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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A33_SOUALhU
https://www.youtube.com/watch?v=AaRKvZZATVk&list=RDAaRKvZZATVk&start_radio=1
1. 오분향: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2. 정근: 나무 보문시현 원력홍심 대자대비 구고구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계속)
관세음보살 멸업장진언 옴 아로륵게 사바하 옴 아로륵게 사바하 옴 아로륵게 사바하
구족신통력 광수지방편 시방제국토 무찰불현신 고아일심 귀명정례
3.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원문(전문)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 고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
고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석굴암 석가모니 부처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
부처님 오신 날 또는 석가탄신일은 음력으로 4월 8일입니다.
석가탄신일은 석가모니가 탄생한 날로 불교의 연중행사 가운데 가장 큰 명절로
기념법회, 연등놀이, 관등놀이, 방생, 탑돌이 등 각종 행사가 열립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인도 등에서도 연등놀이가 행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석가탄신일은 속음인 '사월 초파일' 또는 간단히 '초파일'이라고도 읽으며,
초여드레날을 가리킬 때는 본음인 초팔일로도 읽습니다.
석가탄신일은 1975년 대통령령에 의해 석가탄신일이 공휴일로 지정된 이후
불교에서는 한글화 추세에 따라 부처님이 오신 날이 공식 명칭으로 적합하다는 이유로
지속적으로 부처님이 오신 날이라고 바꿔줄 것을 요구했고,
대통령 보궐선거 기간인 2017년 5월 3일 석가탄신일을 맞아 문재인 전 대통령은
"내년에는 부처님 오신 날로 인사드리겠다"라고 했습니다.
그 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인 2017년 10월 10일 국무회의에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애서
석가탄신일을 부처님 오신 날로 변경하는 내용을 의결하였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은 대한민국, 마카오, 홍콩, 싱가포르에서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1975년 공휴일로 지정되었습니다.
경(經)과 논(論)에 석가모니가 태어난 날을 2월 8일 또는 4월 8일로 적고 있으나,
자월(子月: 지금의 음력 11월)을 정월로 치던 때의 4월 8일은 곧 인월(寅月: 지금의 정월)을 정월로 치는
2월 8일이므로 음력 2월 8일이 맞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불교의 종주국인 네팔 등지에서는 예로부터 음력 4월 8일을 석가의 탄일로 기념하여 왔습니다.
한편 1956년 11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열린 제4차 세계불교도대회에서
양력 5월 15일을 석가탄신일로 결정하였으며, 대한민국에서는 음력 4월 8일을 석가탄신일로 보고 기념합니다.
UN에서는 1998년 스리랑카에서 개최된 세계불교도대회의 안건이 받아들여져,
양력 5월 중 보름달이 뜬 날을 부처님 오신 날로 정해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각 사찰에서 거리에 등을 내달고 경내에 수많은 등을 밝히는 등공양 행사를 이어
왔습니다. 1996년부터는 연등축제로 이름을 붙이고 동대문 운동장 조계사에 이르는 제등행렬을 비롯하여
불교문화마당, 어울림마당(연등법회), 대동(회향) 한마당 등 행사가 추가되어 종합적인 축제로 전환하였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석가모니는 불교의 교조이며 다른 호칭으로는 세존, 석존, 불, 여래 등 10가지 존칭과 본명인
싯다르타 가우타마가 있으며, 서양에서는 흔히 가우타마 붓다라고 칭합니다. 석가모니는 샤캬족 국가인 샤캬 공화국(오늘날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서 국왕 슈도다나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인간의 삶이 생로병사가 윤회하는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자각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29세 때 출가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수행자의
수행법을 따라 하거나 고행을 하였으나 이는 무의미하고 중도가 긴요함을 깨닫고 부다가야의 보리수 밑에서
선정을 수행하여 35세에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고 부처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인도의 여러 지방을 편력하며, 포교와 교화에 힘썼고, 쿠시나가라에서 80세 나이로 입멸하였습니다.
석가모니의 탄생은 오랫동안 아들이 없었던 왕비가 6개의 이빨을 가진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서
임신을 하였으며, 출산일이 임박하자 당시 풍습에 따라 친정인 데 바다하로 향해 음력 4월 8일 룸비니에서
꽃이 만발한 무우수 나뭇가지를 잡고 오른쪽 겨드랑이 밑에서 석가모니를 낳았다고 전해집니다.
이때 하늘에서 오색구름과 무지개가 피었으며, 가릉빈가가 아름다운 소리로 왕자의 탄생을 축하하고 구룡이
나타나 몸을 닦아주었다고 합니다. 석가모니는 태어나서 사방으로 7걸음을 걸었는데
그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났고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 개고 아당안지"
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이 뜻은 "우주 안에서 오직 나만이 높다. 삼계가 모두 괴로움이니 이제 내가 그들을 편안하게 하리라"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싯다르타는 생후 7일 만에 어머니 마야 부인을 여의고 이모인 마하파자파티의 손에 자랐으며,
뛰어난 지혜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성장하면서 진리에 관해서도 명상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궁전 안의 안락함이 모든 인간의 생활인 줄 알았으나,
어느 날 궁 밖으로 나와 밭갈이하는 농부를 보고 인간들이 수고해야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인간 사회의 고통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새에게 잡아먹히는 벌레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으며, 쇠약한 노인을 보고는 인생의 무상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태어나서 병들어 신음하고 죽어야 하는 생로병사의 운명에 슬픔을 금치 못하였으며, 석가의
이러한 우울한 심정을 눈치챈 부왕은 혹시 아들이 당시의 많은 젊은이들처럼 출가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16세의
나이에 콜리야 왕국의 공주 야쇼다라와 혼인시켰습니다. 이후 아들을 낳았는데 수행에 방해가 된다며 이름을
라훌라라고 지었으며, 부왕은 많은 미녀들을 시켜 주야로 향연도 베풀었으나, 오히려 석가모니의 출가를 재촉하는 동기만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석가는 29세가 되던 해 어느 날 밤, 번뇌에서 벗어나려면 깨우쳐야 한다고 결심하고서
가족에게 무언의 이별을 고한 채 출가하였습니다. 이 출가에는 여러 동기가 중첩되어 작용했지만,
가장 강력했던 요인은 “무상한 이 세상의 괴로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다르마를 추구하려는
끊임없는 열정이었습니다. 싯다르타 왕자가 카필라바스투 성 동문 밖에서 노인, 남문 밖에서 병자, 서문 밖에서
죽은 자, 북문 밖에서 승려를 만났다는 불전의 사문유관 이야기는 무상고에 대한 강렬한 자각을 의미하며,
아들 라훌라가 있으니 후계자에 대한 근심은 하지 않게 된 싯다르타는 시종 차익을 데리고 백마를 타고서
성문을 빠져나갔습니다.
석가모니는 35세 되는 해의 12월 8일 이른 새벽에 드디어 대각을 이루고 생·로·병·사의 본원을 끊어 없애는
확신을 얻게 되었으며, 이것은 어떠한 번뇌에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 정적 즉 열반의 세계를 체현한 것이며,
올바른 자각을 얻어 눈을 뜬 부처가 된 것을 의미했습니다.
유대교, 천주교 , 기독교, 이슬람교는 선험론에 의거한 종교로 신을 믿으라고 시작하지만
불교는 경험론에 의거한 종교로 생로병사라는 현실로부터 시작함이 다릅니다.
조계사 풍경
연등행사(燃燈行事)
부처님오신날, 사월초파일, 四月初八日, 석가탄신일, 釋迦誕辰日, 욕불일, 浴佛日, 관등절, 觀燈節
날짜: 음력 4월 8일
석가모니의 탄생일. 음력 4월 8일로 사월 초파일 또는 석가탄신일이라고도 한다. 불교의 기념일 중 가장 큰
명절이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로 기념법회를 비롯하여 연등놀이·관등놀이·방생·탑돌이 등이 행해진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인도 등지에서도 이날을 축하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개요
석가모니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날. 음력 4월 8일이며 불교의 연중 기념일 가운데 가장 큰 명절이다. 경론에는
2월 8일, 4월 8일의 설이 있으나, 중국·한국에서는 음력 4월 8일로 기념하여왔다.
명칭 변천
초파일이라고도 한다. 1975년 대통령령에 의해 석가탄신일로 지정된 이래, 불교계에서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명칭을 '부처님 오신 날'로 바꿔줄 것을 요청해왔다. 이후 2017년 10월 국무회의에서 관공서를 통한 공휴일의 규정에서
기존의 석가탄신일을 부처님 오신 날로 변경하는 내용이 의결되어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관련 행사
이날에 행해지는 연등놀이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 의종 때 백선연(白善淵)이 4월 8일에 점등했던 것이다.
당시 초파일 연등을 1번 밝혀 3일 낮과 밤 동안 등을 켜놓고 미륵보살회를 행했다고 한다. 연등을 만들 때 그 모양은 수박·거북·항아리 모양 등으로 매우 다양했다. 이렇게 만든 등은 등대(燈臺)를 세워 걸어놓거나 연등을 실은 배를
강에 띄워놓았다.
제등(提燈)놀이
연등놀이는 일반 사람들이 연등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이 놀이는 일제강점기에 금지되었다가 8.15해방 후
방생(放生)
제등놀이로 부활되었다. 방생은 다른 이가 잡은 물고기·새·짐승 등의 산 것을 사서 산이나 못에 놓아 살려주는 일을 말하고, 물놀이는 아이들이 등대 밑에 자리를 깔고 느티떡과 소금에 볶은 콩을 먹으며 등대에다 물을 담아놓은 다음 바가지를 엎어놓고 이를 두드리며 노는 놀이를 말한다. 이렇듯 많은 놀이가 성행했음은 초파일 행사가
불교신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민속놀이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관불회(灌佛會)
초파일에 불상을 목욕시키는 행사
연등행사(燃燈行事)
사월초파일의 연등행사
사월초파일(四月初八日,석가탄신일)
음력 4월 8일에 불교의 개조(開祖)인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불교행사.
내용
음력 4월 8일이며, 불교의 연중행사 가운데 가장 큰 명절이다. 2018년에 공식명칭을 '부처님오신날'로 변경
제정하였다. 그러나 이 날은 불교인이든 아니든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이 함께 즐긴 민속명절로 전승되어 왔다.
대체로 이 날은 연등행사(燃燈行事)와 관등(觀燈)놀이를 중심으로 한 갖가지 민속행사가 행해진다.
진주 남강 유등(流燈)축제
연등행사의 경우, 연등을 하는 등을 만들 때에도 민속적인 취향에 따라 수박등 · 거북등 · 오리등 · 일월등 · 학등 · 배등 · 연화등 · 잉어등 · 항아리등 · 누각등 · 가마등 · 마늘등 · 화분등 · 방울등 · 만세등 · 태평등 · 병등 · 수복등 등을 만들어 연등에 곁들인 민속신앙의 의미를 더 한층 가미시키고 있다.
등을 다는 데에도 등대(燈臺)를 세워서 각종 깃발로 장식하고 휘황찬란한 연등을 하며, 강에는 연등을 실은 배를
띄워 온 누리를 연등 일색으로 변화시킨다.
이와 같은 축제 분위기의 연등행사는 자연 많은 사람의 구경거리가 되었는데, 이를 관등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연등과 관등이 있는 곳에는 각종 민속놀이도 성행하게 된다.
우선 형형색색의 등과 그 불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등놀이가 있다. 이를 영등(影燈)놀이라고 하는데, 이때의 영등
안에는 갈이틀을 만들어 놓고 종이에 개와 매를 데리고 말을 탄 사람이 호랑이 · 이리 · 사슴 · 노루 등을 사냥하는
모습을 그려서 그 갈이틀에 붙이게 된다.
등이 바람에 흔들려 빙빙 돌게 되면 여러 가지 그림자가 비쳐 나온다. 그리고 호화찬란하게 장식한 등대에 많이
달 때에는 10여 개의 등을, 적게 달 때에는 3개 정도의 등을 달았다.
이와 같은 등대를 고려시대에는 사찰뿐만 아니라 관청이나 시장, 일반 민가에 이르기까지 모두 달게 되었으나,
조선시대 와서는 사찰과 민가로 제한된 듯하고, 오늘날에는 일가일등운동(一家一燈運動)을 전개하고 있으나,
대개 사찰에서만 연등하고 있다.
그리고 등을 다는 숫자도 과거에는 식구 수만큼 달았으나, 오늘날에는 한 등에 모든 식구의 이름을 써 붙이는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
초파일행사의 경우 고려시대에는 관민(官民) 남녀노소가 모두 참여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민가에서 남녀노소 모두 참여하는 민속행사로 치러졌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불교 관계인들만의 행사로 제한되고 있다.
재래의 사월초파일이 비단 불교적 의미만이 아닌 민속행사였다는 것은 그 날이면 즐기는 여러 가지 민속놀이에서
충분히 짐작되는 것이다. 이 날이면 온 장안 사람들이 산으로 올라가서 등을 달아 놓은 광경을 구경하였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이면 관등의 즐거움과 더불어 각종 풍악을 울렸으며, 장안에는 사람의 바다를 이루고 불의 성을 만든다.
한편, 이 날이면 아이들은 등대 밑에 석남(石楠) 잎을 붙인 송편과 검은콩, 미나리나물을 벌려 놓는데,
이는 석가탄신일에 간소한 음식물로 손님을 맞이했다가 즐기는 뜻의 놀이라고 한다.
그리고 등대 밑에 자리를 깔고 느티떡과 소금에 볶은 콩을 먹으며, 동이에다 물을 담아 바가지를 엎어 놓은 채
돌아가면서 두드리는데, 이 놀이를 수부(물장구)라고 한다.
이와 같은 민가의 놀이와 함께 사찰에서는 사월초파일을 기념하는 법회를 비롯하여,
신도들은 성불도(成佛圖)놀이와 탑돌이 등 불교적인 놀이를 행하였다. 특히, 어린이날이 따로 없었던 때에는
이 날이 어린이날 구실을 하였다.
초파일이 되면 절 앞에는 성대한 장이 섰는데, 대부분이 어린이용품이었다. 아이들은 부모를 따라 절에 가서
예불을 올리고 돌아오는 길에 진기한 장난감을 얻어 들고 오는 즐거운 날이었다.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제등행렬은 이전의 관등놀이가 일제 암흑기에 없어진 것을 광복 후에 새롭게 시작한
행사이다. 사월초파일은 석가모니가 이 세상에 와서 중생들에게 광명을 준 날이라는 뜻에서 일차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와 같은 의미가 민중의 구체적인 관심사와 결합하여 민중의 축제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초파일에 행하는
연등행사에 대한 불교적 의미는 지혜를 밝힌다는 상징성이 담겨 있는 것이다.
옮겨온 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