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차 사육사 강철원씨
“판다들의 이야기를 제가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속 시원하게 원하는 게 뭔지 사람 말로 들어보고 싶습니다.”
판다 사육사 강철원씨는 “푸바오가 (중국에) 가서도 잘 적응할 거라 믿는다. 언젠가 중국에 갈 기회가 있으면 푸바오를 찾을 것”이라고 했다. /에버랜드
경기 용인 에버랜드의 판다 사육사 강철원씨(54)는 24일 오전 8시부터 판다들의 여름나기를 위한 각종 특식을 준비 중이었다. 더위를 싫어하는 판다들을 위해 ‘얼음 평상’을 깔아두고 ‘얼음 냉면’ 같은 특식도 준비했다. 오전 10시 방사장에 나온 푸바오가 당근과 대나무 잎을 먹은 뒤 얼음 평상에 몸을 비벼대자, 강씨가 미소를 지으며 휴대전화로 푸바오의 모습을 찍었다. 강씨는 “푸바오가 팔짱도 끼고, 다리도 붙잡는데 어떤 애정 표현을 하는 건지 들어보고 싶다”며 “저를 정말로 좋아하는 건지, 좋아하는 척을 하는 것인지도 궁금하다”고 했다.
36년 차 사육사인 강철원씨는 동물 80여 종을 길렀다. 그중 가장 그와 깊은 인연을 맺은 동물은 판다다. 2016년 중국에서 온 러바오·아이바오를 만나 판다들의 ‘아빠’로 불렸는데, 2020년 국내 최초 자연 임신으로 푸바오가 태어나며 ‘할아버지’가 됐다.
강씨와 판다의 인연은 1994년부터 시작됐다. 한·중 수교 2주년을 기념해 중국이 한국에 선물한 밍밍과 리리를 4년간 돌봤다. 애정으로 돌봤지만, 1997년 ‘IMF 외환 위기’가 터졌고 “이런 시국에 판다를 키우는 건 사치”라는 시선 때문에 중국으로 돌려보내게 됐다. 강씨는 “판다를 돌려보내고 아쉬움이 컸는데, 언젠가 다시 판다가 돌아오면 잘 키우고 싶었다”고 했다.
강씨는 판다 사육에 대비해 지난 2001년 중국어 강의도 들었다고 한다. 강씨는 “중국에 있는 판다 사육 자료 등을 보고, 판다 사육사·전문가들과 직접 소통하고자 중국어를 익히기 시작했다”고 했다. 2014년엔 중국어 공부를 위해 중국 베이징에서 5개월간 연수를 하기도 했다.
지난 2016년, 아이바오·러바오가 한국에 오면서 판다와의 연은 다시 시작됐다. 그는 “아이바오가 첫 새끼였던 푸바오 때보다 쌍둥이 동생 출산·육아에 훨씬 능숙해졌다”며 “분만 전에 진통 시간도 줄어들었고, 분만 시간도 30분 정도 빨라졌다”고 했다. 강씨는 “첫 육아인 푸바오 때는 아무래도 새끼를 더 애지중지하고 걱정하는 기색이 많았다”며 “이젠 육아도 익숙해졌는지 쌍둥이를 다룰 때는 훨씬 더 편안하게 한다”고 했다.
강씨는 내년이면 중국으로 떠나게 될 푸바오에 대해 “제가 딸 둘이 있는데, 딸들도 때가 되면 출가해서 독립 생활을 하는 것처럼, 판다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게 푸바오 입장에서 행복이 아닐까 싶다”라며 “거기서 좋은 짝을 만나 또 판다로서의 ‘판생(生)’을 이어가고, 의젓하게 잘 지낼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판다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강 사육사는 “믿음직한 가장 러바오, 뭘 해도 예쁘고 아기도 잘 키우는 아이바오, 맏언니로서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푸바오, 쌍둥이로 태어나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아기들, 모두 한 가족이 돼서 매우 기쁘다”며 “제가 돌봤던 것보다 저에게 더 많은 행복과 즐거움을 줬던 판다에게 오히려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곧 떠나갈 푸바오와 관련해선 특별히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밝고 지혜로운 푸바오는 어디에 있든 잘 적응하고 멋지게 생활해 갈 것이라 믿어. 행복했던 에버랜드에서의 추억과 곁에 있던 할부지를 잊지 말아 주렴. 푸바오는 할부지에겐 영원한 아기 판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