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충고 감사하고... 저는 먼저 운영자님의 경고를 받고 사과하였고 주의했다고 여겼는데.. 아직 그 흔적이 남았었나 봅니다. 미안하구요.
처음 글들에 대해서는 분명 제가 그런식의 입장을 취했기에 사과를 드립니다.
그리고 님이 제게 제안하신 그 기준이 이 사이트에서 그대로 통용되기를 진심으로 바래봅니다. ^^ (제 바램입니다. 저도 노력하지요.)
음.. 안티 바이블에 대해서는 제가 나름대로 지금 읽으면서 준비중이니까 기다려 달라는 말씀밖엔 드릴 수 없습니다.
정말 안티 바이블을 쓰신분은 성경에대해 많이 연구 하신 분 같더군요. 그래서 저도 간단한 어구 반박이 아니라 전체적인 해석의 차이를 보이기 위해 준비중입니다. 조금 오래 걸릴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너무 열심히 준비하신 적그리스도 님의 수고에 결과니까 너무 탓하지 말아주시고..^^;; 반드시 올릴테니까 조금 기다려 주세요.
음.. 그리고 밑의 질문들에는 짧은 제 견해를 밝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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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울이 말한 예수와 예수의 제자들이 말하는 예수는 차이가 많은데 이 점을 설명해 주시죠. 바울이 베드로나 야곱을 비판한 귀절이 있는데 왜 그래야만 했는지도 함께 묻는 겁니다. 다른게 뭐가 있냐고 반문하신다면 님은 신약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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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저희 학교 신학과 수업에 로마서 강해라는 수업이 있습니다. 그 수업에서는 정말 적나라하게도 바울과 사도들간의 싸움에 대해서 공부합니다. 저는 그 수업을 일부러 수강하여 들은 적이 있습니다.
먼저 그들간의 비판은 바로 서로 사도권에 대한 논쟁에서 가장 두드러 집니다.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찌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됨을 주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고린도 전서 9:1-2)"
로마서에서부터 히브리서 까지 바울의 서신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불평은 바로 사도권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의 제자가운데 대표격인 12사도들은 예수님과 공생했기에 사도로 불리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과 공생한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회심하여 사역자가 되었습니다.(사도행전9장)
그런데 이방인(당시 유대인이 아닌)들의 사역에서 바울이 큰 부흥을 이뤄내면서 여러가지 다툼이 나타납니다. 할례의 문제, 제사의 문제....
그 모든 문제에서 12사도의 모두가 아닌 대부분이 바울과 대립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중 누가는 선교에 관심이 있었고, 그래서 사도행전은 거의 바울의 사역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합니다.)
그리고 그 다툼의 가장 큰 부분이 위의 고린도 전서 말씀같은 사도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기독교인으로 불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도의 명령은 지금 시대의 카톨릭에서 교황이 갖는 것만한 권위와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2사도는 바울을 사도가 아닌 자신들이 파송한 전도자로 여겼을 뿐이고, 바울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자신은 그리스도의 사신, 곧 사도라고 주장합니다.
음.. 제 나름대로의 생각은 바로 이것이 인간의 연약함이라고 생각되는데요. 12사도가 사실 조금 독선적이지 않았는가 싶네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고, 다른 삶은 존경의 대상이었을지 모르지만, 기득권이라고 이해될 수 있는 사도권에 대해서 고집하는 것은 독선으로 비칠수 있습니다.
반면 수업시간에 나온 반대 의견도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사도라는 정의가 그리스도와 함께 공생애를 누린 자들에게 주는 칭호라면 마땅히 12사도의 판단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질서의 종교이고, 바울이 그리스도교에 입교하여 큰 전도자로 쓰임을 받았지만, 사도라는 직분에 너무 연연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음..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 바울과 사도들이 다른 말을 하고 있다고 하셨는데...어떤 차이가 있는지 제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너무 광범위한 질문인데요.
2. 땅끝까지 전도하라는 말과 이스라엘이 아닌 곳에는 가지 말라는 상반되는 교시에 대해 명쾌한 해석을 부탁드립니다. 실제로 기독교 대부분의 종파는 전자를 따르지만,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후자를 따르는 종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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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말씀은 마태복음 28장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바로 세계 종교로의 선언이지요.
그리고 이스라엘에게만 가라는 장면은 바로 마태복음 11장에서 나오는 제자들의 1차 파송장면 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만나서 3년의 공생애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제자도를 배웁니다. 마태복음은 제자도의 핵심을 잘 나타내준 복음서인데요. 그 안에서 파송은 2번 나옵니다. 위의 두경우가 바로 그것입니다.
1차 파송과 2차 파송의 차이는 단적으로 드러나는데요.
먼저 1차 파송은 우선 한 지역에 국한된 전도이고, 2차 파송은 경계없는 전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1차 파송은 훈련의 과정속에 허락된 짧은 기간의 전도이고, 2차 파송은 예수 승천이후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전도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닌 곳에는 가지도 말라는 것은 마태복음의 기술자인 마태의 저술 목적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마태복음은 바로 유대인을 대상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예수의 정통성(1장)과 구약의 예언의 일치성을 주로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마5-7)과 여러 비유를 통해 제자들에게 복음과 자신의 구주되심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도록 제자들을 파송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시적인 파송이었습니다. 아직 제자들은 바른 믿음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태는 그 전도 여행을 이해할 때, 공통의 배경을(구약이라 말하는)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전도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겁니다.
성경에는 흔히 3종류의 인간이 나온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제자이고, 하나는 유대인이고, 다른 하나는 이방인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임재는) 구약의 시대부터 꾸준하게 그 순서대로 임하였습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유대인을 향한 1차 전도여행은 필요한 것으로 여겨질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모든 사람에게 그복음을 전하도록 명하십니다. 이제 그들이 모두 믿음위에 굳게선 그리스도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명령을 한쪽으로만 받아들여서 행동하는 종파가 있다고 하셨는데요. 저는 잘 모릅니다만, 자기의 관심을 따라, 또 역량을 따라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섬기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자세한 것은 님께서 예를 들어주시면 제가 알아보고 답변드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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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수님에 의해 율법이 완전하게 되어(또는 수정되어)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율법들 중 많은 부분을 기독교인들은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안식일(안식일이 아닌 주일조차도)을 거룩하게 지키지도 않고,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서신에서 강조한 사항을 어기고 인류는 노예를 해방했고, 여자들이 남자를 가르치려 듭니다. 그런데 지금 유독 십일조만큼은 엄청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레위들이 생업에 종사하지 못했으니 十一助와 十一租가 혼합된 형태였습니다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기독교방송이나 부흥회 강사들이 십일조에 대해 말할때면 十一租일뿐이더군요. 심지어는 헌금함에서 오천원짜리를 꺼내들고 "요즘도 오천원짜리로 헌금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면서 헌금한 사
람을 주눅들게 하는 목사(제가 목격한 겁니다)는 뭡니까? 일부라구요? 제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거나 설교를 한 목사들 십 수명이 모두 이런 식이었는데, 그럼 저는 맨날 이상한 목사들만 찾아서 만난겁니까? 님이 생각하시는 십일조의 목적과 바람직한 징수(모금이란 말을 쓰고 싶지 않군요)방법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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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이 지속되기를 기원합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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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가장 민감한 부분인데요. ^^;;
제가 목회자도 아닌데.. 실수 할가 두렵군요.
나름대로 사견을 말씀드리지요.
성경에서 어디까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고, 어디까지를 당시 유대의 문화나 저술자 개인의 생각으로 보는가는 아직도 논란의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분명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을 따라 저술되었다고 저는 믿지만 그 모든 내용이 정확히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일례로 성경은 지극히 남성중심적이어서 여성을 비하하는 장면도 많이 있는데요. 저는 그 부분을 나중에 꼭 예수님께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
각설하고..
노예제라는 것은 성경에서 존중될 수 없습니다. 전쟁에 패하면 모두 노예가 되던 구약 시대에도 희년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40년이 지나면 모든 재산을 다시 돌려주고,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시켜야 했습니다.
노예가 되는 것은 전쟁에 진 이방 민족이나, 큰 죄를 범했을때 다른 물적 재산으로 변제할 수 없을 때 가능한 것이었기에 그 값을 치루면 다시 본래의 신분으로 돌아오도록 하였습니다.
바울이 어떻게 말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제게 좀 가르쳐 주시구요. 만약 바울이 노예제를 지키라고 말했다면, 전 그것에 대해 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밝혀둡니다.
그리고 님에게 그런 목사님들을 계속 만나게 된 사실이 무척 당혹 스럽고 속이 상합니다. 그런 태도는 정말 잘못이지요.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지 목사에게 보여주려는 헌금이 아니니까요. 저는 가끔 동전으로도 헌금도 하고 싶일조를 드리는 가난한 학생이거든요. ^^;;
음.. 그렇지 않은 목사님들도 많이 계십니다. 원하시면 제가 아는 목사님들을 만나게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리고 십일조의 목적은 내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축복에 감사하면서 소산의 10분의 일을 하나님의 것으로 감사함으로 드린다는 것입니다.
바람직한 징수 방법이라는 것은..저를 당혹하게 하는데요. 사실 제가 대답할 성질의 문제는 아닌것 같습니다. 정직하게 스스로 하는게 맞다고 생각하기는 합니다만.. 충분치는 못하고.. 양해를 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