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1=가을하늘
[장애 체험] 시각 장애인 체험을 하고
오늘 학교에서 시각장애인 체험을 했다. 해 보았더니 시각장애인들의 처지를 알 것 같다.
계단을 내려갈 때 공중에 떠있는 느낌이었다. 걸을 때도 중심을 잃어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친구 말만을 듣고 가려고 하니 어딘가 답답하였다. 지팡이를 짚다보니 아이들과 부딪히기 도하고 참 힘들었다. 난 힘들 때마다 장애인들의 처지를 생각해봤다. 나는 딱 10분 동안 했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장애인들은 평생 동안 어떻게 생활할까? 장애인들은 힘들게 사는구나! 라고 생각하였다.
진짜로 내가 장애인이 된다면 답답해서 살지 못할 것이다. 또 휠체어를 타봤더니 진짜 불편했다.
그래도 장애체험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내가 나중에 학교를 짓는다면 지하철에 있는 장애인 휠체어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그걸 지을 셈이다. 또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교과서를 시각 장애인들이 편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장애인들은 어려움도 극복해내고 살아가는 게 참 훌륭하였다.
<달걀 품기를 하고…….>
오늘 학교에서 달걀에 그림을 그렸다. 여자 부분이 깨졌다.
“아이구 내 딸 깨졌네”
남자 부분은 깨지지 않았다.
“다행이다”
나는 오늘 색다른 체험을 했다. 달걀을 자식으로 생각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찰흙으로 인큐베이터를 만들었다. 휴, 힘들다.
<체험학습 보고서 - 제주 여행>
여행날짜:14~18일
14일 첫째 날
아침7시에 일어나서 예산을 갔다. 예산에서부터 천안까지 간 다음 버스를 타고 청주공항을 갔다. 거기서 점심을 먹은 다음 비행기를 탔는데 아래의 풍경이 너무 멋있었다. 40분후 드디어 제주에 도착하고 우리 일행12명이 빌린 15인승 버스를 타고 숙소인 오렌지 펜션으로 갔다. 거기는 말매미가 참 많았다.
방은 얼마나 좋던지 방마다 컴퓨터가 있고 TV도 있고 침대도 있었지만 우리는 이어져 있는 방 에서 잔댔다. 거기도 좋았다. TV에서 게임이 됐다.
출구는 5군데 방은 대략 10개 정도 되나 했다. 일행은12명인데 방이 많았다.
우선 분재 예술원에 갔다. 화분에다 나무를 키운 데 이었다.
150년 된 나무가 우리에 팔뚝만 했고 아기 사과나무라는 게 있었다.
또 평화 박물관에 갔는데 일제 때문에 제주도 사람들이 굴을 팠다.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굴을 파라한 것 도 모자라서 맨손 갖다 곡괭이를 집고 파라하였다. 이러한 굴은 평화 박물관만 해도 3곳이나 있었고 제주도에 있는 굴은 80여개나 된다.
평화박물관엔 1592년 임진왜란 때와 일제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입은 상처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마구 잡아다가 죽이고 목을 베는 것들이 사진으로 나와 있었다.
다 돌아본 다음 마트로 가서 삼겹살 4근 을사고 오렌지 펜션으로 갔다. 밤에 아파트 영화를 보면서 삼겹살을 먹었다. 철판으로 구워서 그런지 너무너무 맛있었다.
15일 둘째 날
아침에 배를 타고 마라도에 갔다. 마라도에서 자전거를 빌려주어서 마라도를 2바퀴나 돌고 마라도 식당을 갔다. 거기는 자장면이 유명해서 자장면을 먹었다.(식당이 거기밖에 없음) 매콤하면서도 담백한 게 자장면에 라면 가루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배 시간에 맞춰서 배를 타고 다시 제주도로 떠났다. 마라도 다음 소인국 테마파크로 갔다. 거기는 세계에 유명한 건물들이 많았다. 끝나고 마상 쇼를 보았다. 대단했다.
7살과 8살이 나와 말을 타는데 환상적 이었다. 나중에 같이 사진도 찍었다. 또 열기구를 타러 갔는데 시시했다. 난 위에서 장난 쳤다. 끝나고 미로공원에서 놀다가 해변 빌리지 민박으로 가서 빅쇼인가 영화를 보았다. 리틀 히어로도 봤는데 재미있었다. 16일 셋째 날
아침에 노천탕에 갔다. 거기에서 남자는 수영 하면서 놀았는데 햇살이는 놀지도 못하고 개구리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지만 오빠들이 업그레이드해서 햇꾸리가 됐다.
또 영화박물관에 갔는데 신기했다. 그림이 움직이고 뉴스도 진행해보고 사진도 찍고 입체 영화도 보고 죄인도 되어 봤다.
그리고서 말을 타러 갔는데 말이 뛰어서 배가 아팠다. ATV도 탔는데 내가 운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힘들었다. 울퉁불퉁 바위 때문에 흔들리고 오르막길 에서는 속력도 내봤다. 마지막으로 잠수함을 탔다. 해파리도 있었고 가오리도 보고 여러 가지 물고기도 보았다. 그중 무지개 물고기가 가장 예뻤다. 다 끝난 후에 무지개 펜션으로 가서 그 앞에 있는 바닷가에서 꽃게를 잡았는데 너무 빨라서 6명이서 14마리밖에 못 잡았다. 나는 손가락이 파이는 영광의 상처를 얻게 되었다. 저녁에 칼국수를 먹고 우리나라vs타이완이랑 아시안컵 예선전에 붙게 되었는데 우리나라가 3:0으로 이겼다. 우리는 복숭아 포도 수박 등의 과일을 먹고 잤다.
17일 넷째 날
아침을 먹고 코끼리 타러 코끼리 랜드에 갔는데 코끼리 쇼를 보게 되었다. 코끼리가 볼링 농구 심지어는 그림까지 온갖 묘기를 선보이며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옆에 사람이 남은 바나나를 주어서 난 코끼리를 만져 보았다.
또 코끼리가 아픈 척까지 하며 코끼리 쇼가 끝나자 우리는 코끼리를 타러 갔다.
거기 아저씨가 나보고 잘생겼다고 하셨는데 내가 남자 인줄 아셨나보다.
내가 탄 코끼리가 6억짜리였는데 코끼리를 탄 것만으로도 만족하였는데 6억 짜리라는 말에 너무 기뻤다. 코끼리를 태워준 사람이 라오스 사람이었는데 유창한 한국말 솜씨에 나는 조금 놀랐다.
코끼리 타임이 끝나고 어른들은 러브랜드에 가고 우리는 도깨비 도로에 갔다. 신기했다. 오르막길이고 시동을 껐는데 뒤로 가늘 게 아니라 앞으로 가는 것이었다. 신기한 게 끝나고 도깨비 집에 갔는데 시시해서 볼 것도 없었다. 이걸 무서워한 햇살이와 전봉균 참 한심하다.
어른들이랑 만나 기대하고 바라던 롯데 호텔에 도착 우리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야외수영장으로 가서 수영도 하고 슬라이딩도 타고 배구 축구도 했다.
수영이 끝나고 롯데호텔 게임 존에서 공짜로 게임을 했다. 축구게임을 중심적으로 했다. 저녁을 먹으러 야외 뷔페로 갔다. 거기 에는 없는 게 있다면 단 한 가지 말고기가 없었다. 그래도 스파게티랑 아이스크림 20여 가지가 넘는 고기와 50가지가 넘는 메뉴들로 꽉 차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화산 분수 쇼를 보았는데 너무 시원했다. 물이 타 튀겼기 때문이다. 밥을 다 먹고 호텔로 돌아가 밤을 새겠다고 커피를 마셨는데 오히려 더 빨리 잠이 들었다.
18일 마지막 날
아침에 일어나서 양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난 빵이랑 베이컨이랑 용알인가 하는 과일을 먹었는데 맛이 대단했다. 자몽 주스도 먹었는데 썼다. 다 먹고 나서 사우나에 가서 목욕도 하고 목욕 가운도 입고 수영장에 들어갔는데 키가 안 닿아서 더욱 재미있었다. 1시쯤에 호텔을 나가서 제주 공항으로 가서 밥을 먹은 다음 비행기를 타고 1시간 지나서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거기서 무지 좋은 택시를 타고 마다가스카 영화를 보면서 천안에 도착했다. 거기서 칼국수를 먹고 집으로 왔다.
&tw2=강민규
<시험>
시험 전
시험이 나를 괴롭힌다.
시험 때문에 학원에선 보충.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지고
엄마의
"시험 잘 봐라." 하는 말에
마음은 더 무거워진다.
시험 후
마음이 가벼워졌구나.
하지만 시험성적이 무섭군.
못 보면 아빠가
날 가만 안 둔다.
<시-바다낚시>
온 가족끼리 낚시하기로 한 날
엄마는 지렁이 못 껴서
아빠에게 도와 달라고 한다.
아빠는 뭐든지 척! 척!
물고기도 쉽게 올라온다.
나는 느긋하게 물고기를 낚고
형은 귀찮은 듯 "아~졸려"하곤
차안으로 들어간다.
그날 저녁은
내가 잡은 물고기로 매운탕
<달걀 품기를 하고…….>
오늘 계란 품기를 했다.
하지만 난 오늘 3개나 계란을 깨트렸다.ㅠ.ㅜ
어머니도 내가 다칠까봐 조심하라고 입버릇처럼 했는데…….
그랬구나. 어머니도 우리가 다칠까봐 맨 날 조심하라는 거였구나.ㅠ.ㅜ
어머니 말씀을 잘 듣고 행동해야지.
아~계란이 아깝다ㅠ3ㅜ
에그ㅠㅁㅠ
[수련회를 다녀와서]
출발 전에는 무지 기대 되었다.
처음으로 독립기념관에 갔다.
그곳엔 독립운동을 한 분들이 나와 있었다.
그 곳에서 부모님 선물을 샀다. 3000원짜리를 큰 엄마 것은 5000원짜리를 약5시쯤 수련원에 도착했다.
비가 우르르 쏟아졌다.
친구들이랑 카드놀이를 했다.
그리고 첫 수업을 했다. 첫 수업은 수영을 했다. 그냥 놀기만 했다.
수업이 끝나고 저녁을 먹었다. 밥을 먹고 나서 친구랑 도박을 했다.
저녁에 별자리에 대해서 공부를 했다. 11시에 잤다. 그러고 나서 5시에 일어났다.
이튿날 산책을 하고나서 아침을 먹고 자유 시간을 얻었다.
그래서 매점에 가서 먹을거리를 샀다 수업 시간(^.^) 골프를 했다. 다음 수업은 난타였다.
다음 수업은 자전거 수업이다. 자전거는 쉬운 줄 알았지만. 하이킹을 했다. 무지 힘들었다.
저녁에 캠프파이어를 했다. 게임도 하였다. 또 촛불 의식도 했다. 그리고 장기 자랑을 했다.
다음날 이어달리기를 했다. 당연히 우리 반이 1등을 했다. 그다음에 퇴소식을 했다.
다음에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과학 원리를 알았다.
그런데 길을 잃었다. 6반애를 만나 무사히 집에 왔다.
&tw3=강현준
[달걀 품기를 하고] 달걀 품기를 하고
오늘 달걀을 자식처럼 품어 보았다.
달걀은 약하고 소중한 생명이기에 쉽게 다를 수 없었다.
그러나 나도 달걀의 소중한 생명은 사랑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달걀을 내손으로 달걀을 품어보았다.
손으로 잡기가 귀찮아서 친구 컵을 빌려 휴지를 넣어 달걀을 넣고 따뜻하게 하기 위해 뜨거운 물을 넣었다.
미술 시간에 책상을 돌리면서 컵이 떨어지면서 달걀이 깨지고 말았다.
[2분 말하기 원고] 시각장애인 체험을 하고
나는 오늘 시각 장애인이 되어 휠체어를 타보았다.
처음 난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을 보며 `왜? 힘들어하지?' 생각하며 하루를 지냈다.
그 후. 오늘 휠체어를 탔다.
계단을 내려가는 가는 것만 해도 어렵고 그것마저 친구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 답답하고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죄송한 감정이 들었다.
내려갈 때도 넘어 질것 같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고생 끝에 나는 계단을 친구의 도움을 받아 고생 끝에 나는 앞길을 가기 시작하였다,
겨우겨우 친구의 도움을 가는 길은 내게 너무나 고마웠다.
덜컹 덜컹 가는 것 마저 힘들고 남의 도움을 받아야하고 답답하고 그 후부터////
'내가 올라가야 하는데`
'내 힘으로 가고 싶은데 …….'
가면서 조정을 못해 계속 넘어졌다. 다행히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까? 나는 속으로 (장애인)속으로 서운함을 느꼈다.
다행히 우리 부모님은 날 잘 키워 주셨고 장애인이 아닌 보통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다.
그 생각을 하면 부모님에게 감사 말을 하고 싶다.
휠체어를 타며 나는 가장 행복한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장애인의 부모님은 자식을 장애로 키운 것을 후회하지만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오직 아이의 건강만을 생각하며 아무거나 먹이다 보니 그런 건 아닐까??
부모님의 성의를 생각하는 장애인들 겨우 겨우 장애를 극복하여 부모님께 효도한다.
나는 장애가 아닌 것을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이순신을 읽고>
안녕하세요.
이제부터 이순신에 대하여 읽어봅시다.
우리가 없던 아주 옛날 이순신이 살았습니다.
이순신은 아주 약하고 겁도 많은 아이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놀림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일부터 이순신의 부모님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일로부터 이순신의 부모님은 우울증이라던가 이순신의 마음을 때로는 슬프게 하였습니다.
그 후부터 이순신은 친구들에게 따돌림과 놀림을 받지 않기 위해 때로는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큰 산 바위 위에서 강으로 친구들 앞에서 떨어져 봅니다.
그 후로 친구들은 이순신을 놀리지 않았습니다.
그 후 어느 날 일본의 침략을 받아 이순신은 부모의 희생을 받아 살아남으셨습니다.
그 후부터 이순신은 일본에게 우리 아버지 복수를 하기 위해 .활. 검. 창 등 기술을 익혔습니다.
몇 년 후 이순신은 장군이 되어 조선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고 나라를 누구 보다 사랑하였습니다.
이순신은 일본의 침략을 생각하며 아버지의 복수를 생각하여 맞서 누구보다 열심히 전쟁에 나섰습니다.
어느 날 조선은 그 어느 나라 보다 행복하고 평화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다시 조선을 공격하자 그 마지막 전쟁을 나섰습니다.
전쟁에 맞서 싸움을 하던 이순신은 그만 일본군의 총알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를 그 누구 보다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 어떤 나라 보다 화목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 하며 이글을 올려봅니다.
[수련회를 다녀와서]
독립기념관에 도착을 하고 외국인을 몇 명만 나서 사진을 찍은 후 승민이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외국인을 만나 사진을 찍으며 여러 추억으로 간직했다.
조치원 청소년 수련원에 도착하여 입소식을 하는데 매우 지루하여 한숨을 내 쉬었다.
지루한 입소식을 마치고 조를 편성을 했는데 나는 A조로 첫 번째 학습은 수영이었다.
수영장에는 별로 있지 않고 샤워실에 있는 따뜻한 물에 들어가서 친구들과 앉아 있었다.
수영을 마치고 밥을 먹으러 갔다.
친절한 아주머니들이셔서 밥이 맛있었다.
취침을 하러 숙소에 들어가서 이불을 깔고 친구들은 누었는데 잠이 쉽게 오질 않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밥을 먹고 자유시간을 가져서 축구를 하였다,
자유시간이 끝나고 단체줄넘기를 하는데 쉽게 넘기는 게 되지 않았다.
한명씩 들어가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 우리들은 그냥 여러 명이 들어갔다.
줄넘기가 끝나고 단체 공굴리기를 하는데 1등을 하여서 기분이 좋았다.
공굴리기가 끝나고 밥을 먹으러 가서 자유시간을 갖고 숙소에 가서 편히 쉬었는데
다음 순서로 난타를 하였다.
난타를 치는데 손이 많이 아팠다.
기름통을 쌔게 치다가 머리를 박았는데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
지겨운 난타가 끝나고 자전거를 타는데 너무 멀리 가서 힘이 매우 들었다.
신형이와 근모는 서로 논에 빠졌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6반에서 취침을 했다.
어제 현규를 찾으러 가면서 6반을 들렸는데 현규가 있었던 것이다.
6반 숙소 친구들이 나를 잡아 두고 잠을 자라고 해서 몸이 지쳐 잇던 난 6반에서 취침을 한 것이었다.
점심을 먹고 이어달리기를 하였는데 우리 반이 1들을 했다.
수련회가 모두 끝나고 과학박물관에 갔는데 선생님을 잃어 버렸다.
다행히 반을 찾아서 버스 타고 영화를 보며 집에 갔는데 엄마. 아빠께서 반가워 하셨다.
&tw4=김나영
[장애 체험] 시각 장애인 체험을 하고
오늘 시각 장애인 체험을 했다. 처음엔 이걸 왜? 못해 바보도 아니고 난 이렇게 엉뚱하게만 생각했다. 눈이 안보이면 손, 발, 귀 가 있잖아 그걸 사용하면 되지 하지만 안대를 쓰자마자 이 세상은 어두컴컴해 졌다.
두려웠다 계단을 내려가면 서 떨어지면 어쩌나 두렵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안았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 속에서 난 머리 속에서 뭐가 떠올랐다.
시각장애인은 이러고 평생 살고 이 어두컴컴하고 답답한 세상에서 계속 있어 하지만 나는 눈이 있어 앞을 보고 귀가 있어 선생님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 입이 있어서 선생님의 말을 들어 난 눈 코 입 귀 다 있어서 이 세상의 어려움을 겪어내고 살지만 지금 시각 청각 장애인들은 이러고 평생 살면서 온갖 어려움을 다 겪어 우리가 시각 청각 장애인을 얼마나 우습게보았는지 이제 알았다. 우리가 시각 장애인이라면 우릴 놀리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을까
우리가 청각 장애인이라면 귀가 안 들리는 병신이라고 말할까 아마 싫어할 꺼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놀리는 거란 우릴 욕하는 거랑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그동안 장애인들에게 어떻게 하였는지 생각해보고 다시 한번보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의 생활들을 반성하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읽고>
지금 내가 한병태라면 난 독창적이고 잘난척하는 성격을 고치고 엄석대의 말에 복종하겠다.
왜냐하면? 난 그런 독창적이고 잘난척하는 성격 차이로 아이들한테 왕따 되기 싫어서이다.
일단 엄석대의 말에 복종하지 않으면 친구들도 없고 엄석대한테도 미움 받기 때문이다.
엄석대는 친구들이 많고 힘으로 아이들을 지배하기 때문에 지금 내 힘으로 안 된다.
특히 엄석대는 나로 도저히 이길 수 없다 힘으로 아이들을 지배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한병태는 돈으로 친구들을 사귀였다 하지만 돈과 힘 무엇보다 힘이 더 쌔다.
엄석대가 먼저 한병태가 오기 전에 아이들을 힘으로부터 지배하였고 한병태가 와서도 아이들을 힘으로 지배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엄석대와 아이들의 말에 복종하고 5학년 6학년 초등학교 시절을 힘들게 보내고 중 고등학교에는 공부를 열심이 하여서 내 꿈 즉 한병태의 꿈을 이룰 것이다.
[달걀 품기를 하고]
오늘 달걀을 집에서 밥도 먹다말고 삶았다. 아침에 늦잠까지 잤고 투정도 부려 달걀을 삶은 시간이 겨우 15분밖에 남지 않았다. 정말 밥도 안 먹고 달걀만 삶느라 학교 가서 배에서 배고프다고 신호가 왔다. (꼬르륵 꼬르륵)
선생님이 야 이제 달걀 꾸미어라. 한때 난 최선을 다해서 예쁘게 그렸다. 근대 달걀이 뿌지직 띠띡 하고 달걀 껍질이 깨지는 거다. 진짜 슬펐다. 난 어떻게 삶은 계란인데 ㅜㅜ
달걀 껍질도 완전 깨지고 진짜 내 생에 그리 배고프고 슬픈 날은 없을 것이다.
[수련회를 다녀와서]
오늘 22~24일 수련원으로 출발하였다. 나는 정말 기대하고 기대하며 버스를 탔다. 독립기념관으로 같다. 커다란 탑이 세워져있고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난 국립기념관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이순신 보검을 보았다. 이순신 보검은 칼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웠다. 우리나라 제 국보 102이다. 독립기념관은 대한민국이 우리 땅이란 걸 알려 주게 했고 대한민국 앞날을 이해 일본의 지배를 받고 살지 않게 해준 위대한 인물 이순신 유관순 언니이다. 독립기념관을 다녀오고 기다리던 조치원에 왔다 처음엔 재미있는 줄 알았는데 정말 지루하고 힘들었다. 먼저 하이킹을 하였다 못타는 사람 잘 타는 사람을 정하여 탔다. 잘 타는 사람은 촌락을 뺑 돌았다. 못타는 사람은 운동장을 돌았다 난 잘 타는 편에 속해서 탔고 다음날 수영을 하였다 수영장에서 배영을 하다가 물속으로 가라앉아 코에 물이들 어가 ㅜㅜ
그래도 수영은 재미있게 끝마쳤다. 다음날 골프였다 골프를 했는데 손을 가위하고 새끼 손가락을 잡고 왼손에 힘을 주어야 하였다. 난 골프를 치다가 골프 쌤께 꾸지람을 들었다.
짜증나 나도 못 하는걸 어떻게 내가 무슨 골프 천재 미셸위나 그 다음날 난타를 하고 이어달리기를 하였다 우리 반이 1등하여서 기분이 많이 좋았다.
<내 인생의 단점 수학>
6월22일 시험이다 시험은 끝났지만 내 마음은 두근두그니 콩닥콩닥 내 마음속 시험은 끝나지 않았다. 시험 평균을 보았을 때 난 실망이었다. 그동안 학원에서 노력한 게 겨우 이거 내라고 수학이란 과목이 나에겐 큰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수학 그것만 잘 맞았다면 이렇게 실망하지 않았을 텐데 엄마의 기분은 크게 부풀려 있을 것이다. 내가 학력상 타오나 못타오나. 엄마는 날 믿고 있지만 난 나를 믿지 못하겠다.
과목 중에서 잴루 싫어하던 과목이 수학이었는데 이젠 수학을 포기해야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수학은 내 인생의 의미를 망쳤다.
학원에서 노력한 보람까지 무너진 내 공부 속에 나는 크게 실망하고
충격은 안 받았을 텐데 하지만 내 친구 한정현은 괜찮고 2학기 때도 있잖아 라는 말에
내 자존심은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 김.나.영 니 인생은 수학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내 모든 생각 끝에 달려있다는 것을
그래 아직 내 마음속 불은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자 2학기 때도 수학 때문에 내뿜을 져버리지 말고 더 가까이 서서 수학과 대결하는 거야.
&tw5=김민식
<시각 장애인 체험을 하고>
시각장애인이 되었을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넘어지고…….지팡이가 빠지고,
얼마나 시각장애인들은 이렇게 어둠속에서 살아야 한다니……. 너무나도 불쌍하고, 도와주고 싶은 그런 마음 입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어둠속에서 참아 내고 있는 동안에 우리는 이들을 시기하고 놀기만 하고…….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온통 까매서 넘어지고 무릎이 까지고, 그리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비디오 감상문] 도토리의 집
이 비디오에 나오는 게이코는 발달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게이코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장애입니다. 여기에 있는 게이코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장애를 극복하였습니다.
우리는 장애인들을 차별하지 않고, 장애인을 보면 도와주는 게 사람(?) 입니다.
장애인이 우리와 모습이 다르고, 또 이상하다고 해서 외계인이나, 괴물, 병신이라고 놀리지 말고 도와주고, 서로 친구가 되는 게 진정한 한국인의 참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장애인들을 도와줍시다. 이상으로 '도토리의 집'을 마칩니다.
<나의 달걀>
나는 달걀을 가지고 사물함으로 갔다.
달걀을 사물함 위에다 놓은 다음 사인펜을 꺼냈다.
팍!! 뒤를 보았더니 달걀이 깨져있더래.
나는 내 자식 같은 달걀을 버려야 했다.
그때는 정말 미래의 내 자식을 버리는 것 같았다.
[수련회를 다녀와서]
첫째 날에는 한번도 쳐보지 못한 골프를 쳐보았다. 하지만 처음 친 탓일까? 헛스윙 만 한다.(나는야 헛스윙의 황제!!킥킥키) 또 애들이 내일 수영을 한다고 하여서 기대가 되어 잠을 못 잤더니 선생님이 잡아내어 같이 이야기하던 아이들도 잡아내셨다. 그리고선 아주 재미있는 놀이라고 하셨더니 얼굴에 낙서를…….
두 번째 날에는 캠프파이어를 하였다. 그리고 캠프파이어를 하기 전에는 난타, 자전거 하이킹 그리고 마지막에는 시원하게 수영을 하였다. 촛불 의식 눈물 바다였다. 그리고 나는 엄청나게 울었다. 마지막 셋째 날에는 가는 날……. 기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또 과학 전시관에도 갔다.
<시험>
시험 보는 날 아침은 일어나기가 싫다. 학교가는길에 아이들은 태연한 척 학교를 간다.
나는 뭐냐. 재내들은 감정도 없나한다. 학교에서 아침 자습 시간 시간이 나를 놀린다.
시험 이제 시험을 본다. 아이들은 또 태연한 척 나는 뭐냐 정말 잘되나? 참 어렵구나.
그래도 시험을 보고난 뒤가 가장 즐겁다.
&tw6=김상은
[2분 말하기 원고]
저의 2분 말하기 주제는 책에서 본 내용입니다. 저희 학급문고에 있는 '고래가 그랬어'라는 책에는 언니 오빠들이 모여 토론한 내용을 보여주는 코너가 있습니다. 그 코너를 보면 가난한 사람이나 장애인들을 위한 토론을 하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잘못된 제도를 비판하는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통계에 보면 서울, 경기도에는 영화관 미술관 같은 곳이 3000개가 넘는데 어떤 지역은 미술관이 0개인 곳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의 불쌍한 어린이들의 관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월드컵 당시, 학교도 가지 못하고 축구공을 꿰매면서 눈이 실명되고 등이 휘어버리도록 일해도 아주 조금의 돈을 받는 아이들도 있다고 나왔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사람들을 백 명으로 줄인다면 70명은 매우 가난하고 50명은 영양실조에 걸렸으며, 1명은 굶어죽기 직전이며 6명은 세계 재산의 60%를 차지하고 있다고 나왔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읽다보니 저는 세상의 불공평함을 실감했고,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조금 넉넉한 어른들이 그런 사람들을 조금만 도와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른들 중에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글로, 생각으로만 돕자, 돕자 하지 말고 제가 먼저 나누고 실천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들어주신 여러분도 조금이라도 돕자라는 생각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달걀 품기>
달걀 품기라는 활동을 하였다.
어버이날 기념으로 달걀을 아기처럼 생각하고 6교시가 끝날 때까지 가지고 있으며 보호하고 부모님의 마음을 느껴보는 활동이었다.
계란을 꺼내자마자 달걀에 볼펜으로 얼굴을 그렸는데 번져서 뒤에 유성 매직으로 다시 그렸다. 그리고 규칙 중 가장 중요한 규칙은 이것이었다.
1. 되도록 손바닥에서 떠나지 않기 ☜ 이것이 규칙이었다.
진짜 나의 아기처럼 생각하고 자주 내 옷이나 얼굴을 문질렀던 휴지로 먼지를 문질러 닦아주었고 도서실에 갈 때는 MP3에 내 목소리를 녹음해 틀어놓고 갈 정도로 애정을 주었다. 도서실에 갈 때 빼고는 나와 같이 있을 수 있게 했다. (물론 체육 시간에 깜빡하고 놓고 가서 뛰어가서 가져온 적은 있었지만) 점심시간에는 편안하고 따뜻할 것 같은 가디건으로 싸서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두었다. 쳐다보고 있으면 진짜 아기 같았다.
내가 없으면 울어 버릴 것만 같은 아기.
♡ 정말 달걀한테도 이 정도로 정성을 들이는데, 부모님들께서는 아기에게 얼마나 많은 애정과 정성을 들이셨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우리 부모님께 착한 큰 딸이 되고 싶다.
<통합 캠프를 다녀와서>
7월 23일에 통합 캠프를 갔다 왔다.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이 함께 1박2일 동안 산에도 다녀오고 게임도 하고 운동회도 하는 그런 캠프였다.
아빠와 같이 백화원으로 가서 선생님을 만났다.
입회식이 시작하기 전까지 선생님 딸인 다은이와 놀았다.
일단은 입회식을 간단히 하고 조를 짠 다음 조별로 같이 숙소로 가서 짐을 풀고 식당으로 왔다.
잠시 같은 조가 된 숙이언니,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기다렸다.
숙이언니는 오른쪽 눈이 잘 안 보이고 걷기가 약간 불편한 언니였다.
하지만 착하고 남을 잘 칭찬하곤 했다. 금방 점심밥이 나왔다. 카레였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있는데, 고등학교 언니들을 조에 한명씩 도우미로 들어가게 앞에 나와 계시던 선생님이 정해주셨다.
우리 조 도우미는 방선화 언니였다. 언니는 숙이언니를 잘 도와주고 챙겨주고 나를 도와주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소운동회를 했다.
공굴리기, 이어달리기, 그리고 어떤 끈이 있는 판에 2명이서 발을 끼우고 같이 걸어서 빨리 돌아오는 게임 등을 해서 우리 팀이 이겼다.
소운동회가 끝나고 작은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했다.
남자들은 많이 들어가서 놀았지만 여자는 나랑 다희언니, 그리고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 언니 한명이었다.
소운동회가 끝나고 씻은 다음에 계속 쉬다가 저녁으로 돈까스를 먹고 장애 체험, 이름 외우기 문장 만들기 게임, 그리고 식당으로 가서 폴리모클레이를 했다.
그 다음 방으로 돌아와 TV를 보다가 다시 식당으로 가서 폴리모 클레이로 만든 내 목걸이를 가져왔다.
그리고 다희언니,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 언니, 숙이 언니랑 같이 잤다.
다음날, 일어나서 씻고 식당으로 가서 밥을 먹고 내 사진이 있는 티셔츠를 받았다.
그 다음 백화산에 갔다 온 다음 점심으로 소고기 버섯전골을 먹고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 병따개를 만들고 선화언니랑 찍으면 바로 사진이 나오는 카메라로 같이 사진을 찍었다.
<시-희수네 집>
개교기념일이라 시간이 남아서
희수네로 놀러갔다.
열쇠가 없어서
여중으로 가서 민지 언니한테
열쇠를 받아오고
들어서자마자
컹컹 짖어대는
희람이, 희담이 희수가
조용히 하라고 혼내자
깨깽깽깽
슈퍼에 들어가
아이스크림 하나씩
입에 물고
집으로 들어가서
난 컴퓨터를 하고
희수는 텔레비전을 봤다.
그리고 민지 언니가 들어오자
또 다시 컹컹 짖는다.
희람이, 희담이를 씻기고
방으로 들어와
같이 사진을 찍고 산책을 나갔다.
하지만 시간이 늦어서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아, 아쉬움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고 >
‘나무를 심은 사람’은 여행객(나)이 프랑스 프로방스라는 황무지에서 늙은 양치기와 생긴 일이다.
그 황무지엔 늘 세차고 건조한 모래 바람이 불었고, 사람들도 늘 서로 시비를 걸고 경쟁과 살인을 일삼았다.
이때 나는 나무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이 이렇게 무섭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 조금 무서웠다.
그러나 늙은 양치기만은 달랐고, 그 덕에 나는 조금 안심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자주 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여행객이 군대에 갔다 왔을 때 그는 사람이 죽는 것을 너무 자주 보았기 때문에 그가 죽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살아있었고, 어린나무가 양 때문에 위험했기 때문에 4마리의 양을 남겨둔 채, 벌치기로 일을 바꿨다.
그리고 그가 나무를 심은 곳은 아름답고 울창한 숲을 이루며 자라났다. 그 때 그곳은 비록 그림이었지만 정말 멋졌다.
그는 계속 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저절로 숲이 생겼을 거라 생각하고 무척 놀랐다.
그 때 메말랐던 프로방스는 더 이상 황무지가 아니었다. 시냇물이 흐르고 활력과 생기가 넘쳐났다.
감상하고 난 뒤, 나는 나무와 꽃으로 그렇게 아름다운 곳을 만들 수 있다든 것이 믿기지가 않았고, 한편으로는 황무지를 그렇게 멋진 곳으로 만든 양치기의 노력도 놀라웠다.
그리고 양치기의 끈기와 노력 티 없는 마음씨의 작은 감동을 받았다.
그는 메마르고 황량한 프로방스를 활력과 행복, 기쁨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었고 그 덕분에 그 곳에 오는 사람들은 행복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한 장면 한 장면이 지날 때 마다 나무에 대한 소중함을 느꼈다. 앞으로는 식목일뿐만 아니라 다른 때도 식물에 관심을 가져야 겠다.
<눈썰매장>
2/3 오후 2시, 서해안 마트 앞에서 선생님, 나, 희수, 은혜, 윤희, 소헌, 채은, 채주가 모여 원북으로 향했다.
슬기는 마침 집이 원북이라서 가던 도중에 잠깐 들러 슬기 동생이랑 태워서 갔다.
처음에 멀리서 썰매장을 보았을 때는 그래도 재밌을 것 같아서 기대에 부풀어 올라가보니 생각보다 작기도 하고, 지푸라기 같기도 하고, 플라스틱 빗자루 같기도 한 뭔가가 쫙 깔려 있어서 여기로 내려가는 건가 싶었다. 그래도 일단 썰매를 빌려 타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썰매가 잘 나가서 재밌었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누가 제일 멀리서 멈추나 시합을 하기로 했다. ㅋ
그런데 선생님이 제일 멀리 나가셔서 일등을 하셨다.
내가 봐도 정말 저 정도로 멀리 내려가긴 어려운 것 같았다 .
그리고 나서 계속 썰매를 타다가 조금 질려서 술래잡기를 했다.
그리고 옆에 지압길도 있었는데 어떤 건 견딜만 한데, 어떤 건 또 엄청 아팠다 ㅠㅠ
내가 술래를 몇 번씩이나 계속 하는 바람에 지쳐서 술래잡기를 그만하고 하나로 마트로 나왔다.
그리고 포장마차에서 닭꼬치도 먹고, 붕어빵도 먹고, 오뎅도 먹고 음료수도 두병을 사서 마셨다.
그리고 나서 이제 태안으로 가려는데, 슬기 아빠를 만나서 자장면, 군만두, 탕수육을 배불리 먹었다 ~ ㅋㅋ 정말 맛있었다.
오랜만에 포식한 날이었다. ㅋㅋ 그리고 나서 태안으로 돌아와 애들이랑 조금 놀다가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 _< 정말 재밌는 하루였다.
[비디오 감상문] '도토리의 집'을 감상한 뒤
주인공인 게이코는 선천성 발달 장애였다.
4살 이상 성장하지 않았고, 한쪽 귀가 들리지 않으며 웃거나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려하지 않았다.
4살 때부터 게이코는 게이코와 사정이 비슷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농아학교 유치부에 입학했다.
보청기를 귀에 착용하고 희미하게 들리는 오르간 소리로 노래를 배우고, 혼자 밥을 먹거나 자기 이름을 쓰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가 나는 게이코의 엄마에게는 그동안의 고생과 시련을 잊을 수 있는 기쁜 순간이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 덧 시간은 흘러 게이코가 6학년이 되었을 때 게이코의 엄마는 게이코의 월경혈이 묻은 속옷을 우연히 발견하고, 게이코가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과 남편이 없으면 게이코는 혼자 살아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공포감을 느낀다.
이때 나는 비장애인 사람들이 장애인들을 위한 일을 좀더 많이 한다면 게이코도 혼자 사는 게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게이코의 엄마는 게이코에게 꾸준히 교육을 시켰고 그 덕분에 게이코는 혼자 월경했을 때 처리를 했고, 엄마는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중학생이 된 게이코는 혼자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가게 되었다.
나는 게이코의 엄마의 노력의 큰 감동을 받았고, 게이코 같은 장애인들을 우리 비장애인들이 동정이 아닌 존중을 해주며 돕고 나누며 다같이 어울려 살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티븐 호킹, 에디슨, 아인슈타인, 이희아 같은 훌륭한 사람들도 장애인 이라는데, 왜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차별을 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장애인들도 피땀 나는 노력으로 인해 얻은 뛰어난 능력이 있는 경우도 많은데 왜 차별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나눔’을 실천하여 그 보람을 느끼며 장애인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기] 장애인체험
장애인 체험을 했다.
첫 날은 주연이랑 나랑 파트너가 되어서 번갈아 가며 안대를 끼고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로 여기가 어딘지 가늠하며 쉬는 시간엔 같이 화장실까지 갔다 오기도 하고, 다같이 나가는 시간에는 같이 급식실에서 강당 쪽으로 쭉 돌아서 교실까지 왔다. 서로 안내원이 되어주면서 재미있는 말투로 어색한 존댓말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주고받다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내가 설명을 늦게 해서 주연이가 몇 번 넘어질 뻔 한 적도 있었는데, 그럴 때는 한편으로 미안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런 작은 장애물이 장애인들에게 이렇게 불편한 것인 줄 몰랐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휠체어도 몇 번 타 보았는데 복도를 다닐 때는 그래도 꽤 나았지만 이 장애인들은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들려와야 하고 불안감이 생기고, 휠체어를 타고 오래 다녀서 팔이 아파지는 것 같은 어려움이 많았다. 그리고 혼자 안대와 지팡이로 1층까지 내려갔다 올라왔었는데 그 때는 우리 학교에는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이 적었다. 장애인용 화장실 1, 2개, 열개가 될까 말까 한 것 같은 장애인용 보도블록 말고는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거의 없었다. 내리막, 오르막, 구멍이 많아 지체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다니거나, 시각장애인이 지팡이를 짚고 다니기 어렵고 위험했다. 몇 번 다니면서 속도도 조금 붙고 요령도 생겼지만 어디에 부딪힐지 모르는 불안감, 갑갑함을 참기가 어려웠다. 매일 불안과 갑갑함을 느껴야 하는 장애인들은 어떻게 하루하루를 이렇게 살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하는 수모를 깨닫고 장애인들이 참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애인’, ‘애자’같은 기분 나쁜 별명으로 불리고 툭하면 친구가 때리고 가니 학교생활 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둘째 날인가 셋째 날은 수화를 배웠다. 수화로 ㄱㄴ 같은 자음과 모음을 배우고 수화로 인사와 노래도 배웠다. 그리고 수화로 얘기를 할 때는 수화를 모르는 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입모양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그렇게 수화를 배우며 나는 장애인들을 느껴보기 위해 이렇게 체험하는 게 왠지 좋아졌고, 앞으로는 무조건 동정하기 보다는 편견을 버리고 장애인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고 존중해 주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장애인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 같다. 좀더 관심을 갖고 장애인들을 위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캠프를 다녀와서>
태안 참여자치 시민연대에 있는 성폭력 상담소 선생님들과 캠프를 갔다.
대전에 있는 어린이 인성학습원이란 곳으로 갔는데, 나와 민지, 상명이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왔다.
버스 안을 자세히 둘러보니 내 자리 앞에 정구윤이 있었다. 인성학습원에 도착하자마자 대강당으로 가서 팀을 나눴다. 7~8살, 2-3학년 팀, 고학년 팀(4학년 이상)으로 나눴다. 그래서 나와 민지는 한 팀 이였지만 상명이만 다른 팀으로 가야했다.
맨 처음에는 7-8살 팀과 같이 자연관찰을 했다. 망원경처럼 생긴 걸로 잎을 관찰하고, 나무목걸이도 만들었다.
그 다음 점심을 먹고 고학년 팀만 계룡산에 갔다. 처음에는 안내소로 가서 우리를 안내해주실 분들과 계룡산 국립공원과 우리나라 국립공원에 대한 설명.
그리고 계룡산에 사는 수생생물, 동물, 식물들, 그리고 국보, 보물에 관한 설명을 들었는데 먼저 국립공원과 수생생물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남매탑이란 탑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진짜 이름은 생각이 잘 안 난다.
그 설명을 내가 다 읽었는데, 다 읽고 조금 숨이 찼다.
그 다음 말벌의 집을 본 다음 돋보기로 나방과 나비의 표본을 보고 구분법을 배웠다.
그 다음 자연사한 동물들을 박제로 만든 것을 보고 은영이 언니라는 가이드 언니와 직접 계룡산 국립공원으로 들어갔다.
입구 쪽 나무들과 계곡을 구경한 다음, 안 쪽으로 들어가 뱀놀이를 했다.
뱀놀이는 눈 밑에 거울을 놓고 걸어서 꼭 뱀이 된 느낌이 느껴지게 걷는 것이다.
꼭 하늘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재밌었다. 그리고 자연관찰 때 만들었던 나무목걸이를 또 만들었다.
그 다음 국립공원 안에 있는 계곡으로 가서 발을 담그고 돌아와서 전체 팀이 다함께 난타를 배우고 숙소를 배정받고 저녁을 먹고 조금 놀다가 캠프파이어를 했다.
진행하는 아저씨가 재치가 많으셔서 재밌게 놀았다.
그 다음 씻고 3학년 동생들이랑 상명, 나, 민지가 같이 아하게임, 귀신놀이, 술래잡기 등등 계속 놀다가 잤다. 다음날 조금 쉬고 식당으로 가서 아침을 먹었다.
그 다음 학습원 안에 있는 계곡으로 가서 놀았다. 정말 시원했다. 그 다음 숙소로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고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수련회를 다녀와서>
5월 22일부터 5월 24일까지 2박 3일로 수련회를 다녀왔다. 제일 먼저 독립 기념관에 도착했다. 처음 들어설 때는 정문 앞에 태극기와 한반도기가 잔뜩 모여 있는 태극기 마당이 보였다. 태극기와 한반도기가 펄럭이는 것이 꼭 출렁이는 파도 같았다. 1전시관에서는 우리 민족의 마음이나 생각 같은 것을 나타낸 동상도 있었고, 거북선과 고인돌 같은 유물들의 모형도 보였다. 2전시관과 3전시관은 특히 자세히 둘러보고 싶었다. 처음으로 2전시관에서 눈에 띈 것은 인형들이 입과 팔을 움직이며 무언가 말하는 것이 있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대한 조선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재미없을 것 같던 독립기념관이 점점 재밌어지고 있었다. 3전시관은 주로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고문하는 장면들이 많았다. 고문의 장이라는 것을 직접 눈을 창문에 대고 보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무서워서 보지 못했고 그 대신 뒤에 있는 것을 보았다. 고문하거나 폭동을 진압할 때 쓰는 총, 칼 그리고 고문 장면을 보았다. 노인과 여자들도 봐주지 않고 피투성이 되도록 고문했다. 그리고 사람을 목만 내밀게 하고 묻거나 상자에 가두는 일도 서슴없이 했다. ‘저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하고 생각하며 왠지 으스스하고 무서워서 빨리 뛰어나왔다.
그리고 조치원 청소년 수련원으로 갔다. 입회식을 하는데, 선생님들이 생각보다 무서워 보여서 긴장이 좀 되었다. 그리고 난타를 배웠다. 그런데 난타 선생님이 간장통을 연주하는 애들만 높은 점수를 주셔서 간장샘, 간장통샘이라는 별명이 붙으셨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자유 시간을 가진 뒤 이곳 선생님이 아닌듯한 선생님께 별자리와 우주에 대해 공부했다. 우주가 얼마나 큰지는 상상도 못할 정도였다.
둘째 날은 아침 산책을 하고 단체 줄넘기와 단체 공튀기기, 협동심을 기르는 게임을 했다. 자전거 하이킹 시간에는 자전거를 못 타서 한쪽 다리가 벌개질 정도로 연습을 해서 아주 조금 탈 수 있게 되었다. 그 다음엔 점심을 먹고 자유시간이 끝나고 수영시간이 되었는데 별명이 열개나 있는 난쟁이 선생님이 또 앉아 번호를 잔뜩 시키셨다. 그런 다음 겨우 수영을 하는데 우리는 선생님께 매달리고 물을 뿌렸고 선생님은 우리를 물속에 던지고 잠수시키셨다. 그런 다음 씻고 바로 골프를 배웠는데 생각보다 많이 어렵지는 않았다.
그리고 저녁 7시가 조금 넘어서부터 캠프파이어를 시작했다. 장기자랑을 할 때는 우리 반이 버즈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과 다함께 ‘꼭짓점 댄스’를 춘 다음 짝짓기 게임을 했다. 다른 반은 보통 막춤을 추었는데 우리 반은 브레이크 댄스를 추었다. 정말 분위기가 즐거웠다.
그런데 촛불 의식을 하기 위해 초에 불을 켜고 촛불을 바라보며 부모님의 희생정신의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눈물이 나왔다. 분위기는 점점 우울해져갔고, 우리는 울면서 숙소로 들어가 부모님께 편지를 쓰고 하늘이 소헌이가 옆방에서 놀러 와서 같이 잤다.
셋째 날은 아침을 일찍 먹고 이어달리기를 했다. 전보다 차이가 조금 줄었지만 그래도 당당히 우리 반이 우승을 했다.
그리고 대전의 중앙과학관으로 가서 십이지 동물을 로봇으로 표현한 동상을 구경하고 윤희, 은혜랑 터치스크린으로 퀴즈도 풀어보고, 생태계에 관한 곳에서는 물고기들을 구경하고 유전자 과학을 통해 부모 유전자를 조작해서 자식의 유전자를 알아보는 것도 해보았다. 그 밖에 you&me(나는 너)라는 거울 방에 들어가고 멀미의 방에서 들어갔는데 방이 기울어져 있었다. 중심잡기를 하는데 재미있었다.
그 다음 기념품점에 들러 물건을 구경하고 중앙과학관에서 나와 집으로 향했다.
&tw7=김슬지
<달걀품기를 한 후>
집에서 스스로 달걀을 삶아 와서 달걀품기를 하였다.
처음에는 왜 이런 것을 가져왔나 했다.
뭐하는 건지 잘 몰라서 '가져와서 먹는 건가?'했다.
그런데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알았다.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했던 것 이다.
달걀품기를 하루 동안 해보고 나니까 우리를 지금까지
키워 주셨던 부모님의 힘든 마음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느끼고 부모님께 정말 감사하다.
요즘에서 부모님이 안계시다는데 우리는 이렇게 지금까지
건강하고 예쁘게 잘 키워 주셔서 감사했다.
부모님께 이런저런 얘기를 못 드리고 해서 정말 죄송하다.
말도 안 듣고.
카네이션 달아드릴 때도 감사하다고 말을 못해드렸다.
부모님 사랑하고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정말 사랑해요.
<나의 2분 말하기>
저는 내가 가장 슬펐던 일을 발표 하겠습니다.
제가 가장 슬펐을 때에는 저희 외할아버지께서 식도암이 걸리셔서 큰 수술을 받으시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수술 날이 되었습니다.
저희 엄마는 걱정이 되셔서 할아버지 병원 일산 암센터라는 병원으로 가시고 저는 걱정하며 울면서 하루 동안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7시30분이 걸리셔서 수술이 다 끝나시고 나오셔서 많이 편찮아 하셨다고 했습니다.
또 다음 날,엄마가 오셔서 이런저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가족이랑 같이 할아버지께 같습니다.
할아버지는 여러 가지 액을 몸에다 어떻게 해서 코에 끈을 이어놓고 했습니다.
그 때 막 눈물이 나오려고 해서 화장실에가 몰래 울고 세수하고 나와서 동생들이랑 놀다 저녁이 되어 할머니께서도 가슴이 답답하시고 몸이 안 좋으시다고 엄마께서 할아버지 병간호를 하시고 아빠랑 우리끼리 왔습니다.
할아버지 빨리 나으세요.
[비디오 감상문] 식목일
오늘은 식목일이다. 나는 식목일 날 나무를 심는 사람은 아침에 학교에 등교할 때 어떤 아주머니께서 아기나무를 심으셨던 것이다. 나는 나무를 심으려고 했는데 학교를 등교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6시쯤 오고 심을 나무를 사지 못 하기 때문이다.
내일 아빠께 사달라고 해서 심을 것이다. 뉴스에도 나오고 그래서 나도 심어야겠다.
그런데 꽃을 심는 날은 없을까?· 어쨌든간, 나무를 꼭 심어야겠다.
나무는 정말 이로운 점이 많은 것 같다. 그러니까 나무를 함부로 베어도 안 되겠고 산불 조심도 해야겠다.
[일기] 우리 가족 서초 휴양소 가다
우리 가족은 서초 휴양소에 갔다. 아빠 회사 쪽을 지나 10분정도 지나면 있다. 그냥 지나치면서 볼 때는 별로 였는데 직접 가서 보니까 크고 정말~~로 좋았다. 시설은 바베큐장도 있고 네트가 있는 풀밭 운동장도 있었다. 일단 집을 놓으러 5층으로 올라갔다.
방도 4명이서 자는 방인데도 널찍하고 깨끗하였다. 배가 고파서 엄마께서 휴양소를 가기 전에 해뒀던 전 반죽을 부쳐 먹었다.
엄마가 해준 전은 정말 맛난 음식이었다!!
너무 배부르고 덥고해서 나갔다. 밖에는 비가 오려는지 바람이 불어왔다.
시원하고 좋아는데 바베큐장에 있는 사람들이 굽는 고기의 냄새 때문에 너무 먹고 싶었다.
우리 엄마가 닭다리 사서 바베큐 소스를 발라서 구워주는 바베큐는 정말 맛있었는데… 먹고 싶다.♡♡
오래 있다 보니까 추워서 방으로 들어갔다. 샤워를 해야 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사우나로 갔다. 그런데 아주 싼값에 좋은 시설로 사우나를 하니까 좋았다.
들어가서 냉탕에서 수영도 해보고 찜질도 하고 기분 업이었다. 다 씻고 올라갔는데 아빠랑 먼저 와있었던 것 이다. 그런데 엄마가 머리가 아프시다고 해서 나가서 좀 돈 다음에 들어왔다. 그리고 피곤해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목포에 있는 자영사 박물관에 가기로 하였다.
<체육대회>
체육대회를 했었다. 체육대회 때 여러 가지 종목이 있었다. 그 중 내가 나가는 건 승부차기 빼고 다 나가게 되었다. 첫 번째로 단체 줄넘기를 했다. 단체 줄넘기는 6반과 같이 붙었는데 0:6으로 우리 반이 승리했다. 두 번째로는 씨름을 했다. 씨름이 시작되어서 우리 반과 4반이 붙게 되었다. 겨루었는데 내가 한방에 졌다. 그렇지만 남자 친구들이 다 이겨 주어서 이기게 되었고 다시 1반과 붙게 되었다.
세 번째로는 줄다리기를 했다. 줄다리기는 처음에 6반과 붙었는데 우리가 이겼었고 서로 이겨서 가위바위보로 자리를 정해서 다시 붙었는데 우리 반이 이기게 되었다. 또, 다시 1반과 붙었다. 그런데 또 비겨서 가위바위보로 자리를 결정해서 우리가 또 이겼다.
그래서 지금까지 모두 이겼다.
다음에는 여자친구들만 하는 피구를 할 차례였다. 순서가 되어서 강당으로 들어갔다.
4학년이 하는 중이어서 우리는 잠깐 기다렸다. 2분 후, 4학년끼리의 시합을 마치고 우리 반과 6반이랑 붙었다. 경기가 시작 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반이 2판이나 이겼다.
다음은 피구를 잘한다는 3반과 붙었다. 또 시간이 더 흐르고 은혜 혼자 남게 되었다.
한 3분정도 지나고 은혜가 해냈다. 은혜에게 정말 고마웠다.
그 다음 종목은 투호!!!
투호하는 곳으로 가서 콩주머니를 가직고 한명씩 돌아가면서 골대에 넣었다.
한번씩 순서가 돌아가고 세어보니 13개 이었다. 우리 반은 그래도 3등~~~~@!!!
그 다음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어달리기’! 첫 번째 주자 가을하늘이 잘 해주어서 우리반이 1등을 차지하고 상품으로 축구공을~~~상금으로 얼마??를ㅋㅋ~
그래서 아이스크림도 먹게 되었다. 우리반 홧팅!!!
[수련회를 다녀와서]
첫날 7시 까지 학교에 등교를 해서 독립기념관->조치원->중앙과학관을 다니기로 하였다.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아서 갈 때 까지 기다렸다. 드디어 출발했다. 처음에 천안으로 갔다.
일단 독립기념관에 들려서 자세히 보고나서 목천 쪽으로 청소년수련원 조치원으로 갔다.
버스에서 내려서 선생님 말씀에 따르고 남, 여 숙소 따로 해서 숙소로 갔다. 우리 반에서 반은 203호 204호로 나뉘었다.
숙소에 가방과 짐을 내려놓고 강당으로 가서 입소식을 하였다. 선생님들 소개를 하고 몇 분 동안 앉아서 있다가 숙소로 가서 자유 시간에 좀 쉬다가 야영 무대로 가서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맛있는 밥을 감사히 먹고 나와서 또 놀다가 야영 무대로 모이라고 하셔서 모여 가지고 강사 선생님과 함께 a, b, c, d,조로 나누어서 골프, 난타, 수영, 자전거(하이킹)를 하였다.
우리 조인 d조는 자전거를 탔다. 그런데 약간의 비가 내려서 자전거를 세우고 멈출 때 까지 기다렸다가 또 다시 탔다.
1시간 정도를 자전거 수업으로 마쳤다. 숙소로 들어가 취침이 되어서 이불을 펴고 좀 놀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둘째 날,7시에 일어나서 야영무대로 나가서 조식을 먹을 동안 산책을 하러 갔다.
산책을 하면서 본 풍경은 아름답고 정말 예뻤다. 소, 강아지들도 보니까 좋았고 공기도 너무 맑아서 좋았다.
내려갈 때 내리막길 때문에 재미가 있었다. 조식을 먹으로 식당으로 가서 음식을 받고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왠지 먹기가 싫어서 버렸다. 맛있었는데 버리고 나니까 기분이 찜찜했다.
또다시 자유 시간을 주셔서 매점에서 사먹고 놀다가 야영 무대에서 모여 가지고 d조는 수영을 하러갔다. 좀 무서우신 성냄과 같이 했다.
처음 순서는 선생님의 주의 말씀을 듣고 준비운동을 하고 물에 들어가서 수영, 배영, 잠수 등을 하고 50분 정도 놀다가 다시 모여서 추운 사람은 나가서 있기로 하였다.
나는 추우면 못 참아서 초롱이와 같이 나왔다. 숙소 화장실에 가서 샤워를 하고 옷으로 갈아입고 점심을 먹으로 갔다.
식판을 듣고 자리에 앉아서 밥을 먹는데 넘 맛있어서 다 먹고 밖으로 나갔다. 그 다음 체험 학습은 골프다. 나는 운동 쪽은 자신이 있기 때문에 빨리 하고 싶었다. 드디어 자유시간이 끝나고 골프 강사 선생님과 골프장으로 가서 채를 들고 쳐보았는데 처음이여서 4~5개는 헛스윙을 하였는데 계속 쳐보니까 잘 쳐졌다. 40분 동안 골프를 치고 강당으로 가서 난타를 쳤다. 간장통, 드럼통, 북등으로 재미있게 쳤다.
모두 다 끝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밥이 좀 남아서 버리고 지희랑 친구들이랑 같이 숙소에서 놀다가 밤정도가 되어서 조끼리 뭉치고 뭉쳐서 모닥불이 켜질 때 까지 돌고 게임도 하면서 있는데 드디어 모닥불이 켜졌다.
선생님은 주인공으로 해서 해바라기, 바다의 배등으로 만들어서 논 다음 촛불을 켜고 촛불 의식을 하였다. 부모님께 대한 태도를 비롯해서 얘기 했는데 죄송해서 눈물밖에 흘리지 못 했다. 몇 시간 동안의 캠프파이어가 끝나고 숙소로 가서 부모님께 편지를 써서 강사 선생님께 냈다. 그 다음 잠이 쏟아져서 빨리 잠들었다.
그 다음 마지막 날, 야영 무대로 모여서 강당으로 모여서 퇴소식을 하고나서 운동장으로 가서 스탠드에 앉아서 계주를 하는 것 이었다.
<시험>
시험 전에 시험 볼 준비를 하였다. `시험을 잘 보고서는 학력상을 탈 수 있을까??? 라고 생각 되었다. 아침이 되어서 학교에 등교를 하고 국어 시험지를 읽어보았다. 9시 정도가 되어서 선생님께서 국어 시험지를 나눠 주셨다. 국어를 풀고 있다가 듣기평가가 있는데 선생님께서 들려 주셨다.
나는 귀기울여 듣고 답을 적었다. 풀어 보았던 거여서 맘이 놓였다. 10번째 문제 정도까지 가서 문제가 약간 헷갈렸다. 점심을 먹고 와서 남아있는 예체능 시험지를 풀었다.
또, 알송 달송한 문제가 있었지만 칸을 비우는 것 보다 그래도 쓰는 것이 날 것 같아서 곰곰히 생각 했다가 답을 적었당>_<!
시험지를 모두 제출하고 나니가 놀고 싶은데 놀지 못했던 마음이 뻥 뚫리니까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동안 정말 열심히 한 결과로 시험을 봤지만 마음이 그리 좋지 않았다.
집으로 가서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는데 부모님께서 나는 시험기간 동안 열심히 하고 집에서 스스로 자습하는 습관이 길들어 진 것 같다고 학력상을 꼭~~ 타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tw8=김은영
<시-시험>
시험 날 아침
애들은 머리카락 뽑느라
정신이 없다.
공부 잘하는
애들은
머리카락 뽑히고
공부 못하는 애들은
머리카락 가져가고
못 말리는 우리들은
머리카락 뽑느라
정신이 없다.
[생활글] 의심이 없으면
어제 우리는 국어 시간에 우유곽 뒤집기를 했다
나는 하다가 찢어졌다ㅠㅠ
그런데 몇 명 애들은 성공하였다.
정말로 의심이 하나도 없으면 무엇이든지 성공할 수 있을까?
나도 의신을 버리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까?
우유곽 뒤집기를 성공한 애들은 의심이 하나도 없는 것일까?
아니면 힘으로 우유곽을 뒤집은 건가?
그 아이도 힘으로 한건지. 이심이 하나도 없어서 성공 한건지.
정말로 알 수 없다.
<달걀품기>
달걀 속에는
노른자가 있고
또 흰자가 있다
달걀을 품으면
닭이 되는 느낌
엄마는 닭
나는 병아리
닭은 달걀을 품는다.
엄마는 아기를 키운다.
달걀은 아기
달걀에서 태어나면 병아리
우리가 크면 어린이
[시] 따라하는 애들!
내가 먼저
김기사 운전해하면
애들이 따라한다
애들은 애들 성마다
"김기사" "이기사"라고 부른다.
김기사00해
이기사00해와
애들은 내가
사모님 목소리를
잘한다고 한다.
&tw9=김재우
시) 우산
우산은
방패이다.
빗방울 화살도 막아주고
햇빛 창도
막아준다
우산은
참 고마운
방패이다.
<시-내 친구 찬우>
내가 전화해서
놀자고 하면
"야, 넌 맨날 노냐"
하면서도 같이 논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보고>
내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보고 느낀 점이다.
병태가 시골로 내려와서 석대를 만나고 엄청나게 많은 위기에 처하고 혼나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에 굴복을 하였다.
나는 왜 병태가 석대에게 굴복을 하였는지는 모르겠다.
남에게 굴복한다는 자체가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다.
나는 절대로 굴복을 안 할 것이다.
<시-시험>
시험 보는 날
나는 기대 반 기쁨 반
나는 자신 있게 보고
학원으로 갔다.
그리고
시험 발표날
나는 울 뻔 하였다.
평균 ??점
나는 집에 가서
죽을 것 갔었다
나는 집에 가서
서러움 때문에
울었다.
&tw10=김택범
[달걀 품기를 하고] 달걀품기(시)
아침에 삶은 계란을
학교에 가져가서
계란품기 그림 그리기
친구 계란부터 깨지고
내 것은 수성싸인펜으로 번지고
온통 망친 계란품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보고>
한병대는 어느 시골에 전학을 왔다.
거기에는 엄석대라는 급장이 있다. 그 학교에서는 엄석대가 짱이다. 엄석대는 나쁜 아이다.
그리고 1년 후 엄석대와 한병태는 6학년이 되고 새로 오신 선생님이 오셨다.
거기서 새로 오신 선생님이 엄석대를 개 패듯이 패고 선생님에게 ***라고 말하고 도망갔다.
그리고 한밤에 엄석대는 학교에 기름을 줄줄 뿌리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몇 년 후 엄서대는 오야봉이 되었다. 나는 엄석대라는 아이가 있으면 개 패듯이 패야겠다.
&tw11=김현규
[독후감] 나무를 심은 사람
옛날에 프로방스-황무지에 한사람이 물을 찾고 있었다. 그 사람은 황무지 즉 모래로 덮인 곳에서 나무를 심고 있었다.
나는 모래로 덮인 곳에서 나무를 심으면 모아냐 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나무는 자라기 위해서 물, 온도, 공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과 온도가 안 맞는 황무지에서 어떻게 나무가 자랄지 생각했다.
그런데 어는 날 시냇물에 물이 흐르고 있었다. 비가 온 것 이었다.
나무는 물을 먹고 마치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내 생각은 이 세상엔 불가능이란 없다이다.
그리고 한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책임 지자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보고>
내가 만약 엄석대라면 극장에 대한 일을 철저하게 할 것이다. 엄석대처럼 하진 않겠지만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내고 공부도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내가 만약 한병태라면 엄석대에게 잘 해 주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엄석대는 아는 중학생 형아들로 인해 친구들을 때리라고 하고 친구에게 누명을 씌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싸우지 않을 것이고 공부만 열심히 할 것이다. 내가 만약 친구들이라면 한병태 말을 찬성하고 엄석대를 혼내주라고 선생님한테 이를 것이다.
내가 만약 선생님이라면 한병태 말 믿어 주지 않을 것이고 엄석대의 잘못한 점을 고쳐 주었을 것이며 학교 폭력을 감시할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공부에만 집중을 할 수 있게 지도를 할 것이다.
<2분 말하기>
15일 날 있었던 선거 연설에 대하여 설명 하겠습니다.
기호1번 은 퀴즈와 재미로 연설을 하였고 기호2번 은 연설은 그렇게 길진 않았지만 공약을 정확하게 말을 하였고 기호3번 은 나무젓가락이 부러지는 표현으로 연설을 하였고 기호4번 은 만약 전체 회장이 되면 운동기구와 공중전화를 만들어주었다고 했습니다.
저의 생각은 기호1번을 뽑았으면 합니다. 왜냐면 기호1~기호4번까지 쭉 보았으나 따른 연설 보다 퀴즈를 내고 재미있게 연설을 해서 저는 기호1번을 뽑았습니다.
2분말하기에 김현규였습니다.
[장애 체험] 장애인 체험을 하고
오늘 학교에서 시각장애인 체험을 했다.
무슨 도구를 사용해 하였냐면. 안대, 장애인용 지팡이, 휠체어를 사용하여하였다.
이인 일조로 편을 짜서 위험 한곳이 있으면 친구가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 반에서 급식실 까지 가서 다시 우리 반으로 오는 것이다.
처음엔 쉬울 것 같았지만 직접 해보니까 보통 쉬운 게 아니다.
내 생각은 시각장애인에게 위험을 알리는 기계가 있었으면 한다.
왜냐면 아무리 시각장애인이 많이 생활해 괜찮다고 해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수련회를 다녀와서]
조치원 수련원에서의 첫날밤!
나는 내일 장기 자랑을 위해서 애들이랑 맞추어 보려고 애들을 모여 놓고
연습을 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애들이 연습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때는 정말 화가 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잠자리에 들려고 하였다 그런데 승민이가 가지고 있는 야광 팔찌가
터졌다. 방안은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이불, 그리고 애들 옷에 야광 물질이 묻었다.
나도 조금 묻었다. 이불에 묻어서 이불을 뒤집어 사용하였다.
그런데 잠이 오지 않았다 너무 덥기 때문이다
다른 방은 에어컨이 있는데 우리 방은 없다
그리고 옆방은 쥐가 나오기 때문에 문을 열고 잘 수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애들이 너무 덥다고 문을 열어 놓고 잠을 잤다 그래서 나도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5시경 애들은 다 깨어있었다. 일어나는 시간은 7시인데 2시간씩이나 남았는데 잠을 더
이상 못자겠다 그래서 애들이랑 말도 하고 돌아다녔다.
7시경 농구골대 앞으로 모이라고 하였다 모여서 조끼리 산책을 나섰다. 흑곰 선생님이 꽃을 먹고 있었다. 나도 하나 먹어 보았는데 맛이 풀 맛이었다. 그리고 조치원에 들어가 아침을 먹었다 밥을 먹고 자육시간에 축구를 했다.
다시 모였다. 그리고는 처음B조와D조는 단체공튀기기를 먼저 하였고 A조와 C조는 단체줄넘기를 하였다.
우리가 공 많이 튀기는 거는 1등이지만 높게 올라가지 않는 거도 1등이다 그래서 우리 팀이 꼴등을 했다 그리고 바꿔서 B조D조 단체 줄넘기 C조A조 는 공튀기기를 하였다 단체줄넘기를 하다가 택범이가 줄넘기 줄에 걸려 무릎이 다쳤다. 그리고 난타 교육을 했다 쿵짝 쿵쿵짝 쿵짜짝 쿵쿵짝 아주 재밌다 그릭 자유시간이다 축구를 하여 우리팀이 2:5역전승을 하였다 그리고 자전거 하이킹 교육시간에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너무너무 더웠다 그다음 교육이 수영이 여서 참고 계속 폐달을 밟고 마침내 조치원까지 왔다. 수영 교육이다 간단한 준비운동을 한 후에 그냥 놀았다.
그리고 장기 자랑 시간이다 애들이 잘할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애들 끼리 호흡을 잘 맞춰주어서 잘했다. 꼭짓점 댄스도 아주 잘 하였다 그다음 날 이어달리기를 하였다 정말 떨린다. 내 차례였을 때 눈을 감고 달렸다. 눈을 감고 달리다 보니 라인 바깥쪽으로 나갔다. 그래서 동시에 바턴을 주었다 다른 애들이 잘해주어서 우리 반이 1등을 하였다.
&tw12=김현수
[달걀 품기를 하고]
재미있지만 아깝다. 난 달걀이 없었다.
선생님이 주셔서 할 수 있었다. 4째 시간 때 깨져서 아까웠다.
닭의 알이 깨진 것처럼 닭은 너무 슬퍼 할 거다.
부모님의 아들이 죽은 것처럼 아플 거다.
다시는 알을 안 할 거다. 아빠를 도와줘야겠다.
2006년 5월9일 화요일
<시험>
시험 전 두근거리는 마음
시험공부가 시작되고
마음 두근두근 시험이 끝나고
집에서 게임한다.
<시-할머니>
할머니의 손은
목욕탕에 들어간 것 같다.
목욕탕에 오래 있으면
할아버지 발이 된다.
할머니의 쭈굴쭈굴한 얼굴
할머니께서 웃은 적이 별루 없다.
할머니의 주름살
할머니께서 서울로 올라가셨다.
기분이 묘하다.
&tw13=남수빈
<시각장애인 체험을 하고>
나는 장애체험을 했다. 계단에서가 제일 어려웠다.
나는 채은이랑 짝을 지었다. 그리고
밖에서 따른 애들이 괴롭히기도 했다. 지팡이로
이곳저곳 지으며 걸어갔다. 그 이름은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다.
너무 힘들은 하루였다. 장애인들은
정말 힘들었을 것 갔다. 이 체험을
잊을 수가 없고, 보람 있는 체험을 하였다.
[비디오 감상문] 나무를 심은 사람
-엘제아르 부피에 에게-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5-5반의 수빈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위험에 처한 상태라도 꿋꿋하게 이겨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저도 배울 점이 많네요. 그리고 나무를 심는 모습은 정말 꾸준히 하고 자기가 해야 할 것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벌써 헤어질 시간이 되었네요. 이만 줄일게요. 안녕히 계세요.
<달걀 품기를 하고>
오늘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달걀을 아기로 생각하고
품어봤다. 달걀은 깨지지도 않아 기뻤다.
처음엔 즐거울 것 같았는데 조금 귀찮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귀엽고 좋았다. 이런 경험을 처음이고
생계란이, 아닌 삶아서 가져왔다.
<구구단 >
내 동생은 교실을 찾아와 "언니 우리 선생님이 오시래"해서 내가갔다.
나는 선생님께서, 혼내실까봐, 마음이 조마조마 했다.2학년 교실 안에서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선생님이 "네 동생 구구단 좀 외어라"하고 말을 했다.
난 집에 가서 동생 구구단 하는 것을 좀 도와주다 텔레비전을 보았다.
&tw14=문선준
<달걀품기>
달걀에 낙서하고
네 아이 만드네.
힘주면 내 아이 없어지고
힘주면 내 아이 깨지네.
아이고 아이고 없어지면 어쩌지
깨지면 어쩌지
다른 아이들 아이 깨지고
내 아이도 결국 깨지네.
두 손을 빌며 기도 하네
부디 다시 태어나길
부디 다시 살아나길
[비디오 감상문] 도토리의 집 (장애인의 힘)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별로 다른 건 없다 나도 다리를 다친 적이 있었는데 한 달 동안 장애인이 되었다.
처음엔 이렇게 되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게 났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반 애들이랑 유치원 때 친구들이 와서 빨리 낳아서 같이 놀자고 괜찮냐고 응원하고 위로해줬다.
따지고 보면 비장애인보다 장애인이 더 좋다고 나는 생각했다.
게이코도 응원해 주는 사람도 있고 앞으로 더 응원해 주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어제 발로 그림을 그렸는데 못 그린 건 내가 장애인의 힘을 우습게 본게 아닐까 라고 나는 생각했다.
<불쌍한 동생>
오늘 아빠가 동생 알림장을 봤다.
알림장 을보고 아빠는 동생한테 글씨가 이게 뭐냐고 동생한테 화를 냈다.
난 동생을 도와주고 싶었는데 아빠가 무서워서 동생을 도와줄 수 없었다.
난 마음속으로 동생한테 미안했다.
동생은 혼나고 있는걸 보고만 있는 네 자신이 너무 싫었다.
조금이라도 용기가 있었으면 도와줬을 텐데 난 그때 난 동생이 떠는 모습을 잠깐 봤다.
동생이 나한테 도와 달라고 하는 것 갔었다.
난 그때도 용기는커녕 더 무서웠다.
아빠가 나한테 너도 글씨 못 쓰냐고 물어봤다.
나는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는 못쓰는데 이제부터 글씨를 더 잘 쓰려고 노력해야겠다.
2006년 3월 12일
&tw15=문정석
[장애 체험] 시각 장애인 체험을 하고.
오늘 안대로 눈을 가리고 장애인용 지팡이로 앞에를 휘저으며 돌아다니었다.
먼저 승민이가 하였는데 3동과 2동을 이어주는 통로에서 넘어졌다.
그리고 내가 운동장부터 하였는데 3번씩이나 넘어질 뻔하였다.
나는 비장애인으로 태어난 것이 행운 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너무나도 힘들게 살아야 된다는 것을 오늘 확실히 느꼈다.
이제부터는 장애인을 도와주면서 살아야겠다. 그리고 우리 학교는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별로 없다. 기껏해야 장애인 화장실, 장애인 보도블럭밖에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점자와 수화를 배웠는데 너무 힘들었다. 수화에서 자음과 모음을 배웠는데 벌써 까먹었다.
<도토리의 집을 보고>
게이코는 어렸을 때부터 비정상으로 태어났습니다. 게이코가 걸어 다닐 정도로 컸을 때 이웃집을 부셨습니다. 그래서 게이코는 정밀 검사를 해보았더니 청각 장애인 언어 장애인 발달 장애인이었습니다. 게이코가 4살 때 농아학교에 갔다.
게이코가 조금 성장하자 밥도 먹고 이름도 썼고 신발도 신었고 혼자 화장실에도 갔다.
어제 구족화를 2시간에 걸쳐서 그렸는데 너무 힘들었다.
나는 어제 입으로 그렸는데 망했다. 장애인 차별을 안하였으면 좋겠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을보고>
엄석대가 한병태의 시험지를 바꾸어서 원래 한병태가 1등이어야 하는데 엄석대가 1등을 하였다. 선생님이 바뀌자 엄석대와 그 외 4명이 이름을 바꾸어 쓴다는 것을 알게 된 선생님은 엄석대와 4명을 때렸다. 그런데 왜 엄석대가 자신이 잘못하였는데 학교에 불을 냈는지 모르겠다.
엄석대가 시험지를 바꾸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학교에 불을 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옛 선생님은 엄석대를 너무 많이 믿어서 그런 일이 생긴 것 같기도 하다.
내가 한병태라면 끝까지 저항 했을 것이고 내가 엄석대이면 마음을 고쳐먹었을 것이다.
[달걀 품기를 하고] 달걀품기를 하고
달걀 품기를 하였는데 맨 처음 달걀에다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난후 컵에다 달걀을 넣은 다음 뜨거운 물을 넣었는데 그림이 차차 투명해졌다. 쉬는 시간마다 컵을 가지고 뜨거운 물을 갈러 갔다.
그리고 도서실에 갈대는 뜨거운 물을 넣은 다음 사물함에다 보관 하였다.
달걀을 손에 들고 있다가 금이 가서 깨지는 줄 알았다.
이 달걀을 1년 동안 깨지 않고 소중히 간직 해야겠다.(하지만 집에 갈 때 깨 먹고 말았다.)
<시-동생>
내 친구와 같이
동생과 나가서 노는데 우리가
"돼지가 그네는 잘 타네"
라고 하면 우리를 잡아 패려고 쫒아온다.
어쩔 때는 사소한 일에도 운다.
이런 동생이 가끔 없었으면 좋겠다.
<시험을 보고>
시험을 보기 전에 애들 머리카락 뽑으러 옆 반으로 갔는데 오히려 내가 뽑혔다.
그래서 김상은 머리카락을 뽑았는데 예상대로 나를 팼다.(완전 학교 폭력)
종현이에게 초콜릿을 샀다.
이젠 시험을 보는데 과학과 음악, 미술은 잘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 하였다.
시험을 다 본 후 얘들이 시험을 잘 보았느니 못보았느니 소리가 들렸다.
그 다음날 시험 공개를 해 주셨는데 난 평균이85점이여서 학력상을 타지 못하였지만 그 점수에 만족 하였다.
왜냐하면4학년 때보다 평균이 올랐기 때문이다.
[수련회를 다녀와서]
수련 활동 가는 날 나는 기대를 하며 학교에 가서 차를 탔다.
처음에 독립 기념관에 가서 나,종현이, 구윤이와 같이 돌아다니었다.
4명이 같이 돌아 다녔는데 다른 애들과는 반대로 돌아다니었다.
고문 하는 곳에 갔는데 1번째는 팔을 묶은 다음 창을 달구어서 고문 하는 것 같았고 2번째는 까먹었다.
그리고3번째는 상자에다 넣으면 찔러지는 것이고 4번째는 주전자에 있는 물을 계속 먹이는 것이다.
마지막 5번째는 목만 빼놓고 칼로 목을 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것을 보니 잔인 하였고 1995년도에 태어난 것을 행운으로 생각 하였다.
또 어떤 사람들이 서있는 곳 뒤로 가니 무서웠다.
드디어 수련회에 도착하였는데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강당에 가서 입소식을 하였는데 지겨워서 나가고 싶었다.
B조는 골프를 하러 갔는데 내가 할 차례가 맨 마지막 이여서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 하였다.
그런데 골프공을 줍을 때 소나기가 와서 소나기를 맞으며 공을 주었다.
숙소로 가서 잠을 잘 때 발자국 소리가 나면 흑곰선생님이신줄 알고 모두 자는 척을 하였다.
그런데 다른 선생님에게 2번 걸렸는데 봐 준 것 같았다.
또 야광 팔찌가 터져서 이불이 반짝거리고 몇 명의 애들도 반짝 거렸다.
자고난 후 산책을 하러 갔다.
다음 난타를 하였는데 난타는 재미가 없었고 하이킹과 수영이 재미있었다.(수영은 못하지만.)
밤에 장기 자랑을 하였는데 4반이 제일 잘한 것처럼 보였다.
밤에 촛불의 의식을 했는데 눈물이 났다.
숙소에 들어가서 편지를 썼는데 몇 명의 애들이 우표를 안 가지고 와서 매점으로 우표를 사러 갔다.
다음날 버스가 올 때 까지 농구를 했는데 우리 팀이 졌다.
버스를 타기 전에 콜라를 사러 갔다.
국립 중앙 과학관에 가서 멀미의 방에 갔는데 진짜로 멀미를 하였다.
&tw16=박슬기
'나무를 심은 사람’의 할아버지께
양치기 할아버지께
안녕하세요? 양치기 할아버지, 저는 슬기라고 하는 초등학교 5학생이에요. 그런데 양치기 할아버지께선 슬프지 않으세요? 친구도 없으신데.
그리고 양치기 할아버지께선 정말 하나님 같은 분이세요. 어떻게 그 불쌍한 마을을 다시 멋지고 예쁘게 되살려 놓으셨는지. 그것도 도토리 10만 그루나 심어서 살려 놓으셨다니! 정말 놀랄 따름이었어요. 그러나 실망하셨겠지만 그중 2만 그루만 폈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에요. 차라리 8만 그루가 피어나고 2만 그루가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 다 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에요.
그런데 궁금한 게 한 가지 있어요. 그 뒤로 사람들이 그 예쁘게 만든 마을을 다시 찾는데 왜 ‘내가 이곳을 이렇게 만들었다’라고 말하지 않으셨어요?
저 같았으면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싶어서 그렇게 말 했을 텐데. 그래서 이 부분은 양치기 할아버지의 행동이 이해 안 되었어요. 그렇게 좋은 일을 하시고 존경받고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되고요. 거기다 사람들은 한 술 더 떠서 자연현상이라고 했잖아요. 화 안 나셨어요?
그래도 좋은 일을 한 건 좋고 보람이 있으니까 그러셨겠죠? 나무를 왜 소중히 가꾸어야 하는지 알려준 할아버지, 그럼 이만 줄일게요.
2006년 4월 6일 목요일 슬기 올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비디오를 보고>
내가 만약 한병태라면 반장한테 반항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반항을 못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반장이 무서워서 함부로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대도 한병태는 반항을 했다.
나는 한병태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사는 것에 대해 부러웠다. 왜냐하면 나는 하고 싶은 말도 거의 부끄러워서 못하겠고 사람들 많은데서 큰 소리로 말하기란 더더욱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병태는 처음으로 전학을 와서 처음 보는 아이들 앞에서 그렇게 꿋꿋함이 있는 한병태가 정말 부러웠다.
이 영화에서 짜증나는 점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엄석대가 시키는 대로 친구들이 그걸 고분고분 따라하고 엄석대가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것이 짜증이 났다. 그리고 선생님도 엄석대만 믿고 모든 걸 시키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엄석대가 나중에 서울에서 오신 선생님께 혼나는 장면은 고소했다.
<*~2분 말하기 김흥국 버전!~*>
안녕?? 으아~ 내가 말이지~ 으아~ 2분 말하기를 할 거야! 으아~ 기대해줘! 으아~
나는 말이지! 으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할 거야! 으아~ 시작 한다! 으아~
나는 말이야! 으아~ 김치! 김치를 너무 좋아해! 으아~ 물론! 딴 것도 좋아해~ 으아~
그리고 스테이크를 너무 좋아해! 으아~ 너희들도 좋아하지??으아~
나는 그럼 마치련다! 으아~ 죄송해염.ㅜㅡ 김흥국 버전은여! 못하겠어요!
왜?? 나에겐 김흥국 이미진 안 어울려! 난 여자니까! 흥!
*~2분 말하기 김흥국 버전!~*끝~!! ㅋㅋ
<시 : *~가슴 속 나~*>
오늘 체육 시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보았다.
가슴이 쿵쿵! 콩닥콩닥!
어찌나 힘차게 들리던지.
하마터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들을 뻔 했다.
이런 느낌은.
좋고도. 싫지 않은 느낌이었다.
아. 내 가슴이 왜 이럴까?
내가 내 가슴을 때릴 뻔 하였다.
소리도 질러보고,
그래도 난
그 애가 좋은 걸~♡
이젠 내 사랑은 love!!
<슬기의~♡시각 장애인 체험을 하고~☆^^ >
머리가 아파서 보건실에 갔다가 교실에 들어오니, 친구들이
안대를 차고 시각 장애인용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공부 시간이 되자, 장애인체험을
다시 한다고 했다. 선생님께선 나에게 초롱이랑 짝을 하라고 하셨다.
나와 초롱이는 서로 먼저 하라고 권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나부터 하게 되었다. 안대를 끼는데 너무 컸다.
그런데 잘 하니까 안대가 내 머리에 잘 들어갔다.
안대를 끼자마자 온 세상이 다 없어진 것 같았다.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를 짚었는데도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발을 헛디뎌 죽을 뻔~했다.ㅜㅡ
굴러 떨어지지 않아서 천만! 다행이었다.(약간 무섭)
간신히 급식실까지 가서 초롱이와 역할을 바꿨다.
초롱이가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를 짚고 안대를 끼고 나는 그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 초롱이는 안 무서운지 잘도 갔다.
그렇게 교실에 도착했으나.~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다시 급식실 쪽으로 가 보았다.
선생님도 거기 계셨다.
친구들이 느린 덕분에 초롱이와 나는 한바퀴를 더 돌 수 있었다.
오늘은 달걀 품기를 했다.
<시-달걀품기>
내 달걀의 이름은 다이아 크리스!! 았싸~~~~
예쁘고 치마 입구.
나에게 내가 쓴 종이가 없어서.
짧게 쓴다.
흑흑. 마지막 슬픈 소식은~
5교시쯤인가? 달걀이 깨졌다.
학교 끝나고 맛있게 냠냠!!!!!!
<시>☆ 중국 방문 ☆
중국학생이 우리나라에
와서 놀고 갈 땐 좋았다.
하지만 내가 중국에
갔을 땐, 안 좋았다.
음식도 입에 안 맞고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고
만두도 시고
김치도 시고
수박에 벌레까지,
아는 영어도 별로 없고,
영어로 대화하자고 해도
못 알아듣고,
놀러간대도 별로 없다.
재미없다.
그리고 자꾸 가족이 보고 싶다.
이젠 다시 안 갈 거다.
그래도 조금 아쉽다.
<슬기의 파란만장 러브 수련회>
첫째 날,
아침 6시 30분에 난 학교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아주 우연히 내 친구 예린이를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는데 버스가 왔다. 우리는 하나 둘 버스에 올랐다, 얼마 후 버스가 출발!!
먼저 도착한 곳은 독립기념관!! 먼저 제 1전시관부터 들어갔다,
둘러보는데 사람 목을 보관해두는 곳도 보았는데, 너무 징그러웠다,
가는 길에 유관순언니도 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점심시간,
채은, 주연,수빈,유진,상은, 은영, 나 이렇게 7명이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다 먹고 버스에 올라서 조치원에 갔다.
조치원에 도착하자 방에 가방을 놓고 강당으로 모여서 입소식을 한 다음에 수업에 들어갔다.
조도 정해주셨다. A조B조C조D조!! 난 C조이다. C조는 난타를 하였다,
난타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다 쉬웠는디, '짠 짜짠 짜짜짜짠 짜짠'
이란 부분이 좀 어려웠다. 그리고 저녁도 먹고 씻고 밤에 자려고 했는데,
잠이 안 와서 떠들었더니 옆방 친구들이 시끄럽다고 쫓아왔었다,
그리고 좀 무슨 얘기 좀 하다가 잤다.
둘째 날,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자전거 하이킹을 했다.
난 두 번이나 넘어져서 무릎이 다치고 팔꿈치가 다치고 왼쪽 팔이 삐기 까지 했다.
아휴~ 아파랑,그리고 얼마 후 점심을 먹고 수영장에 갔다.
그런데 친구랑 수영장에 들어가길 기다리다가 친구가 이유 없이 삐쳐 버렸다.
짜증이 났었다, 그리고 수영장에서 선생님을 물에 빠트리며 놀았다,ㅋㅋ
그리고 수영 끝나고 바로 골프를 치러 갔었다, 내가 치는데 선생님께서 잘 친다고 하셨다.
말로는 짜증난다고 했지만! 한편으론 좋았었다.
저녁을 먹고 캠프파이어 시간!! 장기 자랑부터 막을 열었다.
우리 반은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과 꼭지점댄스를 하는데.
선생님 말씀으론, 다른 반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눈치였다고 하셨다.
너무나 폭발적인 우리 반. 장기자랑 끝나자 촛불 의식을 하였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엄마 아빠에 대한 슬픈 이야기를 하셔서 난 펑펑 울었다.
다른 친구들도 울었다. 심지어 남자까지도.
얼마나 울었으면 내 눈이 부었는지.
라면으로 울음을 달래고 집에서 가져온 편지지로 아빠께 감사하단 편지를 썼다.
그리고 너무나 졸려서 잤다.
셋째 날,
아쉬운 이별이 있는 마지막 날은 이어 달리기로 막을 닫았다,
그런데!! 우리 반이 1등!! 음~하하하하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국립중앙 과학관에 들렸다.
공룡 뼈조각도 보고~ 미래도시도 보고~ 게임도 하고~
즐겁게 놀면서 사진도 무려 장이나 찍었다,
그런데 내 포즈가 이상하다고 했다. 그리고 집에 오는 도중에 또 2번이나 멀미를.
2번은 안 좋은 겨
&tw17=박유진
<도토리의 집을 보고>
케이코가 태어났다. 케이코는 발달 장애인입니다.
케이코가 4살이 되었다.
유치원에 들어갔다.
케이코는 화장실도 혼자 갈 수 없고 밥도 안 먹는다.
케이코가 스스로 밥을 먹게 선생님들이 응원해주고 도와주고 있다.
어느 날 어떤 한 아주머니가 케이코가 해냈다고 했다.
엄마는 어리둥절했다. 그런데도 케이코에게 달려갔다. 케이코가 혼자서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몇 일후 케이코가 칠판에 자기 이름을 썼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케이코는 생리를 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케이코의 속옷과 생리대가 들은 가방을 가지고 화장실로 뛰어갔습니다.
케이코가 혼자서 생리대를 찾습니다. 이제 케이코도 숙녀입니다. 케이코는 중학교에 갑니다.
머리 스타일도 바꾸고 옷 입는 스타일도 바꿨습니다. 케이코는 이제 자기가 스스로 다니고 놀 수도 있습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을 보고>
편지글
양치기님에게.
양치기님 안녕하세요.
저는 태안초등학교 5학년5반 박유진이라고 합니다.
전 장지에노님의 작품을 읽고 썼어요. 양치기님은 손님에게 스프도 주고 잠잘 곳도 주셨지요.
손님에게 편하게 대하여 드렸습니다. 손님에게 양치기님은 정말 소중한 사람이에요.
하루만 더 묵는다고 해도 묵게 해주고 손님께서 군대를 갔다.
제대하셔도 살아 계시고 전 양치기님이 손님을 기다렸다고 생각이 듭니다.
나무를 20년 동안이나 계속 심으시고 사람들은 그런 것도 모르고 자연환경때문에 살아났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심으셔서 아름답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정말 전 식목일 날에는 나무를 못 심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나무를 꾸준히 심을 생각입니다. 20006년 4월 5일 -양치기님을 존경하는 유진이 올림-
&tw18=박종현
<내 이빨>
어제 밤에 엄마가 예전에 뺀 이를 확인 하려고 내 입속을 보셨다.
그런데 엄마가 반대쪽에 이가 조금 나와서 빼려고 실을 가져오셨다.
더군다나 어금니여서 얼마나 아프던지 어제 밤에 엄마가 예전에 뺀 이를 확인 하려고 내 입속을 보셨다.
그런데 엄마가 반대쪽에 이가 조금 나와서 빼려고 실을 가져오셨다.
더군다나 어금니여서 얼마나 아픈데.
그래서 내가 엄지손가락으로 밀어서 뺐다. 꽤나 아팠지만 보람은 있었다.
엄마가 용돈으로 300원을 주셨다.(치과 가서 안 뺐다고)
하지만 피가 너무 나서 많이 아팠다.
<앵무새>
3주 전에 우리 아빠가 앵무새를 사오셨다.
처음에는 손으로 잘 오지도 안고 계속 손만 깨물더니 지금은 손으로 잘 날아온다.
맨 처음에는 나한테만 날아오더니 지금은 엄마, 아빠한테만 가서 조금 섭섭하다.
저번에는 할머니 댁에 가는데 앵무새 집이 커서 큰 짐이 되기도 했다.
이제는 말도 가르쳐야 겠다.
☆☆☆모둠일기☆☆☆
2006년 4월 26일 수요일 날씨: 어두침침해서 기분이 우울함
기분이 우울하다보니 어제 일이 생각난다. 어제 지갑을 일어버렸다.
지갑 속에는 2800원이 있었다. 교실 청소를 하는데 민규랑 정호가 휠체어로 장난치다 내 다리에 바퀴를 부딪쳤다.
나는 아픔을 참으며 오늘은 참 재수가 없다고 하니 민규가 휠체어 때문이냐고 뭇자 그것도 그거지만 지갑을 일어버려서 그렇다고 했다.
그랬더니 민규가 지갑의 색과 모양을 물어보며 행정실로 갔다. 거기엔 내 지갑이 있었다. 지갑을 펴보니 800원이 없었다.
그래도 지갑을 찾아서 다행이다.
<나무를 심은 사람을 보고>
처음엔 뭐가 뭔지 몰랐지만 보다 보니 무슨 내용이고 무슨 교훈을 주는지 알았다.
교훈은 아무리 늙고 하찮은 사람이라도 큰일을 할 수 있다.
아니면 아무리 황폐한 사막이라도 열심이 노력하면 숲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같다.
늙은 양치기 엘제르 부피미에는 참 대단하다.
사막도 숲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끈임 없이 노력했기 때문이다. 참 감동적이었다.
[수련회를 다녀와서]
조치원 청소년 수련원에 간다.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갈 때는 너무 따분 했다. 가다가 독립 기념관에 들렸다. 거기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원래 순서대로 구경해야 되는데 난 그 반대로 구경하였다. 조치원에 가서 입소식을 하고 A, B, C, D조로 활동을 하였다.
난 B조여서 골프를 하였다. 나름대로 재밌었지만 난 수영이 더 하고 싶었다. 취침 시간엔 잠이 안와서 잠 안자는 아이들 끼리 모여서 남은 도시락과 과자를 먹었다. 다 먹고 놀다가 흑곰 샘에게 걸려서 따른 반 아이들과 강당에 모여서 얼굴에 낙서를 하고 놀았다. 둘째 날엔 줄넘기와 공 튀기기를 했다. 난 공 튀기기를 먼저 했다. 다음엔 단체 줄넘기를 했다. 줄넘기를 하다가 빠져나올 땐 택범이가 걸려서 넘어지고 말았다. 1교시로 난타를 했다. 소리가 안 나는 것 같았지만 자세하게 들어보니 소리가 났다.
2교시로 자전거 하이킹을 했다. 난 자전거를 많이 타보아서 문제없었다.
수련회로 귀가 하는 길에 1,2,3,4반 선생님을 만났다. 드디어 수영을 하는 시간이다. 하
지만 손을 다져서 하지 못하여 너무 억울했다. 캠프파이어를 하고 촛불 의식을 한 다음 잠을 잤다.
셋째 날 아침과 점심을 일찍 먹고 국립 중앙 과학관에 갔다. 문 앞엔 띠별로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과학관은 시간이 없어서 대충 둘러보았다.
조치원은 못가니까 다음에 가족들과 독립기념관 과 과학관을 가봐야겠다.
<시험을 보고>
시험 전에 게임은 하지 않고 공부만 엄청 하였다.
남 노력한 만큼 시험을 잘 쳐야겠다고 생각 하였다.
아침엔 예전 같으면 엄마가 “화이팅!” 이라고 해주셨는데 오늘은 안 해주셨다.
시험을 시작 하자 난 긴장하였다. 하지만 모두 미리 배운 것 이였다.
시험 시작하기 전엔 꼭 초콜릿 3조각을 먹었다.
왜냐하면 TV에서 조금씩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했기 때문이다.
시험을 보고 며칠 후 성적표가 나왔는데 1개만 틀렸으면 못 받을 뻔 했다.
그 이유는 평균이 90이상 이여야 상을 받는데 딱 90이였다. 참 자랑스럽다.
&tw19=송정호
장애체험을 하고나서.^^
오늘 안대를 눈에 쓰고 시각 장애인용 지팡이를 짚고 학교 한바퀴를 돌았다.
급식실에서 파트너와 교체를 했다. 계단을 내려갈 때가 힘이 들었다.
이때는 파트너가 도와주지 않았다, 그리고 친구한대 지팡이로 맞았다.
그땐 아팠다. 파트너가 길을 잘 알려주웠는데. 난 믿지 않았다. 계단을
올라오다가 넘어졌다. 시각 장애인들은 너무나 힘들겠다는 생각이든 다.^^ ^^ ^^ -_-
[달걀 품기를 하고]
달걀을 속에 넣어 품자
달걀을 품으면 달걀 속에서
병아리가 나올까?
병아리가 크면 닭이 되겠지
달걀을 품어도 병아리가
나오지 않는다.
이제껏 달걀을 품은 건
헛고생 일까
아니면 언젠간 나올까?
아니야, 언젠간 나올 거야
[비디오 감상문] 도토리의 집을 보고
어느 집에 게이코라는 여자 아이가 살았다. 게이코는 청각 장애와 발달 장애를 같고 태어났다.
게이코는 어린이집에서 천천히 배워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숟가락질도 못 하던 게이코가 숟가락질도 혼자 시작했다.
장애인들은 이렇게 힘든 일을 극복한 것이 자랑스럽다. 우리가 장애인이 아닌 것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이 든다.
이제부터 장애인을 무시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tw20=신세래
<‘꽃들에게 희망을’을 읽고>
사람들은 보통 어렸을 때에는 그저 먹고 노는 데만 신경을 쓰지만 성장해감에 따라 차츰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사색하며 좀더 가치가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한다. 그리고 현재의 상태에서 각자 자기의 목표를 정하게 된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 노력하며 성취의 기쁨을 맛본다.
이 책에서 애벌레는 애벌레 기둥이라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삶의 논리대로 살아가는 삶을 택한다. 애벌레 기둥에서 자기가 원하는 삶,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도 안한 채 무조건 여러 애벌레들을 경쟁에서 이겨 올라가는 일에만 매달리는 노란 애벌레와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 서로 닮았다. 애벌레 기둥 꼭대기는 남들이 보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자기가 그 꼭대기에 도달해 보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애벌레는 사실을 말했지만 올라가는 한 애벌레가 사실이라고 해도 하지 말라고 우리가 달리 무엇을 하겠느냐고 하는 말이 아무 목적 없이 올라가 이기려고만 하는 현재 우리의 삶을 말하고 있다. 그것을 마침내 노랑 애벌레와 호랑 애벌레는 깨닫게 된다. 먼저, 나비가 되기 위해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언제 만날지 모를 다른 애벌레와 과연 아름다운 나비가 될 수 있을까 의문을 품고 고치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기둥을 쌓던 애벌레들도 자신의 삶을 변화 시킬 줄 안다는 것을 느끼고 다시 시작하여 나비가 되었다.
내가 과연 좀더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이 책에서 희망이라고 하는 대로 삶을 변화 시킬 수 있기 위해 노력하고 내가 혹 나만을 위해 누군가를 짓밟고 있지 않나 주위를 한번 둘러봐야겠다.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편지글-따스한 선생님께>
박옥신 선생님 안녕하세요. 1학년 8반 때 제자 세래 입니다. 기억하시겠죠?
1학년 입학할 때 모든 게 다 신기했어요. 선생님은 어떤 분일까, 짝꿍은 누가 될까 하고요. 그리고 이제부터는 유치원 때 보다는 거의 내가 스스로 해야 되서 겁이 나기도 하고 초등학생이 되어 자랑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입학 한지 얼마 후, 예방주사를 맞을 때 우리가 겁먹지 않게 하려고 40명을 한 명씩 한 명씩 고개를 돌리게 하고 엄마처럼 꼭 안아 주셨죠. 그때 정말 포근했습니다. 그래서 우린 겁먹지 않고 간단하게 끝낼 수 있었지요. 그때 우리 엄마는 천안에서 교육 중이라 안 계셨는데, 주사 맞은 이야기를 나중에 했더니 정말 고마워했어요. 겁먹지 않게 해 주셨다고요.
선생님, 저희가 1학년을 멋지게 마무리 하고 헤어 졌지요. 그리고 3년이 지나, 4학년 때 영재 시험을 보러 백화 초등학교에 갔어요. 시험 보는 교실과 가까운 곳에 선생님이 계셨는데, 저는 선생님을 미처 못 봤는데 선생님께서 먼저 알아 주셔서 더 기쁜 마음으로 시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합격했어요.
선생님, 저희들을 다정하게 가르쳐 주신 것처럼 백화 초등학교 1학년 동생들을 잘 가르쳐 주시겠죠? 아마 그럴 거예요. 저희들한테 한 것처럼 말이죠. 4학년 때는 김영숙 선생님하고 많이 닮으셔서 처음엔 박옥신 선생님 인줄 알았어요. 그 선생님도 박옥신 선생님처럼 저희를 열심히 가르쳐 주셨어요.
선생님께서 저희를 따뜻하게 보살펴 주셔서 저도 1학년 때 꿈이 선생님처럼 잘 보살펴 주는 선생님이 되기로 결심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다음에 또 만났으면 좋겠어요. 그때는 제가 먼저 인사드릴게요. 선생님 항상 건강하세요.
2006년 5월 7일 제자 세래 올림
[비디오 감상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보고
한병태가 시골학교로 전학을 와서 독재적인 급장 엄석대에게 대들었다.
그래서 엄석대는 부드러운 말투로 병태의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자신에게 굴하게 하였다.
그래서 점점 석대에게 아부하게 되었다. 언제는 선생님께 일러도 보았지만 모함이라고 오히려 자신이 꾸중을 들었다.
엄석대는 시험이 되면 친구 시험지와 바꾸고 채점도 자신 마음대로 하였다.
어느 날 서울에서 온 민주적인 선생님이 오셔서 엄석대의 수상쩍은 행동을 보고 잘못을 말하라고 하였다.
아이들은 하나 둘씩 잘못을 말하며 민주적인 사람이 돼가고 있었다.
새로운 선생님은 정말 훌륭하신 분이다 나라 면 알게 되도 엄석대가 편하니까 그냥 놔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통쾌하게 혼내주진 못했을 것이다.
엄석대는 민주적이 되가는 학교를 원망하고 불을 질렀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한병태는 엄석대가 경찰에 붙잡혀가게 된다.
독재가 이렇게 나쁜지는 몰랐다. 독재가 편하기는 하지만. 자기만 생각하고 따라야 된다는 생각이 요즘도 주위에 몇몇 있다.
소리만 크다고, 자신이 공부 잘한다고. 이런 점들을 사회에서 고쳐나가야 될 것 같다.
[장애 체험] 시각, 청각 장애인 체험을 하고
계단을 내려 왔을 때 조마조마했다. 막대기를 아리로 탁탁 두드리면서 다른 사람도 모르고 치곤했다.
계단의 난간을 집고 가는데 누가 난간을 타고 내려와서 부딪혔다. 짝꿍을 교체하고 다희가 안내해 주었다. 다시 교체하고 내가 안내해 주었다. 다희가 못 믿겠다는 듯이 자꾸 힐끔 힐끔 보았다. 하긴. 내가 자꾸 앞으로 만 가라고 했으니까. 안내해 주는 것도 재미있었다. 엄마가 된 것처럼 안내해 주니까 왠지 모를 뿌듯함이. 진짜 장애인을 도와준 기분이어서 좋았다. 그리고 다시 내가 장애인이 됐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가이드가 없다고 생각하고 나 혼자서 해보았다. 문이 닫혀 있는데 계속 벽을 찾아 헤맸다. 답답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그러고 보니, 목욕탕에서 본 아줌마가 생각났다. 다리 한쪽이 없는 장애인이었다. 하지만 나는
언니와 몰래 웃고 따라 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이 나라면 정말 슬퍼서 우울증이라도 걸릴 것 같았다. 지금 그 장애인을 생각해 보니 정말 불쌍했다. 그 사람이 의자에 앉아서 하는 직장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tv프로그램 '눈을 떠요'를 예전에 가금 봤는데 참 불쌍했다. 아들이 눈 먼 어머니를 우어서 챙겨주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수화 선생님이 오셔서 수화를 조금 가르쳐 주셨다. 나도 계발 시간에 수화를 하는데 그냥 재미로 했지만 이제는 청각 장애인을 생각하면서 해야겠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이 된 것처럼 점자도 찍어봤다. 참 그렇게 많이 배우지 않았지만 어려웠다. 그런 장애인들은 얼마나 어려울까?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데…….
그리고 헬렌켈러가 생각난다. 헬렌켈러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데 훌륭하게 대학을 졸업한 위인. 그리고 깨달았다. 장애인이라고 하면 동정심이 난다는 사람도 그렇게 썩 좋은 건 아니라는 것을. 아주 친절히 대해준 다희에게도 불편했다. 너무 잘 알려줘서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장애인도 같은 사람이다. 누구나 교통사고로 인해 식물인간이 되거나, 몸의 일부분을 잃거나, 보지 못하거나, 듣지 못하거나.
<잊지 못할 수련회>
수련원에 가기 첫째 날, 학교에 7시 10분 까지 왔다. 몇 분쯤 기다리고 버스를 타고 또 얘기하며 기다린 후, 45분쯤에 출발했다.
다행히 멀미약울 붙여서 멀미는 별로 안했다. 독립기념관에 와서 여러 독립 운동한 사람들들 봤다. 그리고 독립 운동가가 고문을 어떻게 당하는지도 봤다.
너무 끔찍했다. 목을 자르고. 몸을 뜨겁게 달구는 등. 죽이는 것 보다 더 무서웠다.
다시 버스를 타고 기대하던 조치원에 갔다.
생각보다는 작았다. 그리고 선생님도 무서웠다.
강당으로 모이라고 해서 모였는데 무섭게 생겼고 매일 기합만 받을 기분이.
그리고 자라고 할 때 자고, 7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원래 7시 20분에 일어나서 걱정이 되었다.
말이 끝나고 우리는 자전거를 탔다. 하이킹이 무서워서 가지는 못했다.
저녁을 먹고 자유 시간을 가지고 자는데 걱정을 해서 5시30에 일어났다.
그래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7시 15에 모이라고 해서 강당에 모였다.
아침을 먹고 수영을 하는데 선생님께서 몇 명을 한 손으로 들고 수영장에 던졌다.
나는 겨우 피해 다녀서 걸리지 않았다.
그 다음 점심을 먹고 골프 시간을 가졌다. 잘 안되었다. 추처럼 정확하게 해야 되는데.
마음보다 몸이 앞서서 안 된다.
그다음 바로 난타를 배웠다. 간장통으로 하는데 선생님이 소리가 너무 크다고 했다.
완전 스트레스용이었다.
그리고 지치지도 않았다.
그리고 7시쯤 캠프파이어를 했다. 맨 처음 장기 자랑을 하는데 4반, 3반이 화려해서 우리 반은 어쩌나 하고 걱정했지만 우리 반도 간주 중에서 멋진 발차기??와 구르기??를 했다.
그 다음에 촛불 의식을 했는데 그렇게 슬픈 얘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이 나를 보살펴 주시고 학원 때문에 돈을 벌고 있고. 여러 가지 죄송스러운 생각이 났다.
그 다음날 이어달리기를 하고 퇴소식을 한 뒤, 국립 중앙 박물관에 갔다.
거기에 가서 여러 행성을 보고, 물고기를 보고, 전기의 힘을 보고, 멀미의 방이라는 곳을 구경했다.
정말 어지러웠다. 진짜 말 그대로 어지러웠다. 어떤 구슬이 있었는데. 아래로 내려 보려고 해도 내려지지 않는다.
굴러는 가지만 내려가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시간이 별로 많지 않아, 몇 가지 못 본 것들이 있어서
나중에 가족끼리 다시 가 보게 된다면 잘 못 본 것들을 더 정확히 구경해야겠다.
&tw21=심소헌
<시-손톱>
손톱 보면 한쪽 손이 반대 쪽
손톱을 자꾸 뜯는다.
손톱깎기로 깎음 될 것을
그것도 필수품인데 사용 안하고
손으로 깎는 나.
마치 내 마음이 깎아지거나
하나씩 없어지는 것처럼
또 깎은 내 손톱.
<시험지>
내 시험지에 빨간 막대기 쫘악.
15.19.16.점수가 백점 맞은 것은 하나도 없다.
집에 가서 엄마한테 맞을 준비를 미리 해놓고 학교에서 땀만 질질.
자신만만했던 내가 풀이 죽은 채로 시험지를 봐라보니 내 모습이 참 바보 같기도 했다.
시험지를 엄마에게 갖다 바치면 엄마는 머리에서 분명히 웃다가 분노를 터뜨릴 것이다. 생각만 해도 무섭다.
예전 4학년 때도 엄마하고 아빠한테 혼나서 정신을 차렸지만 역시 효과가 없는 그런 부작용이었다.
시험지가 엄마의 머릿속에서 잊혀지면 좋겠다.
<달걀품기를 하고>
오늘 달걀품기를 했다.
엄마가 나처럼 아끼는 것처럼 달걀도 자식처럼 귀하게 여기면서 아꼈다. 인큐베이터(손)에 올려놓고 꼬옥 쥐었다. 깨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다행히 안 깨졌다. 실수로 점심시간엔 달걀을 못 갔고 가서 미안했다. 대신에 집에 갈 때까지 바지 주머니에 넣고 지켜줬다. 집에 와서 티비를 보면서 간식을 먹다가 달걀을 주머니에서 꺼내 거실 바닥에 놓았는데 그만 무릎으로 깨트리고야 말았다.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래서 달걀을 싱크대에 놔두었다. 미안해. 달걀아.
<장애인 체험>
오늘 학교에서 안대를 쓰고 지팡이로 길을 걷는 시각장애인 체험을 해보았다. 처음엔 그냥 재미로 체험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반대였다. 온통 다 검은색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지팡이로 툭툭 땅을 짚고 다녀도 어디가 어딘지 몰라 헤맸다. 맨 날 가는 길인데도 계단 걷기도 만만치 않았다. 다행히 은영이가 손을 잡아줘서 넘어지지 않았다. 겨우 10분정도 체험했을 뿐인데, 너무 힘들었다.
시각장애인들은 항상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 반대로 비장애인으로 밝게 산다는 것이 다행이다. 그리고 시각장애인들은 세상이 검게 보이는 줄 알 것이다.
오늘 이런 체험을 하고나니 많은 것들을 느꼈다. 장애인은 그저 장애만 가졌을 뿐 우리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다. 이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별이 없어졌으면 한다. 우리 학교에는 특별히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 시설이 많지 않다. 휠체어를 탔으면 계단 오르내리기도 힘들 테고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 누군가 장난을 치다가 장애인과 부딪혀 다칠 위험도 높다. 우리 학교에도 장애인들을 위한 도구와 편의 시설 같은 것이 생겼으면 좋겠다. 시각 장애인을 비롯한 장애인들에게 모든 사람들이 따뜻한 눈길과 손길을 줘야하겠다고 생각한 하루였다.
앞으로 장애인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 같다. 좀더 관심을 갖고 장애인들을 위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수련회를 다녀와서>
5/22~5/24
첫날. 집에서 짐을 챙기고 버스에 올라탔다.
독립기념관을 걸어가다 외국인들을 만나 사진도 찍고 얘기도 했다.
조치원 야영장에 도착하자마자 교관은 우리들을 무섭게 대했다.
난 c조가 되어서 첫날부터 난타를 했다.
둘째날. 아침부터 방송을 틀었다. 기상을 하고나서야 아침을 먹었다.
두 번째로 한건 하이킹, 하이킹을 하다가 윤희가 자전거가 중간에 고장이 나서 선생님을 찾으러 나섰다.
그러다 나만 헛고생을 해서 정말 짜증났다. 윤희가 먼저 야영장에 도착해서.
그래도 점심은 맛있게 먹었다.
몇 시간 후에 저녁을 먹고 캠프파이어를 시작했다.
특히 장기 자랑이 참 재밌었다.
우리 반중에 현규 외 7명은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부르면서 춤을 췄으며
또, 우리반 단체가 하는 '꼭짓점 댄스'도 함께 같이 했다.
그러다 촛불의식을 했다. 교관이 부모님 얘기를 꺼내자마자 몇 분후에 전부다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숙소에 들어가서 편지를 보냈다.마음을 담아서.
마지막 날.(가는 날) 둘째 날에 늦게 자선지 새벽 6:45분에 일어났다.
제대로 세수도 못한 채로 아침을 먹으러 달려 나갔다.
짐을 다 챙기고 나서야 옷을 갈아입었다. 그런데 지갑을 열어보니 5천원 밖에 안 남았다.
18000원에서 13000을 가져갔다. 기분이 참 슬펐다. 앞으론 많은 돈을 안 가져올 거라고 또 다짐을 했다.
마지막 퇴소식을 하고나서 버스에 올라타고 야영장에서 국립중앙과학관으로 출발했다.
국립중앙관의 위치는 엑스포 과학공원 옆에 있었다.
도착해서 걸어가다 보니 중간에 십이지장 로봇을 봤다. 참 신기했다.
과학관 안에 들어가 보니 행성(별),공룡, 지도 등.참 많은 것들을 보았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정도로 잊지 못할 날 같다.
다 둘러보고 버스에 올라타 집으로 갔다. 가는 길에 멀미를 해서 토를 하는 애들은 좀 많았다.
그래도 잠을 자고나니 멀미가 좀 나아진 것 같았다.
집에 오고 나니 수련회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이 참 많았다.
신났고 재밌고.
하지만 무엇보다 더욱 더 절실하게 느낀 건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다
&tw22=윤건창
[시] 달걀품기
어제 저녁에 계란을 삶고
학교에 가져갔다.
두개를 비닐에 넣고 가방에다 안전하게 넣다.
1교시후 잘 있나보니
그만 하나가 찐빵 되고 말았다.
참 불쌍하다
나는 6교실까지 가지고 있어서 안 깨졌다.
참 다행이다.
[비디오 감상문] 나무를 심은 사람
양치기는 혼자 힘으로 나무 십만 구루를 심었다.
나였으면 1구루도 심기가 어려운데 양치기는 양을 치면서도 혼자서 나무 십만 구루를 심었다.
그런데 산짐승과 아직 모르는 동물이 나무 10만 구루에서 8만 구루의 도토리를 다 먹어버렸다.
하지만 늙은 양치기는 굴하지 않고 나무를 계속 심어 황무지가 다 초록색 나무로 되었다.
혼자서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절대 그러게 하지 못할 것이다.
한사람의 힘으로 황무지를 살기 좋게 만들다니 늙은 양치기를 우리는 본받아야겠다.
이 영화를 보고 교훈을 받았다.
한사람의 힘으로 여러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보고>
서울에서 전학 온 한병태(주인공) 은 처음에는 반장 엄석대에게 저항으로 했다.
점점 가면서 저항이 없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김영수와 자리를 바꾼 후에 어떻게 될까 궁금했다. 그래서 영화를 봤다.
재미있기도 하였다. 자리를 옮기고 나서 내용이다. 내용은 끝내 병태가 저항을 마치는 것이었다.
내가 병태라면 아무리 힘든 일도 시켜도 따라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새 선생님이 오셨다. 그리고 나중에 엄석대가 하는 일을 알아내셨다. 석대는 선생님한테 맞고 아이들은 석대가 자신들한테 한 얘기를 했다. 석대는 화가나 학교를 뛰쳐나갔다. 밤에 교실을 불바다로 만들고 도망갔다.
[수련회를 다녀와서]
첫째 날
기념관을 가서 일본넘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고문시키는 것을 보았다
조치원에서 입소식을 하고 모둠별 체험학습 골프를 했다
밥을 먹고 쉬는 시간에 축구나 농구를 잼나게 했다
밤에 승민이가 넘 떠들어서 화가 났다
밤에 흑곰샘이 와서 승민이와 애들을 대리고 나가서 낙서당하고 왔다고 한다.
참 웃겼다 ㅋㅋ
둘째 날
단체 줄넘기 단체공튀기기를 해서 협동심을 길렀다 그리고 체험 어제 한거 나머지 했다.
밤에 장기자랑 꼭지점댄스 노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을 했다
그리고 캠프파이어하고 촛불 의식을 했다
부모님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끝난 후 숙소로 와서 편지 쓰고 피곤하여 잠을 잤다.
셋째 날
이어달리기를 해서1등하게 되었다
퇴소식때 너무 아쉬웠다. 가게 되서 하루만 더 있고 싶었다.
과학관 가서 1시간 정도 밖에 못 있었다.
다음에 오면 자세히 보고 가야겠다.
2시30분에 출발해야하는데 1반애들 안전벨트 안 메서 다친 에들이 있어서 3시40분에 갔다
집에 갈 때 음료수를 먹는데 토가 나왔다 그래서 택범이 가방에 묻었다 참 미안했다
그리고 영화 바람에 파이널을 보면서 가는데 또 나왔다. 그리고 또 나왔다.
올레는 잘 안나오는데 오늘따라 많이 나와서 속이 안 좋았다.
도착해서 박슬기가 토 나왔다고 한다. 다 왔는데 나와서 참 안됐다 ㅋㅋ
<시-시험>
시험 전날 눈 빠지게 공부를 한다.
내일 잘해야지 내일 잘해야지
시험 날 아침 학5교에서
공부 잘하는 친구들의 머리카락을 뽑고 있다.
나도 같이 뽑았다.
시험 볼 때 긴장감으로 가득 찬 우리 교실
다른 날 같았으면 시끌벅적 시장 바닥
시험 본후 성적표 달라고 조른다.
받은 후 잘 본 사람은 아싸~
못 본 사람은 아나 엄마한테 뒤졌다.
시험은 잘본 사람에게는 선물을 주고
못 본 사람에게는 매를 준다.
&tw23=이주연
<달걀품기>
오늘 1교시에 달걀 품기를 하였다.
달걀 품기는 어제가 어버이날 이였지만,
오늘 삶은 계란에다 엄마, 아빠 마음을 알고,
삶은 계란에다 그림을 그렸다.
난 하루 종일 그림 그린 삶은 계란을 계속
자식처럼 손에 떼지 않았다.
난 엄마, 아빠가 얼마나 힘들게 날 키웠는지 알게 됐다.
<장애인 체험을 한 후에.>
난 상은이와 짝을 지어 시각 장애인이 되어 안대를 끼고, 또 시각 장애인 지팡이를 들고,
시각 장애인처럼 행동 하였다.
난 시각 장애인을 무시하고, 이상하게 생각 했는데,
네가 집적 해보니 정말 힘들었다.
난 시각 장애인들이 정말 힘들게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시각 장애인들에게 미안하게 생각 된다.
<시험>
시험 전날 애들이 시험지를 푸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험 전 날은 학원, 학교 상관없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험 날 아침 저반, 이반 돌아다니면서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뽑아서
연필에 끼웠다. 시험 보는 중 나는 가슴 속으로 너무너무 떨렸다.
한 과목을 끝내고, 우리끼리 답을 맞추어 보곤 하였다.
시험을 마치고 학원에서 시험에 대에서 애기도 하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집에 같다. 집에 와서 엄마 아빠가 시험 잘 보았냐고 물어 보셨다!
6월26일 월요일 날 시험 결과가 나왔다.
난 과학과 체육에서 점수가 제대로 안 나와서 시험을 못 받았다.
<우유곽 안과 속 바꾸기>
우리는 어제 국어 시간에 우유곽으로 안과 속을 뒤집어 보았다.
뒤집은 이유는 아침 햇살 오르거든을 읽고, 우유곽을 뒤집어 보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어려웠다. 너무 어려워서 친구들을 따라 하다 찢어지고, 망가져 버렸다.
그런데 몇 명 친구들은 우유곽 으로 안과 속을 바꾸는 것을 완성 했다.
김재우, 박종현, 이준혁, 장지영 등이 성공 했다.
선생님께서 우유곽 안과 속을 바꾼 친구들만 기념사진을 찍어 주셨다. ^*^
잘되고 있는데 힘으로 세게 찢어 망친 애들은 김택범, 정승민 이당~
그런데 성공한 애들은 어떻게 성공 했을까?
성공한 친구들한테 물어 보면 선생님이 가르쳐 준대로 했다고 하는데.
나도 오늘부터 선생님 말씀 귀 기울여 들어야지.
&tw24=이준혁
<장애인체험을 한 후에.>
오늘 장애인 체험 중에서 시각장애인이 되어보았다. 처음이 아니라서 당황하지 않고 해보았다.
그런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예전에는 교회에서 한번 안대를 쓰고 앞으로만 쭉 가는 것만 해서 쉬웠는데 이번에는 학교 이곳저곳 돌아다녀서 어려웠다. 눈이 안보여서 어둠속에 있다면 불편한 생활을 해야 되겠다. 나 같으면 끔찍 할 것 같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여 하는 모습을 보니 보통 사람과 다름없다는 것이라고 생각 한다 우리는 장애인을 보면 별거 아닌 하찮은 것 같지만 우리가 경험을 하며 얼마나 어려운지 알겠다. 그리고 휠체어 타는 것도 있었는데 난타지 못하였지만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 내가 만약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한다면 엘리베이터, 화장실,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많이 할 것이다.
[비디오 감상문] 나무를 심은 사람을 보고
엘제아르 부피에 할아버지께
안녕하세요. 저의 이름은 이준혁이라고 해요. 저는 할아버지께서 하신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껴요
. 할아버지께서는 묵묵히 나무를 심으며 자연을 가꾸고 황패한 곳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할아버지가 굉장히 존경스러워요.
전쟁으로 위험했기도 했지만 지켜낼 수 있어 정말 다행입니다.
만약에 할아버지가 없었더라면 그곳은 사람들이 살지 못했을 거예요.
저도 그곳에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았는데 그럼 할아버지 이만 마칠게요. 안녕히 계세요.
<도토리의 집을 보고>
나는 도토리의 집을 보았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남 게이코라는 아이는 선천성 청각 장애와 말을 못하는 것을 알게 된 부모님은 절망하였다.
나는 게이코라는 아이가 굉장히 다른 사람과는 달라보였다. 하지만 게이코는 유치원을 다니면서 노력으로 하나하나 배워갔다.
게이코는 또 노력하고 노력하여 많은 힘든 일을 급복해 나아갔다. 게이코는 놀라운 아이 같았다.
노력으로 장애를 이기고 나아간 걸보니 장애인도 일반 사람과 다름없다는 사실이 놀랍다.
나도 예전에는 장애인을 보고 좀 우스웠지만 나도 이제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되겠다.
[달걀 품기를 하고]
오늘 달걀 품기를 해보았다. 우리를 나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며 품으라고 했다. 나는 달걀 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꽤 재미있게 그렸다. 달걀을 손에 쥐고 있었다. 하나 더 있던 건 깨져서먹어
버렸다. 그런데 나는 달걀을 품는 것처럼은 안했다. 그래도 항상 보고는 있었다. 그래도
좋은 것을 배운 것 같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우리를 항상 보고 있는 것인 것 같았다. 오늘
부모님의 소중함을 느낀 것 같았다. 오늘 좋은 교훈을 얻은 것 같다.
<시험>
시험 날이 다가왔다
학교 등굣길이 무겁다.
교실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한창 들떠있었다.
서로 공부 잘하는 애의 머리 뽑자며
추격하고 머리하나 주라며
테이프 감아 뽑아서
이곳저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드르륵 소리와 함께
선생님이 둥글둥글 말린
두터운 시험지가 내려졌다.
나는 잘볼까? 하며 터질 것 같은
마음을 안고 국어시험지를 받았다.
나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문장 못 볼세라 눈이 돌아갔다
예상외로 쉬웠다
하지만 다 쉬울 수는 없는가 보다
나는 그런 문제는 조심조심 썼다.
하지만 그 문제가 맞을까 했다
쉬는 시간에 문제 맞았는지 확인하였다.
시험이 끝나고 선생님 감사했다.
집에 가서 잘 맞았는지 생각했다.
[수련회를 다녀와서]
수련회를 가기 전날 이것저것을 챙기면서 흥분 되었다.
긴장이 되어서 잠이 잘 안 왔다. 나는 아침에 엄마가 깨워 일어났다.
나는 준비물을 확인하고 아빠의 차를 타고 학교로 갔다. 버스가 많이 들어서 있었다.
차에서 내린 후 엄마와 작별을 했다. 조금은 떨렸지만 괜히 흥분되고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나는 버스 안으로 들어섰다. 우리반 애들이 북적였다. 다들 버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30분 후 에 나 출발 한다고 했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친구와 앉았다. 말을 계속 하였다. 그래서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갔다. 드디어 출발 하였다.
또 다시 떨렸다. 그 후 버스에서 영화를 보았다. 보고 있는 중에 휴게소에 들렸다. 나는 무엇을 사먹고 버스로 갔다.
아이들은 이것저것 사왔다. 우리들은 버스에서 이것저것 먹으면서 갔다. 한 2시간쯤이 가서 도착한 곳은 국립 기념관이었다.
거기서 독립할 때 힘을 주었던 사람들과 무기 등을 보았다. 그러다가 나와 재현이가 같이 돌아다니다가 미아가 되었다.
우리들은 내가 갔고 있는 mp3를 갔고 들었다. 우린 그래도 자유롭게 돌아다녀서 좋았다.
우리는 그동안 그 위인들이 어떤 일을 한지 알 것 같았다. 나와 재현이는 돌아다니다 친구들을 만났다.
거기서 외국인들을 만났다 그런데 나는 그 아저씨들과 같이 사진을 찍었다. 기분이 좋았다.
조금 벤치에서 쉬고 다시 들어갔다. 그런데 선생님을 찾아서 가는 중에 외국인을 만났다.
그런데 애들이 외국인들에게 돈을 달라고 하니 1달러를 주었다. 그 아이들이 부러웠다.
나도 그래서 내가 갖고 있는 도자기와 바꾸자고 하자 안 받아도 된다며 1달러를 주어서 너무 좋았다.
기분도 좋아 앞에 있는 큰 잉어한테 100원을 넣고 먹이를 주었다. 그리고 거기서 엄마를 주려고 도자기를 기념품을 샀다.
그 후 버스로 갔다. 버스 타고 가면서 또 영화를 보았다. 한 1시간쯤 더 가니 조치원에 갔다.
그 때부터 형이 말 해 준일들이 있었다. 첫날 가자 환영식을 했다. 거기서 선생님(교관님)들의 별명이 하나씩 있었다.
둘리, 텥레토비, 흠곰 등이 있었다. 처음 교관님들이 좀 무서워서 군기가 꽉 잡혀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너무 조용했었다.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후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아이들과 축구를 하였다.
그러다 다시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더니 모둠을 정했다. A조 B조 C조 D조 로 나누었다. 그건 바로 모둠별 체험 학습이다.
나는 A조였다 A조는 수영이었고 B조는 골프 C조는 자전거 D조는 난타를 하였다. 나는 숙소에서 수영복을 챙긴 후 배구장 앞으로 섰다.
우리는 수영장으로 갔다.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것을 생각하니 생각만 해도 시원 했다.
그런데 수영장 애들이 서니 밖으로 투명한 유리로 여자애들이 볼 수 있을만한 유리가 있었다. 그래서 빨리빨리 뛰어갔다.
그런데 아이들이 너무 시끄러웠다.
재현이가 그때 개구리를 잡아왔다. 그런데 아이들이 너무 떠들어 시작을 안했다. 몇 명이 말려 간신이 조용히 시켰다.
그 후 준비운동을 한 후 물속으로 들어가 자유 시간이 주어져 마으껏 놀았다. 재현이는 개구리를 갖고서 놀았다.
나는 수영을 했다 그런데 승민이가 습격했다. 내 수영복을 벗겼다. 나는 간신히 도망쳤다.
그리고 재현이에게 개구리를 돌려주고 나도 목표물에 다리를 걸며 놀았다. 수영이 끝난 후 나는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을 먹은 후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그래서 축구를 하였다. 그리고 다시 불러 주위 할 점 등을 애기해 주고 각자 방으로 갔다.
아이들이 모두 씻고 왔다. 이불을 꺼내서 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안 씻어서 재현이와 같이 씻었다.
나는 그날 긴장을 했는지 잠이 안 왔다. 그래서 몇 명과 같이 밤을 새기로 하였다. 우
리들은 밤에 과자도 먹고 만두 등을 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들어와 시끄럽다고 안자는 아이들을 불러 강당으로 모이게 했다.
혼낼 줄 알았는데 재미있는 게임을 하자고 하였다. 남자 여자 따로 원을 만들어서 서로 돌아가면서 얼굴에 낙서하기로 하였다.
한명 씩 그릴 때 마다 너무 재미있었다. 그리고 제대로 안 그린 사람은 교관님이 직접 그려 주었다.
우린 새벽 3시에야9 겨우 숙소로 가서 잤다. 둘째 날 일어나 보니 어재 그린 얼굴의 낙서가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낙서를 지우고 옷을 갈아입고서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야외무대에 집합해 아침 산책을 나갔다 아주 멀리 까지 갔다 왔다.
그 후 조금 쉰 뒤에 합동 공튀기기와 단체 줄넘기 등을 하며 호흡을 맞춘다고 했다.
운동을 하고 자유 시간이 주어져서 밖에서 놀고 숙소에서 쉬었다. 그리고 모둠별 체험 못 한 것을 다 한다고 했다.
내가 못한 것은 골프. 난타, 자전거를 한다고 했다. 골프는 별로였다. 그래도 난타와 자전거는 재미있었다.
난타는 파워 있게 치면서 재미있게 박자 맞추는 게 재미있었다. 자전거는 빠르게 달리며 한손으로 놀고 탔다.
모두 마치고 난 후에 방에 있기도 하고 놀기도 하며 있는 중 야외무대에서 캠프파이어를 한다고 모였다.
캠프파이어를 하기 전에 장기 자랑을 하였다. 그동안 갉고 닦은 실력을 서로 모드를 즐겁게 해주었다.
나도 거기서 꼭지점댄스를 추었다. 추억에 남는 일이다 그 후 캠프파이어의 불을 올렸다. 그리고 모든 반 끼리 놀이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촛불 의식을 하였다. 초를 들고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내가 잘 못하거나 내가 한일을 생각 하면서 반성하는 일이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우리반 애들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숙소에 가서 부모님에게 편지를 보내려고 편지 봉투와 편지지가 사라졌다. 나는 부모님에게 편지를 못 보냈다.
좀 실망했다. 그래도 오늘 많은 것을 배웠다. 셋째 날 눈을 뜨고 오늘 가는구나 생각했다.
옷을 갈아입고 바로 밥을 먹고서 밖으로 나갔다 이제 마지막으로 짐을 챙기고 나갔다.
그때는 점심밥을 조금 발리 먹었다. 왜냐면 반 달리기를 한다. 반 달리기를 할 때 우리 반이 결승에 올라갔다.
우리반은 아슬아슬 한 차이로 5반이 우승을 했다. 달리기 후에 교관님 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조금은 아쉬웠다.
2박 3일 동안 앉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다음 코스인 국립 중앙박물관에 도착했다.
거기서 십이지장 로봇 모형 등도 보고 과학전에서 재미있는 것이 많았다.
비행기 조종과 물 로켓 특이하게 움직여 구멍을 통과하는 것 등 재미있었다.
우리 반은 그곳을 나와 버스를 타고 마지막으로 이제 집으로 향했다.
&tw25=이지희
<달걀품기를 하고>
학교에서 삶은 달걀을 가지고 와 달걀 품기를 했다.
처음에는 이걸 왜 할까 궁금했는데 이제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유는 엄마 아빠께서 나를 지금까지 키워준 마음과 은혜를 알려고 하는 것 이었다.
먼저 가지 온 달걀에 얼굴을 그리라고 했는데, 나는 그림에 영 소질이 없어서 세래한테 그려달라구 했다.
세래가 그려주고 나는 매직으로 칠했다.
달걀은 내 분신이라 소중하게 다루고 있었는데. 다 끝나고 먹어버렸다.
달걀 품기를 해보니 부모님의 힘든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엄마 아빠 말씀 잘 듣고 엄마께 덤비지 말아야겠다.
[주장하는 글] 시각장애인 체험을 하고
학교에서 안대를 쓰고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를 짚고 밖으로 나갔다. 나에게 잠깐이나마 시각장애인이 될 기회가 올 줄을 몰랐다. 어둠속에 갇혀서 평생을 살아야 할 시각장애인이 너무 불편할 것 같았다. 무섭기도 하고 갑갑하기도 하고 계단에서도 몇 번이나 넘어질 뻔 하고, 아이들하고 부딪히고 너무나 힘들었다. 나는 시각장애인에 대해서 잘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 계기를 통해 시각장애인이 얼마나 불편한지 알게 됐다.
내가 시각장애인 체험을 해 보니 우리 학교는 장애인 시설이 잘 되어있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 학교도 장애인 시설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비디오 감상문] 도토리의 집을 읽고
케이코는 태어날 때부터 말을 할 수 없고 들을 수도 없다.
그런데 그 어려움을 참아내고 이름도 쓰고 화장실도 스스로 가고, 스스로 밥도 떠먹고.
나한테 그런 장애가 있다면 정말 힘들고, 괴로울 것 같은데.
케이코는 잘 참아내고 수화도 배워서 장애도 천천히 극복해 나가고.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나도 이제는 케이코처럼 모든 일을 시작하면 포기하지 않는 내가 되려고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나는 장애인은 다 싫어했는데, 이제는 정상인과 장애인을 차별대우 하지 않겠다.
화요일 3.4교시때 손을 이용하지 않는 입과 발을 이용하여 구족화 그림 그리기를 했다.
콧등이 아프고 그림도 망치고 너무 힘들었다.
구족화가들을 보면 정말 잘 그리고 멋지던데. 어떻게 그릴까??
앞으로는 장애인이 싫다고 차별하지 않아야겠다.~~
<나무를 심은 사람들을 보고.☆>
엘제아르 부피에 에게.
안녕. 나는 태안초등학교에 다니는 5-5반 李知姬라고 해. 너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사막에서 10만 그루의 나무를 심다니 . 나는 한그루도 못 심을 것 같은데.
그리고 가족을 모두 읽어버리고 개와 양이랑만 살고. 나는 단 하루도 못살 것 같은데.
여행가에게 따뜻한 스프도 나누어주고.
사막도 물이 흐르고 나무도 심으면서 가꾸고 전쟁도 생각하지 않고 그 일에만 집착하며 숲을 만든 일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
나도 앞으로 내 일은 남에게 미루지 않고 그 일이 해결될 때까지 집중하는 너의 모습을 본 받을 거야. 그럼 안녕.
<공룡 박물관에 다녀와서.>
우리 가족은 해남에 있는 할머니 댁에 방문하던 도중 우항리에 있는 천연기념물394호인 공룡, 익룡, 새 화석 산지에 들렸다.
그 곳에는 퇴적층이 있었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8천3백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 시대에 건설 된 퇴적층으로 검은색의 이암층과 푸른색과 흰색을 띄는 사암층의 해식 절벽이 5km의 해안에 걸쳐 길게 펼쳐져 있다' 고 한다.
퇴적층의 직접 보기는 처음인데 직접 보니 참 멋지다는 것을 알았다.
또 마멘치 사우르스가 있었는데 마멘치 사우르스는 코끝에서 꼬리 끝까지 전체 길이가 21m, 목길이가 11m몸무게는 27t이다.
중국 쓰촨성에서 발견되어 중국 베이징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우항리 지역의 발자국과 공룡의 크기를 추정하여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자 전시 되어 있다고 한다.
이 곳에 있는 공룡 발자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발자국 내 '별' 모양의 내부 구조가 확인되며, 발자국 크기가 52cm~95cm등 다양하게 발견되고 있다.
익룡 발자국도 있는데 해남에 초청한 미국의 록클리 교수에 의해서 밝혀졌으며 미국, 영국, 스페인 등에 이어 세계에서는 7번째로 발견되었고 아시아 에서는 최초로 발견되었다.
이 익룡 발자국의 이름은 해남군의 지명을 따 해남이엔시스로 명명하였다.
물갈퀴 새발자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물갈퀴 달린 새 발자국이고 지금으로부터 약 8,300만 년 전에 형성되었다.
이런 공룡 전시관에 가니 공룡 발자국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고 공룡에 대한 견문을 더 넓혀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수련회를 다녀와서]
22일 아침 수련회를 간다는 것이 너무 기대됐다.
학교에는 일찍 왔지만 거의 오전 8시쯤에 출발했다.
가장 먼저 들린 곳은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 이었다.
안에서 흩어져 구경을 하다 외국인도 보고 점심을 먹고
조치원 청소년 수련원에 가서 입소식을 하고 자전거 하이킹을 하는데
잘타는 사람은 밖에서 타고, 못타고 탈수 있긴 하는데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안에 운동장에서 탔다.
나는 밖에서 타고 싶어서 교관 선생님을 따라 밖으로 나가서 15명과 함께 탔다.
소도 보고 돼지도 보고 거위도 봤다. 경치도 멋있었다.
한바퀴 정도 돌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저녁을 먹고 강당에 모여서 스크린으로 별구경을 하고 컵라면을 사먹고 잠을 잤다.
23일 아침을 먹고 야외무대로 모여서 단체 줄넘기와 단체 공튀기기를 하고 수영을 했다.
그곳에 개구리 한 마리가 있어서 어떤 애가 개구리를 잡아내고 준비운동을 하고 슬지랑 놀고 있는데 교관선생님이 머리를 물속에 집어넣었다. 그다음은 골프를 했는데, 헛스윙을 날릴 때는 창피했다.
난타도 했는데 선생님이 우리 힘이 너무 좋다고 했다.
선생님 왈. 꼭 스트레스 풀러 온 사람 같다고 하셨다.
저녁에 촛불 의식과 모닥불 피우기 장기 자랑을 했다.
우리 반은 버즈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과 단체 꼭짓점 댄스를 하는데 내가 서있는 곳을 바닥으로 빠지는 것 같았다.
촛불의식을 할 때는 엄마 아빠가 보고 싶었다.
우리반 댄싱퀸과 댄싱킹은 가을하늘과, 황인용, 김현규, 정승민이었다.
오후 10시 30분쯤에 끝나서 잠을 잤다.
23일 아침을 먹고 반별 이어 달리기를 했는데, 우리 반이 1등을 해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퇴소식을 하고 점심을 먹고 국립 중앙 과학관에 갔다.
그 곳에서 멀미의 방에 들어갔는데, 어지럽기만 했다.
어떤 심장에는 낙서만 가득했다.
화상전화도 있었지만 하지는 못했다.
그곳에 가서 엄마 아빠도 보고 싶었지만, 많은 것도 배우고 영어 경험도 쌓고, 또 하나의 경험을
남겼다고 생각하니 기분도 좋고 너무 재미있었다는 생각도 들고 다시 가고 싶다.
&tw26=이채은
[일기] 허브농장
2006년 8월 24일 목요일
오늘 선생님과 상은이 희수 윤희 소헌이 나 내동생 선생님 아들, 이렇게 같이 허브 농장에 갔다.
상은이가 윤희 소헌이한테 전해주고 윤희하고 소헌이가 나에게 전해줬다.
허브농장에 가려면 2시까지 서해안 마트로 모여야 했다.
무척 난감했다. 우리 집이랑 서해안 마트는 10분 거리다
지금 시간은 1시 53분 걸어가기는 너무 멀어서 차를 타고 갔다.
그래서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왔을 땐 아무도 없었다. 조금 기다리니 윤희와 소헌이가 왔다.
그리고 상은이와 희수가 왔다 서해안 마트에서 음료수를 사먹고 나오니,
선생님이 오셨다. 우리들은 선생님한테 갔다.
차에 탔는데 전화가 왔다, 그건 선생님 아들이었다.
환민이가 가고 싶다고 전화를 한 것이었다.
그래서 신동아에 들렸다가 허브농장으로 출발하였다,
가서 구경을 하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비누도 만들었다
난 하트 모양의 비누를 만들었고 내 동생은 키티 모양의 비누를,
윤희는 금붕어 모양의 비누 희수는 나비 모양의 비누를 상은이는 열매 모양의 비누를
소헌이는 키티 모양의 비누를 선생님 아들은 자동차인가? 무튼 비누를 만들었다.
액체가 굳으려면 30분이 걸린다고 했다.
그래서 30분 동안 꽃구경도 하고 분수도 보고 풍차도 보았다 ♥
난 모든 게 맘에 들었다 다음에 가족끼리 오는 것도 좋겠다.
30분 구경을 다하고 다시 비누 만든 장소로 갔다.
다음에 또 오고 싶다,^-^*
[장애 체험] 시각 장애인 체험을 하고
오늘 학교에서 시각 장애인 체험을 했다.
안대로 눈을 가리고 시각 장애인용 지팡이도 사용 했다.
많이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안대로 눈을 가려 앞이 깜깜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수빈이와 짝을 지어 했다 수빈이는 앞이 안 보여서 무섭다고 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생각을 했다 계단에서 몇 번이나 넘어질 뻔 하였다.
겉으로는 재미있게 보이지만 힘들다. 교실에서부터 넘어지고. 힘이 들것 같았다
그리고 불편하고 답답하게 보인다. 얼마나 힘든지를 내가 직접 경험해 보니 색다른 경험이었다.
전무후무 할줄 알았는데. 좋은 경험을 했다.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눈이 안 보이는 것은 너무 괴로운 일이다
그리고 우리 학교의 불편한 점은 계단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좋은 점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난 10분 동안만 그렇게 있었지만 시각 장애인은 하루하루 그렇게 살아가니 너무 안 됐다.
우리 학교도 장애인의 시설이 잘 되어 있으면 좋겠다.
[비디오 감상문] 나무를 심은 사람을 보고.★
엘제아르 부피에는 대단한 것 같다.
10만 그루의 나무를 심다니 나는 1그루도 못 심을 것 같다.
그리고 개와 양과 같이 살고 있고 부인과 아들을 잃고 정말 안 됐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고 있다 정말 대단하다.
나 같으면 희망을 잃고 하루하루 힘들게 살았을 것이다.
엘제아르 부피에는 나무를 계속 심으며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나무는 튼튼하게 잘 자랐다 그리고 전쟁을 생각 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할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자기 할일만 열심히 하는 것 엘제아르 부피에에게 본 받을 점이라고 생각 한다
난 내 할일은 미뤄 놓고 하고 싶은 것만 한다. 나도 이제부터 내할 일을 열심히 할 것이다.
엘제아르 부피에는 늙었지만 본 받을 점이 너무 많다.
지금 이 세상은 그런 분 없을 것이다.
정말 대단 하신 분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보고>
내가 만약 엄석대 라면 1등은 아니더라도 열심히 할 것이다.
공부를 못하는데 공부 잘하는 아이의 시험지에 이름을 바꿔서 1등을 하고
나 같으면 내 진실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얘들이 잘못하면 폭력을 쓰고. 정말 나쁜 짓이다.
나 같으면 열심히 반을 이끌어가고 폭력은 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병태가 엄석대를 무시했다 해도 한병태만 청소를 합격 시켜주지 않고
나 같으면 다른 얘들과 똑같이 대해 줄 것이다
반장이라면 까부는 것은 이해해 줄 것이다.
서울 환경이랑 달라서 잘 모르는 것이 많으니 반장이 무시하기 보다는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좋은 행동이고 올바른 행동이기 때문이다.
난 내가 말한 대로 실천 할 것이다.
[수련회를 다녀와서]
나는 2박 3일 동안 독립기념관, 조치원 청소년 수련회, 중앙 과학관을 다녀왔다.
독립기념관에서 태극기의 여러 문양을 봤다.
태극기의 색이 다른 것도 있고 그림이 다른 것도 있었다.
신기 했다. 나는 태극기는 지금 우리나라의 태극기 모양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독립 기념관에서 나와 청소년 수련회로 갔다.
너무 기대 됐다. 그런데 가자마자 앉았다 일어섰다 좀 힘들었다.
그런데 난타를 하고 생각이 달라졌다. 선생님은 너무 친절하고. 재미있게 가르쳐 주셨다.
첫날은 난타 밖에 안했다. 그리고 잘 때 잠이 안와서 얘들과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12시에 잤다. 그리고 2챗날은 아침에 단체줄넘기, 단체 공튀기기를 했다.
얘들이 단체 줄넘기를 잘한다고 해서 기분이 좋았다.
단체 공 튀기기는 잘 못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는 시간이다. 근데 난 자전거를 안탔다.
그 이유는 다칠 것 같아서이다. 그 다음 시간은 수영이다. 수영은 재미있었다.
선생님을 물에 빠뜨리고. ^-^ 그리고 골프를 했다.
골프 선생님은 착하게 보이는데 무섭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헛스윙을 하는 것도 재미있고. 잘하는 얘들 보고 감탄도 하고.
그리고 저녁을 먹고 장기자랑을 했다.
우리반은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꼭짓점 댄스를 했다.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간주 중에 멋졌다.
선생님이 우리 반이 꼭짓점 댄스를 출 때 몇몇 얘들이 부러워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짝짓기 놀이를 했다.
5명 모리라고 하고 반끼리 모이라고도 하고.
그리고 반끼리 모여서 춤 잘 추는 얘들이 몇 명 나가서 춤배틀이 시작 됐다.
내가 보기엔 우리 반이 제일 잘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촛불의식이 시작 됐다.
여자 얘들은 거의 울었다. 남자 얘들도 울고.
그 이야기를 들으니 앞으로 부모님께 선생님께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촛불의식이 끝난 후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그리고 취침을 했다. 셋째 날은 아침을 먹고 이어달리기를 했다.
우리반 대표는 가을하늘,윤희,나영,슬지,정승원,황인용,김현규,정승민이 나갔다.
결과는 1등이다 1등을 또 했다. 체육대회 날에도 1등을 하고.
이어달리기가 끝난 후 퇴소식을 했다. 끝난다고 해서 좀 아쉬웠다.
청소년 수련회에서 중앙 과학관으로 갔다.
다른 몇 반은 자유 시간인데 우리 반은 자유 시간이 아니었다.
근데 몇몇 얘들이 따로 다니다가 흩어졌다.
우리 반 몇 명이 사라져 찾다가 시간이 좀 늦어졌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시험>
나는 시험 전에 지금까지 푼 시험지를 다시 보았다.
정말 떨렸다 아침에는 우리 반 얘들이 공부 잘하는 얘들의 머리카락을 뽑아갔다.
가을하는 상은이 황재현 세래는 머리카락이 많이 뽑혔을 것이다
어떤 애는 가위로 자르는 얘도 있었다.
선생님이 시험지를 나누어 주실 때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그래도 1교시에는 내가 좀 자신 있는 국어를 나누어 주셨다.
국어는 한. 1~2개쯤 틀렸을 것이라 예상 했다.
그 다음은 수학을 나누어 주셨다 수학도 1~2개 틀렸을 것이라 예상했다.
수학 뒤에는 도덕이 있었다. 도덕은 쉬워서 100점 아니면 1개 틀렸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 다음 사회를 했다. 사회는 그럭저럭, 한 2~3개 쯤 틀렸을 것이라 예상했다.
다음은 내가 제일 자신 없는 과학 과학은 6~7개 틀렸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실과를 했다. 실과는 1~2개쯤 틀렸을 것이라 예상했다.
마지막으로 음악 미술 체육은 잘 봤다 체육 빼고
나는 과학을 제일 많이 틀렸을 것이라 예상했다
시험이 끝나고 몇 개 틀렸을까? 학력상 못 받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했다
하루 동안 시험 생각 뿐이었다. 지금까지 푼 시험지에 있는 문제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나는 시험을 잊기 위해 학습지를 풀었다.
학습지를 풀어도 계속 시험 생각을 했다
잊으려고 텔레비전을 봐도 생각이 났다
나는 내 시험 점수를 당장 알고 싶었다.
나는 정말 시험 전날 열공을 했다. 나는 시험공부를 많이 하지 못한 게 후회되었다
후회해도 이미 늦었지만 좋은 결과 있기를.
오늘 시험 점수를 가르쳐 주었다.학력상을 탄다. ^-^*
국어 1개 틀리고 수학 1개 틀리고 과학 6개 틀리고 사회 2개 틀리고.
미술 음악 도덕 실과는 100점이고 체육은 1개 틀리고
좀더 잘 맞았으면 좋았을 테데.
그래도 지금 만족 한다 2학기 때에는 더 좋은 성적으로
&tw27=이초롱
<달걀품기를 하고>
오늘 달걀 품기를 하였다. 그런데 모르고 내 달걀 밑이 깨졌다.
하지만 유성 매직으로 예쁘게 꾸미니까 예뻤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달걀을 손에서 절대로
놓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런데 체육시간에 애들은 다 달걀을 가지고 왔는데
나 혼자 안 갖고 온 것 같다.
왜 선생님께서 삶은 달걀을 가지고 다니라고하신 이유를 알겠다.
이유는 12년까지 우리를
낳아서 길러주신 부모님이 얼마나 힘드신 지를 깨달으려고 달걀 품기를 한 것 같다.
그래서 느낀 점은 부모님이 너무너무 소중하시고 감사하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그리고 앞으로 더 건강하세요. 또 감사해요.^^
[장애 체험] 시각 장애인 체험을 하고.
시각 장애인 체험을 하고.
오늘 시각 장애인 체험을 하였다. 내 파트너는 슬기다.
먼저 슬기가 안대를 쓰고 시각 장애인 이 사용하는 지팡이를 잡고
내가 인도해주었다.
그런데 계단을 내려가다가 슬기가 엎어질 뻔했다. 그래서 나와 슬기가 깜짝 놀랐다
.
그런데 운동장에서 1학년 아이들이 달리기를 해서 조금 구경을 하다가 내가 안대를 쓰고
지팡이를 잡고 슬기가 나를 인도해주었다.
나는 앞이 안보여서 답답하였다.
교실에 들어와 보니 아무도 없어서 다시 운동장으로 가니 우리 반 애들이 휠체어를 탔다.
나는 애들 모습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 타고 싶었지만 타지 못하였다
그래도 직접 시각 장애인 체험을 하여서 재미있고 보람 있었다.^^
<도토리의 집을 읽고>
게이코는 귀도 안 들리고 말도 못하는 장애인이지만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스스로 밥도 먹고 자기 이름도 썼다.
게이코가 6학년이 되어서 생리를 하였다.
그런데 게이코 엄마는 그 사실을 알고 게이코에게 생리대를 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게이코가 뭐든지 다 스스로 하여서 너무너무 기뻐서 눈물을 흘렸다.
느낀 점은 아무리 장애인이어도 차별을 하지 말아야겠다. 또 장애인을 많이 도와줘야겠다.
[비디오 감상문] 나무를 심은 사람
<엘 제 아르 부피 아저씨께.>
나는 엘 제 아르 부피 아저씨가 착한 것 같다.
왜냐하면 여행 가인 사람에게 물도 주고 먹을 것도 주고 잠도 자게 해줬기 때문이다.
또 마지막에 엘 제 아르 부피 아저씨 때문에 세상이 평화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 제 아르 부피 아저씨가 나중엔 죽어서 조금은 슬펐다.
느낀 점은 나도 엘 제 아르 부피 아저씨처럼 남을 도와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한편은 엘 제 아르 부피 아저씨 때문에 사람들이 행복해서 기분이 좋았다.
[수련회를 다녀와서]
오늘 수련회를 간다. 그래서 7시 30분에 출발하였다.
수련회를 갈 때 독립기념관에 들렸다. 거기에 가서 사진도 찍고 3.1운동을 한 유관순언니와 또 옛
날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 도 보았다. 나는 너무 끔찍하였다.
또 옛날에 입던 한복도 보고 옛날에 끼던 귀걸이 팔찌 목걸이 등등을 보았다.
그리고 거북선도 보고 이순신 장군이 입던 옷도 보았다.
이순신 장군이 입던 옷이 멋있었다.
또 옛날에 쓰던 총도 보고 칼도 보았다.
독립기념관을 다보고 나서 은혜 윤희 하늘 소헌이를 만났다. 그래서 같이 다니다가 외국인을 만났다.
그러다가 세레가 왔다.
그리고 기념품도 사고 분수대에 가서 사진도 찍고 점심을 먹고 버스에 올라탔다.
드디어 조치원에 갔다.
그래서 조치원에 있던 교관님들께서 우리가 잠 을 잘 숙소를 정해주시고 우리는 짐을 놓고 하이킹을 하였다.
둘째 날이 되었다. 그래서 아침을 먹고 수영 을하고 점심때가 되어서 골프를 하였다. 골프가 어려웠다. 그리고 오후4시쯤에
난타를 하였다. 그런데 난타 선생님이 조금 느끼하였다.
저녁이 되어서 우리는 장기 자랑을 하였다. 우리는 노래와 꼭지점댄스를 하였다. 캠프파이어를 할 때 슬픈 얘기를 해서 나는
울었다. 그리고 숙소에 들어가서 부모님에게 편지를 썼다. 나영이랑 다희랑 같이 라면을 사먹었다. 참 맛있었다.
드디어 집에 가는 날이다. 막상 조치원을 떠난다는 생각에 쪼끔 슬펐다. 하지만 집에 가니까 기분이 좋았다.
조금 있다가 버스를 타고 국립중앙 박물관에 가서 여러 가지 공룡도 보고 행성도 보고 멀미방도 가보고 라이트 형제가 만든
비행기도 보았다. 너무 너무 재미있었다.^^
<시-시험 본 후>
시험을 다 본 후 이 초 롱
내 기분이 좋다.
왜냐하면
시험공부를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도 된다.
시험 결과가 나오면
내 가슴이 콩닥 콩닥 뛴다.
많이 틀리면 어쩌나
나는 기대가 된다.
시험을 못 보면 엄마, 아빠께
혼 날 것 같기 때문이다.
드디어 결과가 나왔다.
나는 기분이 별루다.
&tw28=장지영
<모둠일기장에서-체육 대회>
학교에서 체육대회를 하였다.
그래서 일까? 우리반이 열심히 했다.
피구우승, 줄다리기 우승, 투호 3위, 그리고 뭐지?
어쨌든 우리반이 1등한 건 맞지!
얘들아. 수고했어.
<모둠일기장에서-달걀품기>
오늘 달걀을 품었다.
그런데 머리랑 턱이 깨졌다.
불쌍했다.
사진도 찍었다.
&tw29=정구윤
<장애인 체험>
학교에서 장애체험을 했다.
우리들은 휠체어를 탔다.
맨 처음에 강현준이 탔다.
급식실 까지 갔다.
나는 강당 까지 갔다.
타보니깐 장애인 들이 불편한 생활을 하는 것 같다.
건창이가 탔을 때 1반 애들이 타본다고 난리였다.
내가 탔을 땐 별루 없었다.
휠체어를 탔을 때가 재밌었다.
그리고 장애인용 지팡이로도 다녔다.
무지 힘들었다.
근데 재밌었다
장애 체험을 하니깐 많은걸 느꼈다
장애인도 노력과 희망을 갖고 열심히 나아가는 걸
<달걀품기를 하고>
달걀은 살색이었는데
우리가 품어서 얼굴이 생겼다.
내가 잘 품어서 깨지지도 않고
잘 낳았다.
그런데 언제 깨질지 모른다.
그래도 오랫동안 널 품고 있을 깨.
<도토리 집을 보고>
게이코는 어렸을 때부터 장애를 가졌다. 그건 어른들도 몰랐다. 게이코는 말을 잘못하고 웃질 안했다.
나는 그렇게 안 되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어제 구족화를 해서 알았다. 장애인도 노력을 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찾는걸 알았다.
우리와 장애인의 차별은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같은 사람이라 서다. 그리고 장애인과 차이는 없다.
그리고 구족화때문에 알았다. 장애인은 뒤쳐지지 않는 다는 걸.
<윤선생>
오늘 윤선생을 처음으로 했다.
영어로만 하지만 재밌었다.
녹음도 하고 기록도 남기고 딴대 보다 좋은 것 같다.
그리고 선생님도 오신다. 즐거웠다.
<달팽이 놀이>
오늘 달팽이 놀이 비슷한 걸 했다
여자랑 했는데 우리가 이겼다
너무 시시 했다
다시 했으면 좋겠다.
[수련회를 다녀와서]
첫째 날은 도착 할 때 떨려고 기대가 됐다. 그리고 독립기념관에서 독립운동 하는 유관순누나를 봤다.
총도 봤다 그리고 조치원에 도착 했다. 일단 숙소로 들어가서 가방을 놓고 골프를 쳤다.
그리고 별자리를 보고 잤다. 7시에 일어나서 둘째 날이 됐다. 기상 이란 말에 애들이 일어났다. 산책을 하고 밥을 먹었다. 그리고 축구를 하고 난타를 쳤다. 재밌었다. 그리고 자전거 하이킹을 탔다. 의자가 높았다. 그래도 재밌게 탔다. 그리고 수영을 했다. 건창이 물안경이 부셔졌다. 그리고 캠프파이어를 했다. 신세레가 종이컵을 태었다. 어떤 선생님이 부모님 예기를 하니깐 애들은 울음보가 터졌다. 마지막 날은 놀았다.
그리고 조치원을 떠났다. 국립중앙박물관을 가서 구경을 하고 나왔다. 애들이 몇 명 없어졌다. 선생님이 찾으러 갔다. 버스가 출발 했다.
집에 도착 했다. 피곤해서 씻고 잤다.
&tw30=정승민
<달걀품기>
난 달걀 품기를 했다.
달걀 품기는 너무나 재미있었다.
그리고 달걀 품기를 하고 색칠을 했다.
그다음 봤더니 정말 웃겼다. ^*^
진짜 좀 깡패 같았다 무진 웃겼다.
근데 문선준 머리랑 좀 똑같았다.
진짜 웃겨서 배꼽이 빠질 뻔 했다.
그래도 너무 너무 재미있었다.
&tw31=정승원
[장애 체험] 시각 장애인 체험을 하고
시각 장애인 놀이를 했다. 그리고 화장실 갈 때 안대랑 지팡이를 짚고 계단 내려 갈 때 실수라도 하면 넘어진다. 그래서 많이 아프다.
지팡이가 없으면 시각장애인은 잘 걸을 수가 없어서 지팡이가 꼭 있어야겠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을 신청했을 때 시각장애인 마음을 알겠다.
<달걀품기>
달걀을 속에 넣어 품자
달걀을 품으면 달걀 속에서
병아리가 나올까?
병아리가 크면 닭이 되겠지
달걀을 품어도 병아리가
나오지 않는다.
이제껏 달걀을 품은 건
헛고생 일까
아니면 언젠간 나올까?
아니야 언젠간 나올 거야
<백구와 서영이의 사랑 이야기를 읽고>
눈 내리는 어느 날 남쪽 성 진도에 서 진돗개가 태어났다.
그 진돗개는 무럭무럭 잘 자라 서영이네 집으로 팔려 거 백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영아와 떨어져 산다면 얼마나 외로울까? 그 것도 엄마와 영영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백구는 팔려 가면서 얼마나 슬펐을까?
백구는 처음 만난 주인 서영이와 할머니에게 사랑을 느끼고 서영이와 할머니는 백구를 가족처럼 생각했다.
백구가 그런 주인을 만나게 되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서영이가 백구를 챙겨주고 백구가 서영이를 깊이 사랑해주는 장면을 읽었을 때는 나도 가슴이 뭉클 하였다.
하지만 갑자기 서영이네가 어려워지자 서영이 아빠는 백구를 팔아 버렸다. 서영이 아빠는 백구를 팔아 버렸다.
그 장면을 읽으면서 나는 딸 서영이가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는 백구를 팔아 딸과 어머니가 사랑하는 백구를 팔아 버린 서영이 아버지가 이해가 안되었다.
백구는 태범이라는 착하고 마음씨 좋은 주인에게 팔려갔지. 다시 도망쳐 나왔다.
백구는 옛 주인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도망쳐 나온 걸까? 내가 백구라는 그랬을까?
백구는 며칠을 돌아다니다가 숲 속에 있는 집에 들어가 그 집 주인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다가 잡혔다.
그 집주인은 개 장수였다. 그렇지만 백구는 지혜롭게 사람들을 따돌려서 도망쳤다.
백구에게도 그런 지혜로운 생각이 있을 줄은 몰랐다 한 편으론 백구가 바보 같다.
처음에 개장수가 목줄을 채울 때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백구는 7개월 만에 서영이네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백구가 꼭 내 개같이 사랑스러웠다. 또 개를 사랑하는 태범이 서영이 할머니 모두가 좋았다.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다. 왜냐하면 자기가 좋아 하는 동물을 기르는 것은 창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나도 백구 같은 개를 키우고 싶다.
주인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는 백구 주인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는 백구 모든 사람들에게 사람을 나누어주는 백구 동물이지만 그런 백구를 닮고 싶다.
&tw32=조유미
[시] 우리 할머니
쭈글쭈글 주름살
우리 할머니
쭈글쭈글 주름살이
꼭 기어가는 지렁이 같다
뽀글뽀글 파마머리
우리 할머니
뽀글뽀글 파마머리가
꼭 폭탄 맞은 머리 같다
까칠까칠 우리 할머니손
걱정해줄 사람 하나 없네
우리 할머니 여름에
외로이 폭죽 파네.
<편지글 - 나무를 심은 사람(양치기 할아버지께)>
안녕하세요? 양치기 할아버지!! 오늘 학교에서 나 무심은 사람을 봤는데요. 조금 슬프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네요.
양치기 할아버지 그런데 나무를 10만 그루씩이나 심으셨잖아요??
몇 년이나 걸려서 나무를 심었는지는 조금 짐작이 가네요…….
그리고 10만 그루 중에 2만 그루만 자라나도 정말 기뻤죠??
제가 만약 할아버지였다면 금방 포기 했을꺼예요.ㅋㅋ
그리곤 다른 사람처럼 살아갔을 것에요.
정말 끈기 있게 몇 년 동안 그 많은 나무를 심으셨다니 정말 꿈에서라도 놀랍네요.
할아버지는 정말 하루에 100개의 도토리를 골라내면서 심었잖아요.
힘들지도 않았어요??
난 돈 준 다해도 포기할텐데. 하지만 정말 놀라워요, 할아버지 이만 연필 놓을게요.
[장애 체험] 장애 체험을 하고
오늘 지영이와 짝을 하고 시각장애인들이 쓰는 시각 장애인용 지팡이와 안대를 쓰고 체험을 하였다.
처음에 지영이가 나를 부축하였다.
다음 쉬는 시간에 우리 반 모두가 밖으로 나가서 시각 장애인이 되어보았다.
급식실까지 가보았다 내가 지영이를 부축하였다 .
하지만 지영이는 무궁화가 핀 화단에 넘어졌다 그리고 지영이 말로는 가지가 입으로 들어가서 가지를 먹었다고 하였다.ㅋ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지영이를 보고 웃었다. 내가 봐도 정말 웃기다 ㄲ또 지영이가 나만 2번했다고 막 울 뻔하였다.
지영이는 재미있게 시각장애인처럼 행동하였다 하지만 지영이는 체험놀이로 생각한 것 같다.(나도지만) 하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장애인이란 정말 힘든 것 같다.
시각장애인 말고도 정신지체 장애인 청각장애인 등이 있다.
이 모든 장애인들은 평생 동안 어떻게 살지 정말 궁금하기도 한다.
내가 장애인이었다면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단10분에 체험을 하였지만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내동생은 장애인을 보면 매일 놀린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으면서도
매일 놀린다. 만약 내가 장애인이었다면 그 놀림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나는 그런 놀림을 받고 살지는 못한다.
그리고 장애인을 만나면 먼저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냥 말동무만 되어주면 된다고 하였다.
장애인 체험 후 느낀 점은 내가 장애인이 되면 힘든 점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시각장애인 지팡이를 사용해보니 앞도 안보이고 정말 힘들었다.
[달걀 품기를 하고]
오늘 달걀품기를 하였다.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주연이 달걀을 슬기가 깨쳤다고
하여서 주연이는 엄청 화가 났다.
조금은 정말 조마조마하고
깨뜨리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ㅋㅋ
애들은 끝날 때 되니까 계란이 거의 깨져있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인다.
[수련회를 다녀와서]
5월22일부터 5월24일까지 수련회를 갔다 왔다.
첫째 날은 독립기념관을 갔다 가서 전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구경하다가 외국인을 만났다
만나서 가을하늘이 영어로 말을 하였다. 말을 하다보니 외국인이 군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다른 데로 가다가 또 외국인을 만났다 외국인이 우리에게 돈을 주었다 나는90원, 지영이는250원이라 고하였다 그런데 우리 학교 영어 선생님이 돈달라고 하지 말랬는데 강현준은 계속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혼났다. 은혜 윤희 가을하늘인가??? 지폐를 가지고 있었다. 조금은 부러웠다 그래도90원이나 받아서 좋았다.
그리고 다 구경하고 우리의 숙소가 있는 곳인 조치원 청소년 수련원에 갔다 첫째 날은 입소식을 하였다.
조금은 길었지만 앞으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였다. 그다음 조를 편성하였다. 나는 D조이고 장지영은C조 이다 거의 키가 작은 사람은 C조이고 키가 큰사람은D조였다 숙소를 정해주었다
나는204호 지영이도 나랑 같은 숙소, 나영이는 안타깝게도 203호 같이 자고 싶었는데.
세래도 나영이랑 같은 숙소였다 하지만 채은이 상은이 수빈이 지영이 나 윤희 은혜 유진이 슬기
이렇게 같은 숙소이다. 그리고 우리는 짐정리도 채하지 못하고 교육??을 하러 가야했다 D조는 자전거 하이킹이다 교육은 이런 것들이 있다 자전거 하이킹 골프 수영 난타가 있다D조는 자전거 하이킹이다
그리고 우리 담당 선생님이 제일 무서운 곰??선생님 같다 하지만 밤에는 화를 잘 안내시는 난타 선생님이
우리가 자는지 안 자는지 보았다 한편으론 안심이다 애들 말로는 몇 번이나 걸려도 얼굴에 낙서는
안했다 그런데 남자들이나 몇몇 여자들은 얼굴에 낙서가 되어있었다 곰???선생님이 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냥 자고 애들은 12시에 잤다. 자다가 유진이는 시끄러워서 깼다고 하였다. 나는 잘 때 우리 엄마가 누가 데리고 가도 모른다고 한말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애들은 내가 조금 놀다 잤다고 하였다
나는 기억 안남. 그리고 둘째 날은 7시10분에 옷도 입고 준비를 다하고 야외무대 앞으로 갔다.
그리고D조는 아침에 수영을 하였다 수영은 정말 재미있었다. 나는 추워서 수영장에서 나갔다.
왜냐하면 선생님께서 추운 사람은 나가서 있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나가서 자전거를 하는C조에 있는 친구들한테 가서 놀았다 놀다가 자유시간이어서 놀다가 밥을 먹고 골프를 하러갔다 골프를 쳤는데 진짜 재미있었다. 그런데 골프공과 골프채가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래서 팔의 힘이 조금은 들어갔다 그리고 골프를 치는 애들을 보니 나보다 잘 쳤다 물론 나는 잘 모르겠다. 그다음 교육은 난타이다 난타 선생님이 정말 재미있게 가르쳐 주셨다 정말 재미있었다 둥둥따~둥둥따~또하고싶당~~~~!~!~!~!~!~!
난타는 대학교에서도 공연을 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나는 난타도 하고 싶고 그림도 하고 싶다?그리고 A조?? C조??인가 단체 줄넘기를 하고 B조 D조 단체 공튀기기를 하였다 우리 조는 1등을 해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또 바꿔서 우리 조는 이제 단체 줄넘기를 하였다 그런데 가르쳐주시는 수영 강사님이 정말 웃겼다 (강사 선생님이 단체 줄넘기를 가르쳐 주었음) 얘 왜이러니~!~!~하면서 정말 웃겼다. 그 다음 장기자랑을 하였다. 그런데 2반이4반의 누나의 꿈 춤을 따라하였다. 그래서 예진이 보현이랑 울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우리 반의 꼭짓점 댄스로 마무리~!~!~!~!~!~ 그다음은 캠프파이어를 하였다. 장작에 불을 피워서. 저번에 교회에서 봤지만 또 보니 좋았다 캠프파이어를 마치고 촛불 의식을 하였다
우리 반 여자애들은 거의 다 울었다 우리 반 남자애들은 몇몇이 울었다 다른 반도 많이 울었다. 그리고 숙소로 들어가서 편지를 쓰고 잤다 그리고 셋째 날 이어달리기를 하였다. 당연히??우리 반이 이겼다 그리고 1번째 주자 가을하늘2번째 황인용3번째 김나영 4번째 김현규5번째 황윤희6번째 정승민7번째 김슬지8번째 정승원 이렇게 뛰었다.
그리고 퇴소식을 하고 버스에 탔다 그리고 약간의 냐영이와 나의 다툼이 있었다. 나영이의 안경이 비틀어졌다.
그래서 나랑 안경점에 가기로 약속을 해놓고 독립기념관에 갔다 가서 독립기념관에서 지영이와 나영이와 싸워서 내가 끼어들었다가 다 울다가 다시 내가 화해시키고 우린집으로 가는데 나영이가 나랑 같이 안경점에 안가서 그냥 집으로 가버렸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영이는 아빠가 와서 집으로 갔다고 하였다.(싸운이유 나도 모름)
<시험>
오늘은 시험 날 두근두근.
오늘은 시험인지 애들은 긴장을 하는 애들도 있는 반면 긴장은 하지도 않고 자신만만하게 있는 애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긴장을 하였다 가슴이 콩닥콩닥 두근두근 드디어 시험지가 내책상에 왔다.
우리 모두 연필을 들고 시험지를 풀었다.
나는 시험 전에 초콜릿을 먹었다. 그런데 먹으나마나였다. 배만 더 아파왔다.
1교시부터5교시까지 머리가 조금씩 아파왔다.
하지만 학력상을 타서 기쁘게 해주고 싶은데 나는 그렇게까지는 못한다.
그리고 딱 시험지를 풀어보는데 아는 것 절반 모르는 것이 절반으로 시험지에 채우고 있었다.
모르는 문제보고 내 머리에는 식은땀이 줄줄 나오려다 아는 문제를 보고 흘리진 않았다.
하지만 시험을 보고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시험 때문에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린 것 갔다. 하지만 성적표를 보니 뻥 뚫린 가슴이 다시 답답해졌다.
나는 단 두개 때문에 학력상을 못타는 게 정말 아쉽다. 단 두개라도 더 맞았으면 좋았을걸.
정말 다시 생각해도 아쉽다. 조금만 더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후회는 하지 않는 것인데.
&tw33=한광희
<우리말을 살리자>
요즘 인터넷에서 외래어와 외국어를 조합하여 쓰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ㄱㅅ(감사), ㅅㄱ(수고), ㅂ2(바이), 방가, 하이루, 짱, 존나, 잼냐, 캡장 등 여러 가지 이상한 말들이 있다. 세종대왕께서 만들어주신 한글을 외래어와 조합하여 쓰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어른들도 많이 쓰고 있다.
우리 한글을 살리려면 우리 한글을 습관적으로 쓰고 이상한 말을 만들지 말고 세종대왕께서 만들어주신 순수하고 고운 우리말을 사용해야 한다.
북한에서는 순수하고 고운 우리말을 사용한다고 한다. 북한과 남한 말의 뜻은 같다. 예를 들면 남한에서는 골키퍼, 북한에선 문지기, 남한에선 친구, 북한에선 동무. 세종대왕께서 만들어주신 우리 한글을 악의 구렁텅이에 빠트리지 말자는 생각을 해본다.
한글날에 선생님께서 내주신 문제 3가지를 모둠끼리 의논을 하여 답을 알아보았다. 우리 모둠은 한 문제를 맞혔다. 우리가 우리말을 자주 쓰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그 놀이를 통해 우리 순수한 말에는 부랴부랴, 미주알고주알, 미역국 먹다, 곳간 등 이런 말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나라 한글을 아끼며 한글을 쓰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멸치 공장에 다녀와서>
나는 방학 동안에 신진도에 있는 멸치 공장에 다녀왔다.
요즘에 한창 멸치가 많이 잡혀서 바쁘게 일을 하고 계셨다.
바다에서 잡아 올린 멸치를 모기장처럼 생긴 망에다가 아주머니분들께서 손으로 직적 넣으셨다.
힘들게 일을 하시는걸 보니까 마음이 아팠다.
넓은 망에 멸치가 가득 널려지자 잠깐 쉬는 시간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또 1시간 지나자 멸치를 한곳에 모아 차에 싣고 공장 안으로 이동하였다.
공장에 들어가서 멸치를 내려놓았다.
공장이 그리 크진 않았지만 아주 깨끗하였다.
공장안에서는 차에 실고 온 멸치를 멸치 선별기에 넣고 작은 것과 큰 것 그리고 이물질을 선별한다.
선별하기를 앞서 아주머니들 깨서는 종이 박스를 접으셨다.
멸치를 선별해서 담는다고 도와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말씀드렸더니 위험하다고 하셨다.
그래도 바쁜데. 여러 가지로 친절히 대하여주셔서 나도 도와 드릴 수 있었다.
그랬더니 나중에 10000원을 주셨다.
집에서 식탁에 올라오는 멸치로 만든 반찬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내가 집적 멸치공장에 가서 멸치가 우리밥상에 오기까지 과정을 보고 나니 멸치의 소중함과 어떤 것이든 내 눈으로 보니 달랐다.
할머니 분들이 친절하신 덕분에 내 체험 학습은 무사히 끝냈다.
[비디오 감상문] 나무를 심은 사람을 보고
늙은 양치기 할아버지께
난생처음 보는 사람을 그렇게 대접을 해주시는 그런 마음에 감동이 먹었어요. ㅎㅎ
그리고 프로방스 황무지를 전쟁 속에서도 꾸미신다는 게 놀라웠지요.
이 이야기에는 우리나라를 조금 더 발전을 시킬 수 있는 도움을 준 것 같네요. 또 요즘에는 환경이 더러워지고 있어요.
지구를 더럽히는자, 지구를 가꾸는 자. 앞으로는 저도 할아버지의 고운 마음씨를 본받도록 할게요. 그럼 이만
<도토리의 집을 보고>
게이코는 청각장애여서 아무 말도 못 듣고 막 화내기만 하고 고집불통이었지만 선생님과 엄마의 의해서 수화를 하고 혼자 음식을 먹고 옷을 입게 되었다.
개이코가 중학생이 될 때 까지 끝까지 개이코가 혼자 다른 걸 할 수 있게 노력한 부모님과 선생님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다른 사람이 장애인이라도 장애인을 욕하고 차별하지 말아야겠다.
[비디오 감상문] 시각 장애인 체험을 하고
나는 안대와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를 꼈다. 보이지 않는다고 친구들이 때리고 또 다른 친구는 엉뚱한 길로 가라고 했다. 나는 그 친구를 믿고 갔다. 머리를 다치고 나니 장애인이란
이런 고통도 격고 시각 장애인 지팡이가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걸. 현규라는 친구를 받침하고 3-1반 교실까지 갔다. 오는 길에 현규가 자빠졌다. 나무덩쿨이 없어 졌었다면
현규는 한바탕 굴렀을 것이다. 나는 현규가 자빠질 때 웃었지만 눈이 보이지 않으니까 더욱더 도와주어야겠다는 걸 알았다. 철현이는 그 지팡이를 빼앗아서 장난감처럼 사용 하였다.
태민이가 다시 빼앗아서 현규한테 줬다. 우리는 다시 우리 반으로 가다가
가을하늘이 휠체어를 타고 왔다. 구윤이가 도와줘서 사고가 나지 않았다.
장애인은 불편하기 만 할뿐 우리랑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달걀 품기를 하고]
우리는 달걀을 삶아서 가져왔다. 하루 동안 가지고 다녀야 했다 우리는 힘들었다. 깨져서 1개를 먹었다. 하지만 다른 하나에 낙서를 하고 정성껏 보살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달걀을 창문에 던졌다. 그래서 달걀에게 미안했다.
달걀이 깨졌기 때문이다. 내가 그래서 좀더 노력을 해서 조금 밖에 안 깨졌다.
미안한 마음으로 2중 성격으로 바꿔보니 정말 멋이 있어 졌다.
아무리 못생긴 것도 꾸민다면 예쁘고 멋진 작품이 탄생이 한다는 걸 알았다.
친구들 중에서는 꾸며서 머하냐? 라는 말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또 한편에는 좀더 발전을 해도 될 수 있을 꺼라 고 했다는 말을 해주는 친구가 고마웠다.
[수련회를 다녀와서]
우리들은 독립 기념관을 갔다. 독립운동가도 보고 생활에 필요한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신 사람들은 을 봤다.
우리는 조금 더 가서 조치원 청소년 수련원에 갔다.
입소식을 하고 흑곰 선생님께서 제일 무섭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수영 선생님과 수영도 하고 우주에 대해 배운다.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구윤이,준혁이,승민이,문선준,김현수,김민식,종현이 얼굴에 낙서가 되어있었다(잠을 안자서ㅡ.ㅡ;;; ㅋ)
나는 배꼽이 터지는 줄 알았다.
흑곰선생님과 아침에 산책을 하는데 흑곰선생님이 2명에서 타고 가는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어이 꼴통 타이르는데 꼴통이 승민이였다(미안)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밥을 먹고 친구들과 축구를 한다. 그리고 골프 ,바이크, 난타를 하고 장기자랑을 했다
우리반은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꼭짓점 댄스를 하고 선생님과의 댄스, 캠프파이어 마지막으로 촛불 의식에 친구들과 내가 울었다. 우리 가족에게 편지도 썼다. 다음날 아침에 건창이랑 싸워서 미안한 마음이 들고 후회가 됐다
우리는 이제 화해를 하고 반들끼리 이어달리기를 하는데 우리 반이 (당연히)1등을 하고 퇴소식을 한다는 말에 눈물이 났다. 우리는 국립중앙과학관에 가는데 1반 주성이내 할아버지께서 사고가 나신다. 다행이 많이 다치진 않았다. 하지만 병원을 가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우리는 그때 동안 구경을 한다. 1시간 정도 봤다 그리고 차에 타고 기다리는데도 사건아 골라고 도착 예정 시간이 1시간 더 늘어났다.
버스에서 기다리면서 오바이트를 하려는 친구들이 있었다.
태안을 다와서 신세레가 오바이트를 해서 다른 애들도 하는데 박슬기 토가 택범이 가방에 묻어서 택범이가 화가 조금 났다고 했다.
다행이 화가 조금 나서 다행이었다.
엄마가 마중 나와 계신 것이 나에겐 정말로 고마웠다.
&tw34=한다희
[수련회를 다녀와서]
나는 2006년 5월 22일에 야영 캠프를 갔다. 시간은 2박 3일 동안 수련회에 있어야 한다.
동생은 다녀오라고 말했지만 왠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버스에 타고 쭉 가다 보니까 갑자기 멈췄다. 휴게소에 들른 것이다.
휴게소에 들어 갈 때 동생이 장난감을 사달라는 말이 생각났다. 난 플라스틱 골프채랑 캔 커피를 하나 샀다.
또 버스가 가다가 다시 멈췄다. 수련회는 아니고 민속 체험학습에 왔다.
민속체험을 하고 부모님 선물을 하나 샀다. 드디어 수련회에 도착. 맨 처음은 자전거를 하였다.
자전거를 하고 쉬고 밤에 더워서 잠이 안 왔는데 선생님한테 들켜서 낙사를 당할 뻔 했다.
그 일로 이런저런 일이 있는 후 둘째 날 아침
1.공튀기기(팀끼리)2.줄넘기(단체로)아침먹고 수영. 골프. 난타를 했다.
곤충체험학습장에 가서 공룡뼈 등 신기한 걸 많이 보고 집으로 왔다
[달걀 품기를 하고]
오늘 정말 짜증.
내가 달걀을 삶아서 들고 와서
그림을 그렸다.
재미있었다. 근대ㅠㅠ
깨져 버렸다.
그리는데 열심히 했는데ㅠㅠ
그런대 헛수고야ㅠㅠ
짱나~열심히 했는데
헛수고라니~말도 안 돼
왜냐하면 점심 먹기 전에 깨졌다.
ㅠ.ㅠ열심히 했는데 깨져버렸다.
&tw35=한은혜
[달걀 품기를 하고]
달순이에게.
달순아 안녕, 난 니 주인이야,
미안, 난 널 깨쳐 먹었다.
하지만, 널 만나서 기뻤어,
그렇지만, 비록 뱃속에 있지만,
잘살아.
널 만나 기쁘고,
좋았어.
1교시~6교시까지.
사진이라도 찍지,ㅠ.ㅠ
달순아, 비록 뱃속이지만, 잘 살아.
달순아, 부디 잘살고, 그동안 고마웠다,~
ㅠ,ㅠ 보고 싶다,♡
&tw36=황윤희
<제목 장애인 체험 학습>
나는 언제 한번 학교에서 장애인이 되어봤다.
처음엔 시각장애인이었다가 그 다음으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되어봤다
근데 시각장애인이 되어 지팡이를 짚었을 때 눈이 보이지 않자 너무 답답했다
다음으로 휠체어를 탔는데 힘들진 않았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계단을 내려가려고 하였는데, 무리였다,ㅋ
느낀 점, 장애인들은 불쌍하다,ㅋ
[달걀 품기를 하고] 반이에게~
반이야 잘 갔니??
아까는 참 재미있었어,아까는 내가 널 위해 침댈 만들어 주었는데 맘에 들었을지??ㅋ
반이야 널 내가 지금 먹어버렸지만 너는 내 뱃속에 있으니까 괜찮아~~ㅋㅋ
반이야 날 잊지 마~나도 널 잊지 않을 게~~ㅋ
반이 야 내가 널 먹어 버렸지만 널 잊지 않을게~~~~ㅋ
<시-공 부>
공부는 상처다.
시험지를 선생님이 채점을 할 때면
마음은 그대로 멈춰버린다.
ㅇ를 맞을 땐 휴~다행이라고 하는데
/가되면 상처가 된다.
나는 가끔 공부는 누가 만들었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가끔 아! 내가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내가 나중에 직장을 얻으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하자!
&tw37=황인용
<시 : 달팽이놀이>
친구들과 재미있는 달팽이 놀이
빙글빙글 어지럽게 돈다.
휴, 어디까지 가야하나
친구들과 재미있는 달팽이 놀이
가위 바위 보. 와! 내가 이겼다.
빙글 빙글 어지러운 놀이.
친구들과 재미있는 달팽이 놀이
달팽이 놀이는 재미있다.
친구들과 하는 것도 재미있네.
<시 : 어버이날 달걀품기>
어버이날 달걀품기 하니
어머니, 아버지 생각나네.
나의 기쁨도 슬픔도 함께 하니
살며시 달걀에 어머니, 아버지
얼굴 그려봅니다.
달걀이 떼구르르.
쿵! 하고 떨어졌다.
나의 슬픔은 마음만 애태우고
울상을 짓는 나의 뒷그림자가 어둡습니다.
<독서 감상문 쓰기 - 나무를 심은 사람>
여행가는 바람이 부는 곳에서 텐트를 깔았으나, 바람이 많이 불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그는 5시간이나 걸었지만 물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늙은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를 보았다. 그 양치기는 여행자에게 묵을 방을 내주었다. 그리고 여행자는 다음날, 아침에 양치기가 도토리를 고르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자기 일이니 상관 말라고 하였다. 양치기는 양을 몰고 나갔다.
여행자는 양치기의 뒤를 밟았다. 그는 나무를 심고 있었다. 약 십만 그루의 어마어마한 나무를.
(느낀 점) 나도 양치기처럼 노력해서 나무의 그 루수처럼 좋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 체험] 장애 체험을 하고.
장애 체험을 했다. ㅋ
매우 불편했다. 왜냐면, 앞이 안보이고, 사람들이나 친구들에게 따돌림, 왕따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애 장애인이래.' 라고 말합니다. 장애인인 사람은 참 불편한 것 같습니다.
장애인도 우리와 같은 사람인데. 왜 차별을 하는 것일까요???
정말 이 체험을 하고 장애인이 어떤 기분인지 잘 알았습니다.
&tw38=황재현
<시- 바닷가에서>
엄마가 약속 하나를 했다.
바나나 보트를 태워
준단다.
바닷가에 텐트치고
물에 첨벙 하며 빠졌다
이제 바나나 보트 탄다.
이제 바나나 보트 탄다 하고 출발했다
엄청난 속도다. 물이 얼굴에 튄다.
아저씨가 운전대를 틀자
나는 그대로 물이 날 잡아끄는 지
그대로 물에 빨려들어 갔다.
난 아~한숨을 쉬었다.
다시 바나나 보트에 올라탔다.
아저씨가 요령을 알려주셨네.
하자 자신감이 생겼다.
다시 출발했다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균형을 잡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아저씨가 운전대를 확 돌렸다.
꺅~하며 떨어졌다.
굉장히 온몸이 쑤시지만
재미있었다.
좋은 바닷가의 추억이다.
[장애 체험] 장애 체험을 하고
오늘 학교에서 장애 체험을 하였다. 나는 안대를 끼고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를 짚고 교실 밖으로 나가서 계단으로 내려갔다. 무척 힘들었다. 급식실까지 갔는데 친구들과 부딪치고 넘어지기 까지도 하였다. 정성원을 믿고 가다가 벽을 박을 뻔하기도 하였다. 장애인은 어떻게 잘 걸을 수 있을지 장애인을 잘 도와 줘야겠다.
2005년 4월 27일
[모둠일기] 가재 허물 벗다.
학원생활을 끝마치고 집에 가서 씻고 나오다가 집에서 한 달 전부터 키운 가재가 죽었나 살았나 보았다.
보니 가재 허물이 있고 그 옆에 가재가 있었다.
엄마한테 보여주었더니 엄마도 가재가 허물을 벗는 것을 모르셨다.
나는 가재가 신기하였다.
[수련회를 다녀와서]
첫째 날은 아침 7시부터 나와서 10분 동안 인원수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독립기념관을 가서 구경도 하고 기념품을 사고 다시 버스를 타고 수련회를 가서 숙소로 가서 짐을 다 풀어놓고 나가서 좀 놀다가 점심 먹고 또 놀다가 다모여서 선생님이 ABCD조로 나누어 주시고 각각 수영, 골프, 난타, 자전거를 하였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가서 샤워를 하고 잠을 자는 데 친구들이 떠들어서 잠을 못 잤다. 그런데 승민이가 갖고 있는 야광이 터져서 잠자리나 승민이나 애들 옷에 다 묻었다. 그래서 승민이는 옷을 갈아입었다. 둘째 날 아침 점심 저녁 생략 밤에 캠프파이어를 하고 촛불을 켜서 어머니를 생각 하는데 가을하늘이 웃어서 짜증났다.
다 끝나자 숙소로 들어가서 잤다. 셋째 날 아침을 먹고 선생님 작별을 하고 달리기 경주를 했다. 우리반이 결승에 올라가서 1위[우승]을 했다. 이제 버스를 타고 국립 중앙 박물관에 가서 구경을 하고 집으로 향했다.
<시-시험>
오늘은 시험 알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1과목씩 볼 때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시험이 다 끝나자
많이 틀리면 어떡하지
나는 마음이 점점
무거워진다.
&tw39=정성원
<보이스카우트>
오늘은 6교시에 보이스카우트에 갔다. 내가 정식 보이스카우트였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 축구 경기를 했다. 6학년VS 5학년 그런데 어이없이 5학년이 이겼다.
하지만 나는 큰 부상을 당했다. 얼굴에 공을 맞아서 이다.ㅠ.ㅠ 하지만 오늘 하루 참 즐거웠다.
<편지 : 안녕! 5-5반 친구들. 성원이 엄마야.>
안녕! 아가들. 나는 성원이 엄마야.
우리 5-5반 아가들은 정말 대한민국에서 제일 행복한 것 같아.
왜냐하면 아가들의 마음을 읽고, 아가들과 매일 함께하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유일상 선생님이 계시니까.
우리 성원이는 서천에서 엄마의 직장 때문에 전학을 왔거든.
그런데 성원이는 집에 와서 너무나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이야기해서 아줌마는 정말 기뻐!
왜냐하면 항상 친절하게 대하는 친구들과 담임선생님이 항상 자상하게 지켜봐 주신다고 좋아해!
아줌마가 4월쯤 학교에 가서 우리 아가들이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서 갈 거야!
그때 맛있는 것 사가지고 갈께!
앞으로도 항상 진실되고 노력하는 어린이가 되어 부모님을 즐겁게 해야 돼!!! 안녕.
<즐거운 하루>
오늘은 참 즐거웠다, 그 이유는 나도 모른다. 그리고 학교에서 너무 재미있었다.
특히 오늘 과학 시간에 실험을 했다. 무슨 실험이였냐 하면 바로바로 빛이 물체를 통과를 할 수 있나 없나 였다.
하지만 결과는 통과해서였다. 그리고 집에 와서 공부를 했다. 무슨 공부냐면 국어였다. 엄마가 오시고 우리에게 비빔밥을 해주셨다. 으~아 참맛 있었다. 그리고 공부를 하였다. 일기쓰고 서동요보고 잤다
[수련회를 다녀와서]
우선 제일 먼저 학교에서 독립기념관으로 갔다.
가서 조치원 청소년 수련회를 가서 맴 처음으로 골프를 하였다
그리고 난타 그리고 수영 등을 하였다. 그리고 촛불의식을 하고 편지 쓰고 엑스포가 멀미의 방등을 보았다.
특히 멀미의 방에는 들어가면 오바이트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건 줄거리입니다.
우리는 자전거 하이킹할 때 너무 힘들었다. 왜냐하면2~3시간 동안 자전거를 타서다. 그리고 우리는 수영을 하였다.
참 재미있었다. 너무 재미있다. 나는 실수로 건창이의 물안경을 했다. 그리고 촛불의식을 하였다.
그때 어머니 생각이 났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엄마 아빠께 잘할 거다. 그리고 하룻밤을 자고 아침밥을 먹었다.
아침에 달리기를 하였다. 그리고 우리반이 1등을 하였다.
버스 타고 30분 거리에 있는 엑스포에 가서 멀미방도 구경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특히 조치원 청소년 수련원에 계신 흑곰 선생님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무섭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5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다. 엄마랑 성철이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공포시험>
시험 보기 전날 엄마에게 죽기 살기로 공부만 했다
너무 졸렸고 내일이면 자유라는 생각에 열심히 했다
아침이다
오늘이 드디어 시험 시간이다.
그래서 엄마가 시험 잘 보라고 선물을 사주셨다.
시험 볼 때
시험 못 보면 어떻하나 계속 고민했다.
엄마에게 잘못 걸려 맞으면 어떻하냐 나는 걱정된다.
시험 본 후 자유다. 게임 많이 해야지
&tw40=김형기
[달걀 품기를 하고]
달걀품기를 하면서 달걀이 안 깨졌다.
달걀이 안 깨진 것도 다행이지만 달걀이
생겨서 더욱더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내가 달걀 을 들고 다니면 달걀이 깨졌을 것이다.
[수련회를 다녀와서]
수련회를 가는 날 시간이 늦어서 선생님이 전화를 하였다.
그 후에 학교 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고 무었을 하게 될까
하면서 만은 기대를 하고 버스가 출발하자 가슴이 설렜다.
가다가 휴게소 에 들려서 쌍둥이 동생을 만나서 용돈 을 반씩 나누어
맛있는걸. 사먹었다. 그다음에 독립기념관 에 가서 맛있는 것을 사먹고
여러 가지를 구경하고 점심을 먹고 조치원 수련원에 가서 입소식을 하고
모둠을 정한 후에 수영 을 하면서 친구들이랑 잠수도 하면서 수영을 하다가
따듯한 물에 몸을 담그고 난후 옷을 갈아입고 저녁밥 을 먹은 뒤
숙소로 갔다. 숙소에서 자유 시간을 갔다가 강당으로 가서 줄을
맞혀서 교육을 받은 후 숙소로 가서 잠을 잤다. 일어나보니
몇몇 친구들 의 얼굴에 낙서 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라는 방송을 하였다.
그래서 밖으로 나간 후 산책을 한 후 아침밥을 먹고 단체 줄넘기를
하다가 무릎이 까졌다 정말 아팠다. 그 뒤에 단체공튀기기를 하고
점심을 먹은 후 골프를 치고 나서 난타를 하였다.
그다음에 자전거 하이킹 을 하였는데 나는 하이킹은 가지 않고
자전거를 타다가 몇 명의 애들이 돌아왔다.
그 애들은 어딘가에 빠져서 돌아온 것 이였다.
나는 자전거를 타다가 지겨워서 자전거를 세워 두고
놀았다. 그러다가 하이킹을 간애들이 돌아 와서
저녁밥을 먹고 장기자랑을 한 후 캠프파이어를 하고나서
촛불 의식 을 하였다. 그다음에 숙소로 가서 편지를 쓰고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밥을 먹고 이어달리기를 구경 한 후 줄을 맞춰서 버스를 타고 국립 중앙 박물관에 들려 많은 것을보고 학교로 돌아왔다.
<시험>
나는 시험 전에 마음이 무지 떨렸다
내가 과연 시험을 잘 볼까 같은 생각도 하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열심히만 하면 되겠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시험 준비를 하였다. 시험을 보기 시작하였다.
1교시에 국어 시험지를 풀고 나서 2교시에 수학을 풀었는데
10문제를 풀고 나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걱정을 하였는데
그때 하필 소변이 마려워서 화장실을 갔다 온 후에 수학을 빨리 풀었다.
시험이 끝나고 며칠 후에 통지표가 나왔다.
국어75점 도덕100점 사회100점 수학75점 과학80점 체육60점 음악90점 미술100점 실과100점 평균85점
엄마에게 돈4천원을 받는다. 정말 기분이 좋은 날이다.
&tw41=박민수
<한글날을 맞이하여>
세종 대왕께서 만드신 할들을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임 용어나 채팅 용어에는 감사, 추카, 방가,하이, 바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그런 채팅 용어를 많이 쓴다면 점점 한글은 없어지고 채팅 용어를 쓸 것 같다.
가끔씩은 채팅 용어를 쓰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또 한글을 사랑해야한다.
그리고 한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을을 가져야 한다.
나도 이제부터는 채팅 용어보다는 우리말을 많이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