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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의 푸른 물줄기와 잘 어울리는 겨울 공산성. |
한강에서 고구려에 밀린 백제가 자리잡은 금강 자락의 공주는 비록 5대 60여년이라는 짧은 동안에 수도로 삼았던 곳이지만, 북방의 고구려를 경계하며 국력을 재정비하고, 금강 물줄기를 통해 서해로 해서 대륙이나 일본 등과 교류도 할 수 있는 요건을 충족시켜주는 땅이었다.
서문(西門)으로 공산성에 들어섰을 때 금강과 어우러진 공산성의 ‘진국’을 먼저 보고프면 왼쪽 성벽을 밟으면 된다. 그러면 조선시대 지은 만하정(挽河亭)에서 백제시대 연못터(배를 대던 부두 시설이라는 의견도 있음)인 연지(蓮池)를 보고 영은사 오솔길을 돌아 조선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하여 공산성에 머문 것을 기념하는 정자인 쌍수정(雙樹亭) 등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반대 코스를 선택하면 쌍수정, 진남루 등을 먼저 보고 나중에 강물을 따라 내려가며 성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코스를 택하든 금강이 잘 내려다보이는 성벽에선 누구라도 잠시 발길을 멈추고 말없이 흐르는 금강을 굽어보게 된다. 귀 기울이면 강물결에 비치는 연미산(燕尾山) 그림자가 들려주는 아련한 옛 전설….
아득한 옛날 연미산 동굴에 살던 암곰이 나무꾼 한 사람을 잡아다 남편으로 삼아서 자식을 둘이나 낳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이 그리워진 나무꾼이 어느날 동굴에서 도망쳐 강을 건너자 이를 본 아내 곰이 돌아오지 않으면 자식들을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나무꾼은 끝내 듣지 않았고, 결국 아내 곰은 두 아이를 안고 강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후 농사를 지으면 계속 흉년이 들고 배를 타면 물결이 세차게 일어 배가 뒤집히는 일이 자주 일어나자 마을 사람들은 죽은 곰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사당을 세웠다. 그 뒤로는 그런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 30년 전 곰나루에서 발견한 돌곰을 모셔놓은 웅시단. |
▲찾아가는 길= 무령왕릉과 국립공주박물관이 공산성에서 도보로 10분쯤 거리에 있다. 무령왕릉에서 서쪽 강변으로 10분쯤 가면 백사장에 솔밭 우거진 곰나루가 나온다. 그곳엔 곰사당이라 불리는 웅신단이 있다. 30년 전 곰나루 부근에서 발견한 ‘돌곰’을 모신 이 사당에선 곰과 공주와 금강의 관계, 더 나아가선 곰 토템을 가졌던 북방 민족의 후예인 백제인들의 옛 흔적을 되짚어볼 수 있다. 공주 시청 앞에서 부여로 가는 40번 국도를 따라 2km쯤 가면 우금치가 나온다. 이 고개는 새로운 세상을 열망하던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이 마지막으로 처참하게 꺾인 곳으로 고갯마루엔 동학혁명군 위령탑이 서있다.
▲숙식= 공주의 먹거리로는 국밥이 잘 알려져 있다. 그중 중동의 공주문화원 근처에 있는 이학식당(041-855-2455)의 따로국밥(5000원)은 공주 인근에선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 이학식당은 1940년대 공주장터를 오가던 5일장 상인들을 상대로 조그맣게 시작했는데, 이곳 국밥 먹으려고 대전서 90리 길을 걸어오기도 했을 만큼 맛있는 집으로 유명했다. 이외에도 곰나루유원지 부근에도 요기를 할 수 있는 식당이 여럿 있다.
▲찾아가는 길= 수도권에서 접근할 때 경부고속도로는 청주인터체인지, 중부고속도로는 서청주인터체인지로 나와 36번 국도를 타고 조치원 방향으로 간다. 조치원 읍내를 들어서기 전의 다리를 건너자마자 갈림길에서 좌회전하면서 36번(1번 국도 공용) 국도를 타고 12km쯤 가면 다시 삼거리. 우회전해 계속 36번 국도를 타고 13km 간 뒤 금강을 건너면 바로 왼쪽에 공산성(관리사무소 041-856-0333)이 보인다.대전에선 32번 국도를 타고 유성을 거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