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화석처럼 / 이원규
순전히 자기 최면이었지
처음 너를 만났을 때
언제 어디선가 꼭 한번은 본 듯하여
눈길,
마음길,
몸길이 쏠리다 못해 그만
댐의 수문이 터지고 말았어
내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홍수였지
돌을 보면 돌 속에도 꽃이 피었어
매화석엔 매화꽃
국화석엔 국화꽃들이
날마다 처음처럼 수억 년 만발하듯
너의 첫 모습 그대로
내 삶의 깊은 지층 중생대 백악기의 화석이었어
날이 갈수록 돌 속의 고사리
푸른 잎들이 너를 향해 웃자라고
덩치만 큰 초식 공룡 한 마리
성큼성큼 네 가슴팍에 발자국을 찍었어
그리고 또 그리고
나는 화살표처럼 뼈만 남은 물고기
너를 향해 화살표처럼 땅헤엄을 쳐도
창녕 우포늪의 빗방을 화석
끝끝내 돌아서던 너의 눈물자국이었어
언제나 첫사랑은 화석처럼
몸은 떠나고 표정만 남아서
몸은 떠나고 이렇게 무늬만 남아서
그 누구를 만나도
언제 어디선가 꼭 한번은 본 듯하여
눈길,
마음길,
몸길이 쏠리다 못해
자꾸만 추억의 수문이 터지고
그리고 또 그리고는 있어도
그러나 또 그러나 반전은 없었어
비로소 자기최면이 끝나고
언제나 첫사랑은 화석처럼
유체이탈에 접어든 돌속의 무늬
그 표정이 바로
누구에게나 내장된 첫사랑의 진신사리였어
- 이원규 시집 <강물도 목이 마르다> 2008
[출처] 이원규 시인 12|작성자 동산
카페 게시글
┌………┃추☆천☆시┃
첫사랑은 화석처럼 / 이원규
못난보스
추천 1
조회 1,238
24.11.27 04:25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