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루이 14세의 친정이 시작되기 이전에 이미 프랑스 절대주의의 기초는 상당히 다져져 있었다. 그것은 두 사람의 유능한 정치가에 의한 것이었다. 한 사람은 루이 14세가 왕위에 오르기 전 재상이었던 리슐리외 추기경, 또 다른 사람은 왕이 친정으로 들어가기 직전까지 재상을 지낸 마자랭이었다.
리슐리외는 루이 13세 시대의 재상으로 18년간 프랑스의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였다. 그가 재상으로 취임한 1624년 이래 프랑스 역사는 리슐리외의 이력서와 같은 것이었다. 절대주의는 국가정책으로 수립되었다. 봉건제후의 성이 차례로 공격되고 지방 자치권은 축소되었다. 중세 이래 대의기관이었던 신분회의 발언권은 봉쇄되었다. 리슐리외는 대외정책에서도 역시 성공하였다. 프랑스는 30년 전쟁에 개입함으로써 합스부르크가에게 결정타를 가하고 유럽 최강국으로서 국제적 지위를 확립하였다. 그는 의지와 결단의 인물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몸소 실천에 옮긴 정치가였다. 강압적 태도로 봉건제후와 프로테스탄트들을 꾸준히 탄압하여 많은 적을 만들었으나 그는 적대에는 복수로, 가계에는 속임수로 맞대응하여 국가적 통합과 국위 선양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리슐리외의 사후에 출판된 외교관계 저술인 '정치적 증언'에는 당시 유럽의 주도적 외교관으로서 그의 자질을 입증하고 있다.
" 협상을 할때 국가적 이익이 얼마나 큰지는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 나 자신도 정 책 실행을 한 후 처음 5-6년 동안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점에 괸해 너무나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어디서든지 공개협상이든 비밀협상이든 끊임없이 협상을 하는 것이 당장 아무런 이득이 없거나 장차 이득이 없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국가의 번영을 위해서는 절대 필요하다고 감히 장담할 수 있다 . ...항상 협상하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한 올바른 순간을 포착할 것이다. 만일 그 기회를 포착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잃을 것이 전혀 없다는 시실은 확실하다. 게다가 협상을 통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게 되며 이는 국가 번영을 위해 결코 과소 평가될 일이 아니다. ...중요한 협상은 반드시 한 순간이라도 중단되지 말아야 한다. ... 사건진행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마땅한 이유에서 시도된 일이 거의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가끔 있기 때문이다. ... 자주 싸우기는 해도 이기기란 쉽지 않다. ... 협상은 아무 죄가 없기 때문에 잘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얻는 이익이 클 경우가 많다. ... 국가적 문제에서는 만사에 이득을 취해야 한다. 유익하다면 결코 등한히 하지 말아야 한다."
리슐리외가 죽은 다음해인 1643년 루이 13세 역시 서거하고 프랑스 왕위는 불과 다섯 살 된 루이 14세에게 이어졌다. 어린 왕을 대신한 모후섭정 기간에 마자랭이 재상직에 있었다. 이탈리아 출신의 법률가이며 추기경인 마자랭은 전임 재상 리슐리외의 정책을 계승하여 행정 수완을 발휘하였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별로 위대하지 않지만 위대한 일을 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마자랭은 재상으로 재임한 초기의 5년간 주로 30년 전쟁을 속행하는데 괸심을 두었고, 후반 5년간은 프롱드난을 진압하는데 집중하였다.
<<'서양사 총론2' 탐구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