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영화에 대한 인식과 변화 과정, 페미니즘 이론과 영화의 중요성
앨리슨 버틀러에 의하면, 여성은 늘 영화 제작에 참여해왔다. 하지만 여성영화에 대한 사유는 영화가 발명된 지 70여년이 지난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에 와서야 이루어졌다. 이때는 페미니즘이 영화를 비롯한 문화 전반과 여성이 처한 삶의 조건 전면에 영향을 끼친 시기였다.
존 버거는 <이미지, 시각과 미디어>(1972)에서 보고 보이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남자는 행동하고 여자는 출현한다. 남자는 여자를 바라본다. 여자는 보이는 자신을 바라본다. 그러나 이것은 남자와 여자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여자와 여자 자신 사이의 관계까지 결정한다. 그녀 자신에게도 여성의 감찰관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감시 당한다. 이런 식으로 그녀는 자신을 대상으로, 특히 시선의 대상으로 바꾼다”라고 말이다. 초기의 페미니즘 영화이론은 바로 이러한 문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그들의 목표는 남성적 시각으로 구성된 영상을 분석함으로써 영화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었다.
극장의 남성 시선의 객체
<대항영화로서의 여성영화>(1973)에서 클레어 존스턴은 영화의 역사에서 남성의 역할과 여성의 역할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은 성차별주의 이념 자체와 관련이 있다고 봤다. 그러므로 결국 여성영화는 이러한 기존의 성차별적인 영화에 대항으로서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존스턴은 이때 대항영화는 오락영화를 이용하여 여성의 판타지나 욕망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정치적 영화가 퍼뜨려지기 위해서는 쾌락을 활용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존스턴 글의 요지다. 반면 로라 멀비는 여성주의적 대항영화가 무엇이어야 하느냐라는 지점에서 존스턴과 차이를 가진다. 오히려 멀비에게 서사영화에 작동하는 쾌락은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킨다. 이때의 쾌락은 관객과 스크린간의 관계에 관한 쾌락이다. 멀비의 <시각적 쾌락과 내러티브영화>(1975)에 따르면, 영화 속 여성은 남성주인공 시선의 객체로서, 그리고 극장의 남성 관객 시선의 객체로서만 존재한다.
존재한다기보다 봉사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캄캄한 극장에 남성 관객이라는 신분석에 앉아 스크린 속의 여성을 훔쳐보면서 성적이고 시각적인 쾌락을 충족하기 때문이다. 멀비가 보기에 그동안 우리는 우리가 재미있다고 느낀 서사영화에 의해 성차별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졌다. 그러므로 그는 주류 서사영화를 반대하는 방법으로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안으로서 아방가르드영화를 대항영화로서 제시한다.
여성에게 말을 거는 영화
1980년대의 페미니스트들은 이전과 달리 영화 텍스트에만 중점을 두지 않고 영화를 제작과 수용이라는 맥락에서 사유하려고 노력했다. 즉 페미니즘영화의 관객에 대한 재조명이 시작된 것이다. “영화이론가들은 내게 말한다. 내가 영화를 볼 때, 영화 속 인물의 응시는 곧 남성적이며 카메라 눈도 남성적이므로 내 시선 역시 여성의 것이 아니라고.
그러나 나는 이 말을 더이상 믿지 않는다. 여성으로서 영화를 보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성영화 재고>(1987)에서 테레사 드 로레티스가 한 말이다. 드 로레티스는 이때 페미니즘영화를 여성을 위한 영화, ‘여성에게 말을 거는’ 영화라고 정의내렸다. 영화는 관객을 남성의 시선이 개입된 상징적인 여성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 사이의 차이만큼이나 여성들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는 한명의 여성을 호명한다.
드 로레티스는 <한복판의 게릴라>(1990)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는데, “여성영화는 실질적으로 지역적 차원에서 페미니스트 공동체가 처해 있는 실제 문제들과 연관되어 있다. 여성영화는 비록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여러 국가에 걸친, 보편적인 관객을 상정하는 영화가 아니라 투쟁과 비상사태라는 특별한 역사 속에서 특별한 한 사람을 호명하고 있는 영화이다”.
영화가 관객의 실제 성별과 상관없이 관객을 한 여성으로 호명하는 이러한 시도는, 즉 여성으로서 영화를 보는 시도는 여성들 사이의 차이, 즉 인종과 계급과 나이와 섹슈얼리티 등등의 다양함을 인식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인종적, 문화적, 성적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존재할 수 있으며, 우리는 이제야 페미니즘을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차이들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라고 말한 드 로레티스는 <한복판의 게릴라>에서 독립영화와 주류영화, 아방가르드영화와 서사영화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영화로 여성영화를 재정의하기도 한다.
여성이 처한 난국이 제공하는 긍정적 프로젝트
앨리슨 버틀러의 <여성영화>(2002)에 따르면, 이후의 동시대 여성영화는 대립적이라기보다 소수 집단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것에 대한 발상은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가 <카프카: 소수적인 문학을 위하여>(1986)에서 말한 소수집단의 문학 개념에서 가져온 것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작가가 주변부로 밀려나거나 그 또는 그녀의 허약한 공동체 밖으로 완전히 밀려난다 해도 이런 상황은 그 작가에게 다른 가능한 공동체를 표현하고 다른 의식과 다른 감수성을 위한 수단을 만들어낼 더 큰 가능성을 만들어준다.” 그러므로 더이상 페미니즘영화는 ‘여성’이라는 범주에 대한 본질주의적 이해를 전제로 할 필요가 없어진다. 들뢰즈는 말한다.
“때로 소수자 영화감독들은 자신이 카프카가 묘사한 난국에 놓이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페미니즘영화의 변별성은 ‘여성’이라는 본질주의적 이해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난국에 처한 동시대 문화에서의 여성의 위치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메건 모리스에 따르면, 더 큰 가능성을 만들어주는 여성이 처한 난국은 대중의 역사적 경험에 기댄 긍정적 프로젝트를 제공한다.
소수자영화로 명명된 페미니즘영화는 여성영화를 생각하는 대중과 엘리트주의, 아방가르드와 주류, 긍적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의 이분법에서 벗어난다. 페미니즘영화는 이제 어떤 것에 대립하고 대항하는 영화가 아니며, 버틀러의 표현에 따르면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주인의 영화적 담론에 편안해하지 않으며 늘 기존 전통의 관습들과 섞이고, 경합하며, 그것들을 재작업하는 감염된 양식’이다.
혐오의 대상이 된 페미니즘
한국 사회가 처한 상황이 더한 난국임은 분명하다. 최근 들어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혐오의 대상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유행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드 로레티스는 7년 전에 한국을 찾아와 ‘여성영화의 새로운 지도 그리기’라는 제목의 학술회의에서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영화의 유효성은 전 지구적이라든가 초국가적인 사업으로서가 아니라, 여성을 위한 그리고 여성에 의해 공유된, 사회 • 미학적 기획의 존재 여부에 달려 있다. 그런 영화 문화를 위해서라면 나는 기꺼이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포기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페미니스트에 대해 집중된 혐오 표현은 드 로레티스의 의도 같은 것도 아니다. 이는 여전히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여성주의를 향해 혐오라는 불을 피워 이들을 태워 없애려는 마녀사냥식의 그 무엇도 아니다. 쇼히니 초두리의 말처럼 페미니즘은 단지 여성에 대한 것만도 아니고 단순히 남성에 ‘대항하는’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페미니즘은 가부장제 사회구조의 권력을 분석하고 그것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지위를 기본적인 관심사로 삼지만,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다른 피지배 집단들도 그들의 관심사에 포함된다. 그러므로 여성영화에 대한 사유를 가능하게 해주는 도구로서 페미니즘 영화이론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유의미하고 오히려 더 논의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초두리의 말처럼 페미니즘 영화이론들은 여전히 우리의 영화 경험을 풍부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영화구조에서 남성적인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발견하는 작업과 사회구조에서 그것이 어떻게 숨어 작동하고 있는가를 아는 일, 이 둘은 서로 꽤 많이 닮아 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의 쟁점이 열렬하게 영화인 이유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