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풍경, 60×30㎝, 혼합재료에 먹과 채색, 2019.
슬리 헤드 해안(위 사진)과 모허 절벽(아래).
트리니티大 올드 라이브러리
■ 아일랜드의 풍경, 사랑, 그리고 문학
비 온 후 어슴푸레해진 해안
석양속 달리면 언어가 ‘펄떡’
‘문학의 섬’ 온몸으로 알게돼
땅 끝 8㎞ 길이 ‘모허 절벽’
압도적인 자연과 마주하면
인간존재 한계·덧없음 느껴
호숫가의 ‘카일 모어 수도원’
英 부부 절절한 사연 깃들어
이 세상 사랑꾼들 순례지로
# 모허 절벽, 땅의 끝
나는 지금 세상의 끝에 서 있다. 바람의 구두를 신고 달려온 이곳. 더는 갈 곳이 없다. 뭉툭 잘려 나간 땅. 어느 날 우리네 삶도 이렇게 끝나리라. 땅이 끝나는 지점에서 남은 삶의 길이를 생각해보는 것, 공간이 시간과 겹쳐지는 순간이다.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는 물의 푸른 혓바닥이 넘실거린다. 우우, 짐승의 울부짖음처럼 몰려오는 바람. ‘바다로 향하는 문’이라는 이름의 대규모 습지를 지나 닿게 된 모허 절벽 앞에서, 인간은 다만 연민의 대상일 뿐이다. 그들의 탄성, 외침, 모두 거대한 바람 소리에 묻혀 버린다. 수억 년의 세월이 빚어낸 이 압도적인 광경 앞에서 한 세기를 버틸까 말까 하게 코끝에 숨을 매달고 사는 인생들의 희로애락이라니, 싶다. 두툼한 겨울옷에 방한모까지 쓰고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사람들. 나를 포함해 이들은 허위허위 왜 이곳까지 온 것일까.
미학자 아도르노는 일찍이 “체험되고 인식되지 못한 자연”은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압도적이고 장엄하며 두려운 자연과 한사코 대면하려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한계와 왜소성, 현재적 불안으로부터 망각, 혹은 도피할 수 있으리라는 심리 기제가 작용해서라는 것. 쉬운 말을 어렵게 하고는 있지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땅끝의 섬에서 느껴지는 이 기이한 안도감이야말로 더 큰 존재나 힘 앞에서 자기 존재의 무력함과 덧없음을 인식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적 유한성을, 지표면 공간의 갑작스러운 단절로 확인하고 돌아설 수 있는 것이다. 총 길이만도 8㎞, 높이가 무려 200여m에 달한다는 절벽을 따라 걸으면 발밑에서 서걱서걱, 시간이 밟히는 소리가 들린다. 기이한 체험이다. 젊은 날의 꿈과 욕망들도 함께 밟힌다. 문득 두려워진다. 지구 끝, 아니 텅 빈 우주에 홀로 단독자로서 있는 느낌. 그런데 뒤돌아보니 홀연 우아하고 찬란한 무지개가 떠 있다. 신이 불안한 인간에게 주시는 한 줄의 유머일까. 비로소 안도하고 돌아선다.
# 카일 모어 수도원, 사랑의 시작과 끝
나는 이제 땅의 끝이 아닌 한 생애의 시작과 끝을 바라보는 지점에 서 있다. 산 그림자를 거느린 코네마라 호숫가에 지어진 회색빛 수도원은 신비롭고 몽환적이다. 여기엔 슬프고 절절한 사랑의 사연이 서려 있단다. 원래 저 아름다운 건축은 수도원이 아니었다는 것. 사실 외형으로만 봐도 수도원이라 하기엔 너무도 호사하고 웅장하다. 흡사 왕의 여름 궁전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건물이 지어지게 된 사연인즉슨 이렇다. 영국 출신의 어마 무시한 부자 청년이 있었다. 그는 지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을 아내로 맞아 이곳으로 신혼여행을 왔다. 미첼 헨리(Mitchell Henry·1826∼1910)와 마거릿 본(Margaret Vaughan·1829∼1874).
이곳의 전경에 반한 남편은 아내의 결혼 선물로 1000평이 넘는 대저택을 지었다. 33개의 방에 무도회장과 도서관까지 거느린 집이었다. 5년여에 걸쳐 집과 6000여 평에 이르는 빅토리아 양식의 정원을 완성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이번엔 아내를 위해 머나먼 신비의 땅 이집트 여행을 계획한다. 하지만 병약했던 아내는 여행 중 알 수 없는 병에 걸렸고, 불과 며칠 후 세상을 뜨게 된다.
집을 지을 때, 무너지는 것을 예상하고 짓는 사람은 없다. 지상에 집을 세우는 자마다 그 터는 견고하고 운명의 바람까지도 막아주리라는 환상을 갖는다. 크고 높게 지을수록 그렇다. 그러나 어느 날 집이 무너지고 인생도 함께 무너지는 때가 있다. 그런 면에서 미첼 헨리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이 호숫가 집 역시 갑자기 덮친 지진과 태풍으로부터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망연자실, 상심으로 은둔하던 남편은 이번엔 다시 아내를 기리는 집 한 채를 짓는다. 있다가 사라질 인생들은 이토록 그 소멸을 못 견뎌 하며 다시 짓고 짓는 것이다. 이번에는 영국의 브리스틀 대성당을 본떠 고딕 양식으로 작은 성당을 지었다. 몸을 담는 처소뿐 아니라 그녀의 영혼이 돌아와 쉬는 쉼터가 되기를 꿈꿨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기도를 드린 후 그는 자신이 소유한 일대의 땅을 모두 소작농들에게 돌려주고 영국으로 되돌아간다. 꿈같은 사랑과 이별의 이 장소는 이제 수도원으로 성스러운 공간이 됐다. 동시에 불멸의 사랑을 꿈꾸는 이 세상 사랑꾼들의 순례지가 됐다.
# 아일랜드… 들꽃 같은 문학, 문학
아일랜드에 와서 순간순간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창밖의 초월적인 풍경을 지나칠 때는 삶의 무거운 중력을 완전히 벗어난 지대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든다. 반대로 밋밋한 ‘시간’이 ‘풍경’ 따라 울퉁불퉁해진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 압도적인 풍경을 만나면 언어를 잃어버렸다가도 다시 우후(雨後)의 어슴푸레해진 슬리 헤드(Slea Head) 해안을 거닐 때는 수만 가지 언어가 벌떼처럼 잉잉거리며 날아오르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아, 저것들을 언어나 색채로 잡아채야 할 텐데’라는 안타까움이 드는 것이다.
이제야 알겠다. 이 작은 섬나라에서 왜 그토록 많은 사람이 글 쓰는 쪽으로 흘러갔는지를. 흐린 날 호수와 야트막한 목초지, 지는 석양 속으로 차를 달리다 보면 누구라도 시인이 돼 있는 것을 느낄 것이다.
도대체 언어라는 포충망으로 건져 올리지 않는다면 순간순간 풍경 속으로 흘러가는 그 느낌들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 역시, 스쳐 가는 한나절 동안의 풍경들을 몇 장의 드로잉으로 붙잡기는 어렵다. 이곳에서 글을 쓰게 되는 이유다.
김병종 화가, 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 아일랜드 명소
태고 모습 간직 앵거스 절벽
트리니티大 올드 라이브러리
영국의 왼쪽에 있는 섬나라인 아일랜드는 그 지도 모양이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면적은 8만여㎢로 남한의 80%를 조금 넘고 그나마 1만4000㎢의 북아일랜드는 영국 영토에 속해 있다. 하지만 땅의 크기에 비해 풍경과 문화적 다양성은 무척 다채롭다.
경치만 하더라도 서쪽 끝의 모허 절벽(Cliffs of Moher)이나 애런제도의 던 앵거스(Dun Aonghasa) 절벽은 태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남쪽 케리(Kerry) 지역의 180㎞가 넘는 반지 모양(Ring of Kerry)의 드라이브 코스 또한 환상적이다. 그런가 하면 세계 인문학의 고향으로 일컬어질 만큼 곳곳에 종교와 지성의 상징물들이 세워져 있는데 그중에서도 트리니티 대학(Trinity College)의 올드 라이브러리(사진)가 압권이다. 엄청난 규모의 롱룸은 20여만 권의 가죽 장서가 빼곡히 꽂혀 있고 중세 기독교 문화연구서로 손꼽히는 문헌인 ‘켈스 복음서’가 비치돼 있다.
크라이스트 처치 대성당과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 아이리시 음악의 고향 골웨이(Galway)와 에니스(Ennis) 등 문화, 예술, 종교의 명소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아일랜드는 신이 인간에게 내려주신 휴식과 영혼의 땅이라 할 만한 곳이다. 물론 내 생각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