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Yfqoz2Ys4CU?si=6nQC8yNRGCrIIQ0r
SHOSTAKOVICH Symphony No 14 in G minor op 135 Dir Valery Gergiev Orq Mariinsky theatre 오케스트
"소프라노, 베이스, String Orchestra와 타악기를 위한 교향곡"이란 긴 제목도 가지고 있고, 무려 열 한 개의 파트로 되어 있다.
1956년 후르쇼프가 스탈린의 비판 연설을 한 후 편성된 해빙 무드를 타고 당시 구소련의 반체제 작가 “예프투센코”가 시를 발표하자 쇼스타코비치는 이에 감명 받아 그의 시 중에서 “죽음”의 주제인 시들만을 모아 “죽은 자의 노래”라 불리는 이 14번을 작곡하게 되는데 그의 작품 중에는 드물게 사회성을 떠나 인간 본연의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벤자민 브리튼에게 헌정된 곡이기도 하지요. <글출처: 고전음악감상회>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세기 최대의 정치 사건이었던 러시아 혁명 후 구소련은 체제의 확립과 유지, 그리고 그 정당성을 지켜내고자 예술인들을 “사회주의의 리얼리즘”의 도구로 쓰는데 혁명 예술의 이끄는 표본으로 쇼스타코비치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미 9살 때 어머니에게서 피아노 레슨으로 시작된 그의 음악가로서의 인생행로는 13세때 페테스부르크 음악학교에 입학하면서 두각을 드러내고 졸업작품으로 교향곡 1번을 만들어 냄으로써 뛰어난 음악가의 자질을 만방에 알리게 되지요. 러시아 혁명과 2차 세계대전 그리고 스탈린, 후르시초프 그리고 브레지네프로 이어지는 러시아의 격동기를 살면서 늘 감시와 비판을 받고 때로는 칭송을, 또 한편으로는 인민재판까지 받아가며 비난을 받는, 거장 쇼스타코비치는 세월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렇게 그의 작품을 만들어냈던 것입니다.
그의 사후에도 여전히 그의 노선에 대한 엇갈린 반응이 계속되는데 비록 정부의 압박으로 작품을 만들어 냈건 아니면 그 반대였든, 그는 그 당시 사회주의 예술흐름을 이끈 장본인이므로 “솔로몬볼코프”가 “증언”에서 변명을 하고 서방으로 망명한 그의 아들 막심마저 거들지라도 이미 그의 색깔은 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20세기 피의 역사로 물든 러시아인의 영혼을 달래고 우울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비관의 상황의 한복판에서 한편으로는 러시아 공산당의 대변자로서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 쇼스타코비치로서 예술과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했던 그의 발자취를, 그가 남긴 위대한 작품들을 통해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다시 되새겨 보고 진정 그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고민하게 만듭니다. 다시 그와 같은 거장이 현세기에 등장한다면 굳이 글이나 말로써 직설적인 표현을 해내지 않더라도 그 답을 유추해 볼 수도 있겠는데 아직 이른 감은 있지만 또 다른 현시대의 거장의 출현을 기대해 봅니다.
Kirill Kondrashin
콘드라신은 1914년 3월 6일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비올라를 하는 아버지와 바이올린을 하는 어머니를 부모로 둔 음악가 집안에서 6세 때 피아노로 음악 공부를 시작했지만 크게 흥미를 못 느꼈다. 그러던중 14세 때 오케스트라에 큰 관심을 갖게 되면서 다시 음악 공부에 전념하게 되었다. 콘드라신은 1931년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당시 음악계의 대가인 Boris Khaikin에게 사사받는다. 이후 1936-1943년 레닌그라드의 Maly 가극장의 감독을 맡게 되면서 음악활동을 시작하였다. 1943년 스승인 Khaikin의 영향과 쇼스타코비치의 추천으로 볼쇼이 가각장의 종신 지휘자를 맡게 되었다.
콘드라신은 1956년 오페라 지휘를 그만 둘 결심을 하게 되었으며 이후 관심을 관현악곡으로 바꾸게 되었다. 1960년 모스크바 필하모닉 지휘자로 취임하여 1975년까지 이 악단을 이끌었다. 한편 1958년 미국인으로는 최초로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반 클라이번과 함께 미국에 성공적으로 데뷔하였고, 소련인 음악가로서는 최초로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에 의하여 백악관에 초대되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콘드라신은 소련 음악을 서방에 알리는데도 힘을 썼으며 쇼스타코비치와 의 친분으로 그의 교향곡 4, 12, 13번 초연을 맡기도 하였다.
1978년 정치적 신념 하에 네덜란드로 망명하여 1968년 이래로 같이 활동을 한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의 종신 수석 지휘자를 하이팅크와 같이 맡게 되었다.
1981년 3월 7일 자신의 생일날 함부르크의 NDR 심포니기 암스테르담 순회 연주시 이 악단과 말러 교향곡 1번을 지휘하였는데 그 연주회가 끝내고 밤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이때의 3월 7일 연주는 당시 청중들에게는 잊지 못할 감동의 연주회였다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이날의 연주가 음반으로 이미 발매된 바 있다.
글출처: 참마음 참이웃
https://youtu.be/ihfhdioZiYo?si=UdwN4quMUN0nFe1X
Shostakovich : Symphony No.14 Kiril Kondrashin 지휘, Moscow Philharmonic 오케스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