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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실체
- 2세 72가정 약혼식 때 하신 말씀 -
날짜 : 1989. 1. 6(금)
장소 : 한국 한남동 공관
나를 알아야
나를 알아야 됩니다. 내가 누구냐 하면 종적인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계승자요, 횡적인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은 계승자의 결실로서 태어난 나여야 되는데, 오늘날 인간들은 몸과 마음이 90각도로 하나되어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사탄의 혈통을 통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사탄은 뭐냐 하면 아담 해와를 타락시킨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그 핏줄을 이어 가지고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 앞에 또 다른 플러스로 등장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은 서로 원수가 되어서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해결해야 할 것이 종교의 사명입니다. ‘인간’ 하게 되면 남자와 여자인데, 남자는 무엇이고 여자는 무엇이냐? 왜 태어났어요?
남자는 동서남북으로 돌아다니면서 춘하추동 사계절 뭘 얻든가 뭘 해 가지고 여편네에게 다 갖다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자의 수확을 거두어서 지킬 수 있는 주인이 여자입니다. 나중에는 사랑까지도 갖다 주는 거예요. 모든 것을 다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자는 받으려고 하고 말이에요.
결혼해야 하는 이유
그래, 여자가 시집가는데 “너 왜 시집가” 하면, 사랑받기 위해서 간다고 그러지요? 사랑하기 위해서 간다는 말을 들어 봤어요? 그렇지만 여자는 사랑받는 동시에 사랑을 해야 됩니다. 남자가 양쪽으로 주면, 나는 음쪽으로 돌려줘야 됩니다. 그렇게 돌려주면 그 사랑을 중심삼고 생명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을 염려하면서 “아이구, 튼튼하소” 이러는 것입니다. 튼튼하기를 바라고, 그저 자기는 못 먹더라도 남편이 건강하기를 바라면서 뒷면으로 높아져야 됩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뒷면이 있는 것을 생각 안 하면 안 된다구요.
남자도 사랑 가운데 아내의 뒷골목을 거쳐 넘어가야 되고, 여자도 남편의 뒷골목을 거쳐 넘어가야 됩니다. 그래야 구형이 벌어집니다. 구형가운데 포괄되는 부부가 되어야 90각도를 중심삼은 중앙선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남자나 여자가 전부 다 왜 태어났느냐 하는 문제는 간단한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간단합니다.
왜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종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영존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영존하느냐? 무엇이든지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완전히 하나될 때는 우주력이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187-78)
사랑은 위대한 것
왜 결혼을 한다구요? 결혼에는 동거권이 있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어디나 아무데나 찾아갈 수 있습니다. 병이 났을 때나 피곤할 때나 외로울 때나 언제나 같이 있을 수 있어요. 그게 동거권입니다. 그가 왕의 자리에 올라갔으면, 내가 왕의 자리에 찾아갈 수 있고 어디라도 찾아갈 수 있습니다. 경계선이 없습니다.
그 다음에 뭐가 있느냐 하면 상속권이 있습니다. 둘이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의 것이 내 것이 됩니다. 그거라구요. 그러니까 부처끼리 저금통장을 따로 가져야 되겠어요, 하나로 만들어야 되겠어요? 통일교회의 교인들, 대답하라구요! 저금통장을 둘 만들어야 되겠어요, 하나로 만들어야 되겠어요? 「하나 만들어야 됩니다.」 왜 그래요? 그 저금통장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우리 아들딸의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런 것을 우리 것으로 하는 것과 내 것으로 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게 더 좋아요? 우리 것입니다. 거기에는 사랑이 깃들 수 있습니다. 내 것으로 할 때는 사랑의 상대권이 없습니다. (187-82)
순리라는 것
여자라는 것은 절반밖에 안 되는 것인데 남자를 품어서 사랑으로 소화해야만 원만한 여자의 인격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한 여자들은 남자한테 더러 맞아야 됩니다. 궁둥이에 혹이 나고, 볼때기에 혹이 나고 그래야 돼요. 여자는 무기가 없어요. 입이 무기입니다. 그것밖에 없다구요. 그런데 여자는 말 때문에 망합니다.
보라구요! 영화 같은 걸 보더라도 한 마디도 안 하고 가만히있었으면 소화할 수 있는데 “아이구, 나가지” 하고는 보따리를 갖고 한번 나갔다가는 못 들어와요. 아들딸이 있더라도 “엄마가 그래 가지고는 아버지한테 박대받는 것이 이치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자는 보따리를 싸서는 안됩니다.
매를 맞게 되면 보따리를 싸지 말고 이불에 누워서 앓으라구요, 앓아! 누워서 복수하는 게 나아요. 밥을 한 일주일 안 먹고 천연덕하게 남편을 간섭해 보라구요. 그러면 남편이 잠을 안 자고 일주일 동안 지켜 가지고 화(和)가 벌어지는 거예요. 그게 얼마나 멋진 복수예요! 그렇게 위하면서 복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살아 있어야 돼요. 사랑이 죽으면 안됩니다. (187-85)
여자가 왜 태어났어요? 남자를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선생님이 위하는 철학을 말했지요?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위하라고 하면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중심삼고 전체 투입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는 거예요? 공기로 말하면, 고기압권이 만들어지면 자연히 돌아오지요?
왜 투입해야 되느냐? 투입하는 데 있어서 순환법도가 벌어집니다. 순환하는 데는 소모가 벌어집니다. 소모가 벌어지는데 사랑의 힘은 소모가 안 벌어진다구요. 사랑은 하면 할수록 커지는 것입니다. 자연과학에 있어서의 힘이라는 것은 언제나 입력이 출력보다 크지만, 사랑의 세계에서는 입력보다 출력이 큽니다. 그것이 영적인 기준에 있기 때문에 자연세계와 균형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래, 하나님이 자기를 투입하는 것은 순환법도를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은 폭발작용을 하기 때문에 순환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사랑은 폭발작용을 합니다. 그러면서 컸다 작았다 하기 때문에 사인 커브로 돌아갑니다.
지구도 숨쉰다는 걸 알아요? 지구도 숨을 쉬고 있습니다. 그거 모르지요. 1미터 가까이 숨을 쉬고 있습니다. 사람도 숨쉬지요? 숨을 내쉬면 들이쉬어야 되지요? 내쉬는 것이 길다 하면 들이쉬는 것도 같이 긴 것이 이상적인데, 내쉬는 것을 길게 내쉬고 들이쉬는 걸 한꺼번에 할 때는 입을 벌리고 이렇게 해야 된다구요. 순리대로 안 할 때는 부작용이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리라는 것은 주는 대로 환경에 맞춰서 모두 다 받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 병이 나고 그럽니다. 부작용이 벌어지는 그 차이에 대한 것이 나를 치게 되면 내가 허물어지는 놀음이 벌어집니다. 그렇게 반작용이 벌어져 가지고 나를 파괴시키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187-87)
위하는 자는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이 독재자가 아닙니다. 하나님도 인간을 위해서 투입하셨습니다. 그래, 하나님이 인간 앞에 계시는 것은 위해서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년만년 하나님을 따라가려고 한다는 겁니다. 위하는 우주의 존재세계 앞에 자기 스스로의 존재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위해서 존재해야 합니다. 위하는 데 있어서 동서양을 통할 수 있고 고금을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은 하나님을 대신하기 때문에 마음은 몸뚱이를 위해서 언제나 투입해야 됩니다. 몸을 위해서 언제나 투입해요, 안 해요? 그거 얼마나 고달파요! 내 몸뚱이가 원하는 대로 하려면 벌써 마음이 사인합니다. 그러면 안된다고 그러지요? 투입해 줬는데, 그게 돌아와야 될 텐데 돌아오질 않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은 슬픈 것입니다.
그래서 줄래야 줄 수 없고 받을래야 받을 수 없게 될 때 불행한 것입니다. 언제나, 밤이나 낮이나 주고 싶을 때 주고받고 싶을 때 받을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것입니다. 더욱이나, 사랑을 중심삼고 그러합니다. 그거 혼자서 할 수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통일된 이론을 통일원리에서 찾아야 되느냐 이겁니다. 위하는 길 외에는 통일이 없습니다.
여기서 어떨 때 통일이론을 가져올 수 있느냐? 남자가 말할 때 “내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겠다는 것은 당신을 위해서요” 이래야 됩니다. 내가 먼저 잡는 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 당신 때문이다 이겁니다. 여기서만 모든 것이 해결돼요. 여자가 “내가 먼저 잡는 것은 당신 때문이요. 내가 아끼는 당신을 위해서 하는 거요” 할 때는 남자도 오케이, 여자도 오케이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서로 위하는 걸 볼 때 “나를 잡아라”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체의 완성이 벌어집니다.
그렇지만 서로가 자기 주장을 할 때는 완전히 분리됩니다. 거기서는 통일적인 이론을 발굴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궁극에 가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종적인 통일을 요구하는데, 그 종적인 기준이 어서 오라고 당겨 줄 수 있는 놀음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 위해야 됩니다. 그렇게 위하는데서 완전히 통일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187-89)
성경에도 그랬잖아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태복음 22:37-39) 했습니다. 네 몸과 같이 하라는 것은 여러분이 타락한 여러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위해서 끝까지 희생하는 사랑을 가지고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기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거지요. (187-91)
새로운 차원으로 돌아가야
여러분은 선생님을 뭐라고 그래요? 「참부모님이라고 합니다.」 참부모님인 줄 알면, 참자녀면 우리 집 찾아와서 먹고 자고 다하지요. 어저께 여기서 잤어요? 「예.」 미안하지 않아요? 「안 미안합니다.」 밥은 여기서 해줘요? 「먹었습니다.」 먹었어요? 그거 미안하지 않아요? 「안 미안합니다.」 나는 평안도 사람이고, 여러분은 어디 사람들이에요? 다 관계없는 사람들 아니에요? 그렇지만 사랑으로 얽혀지면 관계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관계 있는 거예요. 그래서 통일교회가 다른 것입니다.
부자관계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랑의 가정이상을 가르쳐 주고, 그 가정이상의 확대가 지상천국이라고 하고 말이에요, 세계 박애주의라는 걸 생각할 때, 사랑을 중심삼고 모든 것이 돌아갑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위대한 게 그거라구요. (187-92)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여자면 여자, 남자면 남자가 왜 태어났는지 알았다구요. 왜 남자 여자가 결혼을 해야 되고, 왜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가 하는걸 알았습니다. 종적인 부모의 핏줄을 이어 가지고 재현해서 생명이 태어났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여기에 와서 십(十) 자가 될 때 그 십 자의 각도가 틀어지면 각도를 맞춰야 됩니다. 절대몸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야 됩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었어요?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지경이 어떤 곳이냐 이거예요. 몸과 마음은 이 자리에서 딱 수평이 되어서 작동 안 하는 것 같습니다. 배고픈 자리를 잊어버린 자리입니다. 사람이 제일 힘든 것은 배고픈 것하고, 자는 거하고, 그 다음에는 남자면 남자의 이성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 자리에 딱 들어가면 이것들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습니다. 배고픈 것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세계에서는 금식을 하는데, 그건 뭐냐 하면 이 육신을 지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냐? 해와는 영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아내였습니다. 그랬지요? 아담 속에 들어가고 해와 속에 들어가가지고 하나님이 사랑하려고 그러셨다구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내적인 나입니다. 그런데 이성성상의 분립적인 입장에 있기 때문에 다릅니다.
그것이 왜 분립되었느냐? 사랑을 보다 자극적으로 느끼기 위해서입니다. 자극적이면서 위치를 이동하기 위한 것이고 환경을 변경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위치를 변화시키니까 번식이 벌어집니다. 종적인 하나님으로서는 번식을 못 하십니다. 종적인 기준의 하나님이 번식하실 수 없으니까 횡적인 것에 들어가 가지고 다시 합하는 거예요. 그래서 번식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187-94)
해방을 어디서 잡을 수 있느냐
인간이 태어난 것은 사랑의 세계를 여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의 우주를 여행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내가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핏줄을 이어받게 될 때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 가운데 동참했습니다. 나라는 것은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 가운데 동참한 거예요. 그게 위대한 것입니다. 내 생명의 출발은 뭐냐?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 가운데서 태어났기 때문에 나를 중심삼고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을 연결시켰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몰랐지만 그 사랑의 근본에 동참자입니다. 그러니까 동위권에 있는 것입니다. 작다고 어머니가 나를 무시 안 해요. 작은 그 애기를 어머니 아버지가 밤낮 들여다보고 채신을 굽혀 가지고 그저 하늘같이 위하고 땅같이 위하고 우주같이 사랑하려고 합니다. 사랑은 동위권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모든 것을 주고파요. 사랑도 주고 싶고, 생명까지 주고 싶은 거예요. 왜? 사랑에는 상속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원칙은 천년만년 마찬가지의 종적인 대를 이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도 자식을 대해서 양심적으로 당당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길을 올바로 가야 됩니다. 남편으로서 아내를 대해서도 “당신을 원칙적으로 사랑했지” 할 수 있어야 부끄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미국이 자유를 부르짖다 망했습니다. 자유에는 원리원칙이있는 것인데, 사랑을 위반한 자유일 때는 망하는 것입니다. 평화라는것은 혼자일 때 있을 수 없습니다. 평화라는 것은 상대권과의 사이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내 자유만을 위해서 너는 싫다는 것도 자유예요? 아닙니다. 너를 위하는 것이 우주가 원하는 자유입니다. 그렇게 위하는 자유를 만들어야지 자기 독자적인 면에서 고립적인 추세를 지니고 있으면 그 독재자의 자유는 파괴를 가져오는 것입니다.(187-96)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일생을 마치는 것
‘하나님의 뜻’ 하게 되면 창조이상 아니에요? 책임분담이 뭐예요? 사랑을 중심삼고 모든 소유적인 결정을 해 가지고 자주적인 대상이 아니면 주체의 자리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가 한 마음을 갖고 남편을 사랑하면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어머니의 복중에 있을 때부터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한 거예요. 그리고 나 가지고 또 사랑하고,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사랑합니다. 대학교까지 16년하고, 유치원까지 하면 18년, 그 기간에 전부 다 부모의 사랑권 내에서 자랍니다.
그 어머니 아버지는 자기 아들딸을 최고로 사랑하는데 남과 같이 해주지 못하면 가슴이 아프고 다 그런거라구요. 그런 것 모르지요, 다? 이제 아들딸을 낳아 봐야 “우리 부모가 이랬겠구만” 하고 안다구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버리고 돌아다닐 때 부모는 어떻게 편안한 잠을 잤으며 언제 편안한 시간을 가졌겠느냐? 언제나 초조한 마음, 불안한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하는 걸 여러분이 알고 “우리 부모가 훌륭하다” 하는 걸 깨달아야 된다구요.
누구든지 태어나서 16년이면 철 다 들지요? 그러니까 18세 내지 20세가 되게 되면 결혼합니다. 그래 가지고 또 사랑이에요. 결혼해 가지고 또 몇 년 동안 아들딸을 낳고 사랑입니다. 그래서 시집 장가를 보내게 되면, 손자를 사랑을 하게 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말이에요, 아들딸보다도 손자 손녀를 더사랑한다구요. 사람은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보다도 할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지요? 할아버지의 소원이 뭐냐 하면 손자 손녀를 쓰다듬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집 가운데는 뭐가 있느냐 하면, 거기에는 옛날에 자기가 소년 때부터 청소년 때를 지낸 것과 같은 그런 형(形)이 다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장가가 가지고 아들딸까지 다 있다구요. 자기가 일생동안 걸어나온 것을 재차 실체로 볼 수 있는 환경이 벌어집니다. 할아버지가 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되면 동서남북을 다 갖추어 가지고 수많은 자손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그 자손들이 전부 다 사랑에 엉켜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복입니다. 그래, 사랑에서 낳아 가지고 사랑에 의해 흘러나오게 돼 있습니다. 인생행로가 사랑길을 이어 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 때문에 태어났다는 인생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일생을 마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리적이고 순리적인 법도를 걸어가게 되는 것이고, 지상세계에서 천상세계까지 그냥 그대로 계속되는 것입니다. (187-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