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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漢詩를 영화로 읊다, 죽음을 떠올리는 순간
꡶꡶꡶ 영화 이야기 - '8월의 크리스마스'
꡶꡶꡶ 삶과 죽음의 의미 속에 섬세한 멜로를 담다
사진출처=네이버영화라이브러리
죽음을 떠올리는 순간 비로소 삶이 윤곽을 드러낸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년)에서 주인공 정원(한석규)은 텅 빈 운동장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자신 역시 언젠가 사라져버릴 것을 예감하곤 했다. 조선 후기 문인 이양연(李亮淵·1771∼1853) 역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며 다음 시를 읊었다.
❁ 나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自輓詩]/ 이양연(李亮淵·1771∼1853)
一生愁中過(일생수중과)
시름으로 보낸 일생,
明月看不足(명월간부족)
밝은 달은 암만 봐도 모자라더라.
萬年長相對(만년장상대)
그 곳에선 영원히 서로 대할 수 있을 터이니,
此行未爲惡(차행미위악)
이번 길도 나쁘지만은 않구려.
시(詩)의 제목은 ‘병이 위급해져(病革)’이지만 시인이 자신의 죽음을 애도한 자만시(自輓詩)로 후대에 애송됐다. 도연명(陶淵明)의 자만시와 달리 자신의 삶과 죽음을 짧게 압축하고 있다. 시인의 삶은 뜻하는 대로 되지 않아 방황과 유람으로 점철되었다. 게다가 사랑하는 아내와 아끼던 아들마저 앞세웠으니 그의 삶과 시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시인을 위로해준 것은 달[月]뿐이었던 듯하다. 시인은 유독 달을 좋아했다(박동욱·눈 내린 길 함부로 걷지 마라―산운집). 달은 세상 사람들과 함께 보고 싶은 대상일 뿐 아니라(詠月), 자신의 힘겨운 삶을 지탱해주는 등불이기도 했다(蒼然).
영화 속 정원은 시한부(時限附) 인생임에도 겉으론 담담해 보인다. 시인 역시 정원처럼 자신의 죽음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다. 고통스럽게 살아왔지만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죽음조차 끌어안으려고 한다. 하지만 시인이라고 왜 고뇌하지 않았겠는가? 시인도 “한 번 세상에 와서 한 번 사는 것, 태어나기 전과 뒤 어느 쪽이 편안할까?(一番天地一番生, 生後生前較孰寧)(醉吟)"라며 혼란스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정원이 친구에게 자신이 곧 죽을 것이란 사실을 알리며 만취해서 파출소에서 울부짖던 장면을 연상시킨다.
정원은 다시 찾아와 영정 사진(影幀寫眞)을 예쁘게 찍어 달라고 조르는 할머니의 바람을 이뤄드린다. 그리고 얼마 뒤 담담히 자신의 영정 사진을 찍는다. 정원이 할머니의 영정 사진에 기울인 진심처럼, 시인도 타인을 장송하는 만시에 진정을 담았다. 시인이 친구의 죽음을 애도한 민요조의 만시에도 달이 등장한다(挽溪朋). 자신을 위로해주던 달을 실컷 볼 수 있기에 마지막 길도 나쁘지 않다는 시구가 영화 마지막 정원의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그대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란 내레이션과 겹쳐진다. 세상도 죽음도 탓하지 않는 그들의 마지막 말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천상병(千祥炳, 1930-1993) 시인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歸天)라고 썼다. 우리 역시 죽음을 미리 준비할 수 있다면 죽음을 통한 ‘마지막 성장’도 가능하지 않을까.
✵ 귀천(歸天)/ 천상병(千祥炳, 1930-1993)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나의 죽음을 애도하다>(自挽詩)/ 도연명(陶淵明, 365?-427)
살다가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니
좀 일찍 죽는다고 명 짧은 것은 아니다
엊저녁까지 같이 있었는데
오늘 아침 홀연 저승에 이름 올리는구나
영혼은 어디론가 흩어지는데
낡은 몸뚱이만 나무 관에 누웠는가
아이는 아비 찾아 울부짖고
벗들은 내 몸을 만지며 곡한다
나 이제 다시는 이해득실 알지 못하니
시시비비인들 어찌 깨달을 수 있겠나
하물며 천년만년 지난 후에는
생전의 영화와 치욕을 누가 알아주겠나
이제 먼 길 떠나며 다만 한스러운 건
살아생전 술 한 잔 흡족하게 더 마시지 못했음이다
[其一]
有生必有死(유생필유사),早終非命促(조종비명촉)。
昨暮同為人(작모동위인),今旦在鬼錄(금단재귀록)。
魂氣散何之(혼기산하지)?枯形寄空木(고형기공목)。
嬌兒索父啼(교아색부제),良友撫我哭(양우무아곡)。
得失不復知(득실부부지),是非安能覺(시비안능각)?
千秋萬歲後(천추만세후),誰知榮與辱(수지영여욕)!
但恨在世時(단한재세시),飲酒不得足(음주부득족)。
-‘만가를 본떠 쓰다(擬挽歌辭), 3수 중 첫 번째 수, 도연명(陶淵明, 365?-427)
○ 挽歌(만가) : =輓歌.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노래.
○ 擬挽歌辭(의만가사) : =擬輓歌詞(의만가사). 자기의 죽음을 가상하고 지은 시.
○ 早終(조종) : 일찍 죽다.
○ 促(촉) : 짧다. 재촉하다.
○ 鬼錄(귀록) : 귀신 명부(名簿).
○ 枯形(고형) : 초췌한 시체.
○ 空木(공목) : 빈 나무. 관(棺)을 말한다.
예전에는 마실 술이 없더니
지금은 헛되이 비었던 술잔이 넘친다오.
봄 술에 개미 같은 지게미 떠오른들
어느 때 다시 맛볼 수 있으랴?
안주상 내 앞에 푸짐하건만
친구들 내 곁에서 곡을 한다오.
말하려 해도 소리 낼 수 없고
보려 해도 눈에 빛이 없도다.
예전에는 높다란 집에서 잠을 잤는데
오늘은 잡초 무성한 묘지에서 자게 되었구나.
거친 들판에는 아무도 잠들지 않고
보이는 것은 바로 망망함이라.
하루아침에 대문을 나서 떠나가면
돌아올 날은 실로 기약이 없다네.
[其二]
在昔無酒飲(재석무주음),今但湛空觴(금단음공상)。
春醪生浮蟻(춘료생부의),何時更能嘗(하시갱능상)?
肴案盈我前(효안영아전),親舊哭我傍(친구곡아방)。
欲語口無音(욕어구무음),欲視眼無光(욕시안무광)。
昔在高堂寢(석재고당침),今宿荒草鄉(금숙황초향)。
荒草无人眠(황초무인면),极视正茫茫(극시정망망)。
一朝出門去(일조출문거),歸來良未央(귀래량미앙)。
-‘만가를 본떠 쓰다(擬挽歌辭), 3수 중 두 번째 수, 도연명(陶淵明, 365?-427)
◯ 但(단) : 다만. 오직.
◯ 湛(음) : 넘치다. 湛은 장마 ‘음’.
◯ 春醪(춘료) : 봄에 새로 거른 술.
◯ 浮蟻(부의) : 술이 익을 때 떠오르는 거품. 쌀알이 개미가 떠 있는 것 같다는 뜻.
◯ 肴案(효안) : 안주상.
◯ 傍(방) : 곁.
◯ 荒草鄉(황초향) : 잡초가 무성한 묘지.
◯ 荒草无人眠(황초무인면),极视正茫茫(극시정망망)。: 이 구절은 다른 판본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1수와 3수와 구성으로 보아 있어야함이 형식상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제3수에 “四面無人居”, “荒草何茫茫” 등과 중복되어 삭제함이 옳다는 주장이 있다.
◯ 良未央(양미앙) : 夜未央(야미앙)으로 된 판본도 있다. 良은 실로, 未央(미앙)은 기약 없이 아득하다.
거친 풀은 어찌 그리 무성한가,
백양나무 또한 쏴쏴 소리 내네.
된 서리 내리는 구월에 나를 보내려
멀리 교외로 나왔구나.
사방에 사람의 집이라곤 없고
높은 무덤만이 우뚝 솟아 있네.
말은 하늘을 우러러 울부짖고
바람도 절로 스산하게 불어오네.
묘혈은 한 번 닫혀버리면 천년이 지나도
다시 아침을 맞지 못하리.
천년이 지나도 다시 아침을 맞지 못하리니
현인과 달인이라도 어찌할 수 없다네.
여태 나를 전송해준 사람들
각자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다네.
친척들에겐 간혹 슬픔이 남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미 노래도 하네.
죽고 나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리오,
내 몸을 맡긴 산모퉁이와 같다네.
[其三]
荒草何茫茫(황초하망망),白楊亦蕭蕭(백양역소소)。
嚴霜九月中(엄상구월중),送我出遠郊(송아출원교)。
四面無人居(사면무인거),高墳正嶕嶢(고분정초요)。
馬為仰天鳴(마위앙천명),風為自蕭條(풍위자소조)。
幽室一已閉(유실일이폐),千年不復朝(천년불부조)。
千年不復朝(천년불부조),賢達無奈何(현달무내하)。
向來相送人(향래상송인),各已歸其家(각이귀기가)。
親戚或餘悲(친척혹여비),他人亦已歌(타인역이가)。
死去何所道(사거하소도),託體同山阿(탁체동산아)。
-‘만가를 본떠 쓰다(擬挽歌辭), 3수 중 세 번째 수, 도연명(陶淵明, 365?-427)
○ 茫茫(망망) : 무성함. 망망함.
○ 蕭蕭(소소) : <의성어> (바람이 부는 소리) 쏴쏴. 휙휙. 우수수
○ 嚴霜(엄상) ; 된서리.
○ 遠郊(원교) : 교외. 성 밖 먼 곳.
○ 嶕嶢(초요) : 우뚝 솟은 모양.
○ 蕭條(소조) : 적막하다. 스산하다.
○ 幽室(유실) : 묘혈(墓穴).
○ 賢達(현달) : 賢人(현인)과 達人(달인). 현명하고 사리에 통달한 사람.
○ 向來(항래) : 여태까지. 줄곧.
○ 何所道(하소도) : 무슨 말을 할 수 있나. 道(도)는 말하다.
○ 山阿(산아) : 산모퉁이.
이 시는 도연명집(陶淵明集) 및 문선(文選)에 실려 있으며 도연명집에는 의만가사(擬挽歌辭)라는 제목으로 3수가 실려 있으며 문선(文選) 28권에는 만가시(挽歌詩)라는 제목으로 의만가사 제3수가 실려 있다. 의만가사(擬挽歌辭)는 도연명이 자기의 죽음을 가상하고 지은 시로 모두 3수로 제1수에서는 죽은 뒤에 입관(入棺)하는 모습을, 제2수에서는 출상(出喪)하는 모습을, 제3수에서는 매장(埋葬)하는 모습을 서술하여 서글픔을 더하였다.
도연명은 이 시를 동진(東晉)이 멸망(420)한 후인 송(宋) 문제(文帝) 원가(元嘉) 4년(427년) 63세에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지었는데, 이 시를 남기고 2개월 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 도연명(陶淵明, 365년 ~ 427년)은 중국 동진(東晋)의 전원시인(田園詩人)이다. 자(字)는 원량(元亮)이었으나 만년에 이름을 잠(潛)으로 바꾸고 자(字)를 연명(淵明)이라 했다. 오류(五柳) 선생이라고 불리며, 시호는 정절(靖節)이다. 그의 시풍은 당대(唐代)의 맹호연(孟浩然) ·왕유(王維) ·저광희(儲光羲) ·위응물(韋應物) ·유종원(柳宗元) 등을 비롯하여 많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출처 및 참고>
[陶淵明集(도연명집)] 挽歌詩(만가시)/擬挽歌辭(의만가사 3수) - 陶淵明(도연명)
https://blog.naver.com/swings81/221327878555
[全唐詩(전당시)] 臨路歌(임로가)/臨終歌(임종가) - 李白(이백)
https://blog.naver.com/swings81/221332106103
[출처] [陶淵明集(도연명집)] 擬挽歌辭(의만가사) 1~3수 - 陶淵明(도연명)|작성자 swings81
베들레헴(Bethlehem), 2021년 12월 24일 Christmas Eve ⓒ 제주 뭉치 김영훈 회장 제공
[자료출처 및 참고문헌: 〈漢詩를 영화로 읊다(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2021년 12월 23일.목)〉, 《Daum, Naver 지식백과》/ 글: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첫댓글 뭉치 김영훈 제주
오늘 베들레헴의 모습^^
예수님 탄생을 축하 드리며 다시금 시작을 합니다.
삼양 바닷가를 걷다
뒤돌아보면
들리는 것은오직
바람소리뿐
지나간 과거의 시간이
영원을 향해 마지막
숨을 고르는 시간에
많고 많은 길 중에
가장 좋은 길은
그 분에게 가는 길
그 길에 비록 가시밭이 있고
진흙탕이 있다 하여도
행복해질 수 있다면
가난해질 수 있다면
나를 찾을 수 있다면
사랑 할 수 있다면
일상 안에서
길을 걷기 위해
늘 신발을 신어야 되는 줄 알았는데
신발 없이도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가네
만남의 동쪽에
폐암에 허덕이는
안드레아를 벗어나
바라봅니다.
미친듯이 조건없이
온 몸 부서지도록
정열의 사랑을 위해
이 새벽에 길을 걷습니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가
미친듯 사랑의 길 걷다보면
폐암도 불신도 미움도
길에서 바람에 흘러 갈 것 같아서
다시금 탄신일 아침에
길을 걷습니다.
미친듯이 사랑하여야 하는 오늘
도착과 출발을 길에서 찾으며
길에서 사랑을 찾아봅니다.
예수님 탄생은 사랑이 이니까?
생각하며 막걸리 한잔
기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