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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4장,
영미는 확신에 차서 말을 하는 하은주를 바라본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어려움까지도 받아드리겠다고 말을 하고 있는 하은주의 젊음이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자신은 지금까지 누구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지 자신을 생각해 본다.
남편과 결혼을 하면서 사랑한다는 감정이 없이 그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그렇게 순종하는 것이 미덕인 줄 알고 살아왔던 자신과는 달리 사랑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고 하는 하은주의 그런 생각이 부럽기만 한 것이다.
“그래!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평생을 변치 않고 살아갔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다.
이 어미는 무엇보다 너희 두 사람 마음이 평생을 지금 마음을 간직하고 예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바란다.“
“네, 어머님!”
“아가!
너도 알다시피 우리 집은 시어미가 두 사람이다.
네가 모셔야 할 시어미가 나 말고도 또 한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제?“
“네!
알고 있습니다.“
영미는 사람을 시켜 현지를 불러온다.
현지는 안방으로 들어가면서 조심스럽다.
“이 사람아!
자네도 이 아이에게 인사를 받아야 안 되겠나?“
하은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곱게 절을 한다.
“나 까지 무슨 절을?”
현지는 하은주의 절을 마주 받는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가워요!”
“작은 어머님!
앞으로 많이 예뻐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은주의 거침없는 인사였다.
“부탁은 내가 해야 할 입장인데.....
정말 앞으로 잘 부탁해요.“
”아가!
앞으로 내 집에 와서 살아가면 작은 어머님께도 내게 하듯이 그렇게 했으면 좋겠구나!“
“어머님!
이미 명섭씨도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작은 일에도 작은 어머님을 소홀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말을 누누이 하곤 합니다.“
“어찌 그렇게까지나....”
현지는 은주의 말에 목이 메어온다.
명섭이나 명규에게 눈길조차 제대로 줄 수 없는 현지의 입장이었다.
그 아이들이 두렵고 어려웠던 현지의 입장에서 명섭이 그렇게 자신을 생각해 준다는 것이 너무나 감격스러웠던 것이다.
그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얼마나 밉고 원망스러운 존재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살아오고 있는 현지였던 것이다.
두 집안의 상견례가 이루어지고 결혼식은 급속히 준비가 되어간다.
양가에서는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서로 사랑하는 젊은 사람들의 결혼식을 진행시키자는 의견이 모아졌던 것이다.
이미 아들들의 결혼을 위해 신혼 방을 꾸미기 위해 넓고 쾌적하게 마련해 두었던 아들들의 방이었다.
“아가!
신혼살림을 따로 준비할 것이 뭐가 있겠냐?
너희들 방만 채우면 되는기라!“
“어머님!
그래도 시댁 어른들의 예단은 정성껏 준비하고 싶습니다.“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읍다.
네 아버지와 작은 어무이 그리고 내 옷이나 한 벌씩 하믄 된다.“
영미는 거창한 결혼예물을 생각지도 않는다.
내 아들이 소중하고 귀한 만큼 은지 또한 소중하고 귀하게 키운 자식인 것이다.
아들이 더 소중하고 딸이 덜 소중하다는 것도 없다.
양가가 서로 아들딸은 나누어 새로운 가족이 된다는 의미에서 인사를 하는 것이니 부담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영미의 생각인 것이다.
“아가!
네가 필요하고 원하는 것이 있음 말해 보그라!
이 어미가 힘이 자라는 대로 해 주고 싶구마!“
“어머님!
저도 있는 그대로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비싼 예물 같은 것은 사양하고 싶고요.
어차피 예물을 치장하고 나들이를 하면서 살아갈 것도 아니고 그대로 집안에 보관을 해야 할 일인데 비싼 돈을 묵혀 둘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네 생각이 기특하구나!
허지만 이럴 네가 받고 싶은 것을 말을 해도 좋은 거이다.“
그러나 하은지는 한사코 값비싼 예물을 사양하고 나선다.
영미는 그런 은지가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끔 현금으로 준다.
명섭의 결혼식은 그야말로 동네잔치가 된다.
온 동네 사람들은 워낙에 손이 큰 영미의 성품을 아는지라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모두 모여든다.
또한 온 집안의 일가친척들은 결혼식 며칠 전부터 와서 집안은 매우 분주하고 사람들의 왕래가 번거롭다.
김주성은 억지로 몸을 털고 일어나 집안의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잠시도 자리에 누워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김주성의 자리는 이미 이 집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집안의 모든 손님들은 김주성을 매우 서먹서먹해 하고 있는 것이다.
워낙 어려서부터 밖으로만 돌던 김주성이었다.
어느 때 한 번 제대로 집안의 주인으로서 손님을 맞이했을 때가 없었고 집안의 기제사 한 번을 자신이 앞서서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언제나 손님처럼 모든 준비가 다 되어서야 나타났다가는 손님들보다 먼저 집을 떠나던 김주성으로서
는 집안 일가친척들이 낯설고 서먹서먹했던 것이다.
김주성은 낯선 이방인 같은 느낌을 갖는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자식의 혼사 앞에서조차 김주성은 완전한 이방인이었다.
혼사를 앞두고 어떻게 그 혼사 준비가 되어 가는지 규모가 얼마나 성대한 것인지 조차도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집안에 있기는 하지만 김주성은 완전한 손님이었던 것이다.
이제 김주성은 자신이 얼마나 집안에서 도외시 당하며 살고 있는 것인지 새삼스럽게 실감을 한다.
그것은 자신 스스로가 만들었던 것이었으나 공연한 심술이 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나타낼 수조차 없었다.
이제 큰 아들 명섭이가 집에 있기에 조그만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김주성은 이래저래 마음의 울화가 쌓여간다.
아무런 능력도 없고 아무런 권한도 주어지지 않는 이 자리가 좌불안석이다.
“우리 결혼식만 보고 서울로 가자.”
“또 왜 그래요?”
“.....................”
현지 또한 그런 남편의 심기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탓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그것은 모두 자신들이 저지른 일들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그들이었기에 손님 아닌 손님의 입장이 되어 구경꾼이 된다.
“명지 아빠!
마음을 가다듬고 바라만 보세요.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만들었다는 것을 몰라요?“
“알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이 상하는 것을 어떻게 해?”
“그러니 형님 입장을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형님을 버려두고 나 같은 여자에게 미쳐있었을 때 형님은 어떤 심정이었겠나 생각해 보세요.
지금 당신의 심정하고 비교할 수도 없는 크나큰 고통이었을 겁니다.“
“................”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당신이 나서서 주관 할 수도 없는 일들입니다.
집안의 모든 친지들은 당신을 기억하려 들지 않아요.
오직 형님이 이 집안의 대들보라는 것을 당신도 인정을 하셔야만 합니다.“
“알고 있어!
그 모든 것을 알고 인정을 하지만 그래도 나 자신이 너무 참담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차라리 당분간이라도 이 집을 떠나 있고 싶은 생각뿐이야!“
김주성은 현지에게만큼은 자신의 심정을 숨기지 않는다.
“안 됩니다.
이런 일들을 한두 번 부딪치다 보면 사람들이 당신을 인정하고 기억할 것으로 믿어요.
순간을 회피해버리면 당신은 살아 있어도 죽은 목숨이 됩니다.“
현지는 주성의 기분을 맞추어 주면서 설득을 한다.
주성 또한 현지가 하는 말의 뜻을 알아듣는다.
자신 스스로가 집에서 멀어진 것이고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진 것임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은 주성이 상속자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들이다.
상속권이 없는 주성에게 아부를 하기보다는 모든 실세를 한 손에 쥐고 있는 영미에게 잘 보이려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속성이다.
혼사의 축하를 하러 왔으면서도 김주성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말로 인사를 할 뿐이었고 영미의 주변으로 모여드는 것이다.
집안의 모든 일들은 영미의 뜻대로 움직여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오랜 세월동안 그렇게 길이 들여져 있었고 그렇게 내려 온 것이다.
그러나 김주성은 이제야 그런 것들을 느끼면서 상당한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아들의 결혼에 대해서조차 김주성은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준비가 되어 가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을 물어볼 자격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성은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고 공연히 현지에게 짜증을 낸다.
“서운하세요?”
현지는 주성의 짜증을 받아주면서 묻는다.
“내가 아직은 살아 있는 사람인데 이렇게 사람을 무시해도 되는 거냐고.”
“꼭 그렇게만 생각하지 말아요.
지금까지 그 어떤 일도 당신은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형님이 당신을 의식할 이유가 없지요.“
”그래도 내가 이렇게 눈앞에 있는데 사람을 어떻게 이리도 무시를 할 수가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어!
더구나 아들의 결혼인데 무엇이 얼마큼 들어가는 것인지 알고는 있어야 할 것이 아니냐고.“
”그것을 알아서 무엇 하려고요?
대체 뭐가 그리도 궁금하고 알고 싶은 것인데요?“
”...............“
“당신이 자꾸 그러면 이제 아들 며느리의 눈 밖에 납니다.
이제 이 집안도 서서히 세대가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시고 마음을 비우세요.
그리고 당신 건강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현지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꾸만 어린아이만 같아지는 주성이 답답해져 옴을 느낀다.
자신의 몸에 병이 들어 마음마저 약해진 탓인지 자꾸만 투정을 부리고 짜증을 부리는 남편의 모습이 낯설고도 답답해진다.
그러나 영미는 주성의 그런 마음을 알 수가 없다.
바쁜 집안일에도 그런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지만 영미 앞에서는 언제나 한결같은 주성의 태도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영미 앞에서는 짜증 한 번도 내지 않고 한결같이 점잖고 과묵한 남자의 태도를 벗어나지 않는 주성이다.
이제 영미는 아들의 결혼에 대한 남다를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며느리가 들어오면 자신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같은 여자로서 마음을 열고 집안의 모든 일들을 의논하면서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다.
어느 정도는 며느리에게 주권을 넘겨주면서 이제는 자신도 자신의 시간을 가지며 조금은 여유롭게 살아가고 싶은 생각이다.
너무나 힘들고 바쁘게 살아온 세월이다.
잠시 잠깐이라도 쉬지도 못하고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이제는 조금이라도 자신을 위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영미의 마음인 것이다.
세상 모든 여자들이 자신처럼 그렇게 숨 가쁘고 힘들게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보아왔던 것이다.
자신이 아니면 이 집안을 지탱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이제는 하지 않겠다는 영미의 생각이다.
자신이 없는 동안 아들 명섭이와 정희네가 잘 이끌어 와주었다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자신을 위한 시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더 이상 남편에 대한 미련으로 마음을 상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결혼식만 지나고 나면 남편은 현지에게 맡기고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 보다 생기 있는 노년을 보내기 위해 자신에게 시간을 투자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영미였다.
자식들에게 초라하고 쓸쓸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노년 계획을 세워야만 했다.
자식들에게 짐을 지워주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노력을 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 영미에게 주성의 그 마음이 보일 리가 없었다.
주성의 마음을 생각하고 기분을 살펴볼 마음의 여유도 없거니와 이제 영미는 남편이라는 존재가 크게 부각이 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결혼식은 성대하게 거행이 된다.
양가에서 처음으로 맞는 자식들의 혼사였던 것이다.
신부 집의 사는 형편도 어렵지 않고 맏자식의 혼사였기에 결혼식은 많은 축하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식장은 혼잡스러웠다.
현지는 식장에 가지 않고 집에서 손님들을 접대하고 있었다.
집에서는 집에서 대로 많은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현지로서는 식장엘 갈 수가 없었다.
결코 자신이 가야 할 곳이 아님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자신은 이 집안의 가족이 아닌 것이다.
아니, 결코 가족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뭔가는 허전해져 오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이제는 집안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마당에 자신이 이곳에 더 있어야 한다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남편을 데리고 서울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다.
남편은 이곳 자신의 고향에서 생을 마감해야만 하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몸이 더 허약해져 오는 남편을 데리고 서울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식들과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것이었다.
현지는 손님을 접대하면서도 자신의 입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한다.
더 이상 자신이 이곳에 머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만이라도 서울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이제는 남편을 설득해서 남편과 떨어져 있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 현지로서는 떠날 결심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결혼식이 끝나고 손님들도 거의 다 돌아간 이후에 다시 신혼여행지에서 돌아오는 신혼부부를 맞이하느라 집안은 다시 분주해진다.
사박 오일의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신혼부부를 맞이하기 위해서 영미는 또다시 자신의 솜씨를 발휘한다.
신혼부부를 위한 음식도 준비해야만 하고 신혼부부를 사당에 계시는 조상님들께 인사를 하기 위해서 사당에 차릴 음식도 준비를 해야만 한다.
집안에 새 사람이 들어왔음을 조상님들께 고하는 절차가 남아 있는 것이다.
집안은 다시 고소한 음식냄새로 분주해지는 것이다.
늦은 점심이 되어서야 신혼부부가 도착을 한다.
신혼부부의 절을 받기 전에 사당에 계시는 조상님들께 인사를 드려야만 하는 것이다.
주성은 아들부부를 위해 사당 제를 지낼 준비로 사당으로 나선다.
의관을 정제하고 나서는 주성은 약간의 어지러움 증을 느끼며 비틀거린다.
“왜 그래요?”
현지는 얼른 주성을 부축하면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는다.
“아무것도 아니야!
약간 어지러웠을 뿐인데 이젠 괜찮아!“
“정말 괜찮겠어요?”
“이 정도로 뭘 그렇게 걱정을 해?”
주성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사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나 사당제를 지내는 동안에도 주성은 자꾸 앞이 캄캄해지며 심한 어지러움 증을 느낀다.
이미 주성의 이마와 온 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성은 내색을 하지 않고 안간힘을 쓰면서 사당제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간신히 의식이 끝나가는 순간 주성은 그대로 졸도를 한다.
글: 일향 이봉우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