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이야 백화점.마트도 생기고 쳥결하고 정가되로 흥정 없이 목소리 높이질 않고 .한곳서 이것저것 편하게 돈주면 재사 준비도 한곳서 할 수 있다
우린 그래도 촌넘이라 재래 시장 이곳 저곳 이웃거리면서 풀빵도.. 만두도 사먹어면서 흥정 하는게 참 맛이라 하지만
명절만 되면 언론에 재래 시장이 조금 싸다고 하지만 과연 언론에 뉴스화 시키는 사람들이 과연 몇명 재래 시장 다닐까. 다들바쁜데
장남이라 수십년 명절 마다 시장 가는게 무슨 복이려니 하기도.요즘은 마누라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무슨 인생길 고된 장남에게 붙어서 살게 되나 싶다 ㅎ 한국은 대부분 장남이 아무런 유산도 금전적 도움 못받아도 .고생스러운
명절 증후군을 가지게 된다
예전에는 장남이 대부분 상속 재산도 받고 부모 모시고 제사 모시고 하였지만 요즘은 법되로 유산품도 나누게 되고
집안 나름이겠지만 동생들은 재사날 몇푼 가져와 먹을게 있니 없니 하는 개밍나니 같은 인간도 존재 하는가 보다 죽도록 동생들 학비주고 .결혼 시켜도
조상묘. 집안 찾아보는것도 마찬가지라.장남 몫 같기도.다들 그렇다고 생각 안하지만 형 대신 동생들도 잘하는 집안도 있고 유교적 가정에는 장남이 아무댓가 없이 부모 병치레 담당도 하여야 하는 우리 시대라 .집안 나름 이겠지만
요즘은 성당서는 미사 대신도 하고 절에서 신위만 모시고 .그곳서 차래 지내는 사람도.호텔서 해외 여행가 하는사란도 있고 교회처럼 예배만 보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요즘 자식들 명절에 오면 같이 음식 나누워 먹는게 좋은 의미도 있고
예전에는 제사 날 요즘같은 화학용품 향도 없을시는 몇년동안 말린 향나무 조각을 짜구로 쫏아 향으로 대신하고 그욱한 향내가 났는데,말레지아 . 홍콩. 대만등 동남아 절 있는곳은 시내 곳곳 향 냄새가 나던데 당시 설에 쓸 채소도 귀해 낙엽이나 ,소나무 가지를 채소위 덮어놓았지 .새들이나 짐승들이 먹지 못하게.
지방도 병풍에 붙이려 그때 그때 집안 유식한 사람오면 한자로 몇장 미리 써놓곤 하고 당시는 초저녁에 먹갈아서 창호지에 붓글씨가 참 안되던데.몇번 연습도 하고 요즘은 필기구도 좋고
요즘은 컴을 이용해 편하게 사용 하지만
자갈치 시장서 시원한 생대구 사다가 먹자고 하는 마누라 눈치 주고=t현지것 아니면 빨대로 바람불어넣는다는 소문.아예 러시아산 냉동것이 좋을것같다.. 마른 대구 전에 남마담이 가덕 대구 말려 사용한다는 사진보고
2만 5천원하던데 .싱싱한 대구를 말린면 국끓어도 시원 할건데. 알팔려 오래된것을 말려서면 별맛이다
참치선 열대서 작업 하다 .한대로 다니는 트롤선 3천5백톤 개양호 승선 해 첫 출항 하니
대양에서 몇달간 조업중 섬하나 안보이는 곳에서 일하다. 트롤선은 대부분 연안 항해와 작업도 베링해 외는 연안 12M 떨어진 곳에서
작업하고 위치도 RADAR로 사용 하니 항시 상대국 영해 침범 조심해야 하는데. 출항시 조타수가 기관실서 열로 말린 대구 2마리를 브릿지 항해실서
고추장 에 찍어 먹어니 .금방 1마리 먹게 되더라 아구통도 다음날 까지 아프고.당시는 입항 하면 몇박스 대구 싸키마스(연어) 헬리퍼트(광어) 킹크랩(종류많음) 등 가져와도 별로 먹지도 않고 이웃들과 나눠 먹곧 하였는데 3부두 찾아오는 친구들에게도 주고
당시는 마른 .생 대구명태 집에 몇달만에 가져오면 마누라가 목욕하고 애들은 멀리 몇시간 보내서면 하는 시대라. 몇시간후 애들이 호루라기 불고 오도록
설날지내는 차례 (茶禮) 는 글자 그대로 '茶' 로 '禮' 를 드리는 것이니
옛날 못먹던 시절 해왔던 제삿상 차림에 의의를두고 잘먹지도 않는
제사음식 만드는데 너무나 힘들게 과로한 나머지 우리 사회에
'명절 증후군' 이라는 신조어 까지 생겨나 그폐해가 심각하며
심지어 명절한번 지날때 마다 '이혼' 사례가 급증한다 하니
음식은 가족들이 즐겁게 먹을수 있을 만큼만 하며
남,여 구분없이 각자가 할수있는 부분을
서로가 협조 하는것도 지혜가 아닐까 한다
첫댓글 규성이 글이 구수 하구나. 참 재미있게 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