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에다 이름을 쓰면 어떻게 해?
지난 겨울 커피를 마시다 제 책을 들쳐보던 선배로부터의 질문, 아니 힐난은 황당했습니다. 내 책에 내 이름 쓰는 일이 뭐 어쨌다는 말인가. 이러면 이 책을 읽고서 다른 사람에게 주기 어렵잖아. 그때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했습니다. 형은 형의 가치관이 있는 거니까. 그런데 이즈음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오듯, 선배의 말이 해석되기 시작했습니다. 소유하는 것보다 지식이든 지혜든 감동이든 나누는 것이 책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은 아닐까. 정작 간직해야 할 것은 텍스트가 아니라 컨텍스트가 아닐까, 언젠가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처럼.
봄비가 잠을 깨우는 바람에 이 새벽에 뜬금없이 시작해 봅니다. 돌이켜보면,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책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각자 집에 있는 책을 한 권씩 내서 학급문고를 만들었던 초등학교 5학년, 책을 내지 않았던 아이 가운데 하나였던 한 소년은 교실 앞켠의 담임 선생님 책상 옆 학급 문고 책꽂이에서 낯설고도 까다로운 이름의 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름 아닌 도스토예프스끼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1세기 초에 완간된 열린책들 전집 직역판 제목은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이라고 되어 있지만 당시 다이제스트 판이자 일본어 번역판인 도스토예프스끼의 대작은 금박으로 그렇게 한자식으로 씌여져 있었고 한 소년의 인생 안으로 그렇게 고딕체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분명 부친살해와 인간숙명의 컨텍스트는 까맣게 모른 채 텍스트만 읽었던 그 시절, 도선생의 그 책이 소년을 바꿔 놓았습니다. 처음으로 좋아하는 것이 생긴 거였죠.
그때부터 친구 집에 가면 보이지 않던 책들, 위인전집 고전명작전집 등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신의 집에 책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것이죠. 그로부터, 그 결핍으로부터 몇 년 후 문학을 전공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결핍이 집착을 낳듯 소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책 욕심,이 생겼습니다. 한 번 산 책은 떠나서는 안되는 것이었고, 혹 잃어버리게 되면 밥은 못먹더라도 다시 사놓아야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책에 사인은 물론 도장을 찍는 것도 기본이었죠.
개인적으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고 뉴턴의 발견, 못지 않은 사건에 다름 아니지만^^ 맛집도 혼자 가면 더 이상 맛집이 아니고 빼어난 경치도 함께 보아야 더 아름다운 것처럼 책읽기의 즐거움도 나눌수록 커지는 것이겠죠. 더군다나 클럽 아우디 회원님들과 함께 나눈다면 더 즐거운 일이지 싶습니다.
앞으로 비정기적으로, 가능한 한 자주 읽은 책을 소개하고 읽고 싶다고 댓글로 말씀하시는 분께 우편으로 보내드리거나 모임 때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스스로를 위해 더 좋은 일인 것 같네요^^ 아무래도 평소보다 책을 더 많이 읽을 듯 싶으니까요. 여튼 프로젝트명, 읽고서 남주자! 그 첫번째 책이 최근에 읽은 성석제의 단편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입니다.
이 소설의 원형은 아무래도 노신의 아큐정전, 혹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쯤일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재기발랄하면서도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합니다. 황만근이 없어졌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표제작은 반푼이 같은 한 농민의 일대기를 통해 '온전한 사람'들의 위선과 거짓을 작가 특유의 천연덕스러운 문체로 드러내 보입니다.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아니하고 감탄하지 않는 삶이었지만 선생은 깊고 그윽한 경지를 이루었다. 보라. 남의 바웃음을 받으며 살면서도 비루하지 아니하고 홀로 할 바를 이루어 초지를 일관하니 이 어찌 하늘이 낸 사람이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이 어찌 하늘이 내고 땅이 일으켜 세운 사람이 아니랴' 그의 이러한 재담은 종으로는 관촌수필의 이문구와 닿아 있으며, 횡으로는 박민규와 견줄 수도 있습니다.
두번째 단편 천애윤락을 읽으면서는 아오이 유우 짱이 출연한 일본영화 '외삼촌'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만나지 않을 수 없는 특정한 유형의 가족 또는 친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화자인 나와 주인공 동환은, 채무관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 친구(가족)에게 속절없이 갚으며 살아가거나, 요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소설집, 창작과 비평사, 2002
* 책 광고 같아서 제목 바꿨습니다.
첫댓글 오늘 오전에 오빠가 쓴 글 읽고 성미급한 저는 출근길에 교보에 들러 성석제의 장편 소설을 3권 냉큼 골라서 터질듯한 가방을 움켜쥐고 교실로 돌아왔네요^^초등학생때 아버지가 문학전집 30권인지 40권인지 사 주신걸 일주일도 못 되서 다 읽고 어찌나 책이 고팠든지 읽은 걸 또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오빠글 읽으면서 나네요^^전 책욕심이 많아서 누구에게 제가 읽고 다 끝내도 빌려주는 걸 싫어해요. 이상하게 제 품을 떠난 책이 다시 제게 돌아오지 않는 그 시간내내 불안하고 힘들어서요ㅋ 그냥 사주고 말아요ㅎㅎ 어쨌거나 오빠 덕분에 이번 주말도 책과 대화나누게 됐어요^^후기도 올릴께요ㅋ 좋은 하루 보내시구요~^^
오빠, 책선물은 이렇게 가끔 좋은 책 추천해 주시는 걸로 좋을 듯 싶어요^^전 세상에 공짜는 절대 없다고 생각하고 더 중요한 건 누군가에게서 뭔가를 받으면서 마음이 마냥 편하고 좋은 존재는 사실 가족끼리도 힘들다는 걸 알아서요^^하물며 책선물은 가장 큰 부담이더군요. 서재에서 언제 읽을거니? 하면서 제게 무언의 압력을 주는 그 존재는 결코 가볍지 않더군요ㅋ
아, 역시 로이님, 최고에요. 다음엔 문학쪽 책 말고 커뮤니케이션이나 마케팅 분야의 책을 리뷰해 올려 놓아야겠습니다^^
아이패드로 보면 책 표지 보이는데 컴터로 보면 왜 액박으로 나오죠^^;;
흠, 전 전화기로도 컴으로도 사진 안 보이는데요?
읽고서 남주자... 부러운 생각이고.. 실천이시네요..^^
책을 많이 갖는 게 아니라 많이 읽는 게 진짜 책 욕심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결국은 저 좋자고 하는 일 같습니다^^
쩝..형님...전 책읽는걸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말이 다 어렵네요...요즘 읽는건 야들 동화책뿐...그래서 로이한테 매번 무시 당해요...무시 당할만하죠...도스트예프스키의 카형제들도 읽긴 읽었는데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고...약간 어렵다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읽다 지겨워 그만두고...형님도 절 무시 하세요...
어려운 것을 쉽게 쓰는 게 가장 글을 잘 쓰는 거라는데, 쉽고 재미난 소설에 대해 어렵게 써버렸나 보네요. 다음엔 좀 더 노력해보겠습니다.^^ 로이님이 형균님을 무시할 리가요. 두 분이 넘 친해보여서 부럽기만한 1인입니다. 친구 없는 사람음 서러워서 원 ㅋ 그리고 책은 물질적으로 주고 받는 것도 주고 받는 것이지만, 같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함께 여행을 가는 일과 같이 생각되어서 시작한 거에요. 그렇게 보자면 형균님과 저는 이미 빼쩨르부르크 쯤에 같이 다녀온 셈이네요. ㅋ 하지만 누구도 한 번 다녀왔다고 그 도시 전체를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ㅎㅎ 오빠 저 형균이 무시하는 거 맞아요ㅋ 오빠가 문학을 전공하셔서 사실 review가 형균이가 이해하기 어려웠을 거에요^^사실 그 세계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나 평이한 단어들이 일반(?)인들, 아니면 책읽기를 싫어하거나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겐 무슨 소리? 이렇게 나오니까요^^원래 고전음악에 관심이 많은 제 경우도 공부하기 이전엔 그냥 들어서 편하고 또 듣고 싶으면 좋았는데 지금은 오케스트라 구성부터 악기의 생김새, 이름, 음악이 만들어진 시대, 주변인물, 또 작곡가의 개인적인 생활이나 기이한 태도, 뭐 이런 것들도 같이 알게 되고 또 들으니까 더 좋더군요^^개인적으로 책은 평론가들의 얘기는 읽지도 보지도 않아요. 오히려
책 읽는데 선입견만 주고 쉬운 말도 어렵게 쓰는 사람들이 많아서요ㅋ 그냥 지인들이 읽어 봐~이런 책들이 좋구요, 읽고 나서 흠, 내가 알던 이가 이런 취향을 좋아하는구나, 그 사람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듯 싶어요, 제 경우는ㅋ 제 남동생은 누나인 저랑 취향이 좀 비슷하고 여하튼 저랑 얘기하고 싶어서 책 읽고 나면 꼭 감상 어떻게 했는지 대화 나누는 걸 즐기더군요. 사실 그래서 책을 건성으로 못 읽어요, 영화도, 음악도 다 마찬가지구요^^형균이랑 저랑은 음악은 취향이 비슷해서 그나마 다행인데요, 녀석은 감수성은 풍부한데 그 표현력은 독서의 부재를 절감해요ㅋ 전 읽는 만큼 글쓰기가 달라진다고 경험을 통해
깨달은 사람이라 형균이가 힘들어도 규칙적으로 책은 가까이 했으면 해요^^저를 그렇게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제가 이렇게나 좋아하는 것은 알려고 안하는 걸 보면, 역시 축구공이 더 좋은가 봐요ㅎㅎ
너 나보다 축구공 많어?? 콱!
메롱~~~~~ㅎㅎ 축구공 난 싫어~~~~~ㅋㅋ
난 책이 정말정말 싫어~~~
ㅎㅎ 난 내가 싫어하는 것이나 일을 남에게 하자고 해 본 적이 없어. 넌 나중에 혜성이랑 루비보고 책 읽으라고 못 하겠다, 그지? 좋은 하루~^^아영씨는 그래도 책 읽는 거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무슨 책을 좋아하실까? 궁금하다^^난 아영씨처럼 말수 적은, 하지만 참 다정한, 그래서 웃는 모습 보면 그냥 기분이 좋아지는 여인에게 정말 약하다는ㅎㅎ
두 분이 넘 정다우신데요^^ 황조가에 나오는 꾀꼬리 한 쌍 같아요. ㅋㅋㅋ
ㅎㅎㅎ 오빠 ㅎㅎㅎ 전 형균이 좋아해요^^ 어린애 같아서...언제쯤 저랑 정신연령이 같아질지...아마 수십년은 걸리지 않을까 싶어요. 형균이 오기 전에 전 이만 튈께요, 녀석이 엄청 잘 삐쳐서요 ㅎㅎㅎ
저는 중학교 올라가기 전의 6학년 겨울방학 때, 역시 도선생님의 '죄와벌' 1권짜리 세로줄로 되어 있는 책을 1달 내내 끙끙대며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ㅎ~ 창비에서 출판된 책이네요..정기구독 회원인데..계절에 한번씩 오는 책도 부담될만큼 요즘은 책을 통 못 읽고 있어요..^^:;
로쟈가 도끼 들고 올라갈 때는 숨죽이게 되죠^^
영어영문학을 전공했으나 정작 이제는 그저 가르치기 위한 교재만 읽고있는 나,,,,,반성합니다.....
저 한때는 엄청난 문학소녀였어여,,시도 산문도 잘 썼고,,,선생님들도 인정해주신......멋진 문학도가 될줄 알았는데 걍 평생을 영어쌤으로,,,,,,,
저는 시도 산문도 잘 못써서 다른 걸 쓰고 있죠^^ 쌤도 충분히 멋집니다. 우유쌤~*
개인적으로 재밌게 읽은 황만근....성석제의 소설은 말맛이 잘 느껴지는 것 같아 좋아합니다.
개콘 제작자도 이 책을 자신의 텍스트로 뽑은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언어를 아는 작가임은 분명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