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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소년이 주운 탑승권과 신분증으로 검색대를 통과한 후 항공기에 탑승하는 일이 벌어져 제주공항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이 청소년은 출발 직전 기내 점검을 하던 승무원에 의해 적발됐고, 활주로로 향하던 비행기도 다시 계류장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제주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2일 만14세 A군은 제주공항에서 30대 B씨가 분실한 항공편과 신분증을 주웠는데요. 해당 항공편은 제주에서 김포로 가는 티켓이었습니다. A군은 이를 이용해 유유히 국내선 출발 검색대를 통과했습니다.
그 사이 지갑을 통채로 잃어버린 B씨는 무인발권기에서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아 다시 항공권을 손에 넣었습니다. A군이 기내에 들어간 지 약 1분 뒤였죠. 어떻게 중복 탑승이 가능했을까요? 항공사 담당자는 B씨 티켓 바코드 체크 시 중복 벨이 울렸으나, 당시 직원이 기계 오류로 착각한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B씨보다 먼저 기내에 진입한 A군은 들키지 않기 위해 일단 화장실에 숨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꼬리를 밟혔고, 비행기는 활주로를 떠나 공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비행기에 탑승한 195명의 승객은 1시간 넘게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큰일' 낸 청소년, 앞으로의 처분은
A군이 저지른 일은 단순 해프닝이라기엔 너무 큰 사건이었는데요. 여러 혐의가 적용됐습니다.
우선 남이 모르고 떨어뜨린 물건을 주워 마음대로 사용하면 형법상 점유이탈물횡령죄가 됩니다. 상대방을 속여 사람의 업무를 방해하는 경우 업무방해죄가 성립해 5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받습니다.
이 사안에서 A군은 의자에 떨어져 있던 B씨의 지갑을 주워 태연하게 비행기에 탑승했는데요. 티켓에는 B씨의 이름이 적혀 있으니 분실물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더 나아가 항공기까지 탑승한 후 결국엔 비행기를 돌리게 만들었으므로 충분히 두 혐의가 인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항공보안법에 따르면 항공기 내에 있는 승객은 기장등의 업무를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방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적발되면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하는데요. 게다가 공항에는 출국심사와 보안검색을 마친 승객, 항공사, 공항관계자를 제외한 일반인은 허가없이 출입할 수 없는 구역을 정해놓고 있습니다. A군은 남의 티켓으로 허락 없이 탑승장에 발을 들였으니 명백한 항공보안법 위반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A군이 만 14세, 즉 청소년이라는 건데요. 만 19세 미만의 청소년이 형사사건을 저지르면 성인과 달리 소년법이 적용됩니다. 이때 △만 10세 미만 △만 10세 이상~만 14세 미만(촉법소년) △만 14세 이상~만 19세 미만(범죄소년) 등 연령에 따라 처분의 정도가 달라집니다.
A군은 만 14세이기 때문에 범죄소년에 해당돼 소년법이 적용됩니다. 다만 사안에 따라 중범죄로 판단될 경우 성인과 동일한 형사처벌을 내릴 수는 있습니다. 현행 형사 미성년자 연령이 만 14세 미만인 점을 고려해 그 이상이라면 어느 정도 성인과 동일한 책임능력을 갖는다고 보는 것이죠.
따라서 사법기관의 판단에 따라 A군은 소년법상의 보호처분을 받거나 형사처벌을 받게 됩니다. 소년법이 적용될 경우 내려질 수 있는 가장 큰 보호처분은 소년원 송치입니다. 그 기간은 2년을 넘길 수 없습니다. 또한 전과기록도 남지 않는데요.
만일 법원이 A군에게 형사처벌을 내리겠다고 결정한다면 정해진 형의 범위에서 장기형과 단기형을 나눈 부정기형을 선고할 수 있습니다. 단기형을 채운 후 교정 당국의 평가를 받으면 조기 출소가 가능한 제도인데요. 예를 들어 '단기 3년, 장기 5년의 징역'을 받았다면 3년을 복역하고 평가 후 추가 복역 여부가 결정되는 식입니다. (소년법 제60조)
◇1시간 반 지연됐는데, 배상책임은 누가
이 사건이 보도되자 누리꾼들은 공항 보안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당시 A군은 성인 남성의 신분증을 제시했지만 공항 직원은 자세한 확인 없이 A군을 통과시켰는데요.
이후 항공기 탑승 직전 티켓 바코드 확인을 담당했던 항공사의 직원도 안일하게 대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부랴부랴 달려온 B씨가 제시한 티켓에 '중복' 표시가 떴음에도 신원이 확실하다는 이유로 기기 오류라고 판단해 그를 탑승시켰습니다.
결국에는 비행기가 한 시간 넘게 지연돼 모든 승객들이 불편을 겪어야 했는데요. 피해 승객들은 누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요?
항공사 측에 항공편 지연에 관한 민사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A군이 덩치가 크고 마스크를 쓰고 있어 신원 식별이 어려웠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지만, 일차적으로 공항 직원이 A군이 소지한 신분증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됩니다.
보안 절차가 여러 단계로 나눠져 있는 것도 이런 실수를 막기 위한 것입니다. 항공사는 바코드를 확인했을 당시 중복 알림이 떴다면 당연히 티켓과 승객 명단을 재확인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B씨가 일행들과 함께 있다는 이유로 그냥 통과시켰는데요. 이때 '중복 벨'이 울린 것이 단순한 기계 오류가 아니고, 지연 사태가 일어날 것임을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이를 미필적 고의라고 합니다.
항공사의 책임과 권한을 명시한 몬트리올 협약에 따르면, 항공사는 비행기 지연 시 승객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집니다. 하지만 손해를 막기 위해 합리적으로 요구되는 모든 조치를 다 했다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데요.
법원은 미필적 고의나 과실에 의한 항공기 지연 시 항공사가 승객에게 손해를 배상해줘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지난해 C항공사는 소송 끝에 정신적 피해를 감안한 배상금으로 탑승객 1인당 30만원씩 지급했는데요. 당시 인천에서 필리핀으로 향하는 항공기가 8시간 이상 지연되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지만 C사는 지연 사실을 출발 1시간 30분 전에 통지했습니다. 승객들은 공항에서 기약 없이 기다려야 했습니다.
C사는 "앞 항공기가 지연돼 어쩔 수 없이 밀린 것"이라며 사유를 설명했지만 재판부는 승객의 편에 섰습니다. 앞선 항공기가 연착되면 당연히 뒤 항공편도 밀릴 것임을 예상했을 테지만 이를 알리지 않은 점, 지연 사실을 이메일로만 통지한 점을 고려했다고 판시했습니다. (서울동부지법 2018나29933 판결)
따라서 해당 비행기에 탑승했던 승객들은 항공사를 상대로 한 배상금을 청구할 수 있을 텐데요. 실제 재판에서는 바코드 담당 승무원의 행위가 미필적 고의인지 과실인지, 당시 구체적인 상황은 어땠는지를 종합적으로 참고해 판단할 것으로 예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