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강론>
(2024. 5. 29. 수)(요한 12,24-26)
복음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24-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수님의 기쁨』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요한 12,24-26).”
1)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오셨고,
당신이 사랑하시는 우리에게 ‘영원하고 참된 기쁨’을 주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9-11).”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요한 16,22ㄴ).”
그래서 신앙생활은 ‘기쁨의 생활’입니다.
<영원하고 참된 기쁨을 향해서 나아가는 생활이고,
그 기쁨에 대한 희망 속에서 ‘지금’ 기뻐하는 생활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 14,17).”
“희망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믿음에서 얻는
모든 기쁨과 평화로 채워 주시어, 여러분의 희망이
성령의 힘으로 넘치기를 바랍니다(로마 15,13).”
여기서 ‘먹고 마시는 일’이라는 말은,
음식 문제에 관한 율법 규정들을 가리키는데, 넓은 뜻으로는
‘율법 준수만 강조하는 신앙생활’을 가리킵니다.
계명들과 율법들을 지키는 일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만 신경 쓰면서 신앙생활을 하다가는
사랑도 평화도 기쁨도 없는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신앙생활이 아니라 강제노동입니다.
“찡그린 성인은 없다.” 라는 교회 격언이 있습니다.
순교자들을 포함해서 모든 성인 성녀들의 공통점은
바로 ‘기쁨’입니다.
주님과 함께 기뻐하려고 노력하는 생활이
성덕을 쌓는 일의 출발점입니다.
2) ‘밀알’이라는 말에서 다음 시편이 연상됩니다.
“눈물로 씨 뿌리던 이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이, 곡식 단 들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시편 126,5-6).”
<여기서 ‘환호’는 ‘큰 기쁨’을 뜻합니다.>
이 시편은 씨를 뿌릴 때 누구나 울게 된다는 뜻은 아니고,
또 울어야 한다는 뜻도 아니고, 씨를 뿌릴 때 울었더라도
추수 때에는 크게 기뻐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바로 그 기쁨을 알고 있는 농부는
씨를 뿌릴 때부터 기쁨으로 뿌립니다.
<그 기쁨을 모르거나 안 믿으면, 씨를 안 뿌릴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하고 참된 기쁨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고,
믿고 있기 때문에, ‘지금’ 기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신앙생활을 하면서 고난과 시련을 겪을 수도 있고,
슬픔과 아픔을 겪을 수도 있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힘든 일들이 신앙인의 기쁨을 빼앗아 가지는 못합니다.
밀알 하나를 땅에 심는 것은 많은 열매를 맺을 때의 기쁨을
희망하고 믿기 때문이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밀알 하나를 땅에 심는 것 자체가 ‘기쁜 일’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이 아니라,
그 ‘기쁨’에 초점을 맞춰서 묵상해야 합니다.>
3) 요한복음에 ‘수확의 기쁨’에 관한 예수님 말씀이 있습니다.
“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눈을 들어 저 밭들을 보아라.
곡식이 다 익어 수확 때가 되었다. 이미 수확하는 이가
삯을 받고,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알곡을 거두어들이고 있다.
그리하여 씨 뿌리는 이도 수확하는 이와 함께
기뻐하게 되었다(요한 4,35ㄴ-36).”
여기서, ‘씨 뿌리는 이’는 아버지 하느님이고,
‘수확하는 이’는 예수님인데, 아버지와 예수님은 하나이시기
때문에, 이 말씀은, 아버지와 예수님이 함께 씨를 뿌리시고,
함께 수확하시고, 함께 기뻐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에 신앙인 전체가 참여해서 함께 기뻐합니다.
사실 인류 구원 사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느님의 기쁨이고,
예수님의 기쁨이고, 우리 모두의 기쁨입니다.
기쁨으로 시작해서 기쁨으로 완성되는 것이 구원 사업입니다.
십자고상에 있는 예수님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날마다
보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만 생각하고,
예수님의 기쁨은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순교자들의 기념일이라고 해서
꼭 박해, 고난, 고통만 묵상해야 하는가?)
우리의 신앙생활이 ‘기쁨의 생활’이 되고,
그리스도교가 ‘기쁨의 종교’가 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기쁨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슬픔과 고통은 정신을 차리는 데 효과가 있지만,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힘은 ‘기쁨’에서 생깁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필리 4,4.6-7).”
[출처]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