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릭, 서양미술사’, 예경 출판사, 캐롤 스트릭랜드 지음/김호경 옮김 참고
▲ 타틀린, 제3세계를 위한 기념비 모형, 1919-1920
[문화매거진=강다연 작가] 지난 시간 ‘모더니즘 미술운동’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분류된다고 하였다. 그 중에서 1909년부터 1918년까지의 ‘이탈리아의 미래주의’를 먼저 살펴보았다. 이어서 1913년부터 1932년까지 일어났던 ‘러시아의 구축주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당시 러시아는 구축주의라고 명칭한 아방가르드 미술사조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대표적 화가로는 말레비치, 폽포바, 타틀린, 가보 등이 있다. 이들은 입체주의에서는 절단된 면 분할법을, 미래주의에서는 현대 생활의 역동적인 면을 표현하는 중복된 이미지들을 자신들의 작품에 도입한다. 구축주의는 추상적 형태로까지 이끌어 나가는데, 기하학적 미술이면서 현대 기술혁신을 반영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앞서 언급한 타틀린이 러시아적인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제작하면서 구축주의라는 미술사조가 생기게 된다. 그 의미는 미술은 창조하는 것이 아닌, 구성하고 구축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타틀린의 작업은 산업 소재인 플라스틱, 금속, 유리 등의 재료를 사용하여 3차원적인 입체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그의 작품 중 볼셰비키 혁명을 축하하는 기념작으로, 에펠탑보다 높은 탑을 모스크바에 세울 예정이었던 ‘제3세계를 위한 기념비 모형’을 예로 들 수 있다.
말레비치 역시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선구자라고 볼 수 있는데, 그는 미술을 혁신적으로 단순화하였다. 그는 사물을 묘사하는 부담에서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폽포바는 분석적 입체주의 화풍에 비비드한 원색을 사용하였다. 이렇게 당시의 러시아 화가들은 과학 기술 진보에 의한 유토피아를 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24년에 정치적인 개입으로 인해 계획들이 무산되고 말았다. 당시 공산당은 미술을 실용적이며 대중을 위한 것이라고 선언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치선전용 미술을 공식화하였으며, 이에 반대하는 화가들을 강제수용소에 수감하고 작품은 세상에 빛을 볼 수 없게 창고에 두었다. 아쉽게 구축주의는 정치적인 분위기에 의해 그렇게 짧은 개화기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미술의 큰 매력은 제한이나 경계 없이 자유로움을 추구할 수 있고, 표현해 낼 수 있는 영역의 분야인데 당시 사회흐름 속에서 작업을 하였을 화가들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짧은 기간임에도 현대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혁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만으로도 분명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난관을 겪게 된 이후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들이 꾸준히 개척해 나갔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에게도, 혹은 조언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내가 요즘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낸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항상 좋은 컨디션일 수 없다. 자의에서든 타의에서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날짜에 맞춰 전시회를 할 수 있게 해내려고 한다. 지금도 쉴 틈 없이 바로 다음 개인전과 아트페어들을 동시에 준비하면서도 내게 거는 주문이다. 오늘 하루도 주인공처럼 지내길 바라는 나와 여러분에게 가끔은 힘이 들고, 지칠 때가 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다음 이 시간에는 미국의 모더니즘인 정밀주의를 살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