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단순히 잘못된 번역을 탓하기 전에, 어떤 종류의 번역 오류가 있는지를 알고, 해결책을 찾는 게 더 중요하겠죠.
물론 저도 이제 겨우 경력이 수 년에 불과한 햇병아리긴 하지만, 미래에 프로 번역가를 생각하시는 분들이라면 잠깐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1. 오탈자 및 맞춤법 오류: 말 그대로 글자가 잘봇 기입되거나띄어쓰기를 제대로 하지 않는경으를 의미합니다. 또, 조사를 문제가 있있는데 접속사를 잘못 선택하는 것. 문장기호를 잘못 기입하는 것, 문자가 중복 기입되거나 실수로 글자가 삭제된 도 포함됩니다,
가장 흔하며, 가장 잡아내기 힘들고, 가장 문제가 덜한 오류들.
오류를 줄이려면, 기본적으로 작성자가 국어 문법을 숙지해야 하고, 꼼꼼하게 초벌 작성이 되어야 하며, 검수를 여러 차례 진행해서 최대한 걸러내야 합니다. 셋 중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오탈자 문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개인이 취미로, 연습삼아, 아마추어처럼 번역을 할 때 가장 많이 발견되는 오류이기도 하며, 의외로 프로의 영역에서도 흔하기 때문에 오탈자 오류 자체는 번역의 품질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발견되더라도 B급 이상의 품질은 보장할 수 있고, 클라이언트가 깐깐하지 않다면 무난하게 넘어가기도 합니다.
이래저래 번역을 포함한 작문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영원히 달고 다녀야 할 혹이자,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능가하는 풀리지 않는 숙제.
2. 표현의 일관성 오류: 동일한 표현이 전체 작업물에서 여러 차례 사용되는 경우, 이를 일관된 표현으로 옮기지 않았을 때 눈에 띄는 오류입니다. 특히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기술서나 학술자료에서는 표현에 일관성이 없으면 가독성이 매우 떨어지며, 문장의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어 치명적입니다.
역시 매우 흔하며, 매우 잡아내기 쉽고(최종 검수에서 워드 기능에서 바꾸기로 일괄 처리하면 끗), 문서의 종류에 따라서는 치명적인 오류들.
오류를 줄이려면, 일단 자주 사용되는 용어나 표현에 대한 번역 가이드라인이 확립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만 있으면 일관성 오류는 급감합니다. 만일 그런 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가급적이면 초벌 번역을 최소한 적은 인원이 하거나, 적어도 검수 과정을 여러 차례 거치면 해결됩니다. 초벌, 의미 검수, 오탈자/맞춤법 검수, 일관성 검수의 4단계 프로세스만 갖출 수 있다면 이 오류는 거의 발생하지 않습니다. 물론 최종 검수자는 한 명으로 한정해야 하고요. 프로세스가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초벌 번역가나 검수자가 한 명 늘어날 때마다 일관성 오류는 증가합니다.
아마추어 영역에서야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프로의 영역에서도 가장 많이 지적되는 오류 중 하나입니다. 사실 프로 번역 프로세스는 결코 한 사람이 전담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일관성 오류는 진짜 애증의 관계입니다.
하지만 고치기가 매우 쉽고, 이런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가이드라인에 한 줄씩 추가되고 번역자들도 경험이 생기기 때문에 동일한 번역 작업이 이어질수록 오류 발생 빈도는 크게 줄어듭니다.
그러나 번역자가 바뀌거나, 가이드라인 자체가 뒤엎어지면 어떨까요?
3. 의미 오류(번역 미스): 번역 결과가 원문과 다른 의미를 전달하는 오류입니다.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번역하거나, 동음이의어 및 동의어, 유의어 등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잘못된 의미로 번역하거나, 해당 문서와 관련된 배경지식이 없어 숨은 의미를 찾아내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그리 흔치는 않지만, 발생할 경우 매우 치명적이고, 잡아내기도 무척 어려우며, 번역 품질에 흠을 내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오류들.
오류를 줄이려면, 좋은 번역가를 찾는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번역가란, 해당 언어와 자국어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고, 스스로 문장을 구성할 만한 작문력이 있어야 하며, 가급적이면 작업물과 관련된 배경지식이 풍부하며(라노베 번역을 오타쿠에게 맡긴다거나), 무엇보다 서칭 능력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서칭 능력이란, 모르는 문장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 등장했을 때, 이를 제대로 번역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사전 검색이나 웹 검색을 통해 유사한 표현이나 관련 배경지식을 찾아 숙지하고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남이 시키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찾아내는 것이죠. 이게 가능한 사람은 못 하는 사람에 비해 경험치가 쌓이는 속도가 훨씬 빠르며, 시간이 흐를수록 번역 완성도와 속도가 급격히 높아집니다. 배경지식이 매우 중요한 작업물이라도 완전 백지인 사람이 서칭 능력만 뛰어나다면 충분히 번역을 맡길만 합니다. 처음에는 하나하나 찾아다니느라 오히려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감을 잡는 순간 평범한 번역가의 작업을 아득히 뛰어넘는 퀄리티를 쏟아낼 겁니다. 만일 그게 라노베나 코믹이었다면 그대로 오덕입문
하지만 실제로 이런 번역 미스가 발생하는 원인은 아마추어와 프로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아마추어 번역가의 결과물에서 의미 오류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원어의 문법과 어휘에 대한 이해력 부족, 즉 번역가 자신의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프로의 영역에서 이런 오류가 발생했다는 건 개개인의 잘못이 아닌 경우가 더 큽니다. 이는 번역 프로세스 자체가 '번역 미스는 당연히 발생하는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초벌 번역가는 보통 아마추어 수준의 알바를 사용하기 때문에 배경지식이 없는 경우가 오히려 당연하며, 혹시 돈이 많아서 프로를 쓴다고 해도 정사원급으로 오랫동안 작업을 진행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작업에 대한 이해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그대로 의미 오류를 일으킬 수 있는 잠재 리스크로 작용하는데, 이를 완화하는 게 검수자, 그리고 검수 프로세스의 역할입니다.
즉, 총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검수 프로세스는 해당 작업을 완전히 파악하고 전체 작업을 총괄하는 역량을 갖춰야 합니다.
만일 검수 프로세스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최종 검수자가 아예 없거나 함량미달의 검수자가 배치되거나), 일단 오탈자나 맞춤법 오류는 거의 방치되며, 일관성 오류는 아예 없는 것 취급되기도 하며, 무엇보다 가장 일어나서는 안 될 번역 미스가 발생하고 맙니다.
그런데 번역가는 어차피 실수할 거 알고 뽑는다 쳐도, 검수 프로세스가 이따위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회사의 책임이 큽니다.
물론 회사 입장에서는 그런 사람인 줄 모르고 썼다거나, 비용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변명 정도는 할 수 있을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책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문제가 연거푸 발생한다면 더 좋은 사람을 찾기 위해, 더 나은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최소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맞습니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번역을 하면 안 됩니다. 클라이언트에게도 누가 되고,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불만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대원 듣고있냐
4. 의미 오류(창조번역, 초월번역): 원문에 없는 표현이나 내용이 임의로 추가되거나, 원래 의미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들입니다. 특히 문학작품을 번역할 때 자주 보입니다. 원문 의미와는 다르지만 오히려 원문보다 의미 전달이 명확해지거나, 사회문화적 배경을 적절히 반영해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표현으로 치환한 경우에는 좋은 번역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원문의 느낌을 살리지 못하거나 오히려 어울리지 않는 의미가 더해지면서 혼란을 주는 경우에는 전체 작품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기도 합니다.
결과물에 따라 오류냐 아니냐로 의견이 갈릴 수 있다는 특징이 있는 오류들.
오류를 줄이려면, 번역자가 가급적이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기계적으로 작업하면 됩니다. 그러나 문학작품의 경우 오히려 이런 무미건조한 번역이 원문의 작품성에 타격을 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창조번역을 권장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게 특정 언어로만 가능한 말장난(니시오 잇신의 이야기 시리즈 내용 전반) 같은 건 그대로 번역할 경우 원어를 모르는 사람은 전혀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게(かに, 카니)와 신(かみ, 카미)이 대체 무슨 관계라는 거야?
때문에 문학작품 번역가는 항상 이 문제로 고민을 많이 합니다. 자신의 창조성을 발휘해 초월번역을 하자니 자칫하면 망해서 세간의 뭇매가 두렵고, 그냥 무미건조하게 옮기자니 작품의 재미가 반감되니까요. 그냥 일한 만큼 돈을 버는 생계형 번역가는 별로 신경쓰지 않겠지만, 번역업에 대한 프로의식이 높은 사람일수록 초월번역의 유혹은 쉽게 견디기 힘듭니다.
그러나, 이게 문학적 작품성을 논하지 않는 기술서라면, 그 어떤 경우라도 발생해서는 안 되는 희대의 번역 오류입니다.
그냥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그럼에도 일어나는, 왜 일어나는지도 미스테리인, 답이 없는 상황.
그럼에도 이런 오류가 발생하고, 고쳐지지 않는 것은 번역 프로세스가 총체적으로 삐걱거리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일차적으로, 기술서에서 없던 의미가 더해지거나 다른 표현으로 바뀌는 이유는 일관성 오류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동일한 표현이 반복되는 작업이 이어지다 보면, 대부분 같지만 약간 다른 부분을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그대로 습관처럼 똑같은 표현으로 작업해 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오류는 나중에 검수 작업에서도 원문과 직접 대조를 해보지 않는 한, 일관된 표현으로 착각하고 그냥 넘어가게 됩니다. 작업량이 많을수록 원문 대조 작업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오류는 한 번 발생하면 놀랍게도 거의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오류보다 치명적이죠.
검수 과정에서 오류를 잡아내지 못한 것도 문제가 있지만, 이 오류는 앞서 언급됐던 번역 미스와 달리 번역가도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번역은 원문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은 번역가가 원문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대충 작업했다는 뜻입니다.
아마추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프로라면 자격 미달이죠.
첫댓글 이런 얘기 이제 다들 알아요.. 반복하는 거에 지친거죠. 이번엔 역대 최고기도 하고. 인매직에 계속 써도 의미 없어요. 전 그냥 다시 영문으로 돌아가려구요..ㅜ.ㅜ
ㅎㅎㅎ
내용 그대로 위자드쪽 고객담당부서같은 실제 업무 담당자에게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보고 안 보고는 별개 문제로...
뭐 그래봐야 해결이 요원하기는 마찬가지일 듯 합니다만... 그래도 여기 있는 것보다는 그리 가는 게 이 글이 보다 더 쓸모있을 듯 하네요.
쓰느라 수고하셨습니다 ><b
실수를 해도 그냥 리밋에서나 쓰일 법한 카드에다가 하면 좀 나을 텐데... 플레인스워커면 간판급 카은인데.
최유진님 번역관련 글을 읽으면 학기중 교수님 수업이 떠올라요...매직이라 그런지 최유진님 설명이 조금 더 이해가 편한 거 같고요.
사족을 달자면 니시오 잇신이 아니라 니시오 이신...
그건 일부러 틀린 거. 이상하게 '잇신'이 입에 착착 붙어서...
@최유진 니시오 잇 신발롬...
@elixirel_chrome 바로 그걸 노린 거 -ㅅ-...
유저가 해결책을 찾을 필요는 없는듯...이미 그지경이지만...
그리고 ㅋㅋㅋㅋ 본문에 나와있는 오탈자들 ㅋㅋㅋㅋ
나름의 위트라고 부려봤는데, 일부러 틀리기가 이토록 어렵다는 걸 절감했지요.
잘 보았습니다~ 유저가 기업에게 강의를 해주는 꼴이네요. 이 지경까지 오기도 힘든데 ㅋㅋ
근데 다시봐도 당췌 턴끝까지와 탭된상태는 왜 들어간건지 도저히모르겟네요 ㅡ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