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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중산리로 내려와 진주로 왔읍니다, ......
남쪽 ~~ 그 파란 바다..
고향이 ""가고파"" 그리워습니다,
내 ~~ 어릴 때 가슴에 손수건 달고 입학하였던 ""성호국민학교""
교문 앞 ~ 고목은 그때.. 아주 어린 시절 기억 속의..
그 시절을 확연히 기억나게 합니다,
찐~한 옛 모습이 그대로 배여 있는 장소...
유년의 추억이 차곡 차곡 포개어져 있는 곳...
내~~어린 동심이 가슴에 살아 숨쉬는 이~곳...
난"~지금 서~있읍니다,
깡총 깡총거리며 뛰어 놀았던 운동장...
그 시절의 향기를 짠뜩~~ 내 품어 주고 있는 곳에 말입니다,
오늘 여기 와.. 지금 보니~~
아"~~어찌 말~로 하리이까..?"
이제 왔서~~ 둘러보니.. 시절의 그때...
그~날들이 추억의 요람처럼 푸근합니다,
저~산 비탈 아래로 판자집들이 널비하게 빠짐없이 뒤덮혀 있었고
운동장에 철 없이 뛰어 놀았던 어린 시절~~
저 파란 지붕으로 된 ...강당에는 6.25전쟁 시 .. 야전 병원으로 임시 설치되어..
죽은 사람 강당 밑 땅에 뭍어져서
해가 져 .. 으스름이 내려앉아..추적 추적 비~내리고.. 으스스한 날~이면 ..
무슨 소리가 들리면서 죽은 귀신 나타난다며...!
무서워서 잘~가지 않으려고 하였던 어린 시절...
지금 난"~운동장에 서서 ...
눈을 감으면 엊그제만 같고 손가락으로 햇수를 꼽으면 아득한 옛날인 그때를 회상합니다,
아"~ 무심하게 흘러간 한~ 세월이여...!
용마산으로 올라 갔읍니다,
여기서 바라보는 시내...
한~눈에 들어 오는 곳... 대충 여기가 어디고 ... 어떻게 변~하였는지...
판단이 빨리 서지 않았습니다,
송사리들이 때~지어 해안가로 유영하며..
넘"~너무나 푸르고 푸른 바다를 수영하며... 갯 지렁이 바늘에 꿰어 낚시하며...
그렇게 쪽빛같이 맑았던 바다...
그 바다에서 놀~던 나의 어린 시절 모습이
기억 저편에 환상처럼 피어났읍니다,
지금으로 부터 약~45년이 지난 시절...
참으로 감회에 젖게 하였읍니다,
저~푸른 바다 건너 ...
옷~홀랑 벗고 겁~없이 뛰어 들었던... 여객선이 오가는 바다를 수영하면서...
저 보이는 방파제까지 건너 갔던 기억.
이 언덕배기에서 연~날리기.. 보름날 쥐불놀이...자~치기...다스망구.. 숨박꼭질..
여자들 고무줄 놀이 때.. 고무 줄 끓어 먹기..
나는 온~갖 추억으로 뭍어 있는 이~땅의 여기 서서...
시내를 넋을 잃고 한참을 바라보았읍니다,
희미해진 기억을 더듬어 더듬어 ..
골목길 접어드니 참으로 그 시절에 눈에 익었던 진흙 담~벼락..
아직도 여기 남아 있었읍니다,
이곳 여기에 좀~보존 하였으면 좋으려만...! 생각이 굴떡같이 들었읍니다,
그때 시절의 창동은 마산에서 제일 번화가~~
시민극장..강남극장..동보극장은 세월의 뒤안길에 없어져 있고 이 자리에서 병원하였던
""박치과"~"안제의원"" 그 딸~냄이 지지배들..!
한~해같이 과외 공부하면서 이름도 잊어지지 않는 그~애들~
군 제대하고 딱~한번 만난 이후~~""이 미경"
지금..그 애들~어디 무엇하고 어떻게 늙어 있을까..?" 공부 끝나고~아주 사소한 일에 자주 싸웠던
옛날을 오늘 여기와 회상하노라니~ 입~가.. 웃음이 배여 났읍니다,
마산의 부림시장~~ 명절이면 어머님 손~잡고 제수거리 사러 왔던 골목길 돌아서니
아"~ 그 으찌나 감회가 서려 지는지...!
진정으로 흘러간 세월 되돌아 올 수 있다면.. 하는 심정이였읍니다,
지금 서로의 건너편으로 바다길 연결하는 연륙교가 놓여져 있고
그때는 무인도로 방치하디 싶이 한 ..
저기 고래같이 생긴 섬을 그때 돗섬이라 불렸지만.. 지금은 유원지로 개발...
시민들이 위락시설로 가득차 있읍니다,
지금 이 앞으로는 논과 밭... 여기를 지나갈때...
온 두릅 .. 거름 냄새 때문에 코를 막아.. 숨을 몰아 쉬게 하면서...
더~더욱 그 냄새가 유별나게 찐~하게 풍겨 왔던 그 장소. 지나 가면서 메뚜기 잡아 실에 꿰어 뽁아 먹었던 일..
그~때 그 메뚜기 맛이 으~메나""고소하였던지.. 오늘 지금 여기서 입맛을 다시게 합니다,
저 산위로 뒹굴며 놀~면서 짉~뿌리 케어... 질끈 질~끈 씹어 먹었던 시절...
3학년까지 입학하였던 학교 다니다...3학년 2학기때 전학 해 온..
""상남 국민학교""
지금 이 자락의 용마산쪽에는 그때 ""공동묘지"
지금은 다 이장하고 수림으로 우거져.. 산호 공원으로 조성 해놓고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읍니다,
내가 떠나 올 때만 해도.. 수 많은 무덤으로 깔려 있던 곳에 ..
그~새 이렇게 잣나무들이 얼~쑥 자라 있었읍니다,
""여기 양지바른 남쪽 바다를 굽어보며 향토의 영령들 잠들다.
꽃다운 목숨 조국의 하늘에 바치고 이제는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조용히 쉬도다..
이 탑은 당신의 피어린 충혼을 새긴 우리의 마음. 세세연년 자손 만대에 길이 전할
높푸른 얼이 이 속에 살다"""
향토를 지키기위해 숨져간 님들을 위해 후손들이 못다한 그 얼~을 기리기 위해""~~
충혼탑에 새켜져 있는 글입니다,
그 나무 사이 헤~집고 들어 가니... 아직도 이장하지 않고 있는
총탄 자국이 난.. 비석이 보였읍니다,
고달프고 힘겨웠던 그 시절의 삶의 여정을 보는 것 같았읍니다, ... 두손 모아 ""님의 명복""을 빌어 봅니다 ..
"" 이 땅에 편히 잠드소서""
내~떠나 올때 쯤 .. 마무리 공사가 끝나 있었던 공설 운동장..
저 산~위로 내~ 6살때 쯤인가...!
돌아 가신 우리 할머니 묘소가 있었던 장소.. 일명 ""문둥이 산"" 공동묘지,
논~ 사이 .. 밭 이랑 사이 길로 매년 설이나 추석이면 아버님 손~잡고 성묘 하려 갔던 곳.
성묘하려 가면 ..할미꽃이 피어 있었던 추석때 그~무덤가,
그 소록히 고개 숙인 할미꽃이 좋아 ... 요리 조리 유심히 보았던 나의 유년시절...
들판에는 온~갖 야생화 꽃들이 널비하게 피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도시 계획으로 들녘의 모습이 몽죠리 사라졌지만...
저 산의 모습으로 지형을 알아 볼 수 있었읍니다,
비릿할 정도의 짭조름한 어시장의 바닷가 포구를 보고.. 시내를 둘러 보고...
야트막한 용마산을 올라 본 다음...
마지막으로 내가 졸업한 ""상남 초등학교"" 갔읍니다,
...
그 때나.. 지금이나.. 건물의 변동은 하나 없고.. 내가 졸업장을 받았을 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었읍니다,
""빛나는 졸업장을 받은 언니께 .. 꽃 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바로 저~운동장에서 후배들이 불러 주었던 졸업의 노래..
그~때 눈물을 흘리며 이 교정을 떠나 갔읍니다,...!
십년을 네번씩하고도 그~ 몇년을 걸어낸 무상한 세월~~
오늘에 왔서 내"~어찌 감회에 젖지 않겠습니까...?"
운동장 뛰어 놀고 저~계단으로...
교실로 들어 갔었던 그때~~
지금 등지고 찍은 이 나무~
5학땐가...! 그~때 묘목을 심어 놓았는데... 이~만큼 자라 있었읍니다,
함양에서 25년전에 여기 이시와 지금껏 살고 있는 분과 많은 얘기를 나뉘었으나
쮜금 아쉬운 것은... 내가 있었던 그 시절의 사연들을 ...
하~나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교문을 나서면서.. 어느 한~분을 기다렸으나.. 설~마 예~까지 올 수 있을 까..?"
설~마 안 오겠지..! 하며.. 서울 올라 갈 기차 시간도 빠듯하고...
내가 정~한 시간 보다... 조금 일찍 교문을 나~섰읍니다,
아"~ 그러나..!
마산역으로 왔서... 서울로 올라 왔읍니다,
집 앞~~ 도착하여 생맥주 두~잔... 마시며...
고요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 왔읍니다,
지리에서...고향에서..스치운 사연들...
기억에 간직한 채 잠자리에 들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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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다녀가셨네요 옛날 전국7대도시였던 마산이 이렇게 쇠락했습니다 그렇지만 인심만은 그대로입니다 내고향 마산
고향생각이 절로나네요 사진 음악 잘들었습니다 고마워요
왜인지 숙연해집니다. 고향 추억...그리움...애절함...
나의 제2의고향 마산 그곳에서 30년을 살다 지금은 지리산에 들어와 있습니다. 님의 글을보니 왠지 마음이 마산으로 향합니다. 곳곳마다 님의 추억이 새롭게 되살아나고 그렇게 찾아주신 고운마음 오래 간직하시길...., 다음 지리산에 오실때 차라도 한 잔 나누고 싶습니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향수에 젖고갑니다. 내나이 오십이 되면 더욱 그리울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