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6월 이맘때 입사동기 아들 결혼식이 있어서 오랜만에 본사에 다녀온 적이 있다
속초성당의 그친구 결혼식에도 갔었는데 그아들 결혼식에 갈만큼 세월이 흘렀다.
결혼식장은 옛 본사 강당, 수많은 추억을 간직한 곳인데 매각되어 9월부턴 출입할수
없고 머지 않아 헐릴 건물이라 만감이 교차했다.
우리와 운명을 같이 한 건물 그후 우리도 모두 회사를 떠났다
북쩍이던 사무실엔 인적이 끊겼고 회사간판도 붙어 있지 않았다
피로연에서 동기들과 연거푸 술을 몇잔 들이키고 인근 봉은사를 찾았다.
본사를 수도 없이 드나들었지만 항상 시간에 쫒기어 가보지 못했었다.
봉은사는 국민학교 4학년때인 67년 부모님과 뚝섬에서 사공이 노젓는 작은 배를 타고
찾아갔던 곳이다. 어린시절 부모님과 함께 놀러갔던 유일한 곳이 잠실 봉은사였다.
당시 아버지는 늘 바쁘셨는데 두형은 가지 않았고 동생과 내가 부모님과 함께갔다
절에 대한 기억은 거의없고 정원이 넓은 한옥으로 된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했었다
그때 마당에서 감을 몇개 따와 장롱에 넣어 익을 때까지 기다렸던 기억만 또렷이 남아있다
내 영혼이 가장 따뜻했던 날들이 부모님과 함께 봉은사를 찾아갔던 청파동 물푸레나무가
있는 하얀 2층 타이루집에 살던때였다. 그후 우리는 다른 집으로 이사갔고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인하여 마치 디아스포라처럼 여기저기 수없이 많은 동네로 이사다녔다
어머니는 청파동 물푸레나무집에서 살던 시절을 늘그리워 하셨었다
강남봉 이구년(江南逢李龜年)
기왕의 댁에서는 늘상 보았고
최구의 집 마당에서 몇 번 들었소
때마침 강남의 풍경이 참 좋은데
꽃이 지는 이때 또 그대를 만났구려
岐王宅裏尋常見(기왕댁리심상견)
崔九堂前幾度聞(최구당전기도문)
正是江南好風景(정시강남호풍경)
洛花時節又逢君(낙화시절우봉군)
- 두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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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https://youtu.be/SXlhBgMogwc?si=MyePIw60Dq-pQ_c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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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요...
평온했던 시절..가족과 함께 했던 시절..
그시절이 얼마나 포근하고 따듯한 추억으로 남아 있겠습니까...
더구나 낭만 있는 뚝섬에서 봉은사로 가는 그 길이..
그것도 조각배에 몸을 실고 말입니다..ㅎ
저도 그곳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요.
잠실에 거주하면서..경기고..봉은사....AID아파트..코엑스..잠실체육관 ..
그리고 송파구 강동구까지..한동안 행동반경이 그때는 그랬습니다.
디아스포라 말씀하시니
저도 그후 이곳저곳 넘나들었는데
편안함을 추구하여 강남에 말뚝 박고 계속 있었더라면
오늘날 돈 좀 만지면서 처자식들에게 좋은 소리 들었을까요?..ㅎ
제가 가장 좋아하는 브라더스포의 노래 덕분에 잘 듣습니다.
반갑습니다 가을이오면님도 잠실에 대한 추억이 많으시군요
제기억속에 가장행복했던 시절이 청파동 물푸레나무가 있는
다다미 2층집에서 살던때였습니다. 그때는 한양대 4학년이던
후히후리한 키에 잘생긴 과외선생님이 함께 살았고 가정부누나도
있었지요. 부모님은 아직 젊으셨고 우리 형제들은 어려움을 모르고
살았었죠 그후 제가 취직하여 영월로 떠날때까지 20번은 족히
이사했을겁니다. Brothers Four를 좋아하신다니 그중 제가 좋아하는
The Green Leaves of Summer를 올려드립니다.
https://youtu.be/4syTzTq_GbY?si=e9pINgpGGKirP4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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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그리울지 글로써 전해옵니다
물푸레나무가 있는집 두보의 시 제가슴이 아련하게 저려옵니다
운선작가님 반갑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마당에 큰 물푸레나무가 있고 가마솥욕조가 있는
다다미 2층집에서 살던 때가 우리가족의 화양연화였습니다
몇년후 끼니도 못잇고 공납금도 못내는 도시난민이 되어
수도 없이 이사다녔으니 어머니는 그시절을 많이 그리워하셨지요
부모님과의 추억은 회초리들고 쫒아오던엄니 약올리며도망가던 딸 ᆢ
아버지 잔소리 듣기싫어 딴청피우던 그때 철부지ᆢ
다그립지요
물푸레 나무 몸매가 고운나무인데 ㆍ
많이 그립지요?
러브러브님 반갑습니다
어린시절 부모님과의 재미있는 추억이 있으시네요
이제 세월이 많이 흘러 모두 그리운 추억이 되셨겠네요
그때 우리집 옆에 키큰 나무가 한그루 있어서
그집을 물푸레나무있는집으로 불렀었답니다
부모님과의
아름다운 추억의 봉운사 이야기 진솔한 글 감동입니다
엄마의 기분 이해될것 같습니다
지인운영자님 반갑습니다
9년전 입사동기 자녀 결혼식때 입사선서를 했던
대강당을 오랜만에 가봤고 어린날 부모님과 추억이 있던
봉은사를 수십년만에 처음가봤지요
말씀대로 부모님의 마음은 자식을 키워봐야 알수 있다는
옛말이 맞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뚝섬에서 저도 초등시절을 잠깐 보냈어요
근처 영화제작소가 있어서 구경하기를 즐겼던...
생각해보니 부모님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았던 때이기도 합니다.
그산님의 글에서 예전 졸업식때의 지갑선물처럼
또 공통의 추억을 떠올려봅니다.
친구의 결혼식 또 그 아들의 결혼식까지두요.
삶은 그렇게 각자의 속도로 나란히 굴러가는 것이란걸...그래서 같은 세대인가 봅니다.
조금씩 그산님의 글에 빠져드는 저를 봅니다.
건필하세요~
몽연님도 뚝섬에 대한 추억이 있으시군요
저희는 청파동에서 걸어서 이촌동샛강까지 가서
물놀이 힜었답니다 어린시절의 추억은 보물상자처럼
이렇게 가끔 꺼내어 봅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리고 비오는 토요일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
내 영혼이 가장 따뜻했던 날들...
부모님과 함께 봉은사를...
마음이 따뜻해 오는 글이네요.
누구에게나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 있었겠지요.
제가 결혼하기 바로 전에 살았던 곳이
경기고등학교 맞은 편이었습니다.
경기고에서 봉은사쪽으로 걸어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그산 님, 글 잘 읽었습니다.
이베리아님 반갑습니다
누구나 부모님과 함께 보냈던 어린시절이 가장 행복한 날이었을겁니다
경기고에서 봉은사까지걸어 다니셨던 추억이 있으시네요
예전에 마름모꼴 이름표를 단 경기고 교복을 입은 학생을 보면 참 우러러보였었지요
저는 재수시절 경기고 자리에 생긴 정독도서관에는 여러번 가봤는데 이전후 경기고는
못가봤습니다. 따뜻한 댓글 감사드리며 행복한 토요일 되시기 바랍니다 !
봉은사는 저는 아직 한 번도 가보덜 못한 절입니다.
지난 시절 되돌아보면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 기억나지요.
그 기억을 더듬는 '그산' 님의 마음을 제3자인 제가 헤아려봅니다.
박시인님 아직 봉은사를 안가보셨나 봅니다
봉은사는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유서깊은 사찰로
서울 오실때 인근에 있는 안창호선생 묘역과 함께
한번 가보시면 좋을거 같습니다
이글은 9년전 입사동기 아들 결혼식에 다녀와서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봤습니다
댓글 감사드리며 행복한 토요일 되시기바랍니다 !
서울에 43년째 살아도
딱 한번 가봤어요
청파동 물푸레나무집
소설책 제목 같습니다ㅎ
강마을님 반갑습니다
서울에 오신지 43년 되셨군요
저는 서울이 고향이지만 떠나산지 40년이 다되었습니다
돌아보면 물푸레나무집에서 온가족이 함께 살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때 인것 같습니다
댓글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사공이 노를 젓는 배를 타고 가셨던 봉은사,
그리고 청파동 2층 하얀 타일 집,
그산님의 행복했던 유년기의 기억이 제 마음까지 애틋하게 만드십니다.
제 성장기의 가장 따뜻하던 시간은
중3 때부터 대학 2학년 때까지 서대문에 있던 교회를 다니던 시절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교회 벗들과의 친교로 제 학창시절은 아주 풍요롭고 행복했어요.
인생의 무게를 짊어지기 전, 어서 세상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고 싶어 조바심을 내던 그 철없던 시절이 정말 그립습니다.
달항아리님 반갑습니다
어쩌면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절이지만
이제는 뵐수 없는 분들과 함께 청파동 물푸레나무집에서
살았던 그시절이 제인생에서가장 따뜻했던 시절인것 같습니다
달항아리님은 서울 서대문교회를 다니시며 신앙과 벗들과의 교제로
풍요롭고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내셨군요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날들인것 같습니다
늘 따뜻한 댓글 감사드리며 행복한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
서울살이 61년 째 입니다.
그동안 적지않은 세월을 살아오며 이런저런 추억들이 꽤 많습니다.
그 속에는 영혼이 따뜻했던 시간들도 매우 많이 있습니다. ^^~
반갑습니다
서울에 오신지 오래되셨네요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30년을 살았고 떠나산지 38년되었지만
이제는 너무 복잡하여 서울에선 못살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린시절의 추억이 많이 있는 서울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