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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海東)이란 발해(渤海)의 동(東)쪽?
○ 조선(朝鮮)【여러 이름으로 존재(存在)하는 왕조(王朝)를, 조선(朝鮮)이라고 호칭(呼稱)하였다.】이 어디에 있었느냐? 하는 문제(問題)는,
➠ 강단사학(講壇史學)을 보면 : 옛 조선왕조(朝鮮王朝)는 : 현(現) 반도(半島)와 그 북방(北方)의 요녕성(遼寧省) 일부와 길림성(吉林省) 일부를 영토(領土)로 하였다고 설명(說明)한다. 바이칼 호(湖)를 ‘북해(北海)’라고 하여, 그곳 유역(流域)으로부터 서서히 남진(南進)하여, 반도(半島)에 정착(定着)했다고 하는 설(說)인데,
조선왕조(朝鮮王朝)는 태생(胎生)적으로, 중국(中國)에 사대(事大)하는 제후국(諸侯國)으로 주장(主張)한다. 사학(史學)은, 일제(日帝)의 사관(史觀)을 이어받은 식민사관(植民史觀)으로써, 그 줄기를 지금까지도 100% 수용(受容)하고 있다. 반도사관(半島史觀)이니, 식민사관(植民史觀)이니 하면서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용(內容)은 똑같다. 따라서 <반도사관(半島史觀) = 식민사관(植民史觀)>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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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단사학(講壇史學)=식민사학(植民史學)=반도사학(半島史學)!」 이들이 말하는 “해동(海東)”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인터넷으로 “해동(海東)”을 검색(檢索)해 보자.
해동2 [海東]
발음 : [해:-]
형태분석 : [海東]
명사
[역사] 발해(渤海)의 동쪽이라는 뜻으로, 예전에 ‘우리나라’를 이르던 말.
그는 해동의 부처라 불렸다.
유의어 동방 3 (東邦)
➠ 이렇게 검색(檢索)이 된다. 「발해(渤海)」 는, 현(現) 하북성(河北省) 남쪽의 바다를 말한다. 이곳이 발해(渤海)가 된 것은, 1900년대라는 것을, 강단사학(講壇史學)은 왜 모르는 것일까? 아니 인정(認定)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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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한서(後漢書) 열전(列傳) 75를 보면 :
서두(序頭)에 〔王制云:東方曰夷.夷者,柢也,言仁而好生,萬物柢地而出.故天性柔順,易以道御,至有君子,不死之國焉. : 왕제(王制)에서 이르기를 : 동방은 이(夷)이다. 이(夷)는 근본이다. 만물이 자라는 것을 좋아하므로, 만물이 땅에서 나오는 것은 근본이다. 고로 천성이 유순하고 이치에 의거하니, 군자(君子)의, 불사의 나라이다. 夷有九種,曰畎夷,於夷,方夷,黃夷,白夷,赤夷,玄夷,風夷,陽夷.故孔子欲居九夷也. : 이(夷)는 아홉 종(種)이 있는데, 견이(畎夷), 어이(於夷), 방이(方夷), 황이(黃夷), 백이(白夷), 적이(赤夷), 현이(玄夷), 풍이(風夷), 양이(陽夷)이다. 고로 공자(公子)가 구이(九夷)에서 살고자 하였다.〕라고 하였다.
➠ 위 원전(原典)에서 말하는 “동방(東方)”이란 뜻은? 무엇이며, 현대사(現代史)에서도 설명하고 있는, 발해(渤海)의 동(東)쪽이란 뜻인, “해동(海東)”이란 같은 지역(地域)을 말하는 것일까? 만약(萬若), 반도(半島) 땅에 옛 조선(朝鮮)이 있었다고 한다면 “동방(東方)이나 해동(海東)”이란 말은, 같은 곳 즉(卽) “반도(半島)”을 말하는 것일 게다. 과연(果然) 그럴까?
동방(東方)! 서방(西方)!
➠ 동방(東方)의 반의어(反意語)는 서방(西方)이다. 어느 한 지점(地點) 곧 기준(基準)이 되는 곳에서, 서(西)쪽 지방은 서방(西方)이요, 동(東)쪽 지방은 동방(東方)이다. 그렇다면 옛 적부터 동방(東方), 서방(西方)이라고 불렀던 곳이 어디였는가를 알면 답은 쉽게 찾을 수 있다.
● 19세기(世紀) 이전(以前) : <불주산(不周山)=총령(蔥嶺)=곤륜산(崑崙山)>을 기준(基準)하여, 동방(東方)과 서방(西方)을 나눠 불렀다. 어떤 분들께서는 서역(西域)이라는 이름이 서방(西方)을 뜻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분도 계신데, “서역(西域)”이란 말은,「황제(皇帝)가 통치(統治)하는 서(西)쪽의 땅, 또는 서(西)쪽 영역(領域)」이란 말이기 때문에, 서방(西方)이란 말과는 차별(差別)된다.
해동(海東) 이란?
➠ 그렇다면 해동(海東)이란 무엇일까? 우선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로는 넓고 넓은 동쪽의 땅이요, 두 번째는 바다(海)의 동쪽 땅이다. 그런데 「해(海)」라는 한자(漢子)가 꼭 현대(現代)의 의미(意味)인 “바다”를 뜻했던 것이냐? 하는 의문(疑問)에 답해야 한다. 사해(四海)를 ‘네 개의 바다’라고 해야 할까? 이건 아니다. ‘온 천하’를 말하는 것이다. 당시(當時)에 사용(使用)했던, 고전(古典)이 기록(記錄)될 때, 곧 당시(當時)에 사용(使用)했던 용법(用法)이 답(答)이다.
➠ 「발해(渤海)의 동(東)쪽을, 해동(海東)이라 한다.」 는 것은, 누가 정(定)한 것일까? 조선(朝鮮)의 유학자(儒學者)들이 펴낸 기록물에서는 :
해동기(海東記)란 : 〔세종(世宗) 25년(1443) 서장관(書狀官)으로 일본에 다녀온 신숙주(申叔舟)가 성종(成宗) 2년(1471) 왕명에 의하여 지어 올린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를 말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해동(海東)이란 일본(日本)이 있었던 땅을 말하는 것이지, 조선(朝鮮)의 조정(朝廷)이 있었던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잖은가?
▣ 이런 결과로 보면 : 해동(海東)에 대해 /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 통용(通用)되고 있는, 「발해(渤海)의 동쪽이라는 뜻으로, 예전에 ‘우리나라’를 이르던 말」 이란 설명(說明)은, 「근거(根據)없는, 증거(證據)되지 않은, 고증(考證)되지 않은, 거짓 설명(說明)」 이란 이야기다.
● 대한민국(大韓民國)은 친일(親日)국가(國家)인가? 라고 묻는다면, 백(百)이면 백(百), 미친놈! 이라는 욕설(辱說)이 나올 것이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역대(歷代)정권(政權)들은, 무엇을 목표(目標)로 정치(政治)를 했으며, 지금(只今) 역시(亦是) 어떤 목표(目標)를 갖고 정치(政治)를 하고 있는 것일까? 정치(政治)목표(目標)란 것이 있기는 있는 것일까?
● 국민(國民)들의 역사인식(歷史認識) 수준(水準)은 어느 정도(程度)일까? 식민사관(植民史觀)을 벗어날 수 없는 한계(限界)를 갖고 있다. 역대(歷代)정권(政權)과 야합(野合)한 친일분자(親日分子)들의 적극적(積極的)인 홍보(弘報)와 포교(布敎)활동(活動)때문이기도 하다. 【식민사관(植民史觀)은 친일분자(親日分子)들의 종교(宗敎)이며, 우상(偶像)이다.】 정권(政權)은 무엇을 하는 자(者)들인가? ●「정권(政權)! 권력(權力)을 가진, 이 집단(集團)들은, 무엇이 진실(眞實)이며, 무엇이 거짓인지 분별(分別)하지 못하는 무리(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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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중에서, / 天地篇 地理類 / 人種 / 夫餘、鳧臾辨證說(부여, 부유변증설)을 보면, 이런 내용(內容)이 있다.
〔風俗通. 吳太子夫槩。王奔楚。餘子在吳。以夫餘爲氏。百濟國王夫餘寬生璋。號帶方郡王。生義慈。唐拜帶方郡王金紫光祿大夫。生隆。熊州都督隆。生文宣。司膳卿左衛大將軍樂浪郡公。此見萬姓統譜. 又姓譜. 百濟之夫餘。音轉鳧臾氏。按書序。成王旣伐東夷。傳云海東諸國。句驪、扶餘、豻、貊之屬云。紀年兒覽。扶餘國。【或作夫餘】檀君子解夫婁。避箕子立國於扶餘。號北扶餘。後徙迦葉原。更號東扶餘。三國史。一說百濟始祖王姓扶餘氏。名溫祚。父優台。北扶餘王解夫婁庶孫。母召西奴。卒本人延陁勃之女。生沸流及溫祚。優台死。寡居卒本。後朱蒙不容於扶餘。南奔至卒本。娶召西奴爲妃。創業時多內助。故寵待沸流等如己子。及孺留爲太子。沸流等避之南奔。溫祚以漢成帝鴻嘉三年癸卯。立國於慰禮城。號十濟。丙辰移都南漢山。改國號百濟。至聖明穠戊午。移都泗沘河。【卽今扶餘】改國號南扶餘。大淸一統志。扶餘國편001。今朝鮮東北境。通典。扶餘國。後漢通焉。初橐離國王有子曰東明。長而善射。王忌其猛而欲殺之。東明奔走편002。南渡掩㴲水。因至扶餘而王之。通典。百濟。卽後漢末夫餘王尉仇台之後云云。則百濟始祖王。以夫餘爲氏者。似因扶餘國所自出。仍以爲氏。其後聖王。又以爲國號者。卽不忘本之義也。我東姓譜。李公宜顯陶峽叢說。有扶餘氏。卽百濟之遺裔也。以風俗通考之。中國亦有夫餘姓。出自吳之夫槩。而萬姓統譜。復以百濟王之扶餘氏繼書其次。則其意似以百濟姓扶餘。有若從夫槩之後。改姓夫餘。而若如今譜牒者然。未可知也。夫餘音轉爲鳧臾者。爾雅疏。九夷中有鳧臾。論語正義。東夷九種。五曰鳧臾。則鳧臾之爲扶餘無疑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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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風俗通 : 吳太子夫槩.王奔楚.餘子在吳.以夫餘爲氏.百濟國王夫餘寬生璋.號帶方郡王. : 오(吳)【오월(吳越)시대의 오(吳)나라를 말하는 것으로, 이때는 기원전(B.C) 473년경이다.】나라의 태자(太子) ‘부개(夫槩)’, 왕(王)이 초(楚)나라로 날아났는데, 나머지 자식들은 오(吳)나라에 있었다. 이로 부여(夫餘)를 씨(氏)로 하였다. 백제국(百濟國) 왕(王) 부여관(夫餘寬)이 장(璋)을 낳았는데, 대방군(帶方郡)왕이라 불렀다. 〕
위 본문(本文)대로라면 오(吳)가 월(越)에 의해 망(亡)한 것이 기원전 473년이다. 월 왕(越王) 구천(勾踐)에게, 오 왕(吳王) 부차(夫差)가 망한 것은 기원전 473년, 주(周) 원 왕(元王) 때이다. 부여(夫餘)씨가 이때 초(初)나라로 달아난 오(吳)나라의 태자(太子)인, “부개(夫槩)”로부터 나왔다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본다면 부여(夫餘)의 건국(建國)년대(年代)는 기원전(紀元前) 473년경이 된다.
➠ 그러나 이러한 기록(記錄)이 의심(疑心)스러운 것은, 이름이 부개(夫槩)라고 해서, 태자(太子)와 왕(王)이 초(楚)나라로 달아났다고 해서, 그 이후로 부여(夫餘)씨를 성(姓)으로 했다는 것, 이해(理解)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원본(原本)이 존재(存在)하지 않고 있으며, 전하는 것이라고는 “필사본(筆寫本)”뿐이라는 것에 많은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 소장 필사본(筆寫本)을 전사(轉寫)한 고전간행회본(규장각 소장 : 동국문화사 간행)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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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按書序:成王旣伐東夷.傳云海東諸國.句驪,扶餘,豻,貊之屬云. : 서서(書序)를 살펴보면 : 성왕【주(周) 무왕(武王)의 아들이다. 성왕(成王)은 기원전(紀元前) 1,115년이다.】이 벌써 동이(東夷)를 쳤다. 전(傳)하기를 해동제국(海東諸國)에는, 구려(句驪)와 부여(扶餘), 한(豻), 맥(貊)등이 속해있었다고 한다. 紀年兒覽:扶餘國.或作夫餘.檀君子解夫婁.避箕子立國於扶餘.號北扶餘.後徙迦葉原.更號東扶餘. : 기년아람(紀年兒覽) : 부여국(夫餘國)은, 혹작(或作) 부여(夫餘)이다. 단군(檀君)의 아들인 해부루(解夫婁)가, 기자(箕子)가 나라를 세우는 것을 피하여 부여(扶餘)로 피했는데, 북부여(北夫餘)라 불렀다. 【기자(箕子)가 조선왕(朝鮮王)이 된 것은, 주(周) 무왕(武王)이 ‘상(商)=은(殷)’을 멸(滅)한 때이니, 기원전(紀元前) 1121년경이다.】뒤에 가엽원(迦葉原)으로 옮겼는데, 이름을 고쳐 동부여(東扶餘)라 불렀다.〕
이러한 고전(古典)의 기록을 볼 때마다, <반도사학(半島史學)=식민사학(植民史學) 논자(論者)>들을, 반드시 색출(索出)하여 강력(强力)하게 처벌(處罰)해야 한다는 명분(名分)이 쌓이고 쌓인다.
➠ 성왕(成王)은, 주(周) 무왕(武王)의 아들로,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주공(周公)【주(周) 무왕(武王)의 동생(弟)이다.】이 섭정(攝政)을 했다. 이때 동이(東夷)의 여러 나라들을 쳤다고 하였는데, 「해동제국(海東諸國)」 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해동(海東)에 있는 여러(諸) 나라(國)” 을 말하는 것으로,
➊ 해동(海東)이란 어느 곳을 말하는가? 가장 중요(重要)한 포인트다. 해동(海東)이란 단어를 찾아보면 : 「발해(渤海)의 동쪽에 있는 나라, 곧 옛 우리나라를 일컫는 말」 이라고 설명(說明)한다. 발해(渤海)의 동쪽지방은, 반도(半島)의 황해도(黃海道)이북(以北) 지방(地方)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해동(海東)이란 말의 뜻은, 이 기록(記錄)을 전할 당시(當時)의 뜻이며, 발해(渤海)가 오늘날의 바다이름이 된 것은 1,900년대이기 때문에, 이것은 현대사(現代史)일 뿐, 과거(過去)의 조선사(朝鮮史)이야기가 될 수 없다.
「발해(渤海)의 동쪽지방이 해동(海東)이다.」 라고 했을 때, 그 발해(渤海)가 어디에 있는 바다 혹은 내륙호(內陸湖)를 말하느냐? 하는 것인데, 이는 몇 주장(主張)이 있다.
● 흑해(黑海) 또는 카스피 해(海)가 발해(渤海)라는 설(說)
● 중앙아세아 카자흐스탄의 발하슈 호 및 그 주변이 발해(渤海)라는 설(說)
● 신강 성(新疆省)의 포창해(蒲昌海)가 발해(渤海)라는 설(說)
● 돈황(燉煌), 하서회랑(河西回廊)의 천여(千餘)리에 이르렀다는 옛 내륙호(內陸湖)가 발해(渤海)라는 설(說)
위에 열거(列擧)한 설(說) 중에서 어느 것이 “발해(渤海)”였는가? 에 대해서는, 여러 이설(異說)이 존재(存在)하는 것이 현실(現實)이기 때문에, 빼도 박도 못하는 확실(確實)한 증거(證據), 고증(考證)문헌(文獻)을 찾아야 한다. 【많은 이들을 이해(理解)시킬 수 있는, 증거(證據)나 사료(史料), 고증(考證)문헌(文獻)등을 말한다.】그러나 위의 어느 설(說)을 대입(代入)한다고 하더라도, 20세기에 이동(移動), 차용(借用)되어 식재(植栽)된, 현(現) 발해(渤海)와는 일만(一萬)리 이상(以上)의 서(西)쪽 지방에 있었다는 것이다.
➠ 따라서 「해동(海東)」 이란 : ‘넓고 넓은 동쪽의 땅’이란 뜻이며, 이는 ‘발해(渤海)의 동(東)쪽이란 뜻과도 어울리는 말’이 된다.
➋ 해동(海東)에는 당시(當時)에, 「구려(句驪). 부여(夫餘). 한(豻). 맥(貉)」 등의 나라가 있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구려(句驪). 부여(夫餘). 한(豻). 맥(貉)」 등의 나라는 주(周)나라 이전(以前)에, 이미 존재(存在)해 있었다는 뜻이다. 한(豻)은, 「干 ∼ 汗 ∼ 韓」과 같다고 보는 경향(傾向)도 있다.
【주(周) 나라 이전(以前)이면, “상(商)=은(殷)”나라 때에, 「구려(句驪). 부여(夫餘). 한(豻). 맥(貉)」등의 나라가 이미 건국(建國)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다.】
➌ 해동(海東)에는 여러 나라가 있었다는 말은, 「현(現) 대륙(大陸)의 땅, 여기저기에 여러 나라들이 있었다.」는 뜻이며, 이는 옛 조선(朝鮮)의 나라들이었다는 증거(證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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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국민(國民)들의 속셈은 무엇일까? 겉으로는 일제(日帝)이야기만 나와도 치를 떠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實狀)을 보면 전혀 아니다.
일제(日帝)에 붙어 자신(自身)들을 협박(脅迫), 위협(威脅)하고, 재산(財産)을 빼앗고,
어린 처녀(處女)들을 감언이설(甘言利說)로 꼬이거나 강제(强制)동원(動員)시켜 위안부(慰安婦)로 보냈고,
천황폐하(天皇陛下)만세(萬歲)를 부르며 군국주의(軍國主義) 전쟁(戰爭)에 젊은이들을 참여(參與)토록 하고,
전쟁(戰爭)물자(物資)를 대기 위해 국민(國民)들의 재산(財産)을 수탈(收奪)하고,
조선(朝鮮)의 역사(歷史)을 조작(造作), 왜곡(歪曲)하여 식민(植民)통치(統治)에 적극적(積極的)으로 이용(利用)토록 만들고,
독립운동(獨立運動)가(家)들을 체포(逮捕), 구금(拘禁)하던 일제(日帝)의 개(犬)들(헌병. 경찰. 검찰 등)들이 있었으며,
군국주의(軍國主義) 군대(軍隊)에 자원(自願)입대(入隊)하여, 수많은 조선(朝鮮)민들을 학살(虐殺)한 자(者)들! 나열(羅列)하자면 수없이 많은, 일제(日帝)의 주구(走狗)들!
○ 이런 자(者)들이나, 이 자(者)들의 후손(後孫)들을, 대통령(大統領)으로 뽑고,
총리(總理)로 임명(任命)하고,
국회의원(國會議員)으로 뽑아주는 나라!
이런 자(者)들이나, 이 자들의 후손(後孫)들을, 관료(官僚)로 임명(任命)하는 나라!
국가(國家)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한, 교육(敎育)부서(部署)의 수장(首長)으로 임명(任命)하는 이 나라!
경찰(警察), 검찰(檢察), 군대(軍隊) 등등의 중추적(中樞的) 기관(機關)의 핵심(核心)부서장(部署長)으로 임명(任命)하는 대한민국(大韓民國)!
○ 국민(國民)들은 이러한 자(者)들에게 어떤 책임(責任)을 묻지도 않으며, 오히려 칭송(稱頌)하기도 한다. 이게 작금(昨今)의 대한민국(大韓民國) 현주소(現住所)다.
2015년 02월 22일 <글쓴이 : 문무(文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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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새해에 건강하시고
힘들지만 힘 내십시오
그리고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감사드립니다. 오랜 동안 성원해주시는 여러분들이 계시니 마음 든든합니다.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을지라도 능력이 되는 때까지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승이'님도 올 해엔 좋은 일이 많이 있도록 기원드리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