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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들도 잘 살아야 합니까?
※ 돈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도망하라
탐욕 특히 돈에 대한 정욕만큼 위험한 것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사역자들이나 성도들이나 할 것 없이 모두에게 경고하면서 여러 번에 걸쳐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은 "돈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악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탐하다가 믿음에서 떠나므로 많은 슬픔으로 자신을 찔렀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실수로 잘못 가르친 것처럼 돈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 한 것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 즉 탐욕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 한 것을 주의하십시오.
실제로 사도 바울은 성령의 기름부음 아래서 이 편지를 젊은 사역자인 디모데에게 썼습니다. 그는 '어떤 물건'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디모데에게 부요하게 사는 사람들이 그들의 소유대신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경고하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17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그러므로 물건은 '부' 조차도 하나님이 우리가 즐길 수 있도록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좋은 것들을 즐겨야 합니다만, 우리가 즐기는 선물들이 그것들을 주신 분보다 더 중요해 지는 것을 결코 허락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만일 심지어 설교자까지 고의로 진리의 정도를 벗어나 잘못된 노견의 도랑에 빠질 경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은 그 사람으로부터 멀리 떠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5절은 "진리는 없고 부패한 마음을 가진 자들의 패역한 논쟁, 즉 경건함으로 이익을 챙기려는 자들로부터 네 자신을 멀리하라"고 합니다.
확대번역은 그런 개인을 "경건함이나 의로움을 [돈 버는 사업, 즉 생활의 수단] 돈 버는 근원으로 생각하는 자들, 그런 자들에게서 떠나라" (딤전6:5)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11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와 우리에게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런 것들에게서 도망쳐라 ... " 현대의 언어로 번역한 한 번역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 디모데 하나님의 사람아! 살기 위해 이런 것을 피하여 도망하라. 의로운 삶, 즉 경이와 믿음과 사랑과 한결같음과 품위가 있는 삶을 추구하여라. 믿음 안에서 힘써 빨리 달려라" (딤전6:11, 12 MSG).
수년 전에 나는 치유부흥에 참가하고 있던 한 사역자가 인도하는 순회 집회에 참석했었습니다. 그 목사는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믿음을 세워줌으로 주님의 치유의 능력을 기대하고 받을 수 있도록 할 줄 아는 재능 있는 설교자였습니다.
어느 날 밤에는 치유의 기름부음이 강하게 흐르고 있었는데, 몇몇 귀머거리가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치료를 받았습니다. 모두가 거기 운행하고 있는 하나님의 강한 움직임을 알고 있었고, 그 자리에는 크나큰 기쁨과 흥분이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목사는 하던 일을 멈추더니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특별 헌금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 예배 때 이미 한번 헌금을 했는데, 그 목사는 감정의 파도가 높아져 있는 것을 이용하려고 결심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는 "헌금함을 다시 돌리지는 않을 테니까 여러분 중에 특별한 헌물을 드릴 사람은 이 강단 앞으로 내게 가지고 나오실 수 있습니다. 최소한 50불 이상이 아니면 나오지 마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50불을 드리려고 서둘러 나오면서 서로 부딪히며 거의 넘어질 뻔한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헌금을 한 것은 그들 마음속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돕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치료받을 기회를 주기 위한 마음에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기도하며 드렸다고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감정의 폭발에 사로잡혔던 것입니다. 그 순간의 스릴과 흥분에 참여하고자 하여서 그들은 이 목사에 의해 조종되었고 착취를 당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그들의 감정이 가라앉은 다음에 그 때 일어난 일에 대해 그들이 어떤 느낌을 갖게 되었는지 나는 의아했습니다. 적어도 그들 중 몇몇 사람들은 이용당하거나 남용된 느낌을 받았으리라고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50불씩 헌금할 여유가 없었는데 했구나. 생각동 안 해보고 했단 말이야. 그 헌금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나의 50년 사역기간 중에 온 미국을 다니며 집회를 하면서 나는 고의적으로 사람들의 감정이 고조되어 있을 때는 결코 헌금을 받지 않았습니다. 헌금을 걷을 시간이 되었을 때 흥분과 열정이 가득할 경우에는 그 분위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헌금 시간을 뒤로 늦추었습니다.
드리는 것은 목적을 가지고 기도하는 마음과 사려 깊은 태도로 행해지는 의식적인 행위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목회자는 결코 사람들이 드리도록 강력하게 설득하거나 애걸하거나 압력을 넣어서는 안됩니다. 잔꾀를 부리거나 비현실적인 약속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질서를 벗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것은 나중에도 결코 후회할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 내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지시
1950년 9월 나는 나의 삶과 사역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극적인 경험을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내게 나타나셔서 구체적인 방향과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다음 페이지에서 나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 나타나심에 관해 말하고 싶습니다.
이 일은 내가 1950년 8월말과 9월초에 텍사스의 락웰에서 천막 부흥집회를 열고 있는 중에 일어났습니다.
9월 2일 토요일 종일 비가 왔는데 큰 비는 아니었지만, 조금씩 옷을 적시게 되는 비였습니다. 그날 저녁 집회시간에 천막에 도달했을 때도 비가 내리고 있는데 4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락웰은 텍사스의 북쪽 중앙에 있는 흙이 검은 곳이었는데, 그 곳은 '당신이 비가 안 올 때 흑색 땅에 있게 되면 당신은 비가 올 때도 흑색 땅에서 꼼짝 못하고 붙어있게 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 집회에 참석중인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비가 오므로 진흙 때문에 그날 밤 집회에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인 사람들이 적었습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이 모두 그리스도인들이었기 때문에 나는 성경을 가르치고 난 후 기도할 사람들은 앞으로 나오라고 초청했습니다. 그때 시간이 저녁 9시 30분쯤 되었습니다. (여기서 말해둘 것은 그 다음날 일어난 일이 내가 달나라에 맨 처음으로 가는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나의 기대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런 경험을 갖고 싶다고 기도해 오지도 않았고 사실은 그런 것을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모두 나와서 강단 주위에 둘러서 기도를 하고 있었고, 나도 강대상 가까이 접는 의자를 하나 놓고 강단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방언기도를 시작했는데, 나는 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리로 올라오너라"
처음 나는 그 목소리가 내게 하는 말인 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나는 모두 그 음성을 들은 줄로 생각했습니다.
※ 나는 예수님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리 올라 오너라." 그 음성이 다시 말했습니다. 그때 나는 눈을 떠 천막 꼭대기 부분쯤에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내가 다시 눈을 들어보니 천막은 사라져 버리고 접는 의자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천막을 지지하고 있던 기둥들도 사라져 버리고 강대상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영적 세계를 보도록 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거기 서 계시고 나는 그의 임재 안에 서 있었습니다.
주님은 손에 왕관을 하나 들고 계셨습니다. 이 왕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인간의 언어로는 감히 묘사할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사람이 쓸 면류관이란다. 나의 백성은 너무나 영혼구원에 무관심하구나. 이 면류관은 모든 나의 자녀들을 위해 준비된 것이다. 내가 '이 사람에게 가서 말하라. 혹은 저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고 해도 내 백성은 너무 바쁘구나. 그들이 이것을 미루고 내게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영혼들은 잃어버린 바 되는구나."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을 때 나는 주님 앞에서 울었습니다. 나는 무릎을 꿇고 나의 잘못들을 회개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내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이리 올라오너라."
나는 마치 내가 주님과 함께 대기권을 통과하여 한 아름다운 도시에 온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그 도시로 들어가지는 않고 다만 산 위에 올라가서 골짜기에 있는 한 도시를 내려다보는 것같이 가까이 그 도시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도시의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은 너무 이기적으로 자기들이 천국에 올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또 그들은 그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어둠 속에 소망 없이 살고 있는데도 하늘의 영광과 맨션에 관해 말하고 있다고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나의 소망을 그들과 함께 나누고 그들도 나와 함께 천국에 올 수 있도록 초청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나를 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 이제 지옥으로 내려 가보자."
우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내려갔습니다. 수많은 성경 구절들이 지옥은 우리 아래 있는 곳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 14장 9절과 15절에는 "아래의 음부가 너희로 인하여 소동하며 ...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옥으로 내려갔는데 그곳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불꽃에 휩싸여 있는 사람인 듯한 것들을 보았습니다. 내가 주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여기는 제가 1933년 4월 22일 죽어서 왔던 곳과 똑같네요. 주님이 그때 말씀하셨고 그리고 저는 여기서 나와 세상으로 되돌아 왔었지요. 그때 제가 회개하고 기도하며 주님의 용서를 구하자 주님은 저를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그 때와는 너무나 다르게 두려움도 없고 공포에 질리지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남자들과 여자들에게 이곳에 관해 경고를 해라."
나는 그러겠노라고 울면서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나를 지구로 데리고 오셨습니다. 나는 강단 위에 무릎을 꿇고 접의자 옆에 있었고, 예수님이 내 곁에 서 계신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주님은 거기 서서 나의 사역에 관해 내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주님은 그 후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 관해 다른 환상을 통해 내게 대략적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사라지셨고, 나는 내가 아직도 강단 위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나는 내 주변에서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 하나님의 보좌
몇 분 후에 나는 다시 천막의 꼭대기 쯤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았고, 공기를 통과해서 주님께 나갔습니다. 내가 주님께 이르자 주님과 나는 같이 천국으로 나아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보좌의 모든 광체를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얼굴은 볼 수 없었고, 단지 그 분의 형체만 바라볼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처음 나의 주의를 끈 것은 보좌의 무지개였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무지개였습니다. 두 번째로 내가 본 것은 보좌 양쪽에 있는 날개를 가진 생물체였습니다. 그들은 특별한 형태의 생물체였는데, 내가 예수님과 함께 걸을 때 이 생물체들은 날개를 펴고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가까이 가자 날개를 접고 말을 그쳤습니다. 그들은 머리 둘레 전부에 불의 눈들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한번에 모든 방향을 다 보았습니다.
나는 그 가운데 예수님과 함께 보좌로부터 18~24피트 정도 떨어져 서 있었습니다. 나는 처음에 무지개를 바라보았고 다음에 날개 있는 생물체를 보았고 그 다음에는 그 보좌에 앉아 계신 그 분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내게 그 분의 얼굴은 쳐다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보좌 위에 앉아 계신 한 존재의 형태만을 볼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게 거의 한 시간 가량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내 생활에서 다른 누구를 보았던 것과 다름없이 그렇게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 사랑을 들여다보기
처음으로 나는 실제로 예수님의 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이 경험과 관련해서 사람들은 여러 번 내게 "주님의 눈은 무엇과 같았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의 눈은 살아있는 사랑의 샘 같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눈은 마치 반마일 정도의 깊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것 같았고, 그분이 사랑으로 부드럽게 바라보심은 형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의 얼굴과 눈을 들여다보고서 나는 주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때야 나는 주님이 맨 발이었던 것을 알아차렸고, 나는 내 두 손바닥을 그분의 발 위에 올려놓고 나의 이마를 내 손위에 대었습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오 주님, 아무 자격도 없는 제가 주님의 얼굴을 뵙다니요!"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내게 내 발로 바로 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일어섰습니다. 주님은 주께서 나를 부르셨고, 모든 죄로부터 나를 깨끗하게 하셨으므로 내가 그분의 얼굴을 바라볼 자격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나의 사역에 관한 것들을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나를 내가 태어나기 전에 부르셨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비록 사탄이 나의 생명을 파괴하려고 여러 번 시도하였지만 주님의 천사들이 나를 지켰고 돌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주님께서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나의 어머니께도 나타나셔서, "두려워 말아라. 아기가 태어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고, 내가 성령의 능력 안에서 섬기게 될 것과 주님께서 나를 부르신 그 사역을 이룰 것을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은 당시 1949년 2월, 내가 마지막으로 목사로 섬겼던 교회에 관해 말씀하셨는데 그 목회 사역은 나의 사역의 첫 단계에 들어갔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어떤 사역자들은 주님께서 그들을 부르신 사역의 첫 단계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살다가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덧붙여서 그것이 바로 많은 사역자들이 일찍 죽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즉 그들은 주님의 허락하신 뜻 안에서 허락하신 만큼만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 하나님이 허락하신 뜻
15년 동안이나 나는 주님의 허락하신 뜻 안에서만 살았었습니다. 나는 12년 동안 목사로서 섬겼고, 3년은 복음전도자의 일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하나님은 내가 그런 일을 하도록 허락하셨지만, 그 일은 나의 생애를 위한 그분의 완전한 뜻(perfect will)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분을 시중들기 위해 기다리지 않았었으며, 주님께서는 내가 그분께 순종하기를 기다렸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은 1949년 내가 나의 사역의 첫 단계로 들어갈 때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내가 신실하지 못했으며 그분이 내게 하라고 하신 것을 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말하라고 한 것을 내가 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대답하기를 "주님, 제가 신실하지 못했던 것이 아닙니다. 저는 주님께 순종하였습니다. 저는 그 교회를 떠나 순회 전도 사역을 하러 나갔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그렇지, 너는 그 교회를 떠나 전도사역을 시작했었지. 그러나 너는 내가 네게 하라고 한 것을 하지 않았어. 네가 하지 않은 이유는 네게 말했던 이가 나의 영이라는 것을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너도 알고 있듯이 믿음은, 그 말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든지 사람에게 말한 나의 영이든지 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나는 주님 앞에 엎드려서 "네, 주님 제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그분의 뜻을 놓치고 그분이 나를 다루셨던 것을 의심한 것에 대해 많은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네 발로 일어서라."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앞에 다시 서자 주님은 내가 1950년 1월 나의 사역의 두 번째 단계로 들어갔음을 말해주셨습니다. 그때 주님은 내 가슴을 통하여 조용하고 세미한 음성으로 그리고 예언을 통하여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두 번째 사역 단계 중에 다음 8개월 동안 나는 그 말씀을 믿었고 신뢰하였으며 순종하였습니다.
이제 나는 세 번째 단계로 들어섰습니다. 주님은 내가 그분이 말씀하신 것에 신실하면, 즉 내가 믿고 그분께 순종한다면 그분은 내게 다시 나타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나는 네 번째 단계, 즉 나의 사역의 마지막 단계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 예수님의 상처를 봄
그리고 나서 주님은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을 내밀어라!" 주님은 자신의 손을 앞에 내미셨습니다. 나는 그 손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주님의 손에서 못들이 살을 뚫었던 상처를 볼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는 더 잘 알고 있었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성경에도 없는 생각들을 가지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나는 그 분의 손바닥에서 상처 대신에 십자가의 상처들, 즉 삼각형 모양의 뚫린 구멍들을 보았습니다. 한 구멍의 크기는 내가 손가락을 넣을 수 있을 만큼 컸습니다. 나는 그 구멍의 반대쪽에서 나오는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환상을 본 후에 나는 성경을 가지고 요한복음 20장을 펴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에 그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때를 읽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처음 나타나셨을 때 도마는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았었습니다. 제자들은 도마에게 그들이 주님을 보았다고 말했지만, 그는 믿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요20:25).
여드레 후에 도마를 포함한 제자들이 한 방에 함께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도마를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20:27-28).
나는 그 때 도마가 보았던 것에 관해 더 깊은 통찰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도마는 손가락을 예수님의 손의 상처에 넣어 볼 수도 있었고 자신의 손을 주님의 옆구리에 넣어볼 수도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내 앞에 펴신 손의 상처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주님께서 내게 지시한대로 앞으로 나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주님은 오른손의 그 손가락을 내 오른손 바닥에 다음에는 내 왼손바닥에 대셨습니다. 그 순간 내 손은 마치 불붙은 석탄 덩어리를 손바닥에 놓은 것처럼 타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