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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1. 복음은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로마서 1장 1절 끝에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라고 하였습니다.
“복음(gospel)”(유앙겔리온)은 “희소식”, “희보”를 뜻하며, “좋은 소식”(good news)을 뜻합니다. “복음(福音)”으로 번역되었습니다. “복음(福音)”이라는 한자어가 의미하는 바는 “복된 소리”입니다.
“하나님의”라는 소유격 표현은 로마서 1장에 9번 나오는 표현입니다. 파울은 지금 “하나님께 관한”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한 목적으로 파울을 떼어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하였으니,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것입니다. 좋은 소식은 하나님께 속하여 있습니다. 복음의 원천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복음”이 될 수 있습니다.
2. 복음은 구약성경에 “미리 약속”된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절에 “그것을 그가 미리 약속하셨노라”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그 약속이 제일 처음으로 나타납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을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에덴의 정원에서 뱀을 향하여 진술하셨습니다.
뱀과 여자 사이와 뱀의 씨와 여자의 씨 사이에 증오가 두어졌고 여자의 씨는 뱀을 머리를, 뱀은 그를 뒤꿈치를 상하게 합니다(창 3:15). “여자의 씨”이신 메시아께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다는 예언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처음으로 나온 복음이기에, ‘원시 복음’이라고 합니다. ‘원시(元始)’라는 말은 ‘근원과 시작’을 뜻합니다.
“복음(福音)”이라는 한자는 “복된 소리”, “좋은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타락한 사람들에게 주신 구원의 “좋은 소식”이 바로 “복음”입니다.
“여자의 씨”, “여자의 자손”으로 태어날 자가 뱀에게 뒤꿈치를 상하고, “여자의 씨”는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입니다.
뱀은 이런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있었기에 어떻게 하면 “여자의 씨”를 이 땅에 태어나지 못하게 할 것인지 처음부터 늘 생각하고 방해하였는데 악마는 카인을 통해서 아벨을 죽이게 했습니다.
“여자의 씨”는 뱀에게 뒤꿈치를 상할 고난의 종으로 오실 것을 뜻하며 그의 “고난”으로 구원의 길이 열리리라고 몇천 년 전에 예언되었습니다.
악마는 어떻게 “여자의 씨”를 죽여 자기의 머리를 밟지 못하게 할까? 그래서 헤롯 대왕이 “그 아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잘 보라”고 하였는데 악마가 자신의 머리를 상하게 할 메시아를 사전에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악마는 예수님께서 33세가 되셨을 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악마는 여자의 씨가 자신의 머리를 상하게 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악마의 크나큰 착각이었습니다.
악마는 십자가 사건으로 자기의 머리가 상하게 될 것을 꿈에도 몰랐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악마는 완전히 패배하는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악마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 것입니다.
악마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는데 뒤꿈치를 상하게 한 것일 뿐이나,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다시 사셔서 악마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자의 씨 언약은 창세기 17장에서 아브라함 언약으로 이어집니다.
이 구원의 약속, 복음은 창세기 3장의 “여자의 씨”부터 시작되었으며, 창세기 12장, 15장, 17장에, “여자의 씨”는 곧 “아브라함의 씨”가 됩니다. 그 땅의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의 씨 안에서 복을 받게 됩니다(창 22:18).
“여자의 씨”는 “아브라함의 씨”로 구체적으로 범위가 좁혀지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의 씨” 가운데서 에서를 미워하셨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야곱의 씨를 통해서 “여자의 씨”를 주실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12명에서 누구를 통해서 “여자의 씨”가 태어날 것입니까? 야곱은 유다의 씨를 통해서 “여자의 씨”가 태어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지파 중에서 “다윗의 씨”를 통해서 “여자의 씨”가 태어날 것입니다.
이 언약은 유다의 자손으로부터 다윗의 자손으로 성취될 것입니다.
“여자의 씨”에 대한 약속은 결국 “다윗의 씨”로 그 폭이 좁아진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난다고 미리 약속하셨는데 하나님께서 그의 예언자들을 통해서 성경 안에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 이후 다윗의 자손 왕들을 보면 대부분 악한 왕이었으며 바벨론 멸망 이후 다윗의 자손들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페르시아 왕이 임명한 총독이 다스리고 이후 로마 총독이 다스립니다. 그리고 헤롯 대왕은 유대인이 아니었고, 에돔 출신의 이방인이었습니다. 결국은 다윗의 자손이 왕이 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지 아니하신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셨습니다(마 1:1). 예수님께서 바로 다윗의 자손으로, 왕으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왕이시나 크리스트 예수님의 왕국은 이 땅의 것이 아니며,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면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왕으로 다스리십니다. 우리는 신하, 종으로 왕과 주가 되신 예수님께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야만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마 7:21).
여자의 자손 언약은 아브라함, 유다, 다윗 언약으로 구체적으로 되며, 처녀가 임신하여 메시아를 낳을 것이라고 이사야에 예언된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시는 “여자의 씨”는 처녀에게서 태어나시는데 처녀가 잉태해 아들을 낳을 것을 이미 700년 전에 미리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대로 처녀 마리아가 예수님을 임신하고 예수님을 낳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미리 약속”된 대로 처녀인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는데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이라고 신약성경 맨 앞에 기록되었습니다.
메시아께서는 베들레헴 동네에서 태어나신다고 미리 약속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700년 전에 하나님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그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약속하셨습니다.
“여자의 씨”이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태어나신다고 미리 약속되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왜 태어나신 것입니까?
레위기에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등의 제사들이 있는데,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죽어야만 하는데 우리 대신 짐승들이 죽었으며 우리 대신 대속의 죽음을 죽는 짐승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가르치셨으며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미리 가르쳐 주셨으며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서 모두가 성경에 미리 약속된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그가 예언자와 제사장과 왕으로 미리 약속된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그의 십자가와 죽음과 부활이 미리 약속되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어린 양을 희생 제물로 바쳤는데 그의 희생의 예표였습니다. 복음을 하나님께서 그 예언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인데, 한 사람의 예언자가 아니라 여러 예언자를 통하여 미리 약속하셨습니다.
“예언자들”은 구약성경 전체를 언급하는 관례적인 방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이 곧 “복음”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할 때 복음이 필요함을 받아들입니다.
복음의 내용은 죄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복음은 이 말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죄가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우리 대신에 예수님께서 징벌을 받으셨고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복음”, 즉 “좋은 소식”은 이렇게 죄와 심판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3. 복음은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된 것입니다.
로마서 1장 3절에 “그의 아들에 관하여…”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죄와 심판에 대해서 말하고 대속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복음이며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이며 그에 관하여 미리 약속된 것으로 파울이 말하는 복음의 중심 내용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 복음의 초점은 한 인격체(a person)인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왕국의 좋은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선포하신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파울은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전함으로 사실 그는 “하나님의 왕국”의 복음을 전한 것과 같은 일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파울의 복음은 예수님의 천국 복음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크리스트께서 천국 입장을 가능하게 하신 것입니다. 파울 복음의 내용은 바로 이것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해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분인지를 분사를 통하여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어떤 분입니까?
1) 하나님의 아들은 육체에 따라 다윗의 씨에서 나셨습니다.
로마서 1장 3절에 “그는 육체에 따라 다윗의 씨에서 태어나셨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씨가 영원한 지배를 가질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삼하 7:12-16)은 구약(사 11:1, 렘 23:5-6, 30:9, 33:14)에서 메시아 기대의 첫 번째 초점이 되었습니다(마 9:27, 요 7:42 등). 이 약속은 예수님 안에 그 성취를 보게 됩니다(마 1:1-16, 룩 1:27).
하나님의 아들은 미리 약속된 대로 다윗 왕의 씨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복음은 다윗 왕의 씨에서 태어나신 약속된 왕에 대한 것입니다(롬 1:3). 회개는 왕이신 하나님과 메시아께 순종하는 삶을 살 것이라는 결단이며, 바로 이와 같은 내용이 “복음”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2) 신성의 영(Spirit)에 따라 하나님 아들로 선언되셨습니다.
로마서 1장 4절에 “신성의 영(Spirit)에 따라서 죽은 자들의 부활에서 능력 안에(in)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신,”이라고 하였습니다.
한글 개역 성경에 “인정하다”라고 번역된 그리스어(호리조)는 “결정하다”(determine), “임명하다”(appoint), “지정하다”를 의미하는데 영어로 “선언하다”(declare), “임명하다”(designate)로 번역되었습니다. 크리스트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지 아니하셨고 선언되셨는데, 원래 “하나님의 아들”이셨기에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신 것이 아니고 다만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신 것입니다.
그는 죽은 자들의 부활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은 아니었으나, 죽은 자들의 부활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신” 것입니다.
크리스트 예수님께서 능력 안에(in)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셨습니다. “능력 안에”는 “능력과 함께”, “능력을 지닌”(with)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능력을 지니신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신 것입니다.
예수 크리스트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능력과 함께(with) 선언되셨는지 능력을 지니신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셨는지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 “능력으로”라는 말은 “선언되셨다”라는 동사를 꾸민 것이 아니며 “능력으로”라고 번역된 말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사를 수식합니다. 그는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며 그러한 분으로 선언되신 것을 뜻합니다.
그는 “신성의 영(spirit)에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신 것인데, “신성의 영(spirit)”은 “성령(Spirit)”이 아닙니다.
이 구절은 “신성의 영(spirit)”이지 “성별된 영(Spirit)”이 아닙니다.
만일 “성령(Spirit)”을 뜻하면 “성별된 영(Spirit)”으로 쓰였을 것이나, 여기 쓰인 것은 “성별된 영(Spirit)”이 아니라 “신성의 영(spirit)”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성한 영(spirit)”을 가지고 무죄하시게 태어나셨습니다.
“신성의 영(spirit)”은 하나님의 제3 위격이신 “성령(Spirit)”이 아니라 제2 위격이신 예수님의 “영(spirit)”이 “신성의 영(spirit)”임을 뜻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그의 “영(spirit)”은 신성합니다. 그의 “영(spirit)”은 아담의 자손들의 “영(spirit)”과 달리 죄가 없습니다.
아담 자손들의 “영(spirit)”과 달리 그의 “영(spirit)”은 신성합니다. 그의 “영(spirit)”은 신성한데,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까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인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입니다. 파울은 지금 그의 육체와 “영(spirit)”을 완전히 대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의(from) 부활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셨고 그는 부활하시되 죽은 자들로부터 먼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에 뒤따라 부활할 것입니다. 파울은 우리의 부활을 함축하는 방식으로 그의 부활을 말한 것입니다. 그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신 것처럼 크리스천도 부활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 크리스트 우리의 주(Lord)십니다.
로마서 1장 4절 끝에 “예수 크리스트 우리의 주시라”라고 하였습니다.
“주(Lord)”(퀴리오스)는 하나님을 가리킬 때 사용한 말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주(Lord)”가 “야훼”를 가리킬 때 사용한 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라는 말은 그가 하나님이신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다윗은 그의 씨에서 주 하나님께서 생겨나실 것을 미리 예언하였습니다.
메시아께서 다윗의 씨에서 태어나실 것이라고 구약성경에 예언되었고 다윗은 자신의 씨에서 태어날 자신의 자손을 “주(主)”라고 불렀습니다.
주인이 되는 방법에는 둘이 있는데 자기가 만들었다면 주인이 됩니다. 또 하나는 값을 주고 샀다면 주인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으로 모든 것들을 만드신 창조주(創造主)십니다. 그리고 인류는 죄를 범하였기에 죄와 사탄에게 팔려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피를 값으로 지급하셔서 신자들을 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구원하신 구주(救主)십니다.
노예 시장에서 노예를 사는 것은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셨으므로, 우리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노예가 그의 주인(主人)을 향해 “주인님,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신의 노예니 무엇이든지 시켜만 주십시오, 당신이 시키시는 일이라면 모두 행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救主)로 받기 원하면, 나의 주(主)로 받아야 하며, 예수님께서 나의 주(主), 즉 나의 주인(主人)이 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방식에 복종하고 의문을 제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주로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사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됩시다!
1) D. M.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서문강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9), 93.
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97.
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97.
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97.
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97.
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97.
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98.
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99.
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100.
1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122.
11)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44. 『NICNT 로마서』, 82.
12)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44. 『NICNT 로마서』, 82.
13)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46. n. 35.
14)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46. n. 35.
1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144.
1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147.
1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150.
1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150.
1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151-152.
2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