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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숙령은 처절하게 웃었다. “호호호……정말이에요. 전 정말 아기를 가졌어요.” 왕세열은 자신이 지금 슬퍼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기뻐하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알 수가 없었다. 그는 죽음이 코앞에 닥쳤을 때 죽기 전에 자식이나 낳아서 그를 대신하여 자신이이루지 못한 원수를 갚게 하리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다. 사실그와 남숙령의 사이에는 진정한 애정이 없었다. 또한 그는 아이를 바라지도 않았다.그러나 이미 잘못은 저질러진 것이었다. 왕세열은 다시 진저리를 치며 물었다. “그게 정말이요?” “그래요. 부인하지는 않겠죠?” “아니오.” “그럼 기쁘신가요?” 왕세열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기쁘오.” “내가 당신의 아내라는 것을 인정하시나요?” “인정하오. 그러나 한 가지 물어둘 것이 있소.” “말씀해 보세요.” “나에겐 당신 이외에도 많은 여자들이 있소.” “그건 알고 있어요. 전 당신을 탓할 생각은 없어요.” “고맙소.” 왕세열의 말이 끝나자마자 돌연 날카로운 교갈 소리가 들려왔다. “왕세열, 너의 명도 꽤나 질기구나.” 그 음성의 장본인은 바로 주여려였다. 왕세열은 안색이 급변하여 급히 고개를 돌렸다. “당신이었군.” “그렇다.” “그렇지 않아도 내 당신을 찾고 있었소.” “무슨 일로?” “태극진군과 마귀성검 팽북문은 어찌 되었소?” “호호호……난 또 무슨 일인가 했지. 그들은 아마 염라전(閻羅殿)에 들어간 지이미 오래되었을 것이다.” “뭣이?” “왜 놀라느냐. 그들은 내가 너와 동시에 만 장의 골짜기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게 정말이오?” “그렇다.” “그렇다면 나도 당신을 죽여서 보상을 받겠소.” 외침과 동시에 왕세열은 날카롭게 몸을 퉁기며 주여려에게 1장을 가했다. 그러나그가 막 몸을 일으킨 순간 돌연 찢어지는 듯한 냉갈이 터져 나왔다. “멈춰라!” 냉갈을 터뜨린 사람은 놀랍게도 옥면협이었다. “왕세열!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방자하게 행동을 하는 거냐?” 왕세열은 옥면협의 말뜻을 알 수가 있었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배검의 회장으로써그 어느 누구도 신검을 경멸하는 거동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옥면협이 다시 냉랭히 소리쳤다. “왕세열! 만약에 또 출수를 했다간 내 너부터 용서치 않겠다.” 왕세열은 들었던 손을 내리고 주여려를 무섭게 쏘아보았다. “주여려! 내 결코 너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내가……주여려라는 것을……어떻게……알았느냐?” “그게 뭐 대단한 것이라고 그러느냐?” 이때 방방이 갑자기 불쑥 나섰다. “왕세열! 나도 아직 기억하나요?” 왕세열은 그녀를 흘낏 쳐다보고는 씁쓸하게 웃으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는 방방과도 부부라는 명분이 있지만 결코 그녀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제자리로 돌아온 그는 많은 생각을 했다. 과연 어떤 여자를 선택해서 배검을 할 것인가? 배검의 거행 시각은 차츰 가까워지고 대전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이때 문 밖으로부터 갑자기 낭낭한 대갈 소리가 들려왔다. “관숙금, 납시오.” 그 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 백의소녀가 대전으로 들어섰다. 전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관숙금이라는 백의소녀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그러나 유독 한 사나이는 그녀가 누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 왕세열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섬뜩해 옴을 느꼈다. 관숙금은 매우 반가운 듯한 표정으로 왕세열에게 다가갔다. “왕 소협! 안녕하셨어요?” “덕분에……낭자께서는 안녕하시오?” 그녀는 방긋 소리 없이 웃었다. “제가 여기에 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셨죠?” “그렇소. 정말 뜻밖이오. 한데 여기에 무슨 일로 왔소?” “아무런 일도 없어요. 다만 소협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에서……괜찮겠죠?” “물론이오. 영존과 영당께서도 안녕하시오?” “네. 그들은 소협을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무슨 말씀을……” 관숙금은 정색을 하고 화제를 돌렸다. “왕 소협! 여기가 배검지회를 개최한다는 곳인가요?” 왕세열은 약간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런데 어떻게 아셨소?” 관숙금은 몹시 부끄러운 듯 얼굴에 홍조를 띠고 나지막이 말했다. “전 당신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당신이 떠난 후로 저도 곧 내려왔어요. 그런데당신을 만날 수가 있어야죠. 그러던 중에 전 어떤 사람을 통해서 당신이 여기에있을 거라는 소리를 들었죠. 그래서 이렇게 달려온 거예요.” “그럼 오직 나를 만나기 위한 목적에서 여길 왔다는 말이오?” “그래요. 그럼 이만 가겠어요.” “가다니? 왜 그리 급하오.” “당신을 만나보았으니 이제 안심이 돼요. 안심하고 가겠어요.” 관숙금의 애정과 관심이 깃든 얘기를 듣자 왕세열은 그네에 대한 죄책감과쑥스러움에 일순 당황감을 금할 수 없었다. 왕세열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배검이 끝난 뒤에 가도록 하시오.” “저의 뜻을 만류하시는 건가요?” “그렇소.” 관숙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거벼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아요. 당신께서 그러시다면……” 그녀는 매우 즐거운 표정이었다. 이때 장생자가 한발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왕세열! 이 낭자는 누구요?” 왕세열은 흠칫하고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저……이 낭자는……” 왕세열은 문득 말끝을 흐리고 쑥스럽게 웃어 보였다. “배검이 끝난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장생자는 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갑자기 옥면협의 우렁찬 음성이 대전을 진동시켰다. “지금 무슨 시각이오?” 그러자 전내에 누군가가 큰소리로 대답했다. “오시(午時) 삼각(三刻)이오!” “그럼 지금부터 배검이 시작되겠소.”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다시 큰소리로 말했다. “배검이 개최되기 전에 먼저 여러분께 알릴 말씀이 있소.” 대전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이 잠잠해졌다. 옥면협이 다시 외쳤다. “소생, 우충은 당년에 행운을 얻어 왕문청과 함께 무정동으로 들어가게 되었소.그리하여 일대의 기인이신 묵혈마종을 사부로 모시게 되었소.” 옥면협의 말소리를 듣고 대중 속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그럼 묵혈마종 대협이 아직도 살아 계시다는 말씀이오?” “아니오! 우리들이 그의 문하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는 그분이 이미 서거하신후였소. 우리는 다만 그분의 유서에 따라 그분의 문하가 된 것이오. 지금생각해보니 우리가 그분의 문하로 들어간 지가 어언 20 년이란 세월이 흘렀구료.가사께서는 신검만은 그대로 묻힐 수는 없다고 생각하셨소. 그분께서는 오늘 불가의성지인 소림사로 신검을 옮겨 수배를 받게 하도록 유언을 하셨소. 누구든지 이신검에 절을 해서 검집에서 세 치만 뽑아진다면 그가 바로 신검의 주인이 되는것이오. 가사께서는 또 이 신검의 주인이기도 하기 때문에 필히 한 쌍의 부부가절을 해야만 이 신검이 검집에서 뽑아질 수 있다는 것이었소……” 이때 누군가 또 소리쳤다 “만약에 아직 미혼인 사람은 어떻게 하오.” “누구든지 일남일녀면 되오. 그리고 그들이 신검에서 절을 올려서 검이 뽑아지면그들은 한 쌍의 부부가 되는 것이요.” 누군가가 다시 큰소리로 물었다. “그럼 여기에 모인 사람 중에서 그 누구와도 배검을 할 수가 있다는 말이오?” “그렇소.” 주여려가 냉소를 쳤다. “흥! 정말 특이한 배검지회군.” 옥면협은 몹시 언짢은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가사께서 그렇게 분부 하셨으니 따르든 그렇지 않든 그건 여러분의 뜻에맡기겠소. 자! 그럼 어서 시작합니다.” 장내가 갑자기 웅성이며 배검지회가 시작되었다. 우선 부부동반자들이 먼저 배검을 했다. 그들은 모두 실망어린 표정으로 쓸쓸히 돌아갔다. 어떤 사람은 짝을 찾을 수가 없어서 그냥 떠나는 사람도 있었다. 또는 배검을하고도 검이 검집에서 뽑아지지 않아 떠나간 사람도 있었다. 이윽고 주여려가 대담한 자세로 나섰다. 그녀는 한 문인을 끌고서 신검의 가까이로 다가가 배검을 했다. 하지만 신검은검집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주여려는 냉랭히 웃으며 다시 물러났다. 그런데 그녀가 물러선 후로는 배검을 하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장생자가 불쑥 나서서 왕세열에게 말했다. “왕세열! 이제 네가 나갈 차례다.” “제가 말입니까?” “그러 넌 배검하러 온 것이 아니란 말이냐?” 왕세열은 머리를 극적이며 우물거렸다. “그런 건……아니지만……” “그럼 왜 우두커니 서 있는 거냐?”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누구와 배검을 하란 말씀입니까?” “누구든 네가 가장 좋아하는 낭자와 배검을 하면 되잖겠느냐?” 그러자 왕세열은 미리부터 작정을 하고 있었든 것처럼 어금니를 꽉 물더니 지옥마화진봉봉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 낭자! 나와 배검을 하겠소?” 지옥마화 진봉봉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리고 떨리는 음성으로 되물었다. “제……제가요?” “그렇소.” 지옥마화는 갑자기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그 많은 여인들 중에서 자신에게배검을 하자고 제의하다니…… 그녀는 일순 매우 당황해졌다. 그녀는 그를 향한 자신의 감정이 사랑인지 아니면미움인지 알지 못했다. 지옥마화 진봉봉은 신검에 배검함에 있어 왕세열에게 자신이 선택될 줄은 미처생각지 못했었다. 그녀는 선뜻 왕세열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얼굴이 상기된채 망설이고 있었다. 왕세열이 미혹한 표정으로 다그쳤다. “진 낭자! 왜 마음이 내키지 않소?” 지옥마화는 고개를 떨군 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왕세열은 자신을 향한 원망의 눈초리를 의식했다. 자신과 지옥마화가 함께 배검을 해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짐작할 수 없으나그는 아까부터 지옥마화의 진심은 무엇이기에 자신의 제의를 선뜻 받아들이지못하고 저리 망설이고 있는 것일까. 왕세열이 알고 확신하기로는 지옥마화는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여자로서 가장고귀한 순결까지 짓밟히지 않았는가. 그런데 지옥마화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진 낭자! 뭘 망설이는 거요? 자, 어서 신검에 배검을 합시다!” 왕세열은 기다리다 못해 매우 강경한 어조로 다그쳤다. 그러자 지옥마화는 매우조심스런 태도로 왕세열에게 다가섰다. 왕세열은 지옥마화 진봉봉과 함께 신안 앞으로 갔다. 그리고는 정중히 절을 했다. 그들은 모두 몹시 긴장했다. 자신들이 배검을 하면 과연 신검이 열려질 것인가? 그리하여 자신들이 정다운 한 쌍의 부부가 되어질 것인가. 왕세열과 지옥마화는 공손히 배검을 하고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동시에신검으로 시선을 돌렸다. 순간, 그들의 안색이 일제히 크게 변했다. 신검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여전히제자리에 있었다. 지옥마화는 긴장된 표정을 완화시켰다. 그리고는 미리 짐작이라도 했었다는 듯이담담히 입을 열었다. “왕 소협! 만약에 우리가 부부로 맺어질 인연이었다면 그런 잔혹한 일이일어나지는 않았을 거예요.” 왕세열은 넋을 잃었다. 그는 지옥마화의 말을 듣는 건지 아닌지 광채 없는 시선을허공으로 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지옥마화는 기분이 매우 쓸쓸했다. 이 넓은 세상에 갑자기 혼자밖에 남지 않은외로움을 느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녀는 복받치는 설움을 애써 억누르며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왕 소협! 전 그저 소협께서 저를 생각해 주셨던 것으로 만족해요. 저는 추호도 그이상의 욕심은 가지지 않았어요……” 지옥마화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왕세열은 마치 돌부처라도 된 듯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지옥마화는 가늘게 한숨을 토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때, 남숙령이 선뜻 올라섰다. “왕 상공! 제가 당신과 배검하겠어요. 우리가 배검하여 검이 뽑히든 뽑이지 않든간에 우리는 부부니까요.” 왕세열은 긴 한숨을 내쉬더니 순순히 남숙령의 뜻에 따랐다. 그는 남숙령과 함께 다시 절을 했다. 하지만 검은 여전히 움직일 줄 몰랐다. 왕세열은 갑자기 신검이 의심스러워졌다. 배검을 하면 신검이 검집에서 뽑아진다던말이 거짓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숙령은 고소를 띠고 신안 앞에서 물러섰다. “전 이 검을 얻을 복이 없나 봐요.” 돌연, 방방이 냉소를 치며 다가섰다. “왕세열! 우리가 부부의 명분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으시겠죠?” 왕세열은 안색을 일변시키고 냉막하게 외쳤다. “소생은 파혼할 생각은 없소!” 방방은 왕세열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흘기며 앙칼지게 소리쳤다. “그럼 벌써 수차례나 걸쳐서 저와의 혼인을 거절하는 이유가 뭔가요? 영존과가친께서 우리 두 사람의 혼인을 맺어 주셨는데 그걸 거역하실 생각인가요?” “당신을 맞아들일 것이오. 하지만 지금이 아니오.” “그럼 우리 두 사람이 배검을 해서 신검이 열린다면 나와 혼인을 할 건가요?” “아니 그럼 나……나와 배검을 하잔 말이오?” “그래요. 왜 안 되나요?” 왕세열은 난처한 표정으로 떠듬거렸다. “뭐……안 될거야……없지만……” 그는 비록 그렇게 말을 했지만 내심으로는 정말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방방에게는왕세열 자신과 배검을 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왕세열은 만약 방방과 함께 배검을 해서 신검이 세치나 나오게 되면 어떻게 할것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을 굴렸다. 물론 그러서는 원치 않는 일이었으나 왕세열은 어쩔 수 없이 그녀와 배검을 해야했다. 배검을 마친 왕세열은 심장까지 토해낼 듯한 구토증을 느끼며 천천히 일어섰다. 그러나 신검은 여전히 뽑히지 않고 있었다. 왕세열은 들었던 무거운 바윗덩어리를 땅으로 내려놓는 듯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우리에게는 부부의 인연이 없는가보오.” 방방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천천히 물러섰다. 그러나 왕세열은 그 자리에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왕세열은 다른 애인들과 모두 배검을 해 보았다. 하나 검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왕세열은 검을 얻겠다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경을 지켜본 장생자가 즉시 우청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우 낭자! 한번 시험해 보려므나.” 우청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제가요?” [연재] 무인향(武人鄕) 62화 첨부파일 : 등록자: 김도연(kdy28) 조회수: 165 등록일: 2003-02-10 05:09:20 본문크기: 8927 bytes “그렇다.” 우청은 왕세열의 눈치를 살피며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뭐가 하지만이냐?” “전 그와 아무런……” 장생자도 왕세열을 힐끗 바라보고는 헛기침을 두어 번 뱉어냈다. “그건 모를 일이다. 너와 왕세열이 부부의 인연이 있는지 말이다……” 우청은 가슴이 섬뜩했다. 사실 그녀는 왕세열을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그런데 장생자가 갑자기 자신과 왕세열이 부부의 인연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왕세열을 향한 그녀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고백하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유는 그녀 자신의 조건이 도저히그와 맺어질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우청은 이미 26살의 원숙한 여인이었다. 왕세열의 나이는 겨우 18, 자신은 그보다 8살이나 위인 것이다. 만약 그녀가 장생자의 말에 따라 왕세열과 배검을 해서 검이 열린다면 그녀는왕세열의 정식 아내가 되는 것이다. 장생자는 우청이 아무런 대꾸도 없이 얼른 나서지 않는 것을 보자 다시 재촉했다. “뭘 하는 거냐?” 우청은 결과야 어떨지 모르지만 자신은 이미 왕세열을 사랑하고 있는지라 오히려 잘되었는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는 즉시 신안 앞으로 나아갔다. 왕세열은 가슴이 섬뜩했다. 그러나 그가 알고 있는 여자 중에서는 우청만 남지 않았는가? 왕세열은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았다. 이유는 우청은 항상 근심의 그늘에 덮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여인과 부부의 인연을 맺어야 할 것인가. 왕세열은 추호도 그렇기를 바라지 않았다. 왕세열은 뭇 여인들에게 애정의 빛을 너무 많이 진 사람이었다. 이때 우청이 왕세열의 곁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들은 한 동안 서로의 눈을 응시하고 서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가슴엔 각자 다른 생각이 스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이 배검을 해서 만약 검이 열린다면 그것은 그들 자신에게 있어 기쁜일인가 아니면 슬픈 일인가. 잠시 주저하던 그들은 끝내 신검을 향해 절을 했다. 그들의 심장은 무섭게 고동치고 있었다. 그들은 여느 때처럼 일어서기가 무섭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신검은 여전히신안 위에 놓여져 있었으나 검은 여전히 검집에 굳게 꽂혀 있었다. 왕세열과 우청은 물론 전내에 있는 사람들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왕세열이 여러 명의 여자와 배검을 했는데도 신검은 추호의 움직임도 없었기때문이었다. 진정 왕세열이 검을 차지할 복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그 여자들과 왕세열 사이에부부의 배분이 없다는 말인가? 왕세열은 실의에 찬 표정으로 긴 한숨을 쉬며 우청과 함께 신안에서 물러났다. 이때 주여려가 나서며 냉랭히 말문을 열었다. “왕세열! 너도 검을 얻을 복이 없는가 보구나!” 왕세열은 담담히 웃으며 장생자의 곁으로 가 섰다. 장생자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중얼거렸다. “거참 이상한 일이군……” 왕세열이 고소를 날리며 물었다. “검이 뽑아지지 않는 것이 말입니까?” “그렇다.” “아마도 저에게 복이 없는 가 봅니다.” “아니다. 너의 짝을 찾지 못해서이다.” “제가 알고 있는 여자들은……모두 여기에 모인 여자들뿐입니다.” “아니다. 아직 한 사람이 남았다.” “네? 그게 누굽니까?” “저 낭자!” 장생자는 관숙금을 가리키며 말했다. 왕세열은 갑자기 정신이 아찔해짐을 느꼈다. 관숙금은 그를 사랑하고 있으나 그는관숙금에게 추호의 연정도 품지 않았다. 관숙금은 매우 착한 여자였다. 왕세열은 관숙금이 애정의 영역에서 가슴아파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지금 그녀는자신과 배검을 하지 않은 유일한 여자였다. 그렇다면 그녀가 왕세열의 아내가 된단 말인가. 이것은 매우 난감한 일인 것이다. 왕세열은 그런 생각에 잠겨서 마치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그때 관숙금이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왕 소협……” “왜 그러시오?” “배검하여 검이 세 치나 열리게 되면 부부가 되는 건가요?” “그렇소.” “그럼 당신과 배검을 해봐도 되겠어요?” “낭자가 말이오?” “그래요. 난 원래 배검을 하러 온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한번 해 보고 싶어요.혹시……” 왕세열은 고소를 띠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심정이 어떤지 자신도 몰랐다. 왕세열은 하는 수 없이 입을 굳게 다물고 신안으로 올라갔다. 관숙금은 왕세열의 뒤를 바짝 따라갔다. 그들은 신안과 다섯 치의 거리에서 멈추어 섰다. 이것은 관숙금의 마지막 기회였다.만약에 그가 이번에도 또 실패를 한다면 검은 완전히 단념해야만 한다. 왕세열과 곤숙금은 한참 동안이나 침묵을 지키고 서 있더니 이윽고 공손히 절을했다. 그때였다. 두 사람이 배검을 하는 찰나 전내 있던 무림고수들은 일제히 경호를질렀다. “검이 열렸다!” “정말이다. 정말 세 치나 되게 열렸다.” 사람들은 마구 아우성을 쳤다. 왕세열은 갑자기 쇠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눈앞이 아찔하여 일시에 일어설 수가없었다. 이것은 정말 그가 예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신검이 세 치나 뽑아졌다는 말이 과연 사실인가? 결국 신검은 왕세열의 조그만 바램도 한꺼번에 무너뜨리고 만 것이다. 관숙금은 장차 그의 아내가 될 것이다.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왕세열은 한참만에 일어서며 시선을 신검으로 가져갔다. 과연 신검은 검집에서 세 치 밖으로 나와 있었다. 신검에서 무서운 광망이 폭사되고 있었다. 왕세열은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이제 그는 수십 명의 무림고수들의 경호성중에서 정말로 신검의 주인이 된 것이다. 관숙금은 몹시 흥분하여 왕세열을 마라보며 격동된 어조로 소리쳤다. “왕 소협! 신검이 열렸어요!” 왕세열은 자신이 신검의 주인이 된 데에 대해 가슴이 벅찼으나 웬일인지 얼굴에는미소는커녕 오히려 시름의 빛이 드리워졌다. 그는 관숙금을 바라보았다. 관숙금도 만면에 잔뜩 희열의 빛을 띠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왕세열은 하는 수 없이 그녀에게 고소로써 대신해 주었다. 옥면협이 매우 침착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 조용히 하시오.” 순식간에 전내는 엄숙하게 정돈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옥면협과 왕세열에게 쏠려 있었다. 옥면협은 매우 엄숙한 표정으로 인군들을 휩쓸어 보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가사의 신검이 주인을 만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오. 이제 그의 힘을빌어 무림의 악도를 물리치고 소림의 복지를 위해 선전분투하여 가사의 소원을이루어주길 바라오.” 옥면협은 잠시 말을 멈추고 왕세열과 관숙금에게 고개를 돌렸다. “신검하에서 두 분은 부부가 되는 것이오.” 왕세열은 자신의 소감을 형용할 수가 없었다. 옥면협은 신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왕세열! 낭자의 존함이 어떻게 되오?” “관숙금입니다.” “이제 가사의 신검을 왕세열과 관숙금, 두 분께 드리겠소.” 왕세열은 즉시 앞으로 나아가 옥면협이 건네주는 검을 받으려고 했다. 바로그때였다. 주여려가 불쑥 나서더니 냉랭히 소리쳤다. “잠깐!” 돌연 그녀가 나서자 전내의 모든 사람들은 일순 대경실색하여 그녀에게 시선을집중시켰다. 옥면협이 냉막하게 물었다. “무슨 분부가 계시오?” 주여려가 냉랭히 물었다. “그들이 부부가 되고 신검을 얻는다는 말인가요?” “그렇소.” “만약 내가 왕세열과 배검하기를 원한다면?” “뭣이?” 전내의 모든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경호를 질렀다. 하지만 주여려는 조금도 무색해 함이 없이 오히려 당연한 듯이 입을 열었다. “나는 왕세열과 배검하기를 원하오.” “그게 무슨 뜻이오?” “나와 왕세열도 부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고는 볼 수 없잖아요?” “이 더러운 년! 네게도 그럴 자격이 있단 말이냐?” “자격이 있든 없든 그것은 신검의 뜻이다. 배검을 하기 전에 누가 감히 장담을 할수가 있단 말이냐?” 주여려는 실로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현재 일대의 요부요. 이미 나이가 40살에 접어들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수치스러운 언사를 서슴치 않고 뱉어내다니…… 사람들은 노화가 치밀었다. 아무리 신검이 탐이 나기로서니 이미 신검의 주인이 된 왕세열을 모독했을 뿐아니라 간접적으로 신검을 업신여긴 언사였다. 그것은 사람들을 더욱 노하게 만든것이다. 왕세열은 화가 극도에 까지 치밀어 말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주여려는 조금도 뉘우치는 기색이 없었다. “왕세열! 왜 두려우냐?” “두렵다니?” 왕세열은 벽력같이 소리쳤다. “주여려! 네까짓 것이 감히 신검을 모독하다니 내 네년을 용서치 않겠다!” “그건 모독이 아니다.” “주여려! 내가 신검을 얻고서 제일 먼저 제거할 것이 바로 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부부가 되면?” “닥쳐라! 절대 그럴 리가 없다.” “흥! 그건 나와 배검을 하기 전에는 장담하지 못한다.” “이 발칙한 년이 점점……” 왕세열은 대뜸 장을 후려치려고 했다. “왕세열!” 옥면협이 잔뜩 눈살을 찌푸리고 그의 장을 저지시켰다. 주여려는 싸늘하게 웃었다. “호호호……왕세열, 나와 어서 배검을 하시지.” 왕세열은 끓어오르는 노화를 억제하느라 어금니를 으스러져라고 물었다. “좋다. 내 너와 배검을 하겠다. 그러나 결과는 뻔한 일이다.” 왕세열은 그 한 마디는 모든 사람을 대경실색하게 만들었다. 옥면협은 만면에 노기를 띠고 검을 다시 올려놓았다. 주여려는 왕세열의 곁으로 다가섰다. 왕세열은 단 1 장에 그녀를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출수를 할 수가 없었다.신검의 앞에서는 절대로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여려는 냉랭히 말했다. “왕세열, 배검 시작이다.” 왕세열은 바드득 이를 갈며 주여려와 절을 했다. 그러자 인군들 틈에서 누군가가 냉소를 쳤다. 다음 순간 왕세열과 주여려는 동시에 일어서며 신검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신검은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왕세열은 고소를 띠고 냉랭히 말했다. “부부가 되지 못해 매우 한스럽구려.” 옥면협이 냉갈을 쳤다. “주 전주! 이제는 시인하시……” 옥면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연, 주여려는 외마디의 날카로운 교갈을 터뜨리며오른손의 두 손가락을 뻗어 왕세열을 향하여 섬전처럼 찔러갔다. 주여려의 이 번개 같은 출수는 매우 뜻밖이어서 왕세열은 미처 방비하지 못했다. “윽!” 왕세열은 외마디 신음과 함께 그 자리에 푹 쓰러졌다. |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즐감
즐독입니다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되세요
위기일발 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