보냄을 받은 “사도”는 보내는 자를 대표하는 권위를 입고 파견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했다면 누구든지 사도가 되지 못합니다. 크리스트 예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어야만 “사도”가 될 수 있습니다. “사도”는 특별한 일을 수행하기 위한 권위와 임무를 받은 사람입니다.
신약시대에 사도 권위를 가진 자들에 의해 성경이 기록되었습니다. 파울은 열두 사도들이 부르심을 받은 것처럼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도의 첫 번째 구비조건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냐는 것입니다. “사도”는 예수님에 의해 특별한 사명을 맡게 된 사람을 가리킵니다.
파울은 크리스트 예수로부터 계시를 받은 자였습니다(갈 1:11~12). 그는 이방인에 가는 사명을 맡은 “이방인의 사도”입니다(롬 11:13).
그는 크리스트 예수의 충만한 권위로써 편지를 쓰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메시지를 받은 사도가 권위를 가지고 편지를 기록했습니다.
“사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였던 부활의 증인들이었고 그런 까닭에 지금까지 사도직이 계속 이어졌다는 주장은 거짓입니다.
성경이 완성된 후에는 사도들이 이제는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도직은 초대교회의 시대에 일시적이었으며 오늘날에는 없어졌습니다. 오늘날에 자신들을 “신사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거짓 사도들입니다. 가입비를 내고 월회비를 내고 가입해 사도직을 돈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3. 파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떼어 두어진 자”입니다.
본문 1장 1절 끝에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따로 떼어 둠을 받은”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따로 떼어 둔다”(set apart)라고 번역한 단어(아포리조)는 “떼어 놓는다”, “분리하다”, “나눠 떼놓는다”(separate)로도 번역됩니다.
파울의 자기소개의 셋째 내용은 “따로 떼어 두어진 자”라는 것입니다. 파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따로 떼어 둠을(set apart)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복음을 위한 일꾼으로 파울을 따로 떼어 두셨습니다.
“따로 떼어 두어진”이라는 말은 “따로 구별되었다”라는 의미입니다. 파울은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을 이루려고 따로 떼어 두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파울을 따로 떼어 두셨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생각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파울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떼어 두어진 것입니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이미 아신 것입니다. 영광의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다보시며 우리 각 사람을 아십니다.
1) C. E. B. Cranfield, The Epistle to the Romans Volume 1, Romans 1-8 (New York: T&T Clark Ltd, 2004), 48.
2) Cranfield, The Epistle to the Romans Volume 1, 48.
3) 이한수,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서울: 도서출판 이레서원, 2008), 82.
4) Cranfield, The Epistle to the Romans Volume 1, 50.
5) Douglas J. Moo, 『NICNT 로마서』, NICNT 성경주석, 손주철 옮김 (서울: 솔로몬, 2012), 29.
6) http://www.mdjournal.kr/news/articleView.html?idxno=33286
7) David L. Turner, 『BECNT 마태복음』, BECNT 성경주석, 배용덕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4), 86-87.
8) D. M.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서문강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9), 53.
9)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41.
10) 이한수,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82.
11)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41.
12) Moo, 『NICNT 로마서』, 77.
1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53.
1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57.
1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58-59.
1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61-62.
1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63-64.
1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65-66.
1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67.
2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68.
2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69.
2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71.
23) Moo, 『NICNT 로마서』, 79.
2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73-74.
2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